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녀는 존재감부터가 압도적이었다.

마치 보통 사람과는 세포 하나하나가 차지하는 밀도가 다를 정도로.

영혼이 갖고 있는 질량이 다를 정도로.

주위 공간을 자신을 중심으로 왜곡해 사람들의 의식을 끌어당기는 인력이 느껴진다.

흰 머리에 빨간 브릿지.

자신감 가득한 미소.

쏘아보는 듯한 시선을 가진 눈동자.

단지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공기가 달라진다.

이 소녀가 이 자리를 지배한다는 점은 본능으로 납득해버리고 만다.

미뤄보건데 제왕의 품격이 흘러 넘친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냥감을 노리는 맹금류와 같은 눈동자가 레이나를 사로잡는다.

“너, 재미있는 소리를 내는구나.”

레이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호오 카린.

일본에서 제일 가는 시부야 테이온 국제 학원의 정점. Iris 랭킹 탑.

놀라움과 긴장감이 레이나의 온몸을 붙들어 매고 있다. 레이는 대답조차 할 수 없다.

완전히 삼켜진 것 같다. 겁에 질린다.

맹수의 눈에 잘못 보인 아기 동물처럼.

레이나는 본래 겁을 잘 먹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레이나조차도 카린이 쏘아보며 말 한마디를 건네자 심장이 요동치고 있다. 발이 움츠러들고 식은땀이 서서히 배기 시작한다.

그렇게 자신의 몸에 반응이 오자 레이나도 당황스럽기 시작한다.

몸이 굳어 꼼짝 못하고 서 있는 레이나에게, 카린이 계속해서 말을 건다.

“너, 하라주쿠 학생이었냐?”

레이나가 한번 침을 삼키고는 쉰 목소리로 대답한다.

“……아, 아니요. 저는 아키바에서…….”

간신히 그렇게만 대답하자, 카린은 눈썹을 찡그린다.

“아키바? 그런 곳에 덴온부가 있었다고? 너, 이름이 뭐야?”

“레, 레이나……. 히다카, 레이나입니다.”

“히다카……?”

카린의 눈이 스윽 가늘어진다.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 이내 피식 웃더니 DJ 부스가 있는 무대를 향해 걸어간다.

무대 끝에 손을 얹더니, 자기 키만한 무대 위로 가뿐하게 올라간다.

“잠시 빌리도록 하지.”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손목에 감은 ID-J를 DJ 유니트에 댄다. 카린의 계정 정보가 Iris에서 순식간에 로딩된다.

그런 카린의 행동을 보며 카즈네는 가위 눌린 게 풀려난 듯 몸을 내밀었다.

“카린이 돌린다고요?! 거짓말이죠!”

레이나는 카즈네가 왜 그렇게 놀라는지 알 수 없는 눈치이다. 그 알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읽은 카즈네가 대답해 준다.

“호오 카린은 덴온부 공식 배틀이나 자기 이름을 걸고 하는 파티에 밖에 나오지 않아. 하물며 이렇게 다른 에어리어의 공양에 난입해서 참가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그러자 미미토도 정신을 차린 듯 당황한다.

“자, 잠깐만 이게 뭔 소리야?! 뭐야 이거?! 저, 저, 저 호오 카린이, 그렇다니……. 어? 어어어어어?!”

“이제 좀 진정하세요, 미미토.”

히나가 달래 주자 미미토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고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설마……?!”

“뭐라도 짚이는 일이 있나요?”

히나가 묻자 시안과 카즈네, 후타바도 숨을 삼키며 대답을 기다렸다.

“……바로 내가 성장할세라 기를 꺾어주러 와 줬구나!”

히나와 시안이 어이없다는 듯 외면했다.

“그럴 리는 절대 없겠네요.”

“……없지.”

“어째서야?!”

그런 세 사람의 말다툼을 날려버릴 것 같은 소리가 스피커에서 울려 퍼졌다.

“……!!”

레이나는 숨을 삼켰다.

기억에 남을 디지털 사운드가 울려 퍼진다.

아주 조금만 들어도 가슴이 뛰어오를 정도다.

그런 레이나의 얼굴을 스테이지 위에서 카린이 내려다본다. 히죽 웃더니, 페이더를 들어 다음 노래를 집어넣는다.

