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부 에어리어는 넓다. 서쪽으로는 시로카네다이, 동쪽으로는 미타, 남쪽으로는 타카나와, 북쪽으로는 아자부주반에까지 이른다.

“그 광대한 지역을 지배하는 집안이 바로 시로카네 가문! 그 시로카네 가문의 차기 당주인 아키 님은 사실상 여왕님이나 다름없으십니다!!”

흰 앞치마 드레스를 입은 메이드가 은빛 수레에 홍차를 실어온다.

생김새는 꼭 몸집이 작은 중학생. 메이드 치고는 이상하게 머리에 고양이 귀가 달려 있다.

“후훗, 난 그저 일개 학생일 뿐이어요. 아직은 말이지요.”

시로카네 아키는 반짝이는 금빛 머리를 가볍게 휘날리곤 윤기 흐르는 미소를 지어냈다.

이곳은 미타 언덕 위에 있는 시로카네 가(家) 저택이다.

누군가의 집이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넓은 부지 위에 마치 외국 국가정상이 묵을 만한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아키의 방은 안뜰에 접해 있어 마치 고급 호텔의 스위트룸. 다른 방들도 아주 고급지게 꾸며져 있다. 전후사정을 모르고 찾아온 사람에게 귀족이 지내는 궁전이라 말하면 그대로 믿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저택을 유지보수하기 위해서 이 저택에는 메이드를 다수 고용하고 있다. 홍차를 싣고 온 메이드도 그런 메이드 중 한명이지만, 다른 메이드들과는 가지고 있는 사연이 조금 다르다.

아직 15세이지만 시로카네 집안에서 생활하는 쿠로가네 타마. 잔 하나에 백만 엔을 훌쩍 넘기는 찻잔에 홍차를 따르고는 대리석 탁자에 올려놓는다.

“정말이지, 그런 말슴을 하시는 겁니까. 여배우 저리가라 할 미모에 모델을 능가하는 우수한 스타일! 정말이지 미의 여신입니다! 거기에 아주 똑똑하신! 미나토 시로카네 여학원 덴온부를 도쿄 에어리어 2위로 끌어올리는 음악과 운영을 아우르는 바로 그 센스!! 이야~. 정말이지 이렇게나 완벽한 팔방미인이 다 있으시다니, 이 세상의 밸런스가 무너져 버려서 정말이지 위험하지 말입니다!!”

“어머……. 그러지 말아요, 타마. 그렇게까지 내세울 것까진 없어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기분좋게 홍차에 손을 뻗는다.

“아닙니다. 타마는 그저 사실을 말할 뿐입니다.”

얼굴 한가득 웃음. 그 뒤에서 타마는 히죽히죽 웃고 있다.

‘크크큭, 기분이 많이 좋아 보입니다! 이 타미밍이라면 급여 인상을 부탁드려도 선뜻 허락해 주실 것 같지 말입니다.’

“그런데 아키 님? 저도 이래저래 필요한 것들이 있는데……. 조금 짠 것 같습니다. 급여 부분이…….”

하며 타마가 말을 꺼내는 소리에 맞춰 노크 소리가 울린다.

“……윽! 이제 본론을 말하려 했건만, 어디 사는 누구 짓입니까?!”

커다란 문을 열고 회색 머리를 한 미소년이 씩씩하게 들어온다.

“야, 타마. 좀 실례할게.”

“아니 그, 정말로 실례하고 계시지 말입니다! 모처럼 나온 제 임금 교섭 이야기를 이렇게 끼어들 수 있습니까?!”

순간 어리둥절한 얼굴을 한, 얼핏 보면 미소년으로 착각할 정도로 남자처럼 옷을 입은 미인, 하이지마 긴카가 아키에게 말을 걸었다.

“계약 이야기를 하던 중이라면 나중에 찾아와도 될까?”

“그런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어요. 타마, 실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킨카가 마실 것도 준비해 오세요.”

