어릴 때부터 악기를 잘 하지 못했어.

엄마는 피아니스트.

레슨 할 때마다 혼났고 꾸중을 들었어. 그래도 혼내주실 때가 그나마 나은 편이었지.

얼마 되지 않아, 더이상 레슨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를 들었어. 나를 포기해버린 거야.

그렇지만 엄마는 기분이 좋으셨어.

왜냐하면 언니가 있으니까.

쌍둥이지만 나랑은 하나도 안 닮은 언니.

언니는 나와는 다르게 피아노를 잘 쳐. 콩쿠르에서도 몇 번이나 상을 쓸고 다녔지.

엄마도 언니도 날 보고 슬픈 표정을 지어. 불쌍하다니 뭐니 하면서.

혼나는 것보다 불쌍한 사람 취급을 받는 게 더 괴로웠어.

나, 리듬감은 꽤 좋은 것 같아.

그리고 곡이라면 대충 알고 있는 것 같아. 듣고 있다보면, 어떤 악기가 어디에서 어떻게 소리를 내고 있는지 알 것 같아. 마치 프라모델마냥 머릿속에서 많은 파츠가 조립되어가는 느낌이지.

하지만 듣기만 할 뿐이야.

혼자 힘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건 할 수 없어.

나는 음악을 할 자격이 없어.

음악은 재능있는, 선택받은 사람한테만 허락된 일.

그때 나는 프라모델만 만들고 있었지.

프라모델 조립하는데 집중하다 보면 머릿속에서 음악을 치워둘 수 있으니까.

하지만, 초등학교에서 반 음악발표회를 하게 되었어. 한 사람 한 사람, 각자 잘 하는 악기로 연주를 선보이래.

어떻게 땡땡이 칠지 생각하고 있는데 아빠가 뭘 빌려주셨어.

카세트 라디오 두 대.

지금은 더이상 구할 수 없는 카세트 테이프로 음악을 재생할 수 있는 기계. 내가 좋아하는 만화영화 주제가를 녹음해둔 테이프도 준비해 주셨거든.

나는 테이프를 몇 번이나 듣고는 노래가 시작되는 위치를 카운터에 확인해서 메모했어.

그리고 음악 발표회날.

언니도 같은 반이었어. 그리고 언제나 해 왔던대로 완벽한 연주를 선보였지. 전자 피아노긴 했지만 그래도 최고였던 것 같아.

다음은 내 차례. 아빠가 빌려준 카세트 라디오 두 대를 번갈아 써가며 카세트 테이프로 음악을 틀었어.

모두 그 만화영화를 보고 있었어. 인기가 많은 작품이었지. 주제가도 다들 정말 좋아해.

그래서 노래 인트로가 나오자마자 다들 환성을 질렀어.

나는 한 대를 재생시켜놓고는 다른 테이프 한 대를 더 돌려가며 카운터에 적힌 숫자를 읽고, 쓰고 싶은 노래의 머릿부분을 찾아냈어.

다음 노래에서도 교실은 신바람이 났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 뛰어오르고 뛰어다니고 따라 부르기도 하고.

이게 내 인생 첫 DJ였어.

처음으로 나도 음악을 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지 뭐야.

언니는 이걸 보며 기뻐했을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언니한테 물어보니

“그딴 걸 음악이라 할 순 없어.”

언니는 그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