Shining Light
뛰어들어 around the world
Like a 빛줄기처럼
그 시작은 bright

잔뜩 힘이 들어간 인트로였다. 다른 사람들이 평소에 첫 곡을 시작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첫 곡부터 청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소리부터가 달라.

방금 전까지 자신이 쓰던 기자재, 동일한 환경.

그렇지만 들리는 게 달라.

스스로도 잘 조정해냈다 생각했다. 같은 트랙 데이터를 쓰더라도 미미토보다 더 좋은 소리를 냈었으리라 자신감은 갖고 있었다.

하지만 카린은 더욱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지금 나오고 있는 노래는 카린의 오리지널 트랙. 그러니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레이나의 귀에도 그 차이가 분명히 들린다.

“믹서를 다루는 것부터가 달라……. 게다가 원판의 퀄리티까지…….”

주위를 둘러보니 집으로 돌아가던 관객들이 후다닥 되돌아오는 게 보인다.

“야! 저거 호오 카린인데?! 진짜 대박!!”

“깜짝 게스트가 있었던 거냐고?! 오졌다!”

SNS로 정보가 퍼지니 시부야 에어리어에서까지 사람들이 족족 찾아온다. 디제잉 공양 메인 이벤트보다도 손님이 더 모여들고 있다.

레이나 일행도 뒤에서 밀려오는 인파에 휩쓸린다.

“흐에에엑?! 레이나 씨이이, 카즈네 쨔아아앙!”

후타바가 떠밀려 내려간다. 카즈네도 인파에 휩쓸리며 미미토를 향해 큰 소리로 묻는다.

“이, 이를 어째?!”

“나한테 물어본다고 한들 나도 아무것도 몰라!”

신사 경내는 새해 첫 참배처럼 사람들로 가득 차버렸다.

관객들을 순식간에 사로잡는 선곡, 하늘까지 솟아오르는 드랍, 춤추지 않을 수 없는 그루브.

들뜨지 말라고 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 일이다.

무대 위에 있는 카린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대담하게 웃고 있다. 검지를 세우며 몰아친 관객들을 가리킨다.

“아주 제대로 신났지! 나도 완전 신나 죽겠어! 너네들 아직 춤 출 기운은 남아있냐?!”

그 물음은 관중들의 볼티지를 단숨에 레드 존으로 파 올려낸다. 관중들도 입에서 소리 없는 아우성이 터져나오며 간청한다. 더 달리자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우며

“좋았어! 가 보자고!!”

늠름하게 외친다.

그렇게 선언하자 관객들의 머릿속에서 도파민이 대량으로 분비된다. 모두들 팔을 번쩍 들고 펄쩍펄쩍 뛰어다닌다.

제왕이 플레이해내는 소리를 두 귀로 듣는 영광을 온몸으로 온 힘을 다해 표현해 낸다.

그리고 강렬한 드롭이 찾아오려는 바로 그 때

“?!”

소리가 끊겼다.

갑작스럽게 정적이 찾아온다.

바람이 나무를 흔드는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온다.

관객들은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리고 웅성대는 소리가 점점 커진다.

“이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레이나가 곁에 있는 카즈네에게 묻지만, 카즈네도 알 턱이 없다.

“나도 모르겠는데, 장비 문제가 아닐까?”

무대 위를 보니 DJ 부스에서 카린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리고 경내로 들어서는 문을 힐끗 노려본다.

“야, 쓸데없는 짓 하지 마.”

모두의 시선이 그 문을 향한다.

거기엔 한 소녀가 서 있다.

“그건 이쪽이 할 대사라고.”

숏컷의 검은 머리에 파란 브릿지. 우아하게 입은 파랑 드레스를 감출 듯 검은 가죽점퍼를 걸치고 있다.

섬세한 아름다움을 공격적인 패션으로 지키는 듯한 코디.

통굽 부츠로 소리를 내며 무대로 향한다.

자연히 인파가 좌우로 갈리며 곧은 길이 생긴다.

“SNS에서 아주 난리야. 학교 측에 보고하고 계정을 정지시켰어.”

“그니까 네 맘대로 하지 말라고 좀.”