“끄……. (바득바득)”

원망스러운 눈으로 긴카를 바라보며 타마는 홍차를 준비한다.

“긴카와 단 둘이서 할 이야기가 있어요. 차를 다 준비하고 나면 자리를 뜨도록 하세요.”

“끄으……. 아, 알겠습니다.”

폭풍치는 원한을 짊어지며 타마가 방에서 나가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말이죠, 타마.”

타마가 눈을 반짝이며 돌아본다.

“급여 인상입니까?! 아니면 특별 보너스?!”

“당신, 얼마 전에 또 납품업자를 괴롭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헉?!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백화점 영업 부서에서 고충이 있었다던걸요.”

“아, 아니오. 그 남자, 이쪽이 메이드라고 만만한 봉으로 보길래, 조금 뜨거운 맛을 보여주려 했을 뿐입니다! 교육적 지도이지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일이 있었다 메이드장에게 상담하셨어야죠. 시로카네 집안 이름을 대고는 거래를 끊어버리겠다거나, 백화점 영업을 못하게 압력을 넣어버리겠다는 식으로 갑질을 하라는 말이 아니어요.”

그 순간 타마의 눈이 움찔댄다.

“그……그렇지 말입니다. 아하하하.”

“그리고 역 앞 상점가에서 이것저것 펑펑 사고 다닌다던걸요?”

“히끅.”

“급여를 어떻게 쓰는지 제가 참견하겠다는 게 아닌데요. 그렇다 하더라도 레스토랑에서 메뉴판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전부 가져오라고 주문하든가, 쇼윈도에 진열된 옷을 전부 가져오라든가, 가게에서 제일 잘 나가는 물건을 쓸어버린다든가, 너무 심하지 않나요.”

“하, 하하……. 스트레스가 쌓여서 그만…. 돈을 손에 쥐면 해방감 같은게 느껴져서 말입니다…….”

“게다가 일일히 시로카네 집안의 이름을 대고 다니지 말아줘요. 솔직히 말하면 좀 민폐예요.”

“아, 아닙니다. 그건 얕보이기 않기 위해서지 말입니다. 거기다가 시로카네 집안에서 왔다 하면 서비스까지 해 주지 말입니다!”

아, 하고 아키가 다시 생각나서 덧붙였다.

“상점가에서 집안의 메이드가 달아놓은 외상값을 내 달라고 재촉이 들어오기도 했어요. 이건 당신의 월급에서 공제해 놓겠어요.”

“으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것만은!! 그것만은 용서해 주시지 말입니다아아아아아아아!!”

그렇게 필사적으로 졸라대는 고양이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는다. 그러나 아키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타마를 방에서 쫓아냈다.

“정말이지, 바람 잘 날이 없어 심심할 일은 없겠네.”

긴카가 싱글벙글 웃으며 소파에 앉았다.

“이래서야……. 가끔은 곤란한 것이어요.”

“하지만 그런 일이 있으니 더욱 애착이 가는 거 아니겠어?”

아키는 시큰둥해져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냥 고용관계일 뿐이어요. 서로 필요가 없어지면 계약이 해지될 뿐이고요. 어차피 저쪽도 더 좋은 조건으로 오퍼가 들어오면 그쪽으로 갈아타 버리지 않겠어요.”

“그럴지도.”

“……그것보다도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이제 곧 뉴 레전드가 있는데 말이에요. 시부야 테이온 국제 학원과 우리 미나토 시로카네 여학원이 맞붙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던걸요. 어때요? 지금 아자부로 시부야를 이길 가능성이 있을까요?”

긴카는 한번 깊이 숨을 내쉬더니 대답했다.

“그건 말이지……. 조금 일이 복잡해질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키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까 아버지 스튜디오에 들렀을 때 들은 이야기인데, 아무래도 행사 주최측이 소토칸다 문예 고등학교를 우리와 붙게 만들고, 이기는 쪽이 시부야를 상대하도록 가닥이 잡혔다더라.”