“마음대로 하고 있는 건 당신이잖아? 우린 사전에 일정이 없는 디제잉을 해선 안돼. 그런 것쯤은 알고 있으면서 그래?”

겁대가리도 없이 카린을 바라보는 얼굴은 쿨하면서도 아름답다.

카즈네는 테이온 국제 학원 학생 명단을 머릿속으로 검색한다.

“저 사람은…… 세토, 미츠키.”

“흐에? 그게…… 누구예요?”

인파를 헤치고 후타바가 간신히 돌아왔다. 카즈네는 다가오는 미츠키를 보며 대답한다.

“테이온 덴온부 2인자야.”

“그, 그 사람이……. 대단해. 이 자리에서 1인자랑 2인자를 나란히 볼 수 있다니.”

감탄하는 후타바 옆에서 미미토가 분한 표정으로 눈을 흘긴다.

“역시……. 저 여자.”

원한이 듬뿍 실린 시선이 쏟아져도 미츠키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똑바로 카린을 바라보며 걸어간다.

카즈네는 그 단정한 옆얼굴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쉰다.

“에졌다……. 테이온 2인자란 사람이 저렇게 예쁘면……. 얼굴도 저런데 실력까지 있으면 밸런스 붕괴 아니냐고.”

황홀하게 중얼거리면서도 빈틈없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려 한다.

“돌아가자. 빨랑 내려와.”

“칫…….”

카린이 무대에서 뛰어내려온다. 그 행동을 보고 모여 왔던 사람들이 다시 술렁댄다.

호오 카린은 고고하며 자유분방한 존재. 그 누구도 이 사람의 행동을 제어해낼 수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허나 그 카린에게 마치 꾸짖는 것처럼 말을 거는 소녀가 있다.

카린의 존재감이 큰 만큼 미츠키의 존재감도 의도치 않게 늘어난다.

가차없이 쏠리는 시선을 무시하며 미츠키는 팔짱을 낀 채 카린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대박……. 이거 끝내주는 투 샷 찍을 수 있는거 아니냐고!”

“……언…니?”

“레이나? 지금 뭐라 했어?”

“저 사람……. 언니야. 우리 언니.”

“……뭐?”

카즈네의 눈이 점이 되었다.

테이온의 2인자가?

미츠키는 카린과 함께 신사 출구로 나선다. 카즈네는 그 뒷모습과 레이나를 번갈아 가며 비교했다.

그렇게 듣고 봐도 별로 닮지도 않았다. 하지만

“전에 보여준 사진이랑 이미지가 많이 다른데……. 그리고 어째서 테이온 2인자가 된거야?”

“……!”

레이나는 카린과 미츠키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레이나!”

카즈네의 목소리를 뿌리치고 레이나는 인파에 뛰어들었다. 두 사람을 위해 갈라진 길은 이미 막혔다. 인파를 헤치며 간신히 문을 나서니 더이상 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

레이나는 시부야 방향으로 참배길을 달려간다.

토리이를 지나 주위를 둘러본다. 어느새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그 하늘을 가로지르는 육교가 있다. 그 육교를 넘어가면 그 건너는 시부야 에어리어.

레이나는 계단을 한 칸 한 칸 올라 육교 위로 뛰어오른다.

“언니!!”

두 바람의 발걸음이 멎는다.

그러나 뒤돌아보는 사람은 카린 뿐이다.

숨을 헐떡이던 레이나는 다시 한 번 외친다.

“언니……. 언니 맞지? 나야, 레이나야!”

그러나 검은 머리는 등진 채 돌아보지 않는다.

카린이 조금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낸다.

“야. 너 부르잖아.”

가죽점퍼를 걸친 어깨가 살짝 내려간다. 차가운 눈동자가 고개를 돌린다.

머리도, 옷도, 분위기도 완전히 달라져 어린 시절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레이나는 알고 있다.

“미츠키 언니…….”

웃고 있는 레이나의 눈동자에 눈물이 맺힌다.

레이나는 빠른 걸음으로 미츠키에게 가까워진다. 빨리 그 손을 잡고 싶어. 꼬옥 껴안아 체온을 확인해보고 싶어.

하지만

“오지 마.”

철벽을 치는 것 같은 한마디.

“어…….”

레이나가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당황스레 웃는 얼굴.

“아, 이제 어린애가 아니지 나……. 미안해. 하지만 만나니까 너무 좋아서. 이히히…….”

레이나가 뒷머리를 긁적인다.

“나 말야, 이 신사에서 기도했어. 언니랑 다시 만나게 해 달라고. 그런데 이뤄졌지 뭐야! 굉장하다!”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하는 레이나와는 반대로 미츠키는 가면처럼 표정을 전혀 바꾸지 않는다.

레이나의 속마음에 불안이 번져 간다. 그래도 억지로 웃음기를 지켜내며 말을 계속 잇는다.

“그, 그게, 나도 덴온부에 들어갔어. 이제 언니랑 똑같아…….”

“뭐?”

처음으로 미츠키가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그 반응은 레이나가 상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똑같다고? 내가, 레이나랑?”

짜증 가득한 목소리에 레이나는 움츠러들세라 필사적으로 웃는 얼굴을 지어내고 있다.

“……아. 그치만 피아노도 하고 있지? 그러겠지 분명. 그치만 나 언니랑 같은 걸 하게 되어서 너무 기뻐. 옛날에는 언니……. 디제잉 같은 거 별로 안 좋아했었잖아”

“디제잉 따위 시시해.”

“……어?”

칼처럼 날카로운 한마디. 그 말뜻이 좀처럼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뚝, 하고 빗방울이 코앞에 떨어진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

발 밑에 거무스름한 빗방울이 불어나고 있다.

“그래도……. 언니도 하고 있는 거잖아? 덴온부…….”

“DJ 따위 아무 가치도 없어.”

미츠키는 등을 돌리더니 다시 걷기 시작했다.

카린은 쓴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이는 걸로 인사를 대신하고는 미츠키의 뒤를 따른다.

“언…….”

레이나가 뒤를 따르려 했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육교에 빗무늬가 퍼지고 습한 향기가 진동한다.

그 향기에 가로막힌 것처럼 레이나는 빗속에 마냥 서 있다.


“소나기 같아. 예보 보니까 곧 그친대.”

핸드폰 날씨 앱을 확인하고는, 카즈네가 레이나에게 말을 걸었다.

“…….”

카미조노 진구 인근 카페에서 비를 피할 겸, 뒷풀이가 한창이다.

파스텔&베일 컬러로 꾸민 가게에는 팝 스타일 디자인 테이블과 의자가 늘어져 있다. 밝고 아기자기한 분위기임에도 분위기는 묵직하다.

후타바는 그 분위기에 식은땀을 흘리며 메뉴를 훑어본다.

“와, 와아……. 여기 팬케이크 맛있어보여요~. 다 먹어버리겠다아.”

“그, 그거 괜찮아. 이곳 하라주쿠는 달다구리 하나만큼은 다른 에어리어에 안 지니까! 아키바하고는 하늘과 땅 차이일걸!”

미미토가 가까스로 웃음을 머금고 화제에 올라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대화가 끊겨 버린다. 미미토는 팔꿈치로 히나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아……. 그, 그게, 뭐어. 저한테 물어보신다면 그, 이 파르페를 추천해요. 시안은 어때요?”

“……뭘 먹어도 맛있어.”

“히, 히이~. 그러면 퐁퐁 살쪄 버릴걸요~…….”

어딘가 뻔하게 주거니받거니 하는 대화가 레이나 주변을 감싼 무거운 공기에 빗겨 흘러간다.

카즈네가 과감하게 레이나에게 물었다.

“저기 레이나, 세토 미츠키가 언니, 란 게 무슨 말이야?”

레이나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그건…….”

레이나가 얼굴을 감추듯 깊이 고개를 숙였다.

“말을 안 해줘도 뭐라 하진 않을건데……. 우리도 도움이 되어주고 싶으니까 편하게 말해 주면 좋겠어.”

“그, 그럼요. 저기 간식 드시고 힘내세요. 저는 달다구리한 거 먹으면 기분이 풀려서…….”

“그러니까! 너네들은 우리 하라주쿠를 이긴 애들이잖아! 이겨 놓고서 그렇게 시무룩해 있으면 이쪽도 난감하다고!”