“……아키바?”

아키는 의문스러움을 담아 눈썹을 찡그렸다.

“아키바에 덴온부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어요. 어째서 그런 들어보지도 못한 학교와 붙으란 거죠?”

“아무튼 호오 카린이 밀어붙였다 하더군.”

“호오…… 카린이?”

아키는 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이상하군요……. 아키바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길래요.”

“의외로 복병이라 할 수 있으려나, 숨은 고수들일지도 모르지.”

문득 아키가 웃음짓는다.

“그런 게 존재할 리 없어요. Iris에 올라온 데이터만 단번에 봐도 명확한걸요. 랭킹 상위 10위에도 들어오지 않는 곳은 무시해도 될 수준이어요.”

“그럴지도 모르고.”

“그게 무슨 소리예요? 뭔가 짚이는 부분이라도 있어요?”

“……아니.”

긴카 자신도 아키바 덴온부를 그저 막 만들어진 동아리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궁금한 건 왜 아버지, 하이지마 후가가 일부러 이 정보를 자신에게 전해 주었는가 하는 점이다.

심지어는 그 호오 카린이?

생각에 잠긴 긴카에게 아키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로 말을 건넸다.

“실력 있는 학교라고 한번 가정이라도 해 보죠.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시로카네 여학원과 아키바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란 게 있는 거예요.”

“그 벽이 뭔데?”

“바로 자본력이어요.”

아키는 자랑스럽게 가슴을 쭉 폈다.

“풍부한 지원을 아낌없이 투자해 최첨단 장비와 최고급 설비에, 세계 곳곳에서 초빙한 초일류 DJ가 코칭해주기까지! 실력쯤은 돈으로 얼마든지 키울 수 있는 거예요.”

“그건 확실히 그래. 덕분에 최근에는 동아리가 전체적으로 실력이 불고 있지. 우리 1군 뿐만이 아니라 2군과 3군 실력도 늘고 있고. 점점 시부야에 따라붙는다고 말해도 될 정도야.”

“따라붙기만 해서는 안돼요! 다음 시합에서는 완전히 앞지르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선, 이름도 못 들어본 학교보다도 시부야 테이온을 공략할 방법을 생각해 보아야 해요! 아뇨, 생각해 보셔요!”

“……하하. 고려해 볼게.”

긴카는 벽시계에 눈길을 주더니 소파에서 일어선다.

“슬슬 머무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만 가 봐야겠어.”

아키는 한순간 쓸쓸한 표정을 짓다, 약간 새침하게 눈을 치켜뜬다.

“아직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요. 거기다 저희 하고 있는 이야기도 매듭짓지 못했잖아요.”

“시부야를 이길 계획을 앉은 자리에 완성해내는건 무리야. 조금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겠어?”

“그렇다면 점심 식사를 하면서 회의하는 건 어떠세요? 오랜만에 저희 쉐프 손맛도 보실 겸 해서”

“미안해. 이미 예약 잡아놓은 곳이 있어서. 앞으로 3분 후에 시로카네 집안 문을 나서지 않으면 제 시간에 못 가. 이제 가 볼게.”

문을 열어 방을 나서기 직전 긴카가 고개를 돌렸다.

“아무튼 이 집은 넓으니까 말야.”

그렇게 말하며 한쪽 눈을 깜빡 윙크했다.

“어머 정말이지…….”

아키는 가만히 가슴에 손을 짚었다. 맥박이 조금 빨라진 것 같다.


긴카가 떠난 자리 복도에 놓인 큰 화분 뒤에서 검은 고양이귀가 빼꼼 드러났다.

“크크크……. 다 들었습니다.”

타마는 방에서 쫓겨난 뒤로 계속 문에 찰싹 달라붙어 엿듣고 있었다.