“그런가……. 그렇겠네. 미안해.”

레이나가 고개를 들어 억지로 웃음짓는다.

“으……. 그, 그게 사과를 할 일이 아니고. 네가 시무룩하니까 왠지 좀 내 기분도 그렇게 될 것 같다고 해야 할지…….”

“응. 고마워. 미미토 쨩.”

“차, 착각하지 마! 딱히 위로 같은 걸 해 준다던가, 기분 풀어주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고…….”

말을 하다 부끄러워졌는지 미미토는 가만히 입을 ×표로 앙다물고 뺨을 붉혔다.

“그렇구나. 따로 숨길 일도 아니긴 하니까……. 덴온부를 계속 하려면 언젠가는 꺼내야 할 것 같으니…….”

그렇게 운을 띄우며 레이나는 옛날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미츠키와 레이나는 쌍둥이 자매다.

어릴 적에는 도쿄 에어리어에서 함께 살았지만, 두 사람이 초등학교 4학년, 아홉 살 때 부모님이 이혼했다. 아버님 되는 레이아는 레이나를 데리고 홋카이도로 이주. 어머니 츠키하는 미츠키와 함께 도쿄 에어리어에 남았다.

그 뒤로 두 사람은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언니는 나랑 다르게 음악 신동이였어.”

“어릴 때부터 디제잉을 했었어?”

“아니. 어릴 때는 클래식 피아노를 쳤어.”

“클래식?!”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두를 놀래켜 버렸다.

“엄마가 피아니스트여서……. 언니도 콩쿠르에 자주 나가곤 했어. 나는 완전 글러먹었는데.”

후타바는 전에 레이나한테서 들은 말이 떠올랐다.

“너는 피아노를 치기는 힘들겠구나.”

이 말은 어머님께서 하셨던 말이었을까.

쌍둥이 중에서 언니 되시는 분은 피아노 천재. 그때 레이나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상상하기만 해도 후타바는 가슴이 옥죄여오는 기분이다.

“그때부터 아빠랑 엄마 사이도 안 좋아지셔서……. 어쩌면 내가 두 분께서 이혼하신 이유가 된 게 아닐까 싶고.”

카즈네가 정색했다.

“그건 너무 멀리 나갔어.”

“아하하……. 그치. 그래도 엄마랑 언니는 디제잉은 별로 안 좋아하시던 것 같더라고. 그래도 내가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으니까…….”

미츠키는 레이나를 밀어냈다.

“DJ따위 아무 가치도 없어.”

덴온부 소속이면서, 그것도 테이온 국제 학원 2인자가, 어째서?

미미토가 힘차게 일어섰다.

“그러면 제대로 말해주러 가 봐야지!”

“미미토 쨩…….”

“그야, 그렇게 울적해진 마음으로 우리랑 재시합 했다가는, 본전도 못 뽑고 탈탈 털려버릴테니까 해주는 말이지만?”

히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쵸. 미미토 말에 찬성해주는 건 좀 싫지만요.”

“뭐?! 무~슨~ 소리야!”

“……신령님께서 지켜주실 거다. 괜찮아.”

“다들…….”

레이나의 눈가에 눈물이 아른거린다. 그런 레이나의 어깨를 카즈네와 후타바가 감싼다.

“우리들도 같이 있어줄테니까.”

“힘이 되어드릴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곁에 있어드릴게요.”

“응……. 고마워.”

창밖을 보니 비가 그쳤다. 금방이라도 질 것 같은 석양빛이 은은하게 하늘에 비치고 있다. 레이나도 의자에서 일어난다.

“가자. 시부야로!”


하라주쿠 에어리어와 시부야 에어리어는 인접해 있다.

카미조노 진구 앞 거리를 지나면 이미 시부야 에어리어에 와 있는 셈이다.

어두워진 선로 언저리에 있는 언덕을 내려가 막다른 길을 만나 오른쪽으로 꺾으면, 단숨에 시부야 에어리어가 풍기는 내음이 물씬 짙어져 온다.

길 양쪽에 빽빽히 솟은 빌딩. 그 위에 떠 있는 홀로그램과 디지털 사이니지.

마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미래도시. 그것이 시부야다.

아키바에도 비슷한 홀로그램 광고가 있긴 하지만, 시부야는 그 수와 규모가 현격히 다르다.

그리고 수많은 서치라이트와 레이저가 밤하늘을 향해 뻗어 나가고 있다.

그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어?! 카즈네 쨩, 뭐야 저거! 전투기 같은 거나 미사일 포드 같은 게 날아다니고 있네?!”

레이나의 머리 위로 검은 비행 물체가 스쳐 지나간다.

“저건 AI 스피커야.”

그렇게 말을 듣고 나서 보니 미사일처럼 보였던 건 스피커 유니트었다. 스피커 3개에 카메라, 수직 꼬리날개 두 개가 달려 있다. 그 아래에 있는 것은 반원처럼 생긴 비행 유니트.

하지만 거기엔 엔진도 프로펠러도 달려있지 않다.

“어떻게 날고 있는 걸까…….”

“나도 잘 모르긴 하지만, 뭔가 특수 입자를 써서 띄운대. 보통은 홀이나 클럽 안에서 사용하기는 한데……. 역시 시부야답네. 야외에서 이걸 날리고 다니는 건 처음 봐.”

AI 스피커는 삼거리에서 멈추자 도로를 향해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었다.

DJ 유니트와 몸집이 작은 여자 아이가 떠오른다.

금발 숏컷. 호승심 가득한 눈동자를 보니 마치 야생동물 같다. 축구 유니폼을 방불케 하는 옷에 들여다 보이는 배와 두 다리는 탄탄하게 잘 단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자, 자, 자! 이몸 루키아에게 도전하고 싶은 녀석 없어~?! 얼마든지 상대해줄게~에!”

미미토가 눈을 부라렸다.

“뭐?! 시부야는 시합하려면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 거 아녔어?!”

미미토는 전에 테이온 국제 학원에 경기를 신청하러 갔다가 미츠키한테서 문전박대를 당한 기억이 있다.

미미토가 어리둥절해있자 주변을 지나가던 여학생이 말을 걸어온다.

“시부야 에어리어에서는 길 위에서 PvP를 할 수 있어. 뭐, 자체 연습 같은 거라 봐야할까. 그치만 테이온 학생만 참여할 수 있긴 해.”

“뭐야……. 그런 거였냐고.”

미미토는 아쉬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 그런데 쟤는 좀 예외야. 배틀에 살고 배틀에 죽는 애라 물불도 안 가려. 함 떠보고 싶으면 가 보는 게 어때?”

그렇게 재촉하자 미미토는 표정이 굳어진다.

“어쩔 거예요, 미미토?”

“으…….”

주저하는 사이에 한 남학생이 스포트라이트 속으로 들어간다. 그 주변을 둘러싼 갤러리에서 함성이 크게 울려퍼진다.

“타이가 루키아……. 오늘에야말로 너를 이겨 보겠어!”

“아하하하 정말로?! 엄청 기대되는데! 하지만 루키아는 강하다고!!”

진짜 STACK 배틀이 시작되었다.

잘 보니 길 언저리에서도 AI 스피커가 떠오르고 거기서 STACK 배틀이 벌어지는 것 같다.

후타바는 겁을 먹고는 카즈네 뒤로 숨는다.

“왜, 왠지, 조금 무섭네요…….”

“그러게……. 관전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지금은 레이나네 언니분을 찾는 게 먼저지.”

근처에 있는 학생에게 덴온부 동아리방 위치를 물어보니, 역 앞 스크램블 교차로에 접한 빌딩에 있다고 알려 주었다.

가보니 벽에는 아주 커다란 홀로그램 모니터가 붙어 있는 빌딩이 있었다. 그 모니터에서 시부야 덴온부 PV가 흘러나오고 있다. 호오 카린과 세토 미츠키의 모습을 커다랗게 소개하고 있었다.

“언니…….”

하지만 동아리방은 관계자 외 출입금지. 면회를 희망했지만 단칼에 거절당했다.

이제 더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아키바와 하라주쿠 일행은 여기서 얌전히 퇴각할 수밖에 없다.


미미토를 비롯해서 하라주쿠 일행들과 시부야 역 앞에서 헤어져, 레이나 일행은 야마노테선 내선 순환 열차에 탔다.