“긴카는 DJ로써 촉은 확실합니다. 뭐, 저만큼은 아니긴 하지만……. 아무 이유 없이 경계하는 것만은 아닐 것 같지 말입니다. 그렇다면…….”

타마가 눈동자를 반짝 빛낸다.

“아키 님께서는 완전히 방심하고 계시니까요. 여기서 제가 아키바를 염탐하고는 그 내용을 보고한다면…….”

타마의 머릿속에 장밋빛 미래가 펼쳐진다.

“히얏호오오!! 승진! 인센티브는 당연히 주시겠지 말입니다! 어서 서두르는게 좋겠습니다!!”

타마는 고양이 귀와 앞치마 드레스를 벗어던지고는 어디서 꺼내왔는지 고양이 귀가 달린 스냅백을 푹 눌러쓰고 복도를 달려간다.


아키바 주오 거리에 검은 대형차 한 대가 멈췄다.

커다랗고 위압적인 자동차에서 내연 기관 배기음이 울린다.

요즘 세상에 가솔린 엔진을 달고 나오는 자동차는 귀하다. 유지하려면 각종 행정 절차에 세금도 비싸기 때문에, 요즘은 한가닥 하는 애호가들이나 부자들이 아니면 좀체 타고 다니지 않는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 차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타고 있는 걸까? 연예인? 엘리트 비즈니스 맨? 정부 관계자?

하지만 무거운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몸집 작은 여자아이.

고양이 귀 모자를 쓰고 검은색을 베이스로 한 스트리트 패션을 걸친 그 여자아이는, 길가에 사람들이 몰려있는 것을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키히히히. 없는 사람들이 부러움 담긴 눈초리로 보니 좀 그렇습니다. 타마는 이런 초고급차를 몰고 다닐 수 있습니다! 당신네 서민들 하고는 사는 세계가 다른 겁니다.”

어깨에 비스듬히 걸친 분홍색 슬링백에서 자동차 리모컨 키를 꺼내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자동차가 알아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인이 볼일을 보는 동안 자율주행으로 주변을 돌아다니도록 하는 기능이다.

“그~럼, 이제 소토칸다 문예 고등학교란 곳으로 가 보겠습니다. 타마의 탐사 능력으로 아키바 덴온부를 발가벗겨 주겠지 말입니다!”

타마가 소토칸다 문예 고등학교 건물로 향하려 할 때,

“덴온부 동아리방은 학교 교내에는 없는걸?”

뒤에서 말을 걸어온다.

“네? 그렇습니까?”

타마가 돌아보자 거기에 긴 흑발 미인이 서 있다.

“바로 저쪽이야. 안내해줄게.”

“오, 그렇습니까? 그럼 부탁하겠습니다.”

그 미인을 따라 걸어서, 교차로에 맞닿은 문을 열었다.

“여기야. 자, 들어가 볼까.”

“이렇게 빨리 잠입할 수 있다니, 저의 뛰어난 실력이 저 스스로도 두려워집니다. 아무튼 안내해주셔서 감사…….”

그 미인은 등 뒤로 문을 닫더니 자물쇠를 채웠다.

“어?! 어째서 자물쇠로 잠그는 겁니까?!”

“어라~ 카즈네 쨩! 걔는 누구야?!”

안에서 갈색 머리에 쓸데없이 건강해 보이는 여자 아이와 금발에 가까운 연갈색 머리를 한 자신 없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얼굴을 내밀었다. 타마의 안색이 변한다.

“히?! 크크큰일났습니다! 일단 철수…….”

하지만 뒤에서 두 어깨를 꽉 붙잡는다.

“소토칸다 문예 고등학교 덴온부에 잘 오셨습니다. 사랑스러운 비밀 요원 선생♥”

귀여운 여자 아이를 손에 넣은 시노노메 카즈네가 활짝 웃었다.


그대로 붙잡힌 타마를 카즈네가 심문하고 있다.