일반적인 회사가 퇴근할 시간이지만 차 안은 아주 한산하다.

지금은 직장과 집이 근처에 있는 게 당연한 일이고, 출퇴근에 전철을 타고 다니는 사람은 드물다. 있다 하더라도, 출퇴근에 긴 거리를 여행하는 사람은 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레이나를 사이에 두고 카즈네와 후타바가 나란히 앉아 있지만 그 외에는 승객 몇 명이 겨우 있을 정도다.

신형 액티브 서스펜션과 노이즈 캔슬러가 잘 작동한 덕분에 승차감은 아주 쾌적하다.

조금씩 흔들리는 전철에서 선로와 바퀴가 마찰하는 소리를 느끼며, 레이나가 흠칫 중얼거렸다.

“또 가 보자.”

“레이나 씨…….”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후타바를 보며 레이나가 방긋 웃는다.

“몇 번이라도 부탁해볼 수밖에. 그거 외에는 방법이 없어.”

“그렇진 않아.”

아까부터 핸드폰만 들여다 보던 카즈네가 느닷없이 말했다.

“그거 외에도 방법이 있을지 몰라.”

“그게 무슨 말이야?”

하고 묻는 레이나에게 카즈네가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Newcom Entertainment STACKBATTLE LEGEND

“이게 뭐야?”

“다음 달에 열릴 ‘뉴 레전드’란 이벤트야. 뉴컴 사 상품 발표회 같은 던데 부대행사로 STACK 배틀이 열린대. 그 배틀에 테이온 학원도 참가한다고 하더라고.”

“그 말은…….”

전에 했던 이벤트를 조사해 보니 과연 테이온은 상위 랭킹 고등학교와 매칭되는 일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신설 학교나 하위권과 경기를 치르는 일도 있었다.

후타바는 대전 상대에 이입한 것처럼 몸을 움츠렸다.

“그냥 양민학살이잖아요…….”

“친선 경기 같은 걸로 보여. 야구로 보자면 프로 선수가 청소년 야구 지도를 해 주는 느낌일까. 시부야란 강점을 내세워 행사를 더욱 띄우는 동시에 무명 팀을 참여하게 만드는 거야. 그렇게 해서 아직 시작 안 한 사람들한테도 ‘어쩌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같은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식으로……. 저변을 넓히는 전략 같은 게 아닐까?”

레이나가 눈동자를 반짝 빛냈다.

“그 이벤트에 나가면 언니랑…….”

“그럼. 맞서 볼 기회가 분명 생길거야.”

“카즈네 쨩! 나 그 이벤트 나가볼래!! 어떻게 나갈 수 있는거야?!”

“기획서 만들어서 제출하래. 아 그리고 데모 플레이 영상도.”

레이나가 어려워 보인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획서……?”

“……는 내가 만들어 놓을게. 데모 플레이 동영상은 오늘 했던 공양 플레잉만 제출해도 충분할걸.”

“고마워! 카즈네 쨩!!”

레이나가 카즈네를 끌어안는다.

“자, 잠깐만……. 그래도 레이나니까.”

카즈네는 난감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속으로는 번민하고 있다.

포상을 내려주시는군요오오오오오오!

아아아아 어쩜 이리 귀여워?! 이렇게 꼬옥 안아주기만 한다면 기획서는 몇 장이라도 써다 바쳐줄게!!

레이나는 조금 진정되었는지 몸을 떼었다.

“미안, 너무 기뻐서…….”

“그런 말 안 해도 돼. 하나도 미안할 거 없어.”

오히려 좀 서운하다.

“정말 고마워, 카즈네 쨩. 후타바 쨩도…… 오늘 도담도담 해줘서 고마워.”

“힉?! 그그그그럴 리가요! 저는, 아무것도…… 해드린 게 없는걸요.”

“그렇지 않아. 두 사람 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말해봐! 답례를 해 주고 싶거든.”

“뭘 그런 걸 다……. 아.”

문득 카즈네가 생각나서 말했다.

“레이나 혹시…… 코스프레 같은 거 관심 있어?”

“응?”

그 다음날, 소토칸다 덴온부 동아리방에서 코스프레와 사진 촬영이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