“자, 먼저 당신은 어디서 온 누구고, 소토칸다 덴온부에서 뭘 찾으려 했는지……부터 시작하는게 좋겠지?”

“헤잉쯧! 누가 네녀석들처럼 없는 사람들 앞에서 순순히 털어놓을 줄 아십니까. 저는 이래봬도 시로카네 가문에서 자랑하는 초 유능한 슈퍼 메이드입니다!”

“어, 그 시로카네 가문? 그거 굉장하다.”

카즈네가 칭찬하자 타마는 금새 신이 났다.

“그럼그럼입니다. 더욱 떠받들어도 좋습니다! 시로카네 가문에서 일한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말입니다! 게다가 그 아키님의 전속 메이드쯤 된다면, 벌써 메이드의 탑 오브 탑이라 해도 무방합니다!”

카즈네는 머릿속 미소녀 데이터베이스를 빠르게 검색했다.

“히~. 아키 님이라니……. 시로카네 가문 영애 되시는 분이지? 게다가 덴온부 부장까지 하고 계신다면 정말 대단하신 분인걸.”

“어허, 궁핍한 서민이 뭘 좀 알고 있지 말입니다. 아키 님은 좋은 분이십니다! 돈도 주시고.”

“시로카네 가문이라면 페이도 좋겠네. 정말 부럽다.”

“헤헹. 그럼그럼입니다. 타마는 아키바 구석탱이같은 서민 거리와는 차원이 다른 아자부에 살고 있습니다! 손에 들어오는 돈의 액수 자체부터가 완전 다릅니다! 지금도 저택에서 일하고 있을 시간인데, 다시 말해 이러고 있는 사이에도 돈이 들어오는 겁니다. 저는 1분 1초마다 돈을 벌고 있는 겁니다!”

후타바는 곤란하게 웃으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건 그냥 농땡이 피우는게…….”

타마가 늘어대는 자랑을 들으며 카즈네는 다시 머릿속 미소녀 데이터베이스를 뒤적인다. 미나토 시로카네 여학원 폴더 안에서 눈앞의 여자아이를 발견해낸다.

쿠로가네 타마. 1학년. 메이드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덴온부의 부원인 건 확실해보이고……. 미나토 시로카네 에이스?!

“그래……. 그런 대단한 사람을 만나게 되어 영광이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시로카네 집안 사람들과 만날 기회도 좀처럼 없어서 말이지.”

그렇게 말하자 타마는 흐흥, 하며 신이 나 콧방귀를 뀐다.

“정말이지, 세상 물정 모르는 서민들은 이래서 불쌍합니다. 언젠가 타마 외 2인에게 쳐발릴 운명이 기다리는데, 그것도 모르고 삐걱대고 있지 말입니다.”

카즈네는 약간 의문이 담긴 표정을 짓는다.

이게 무슨 소리야?

아자부가 우리를 쳐바른다니……. 그쪽에서는 아키바 따위랑은 상대도 안 해줄 것 같은데.

바로 그 때 카즈네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어…….”

받은 메시지를 보고는 카즈네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무슨 일이야, 카즈네 쨩?”

그렇게 묻는 레이나에게 카즈네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뉴 레전드 주최측에서 메일이 왔어.”

“어?! 그, 그래서…… 뭐라고 하는데?!”

“출전 오디션을 개최한다고 하는데, 그 상대가…….”

카즈네가 타마에게 시선을 돌렸다.

“……시로카네 여학원이야.”


다음 대전상대가 된 쪽을 감금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다.

‘비겁한 수단으로 이기려 한다’며 트집을 잡혀서는 안돼, 그런 이유로 카즈네는 타마를 놓아 주었다.

“하긴, 미나토 시로카네 여학원 정도 되는 학교가 그런 짓을 하지는 않을 것 같긴 한데 말이지.”

택시 뒷자리에서 카즈네는 앞서 달리는 고급차를 바라보고 있다. 뒷창문으로 타마가 쓴 모자에 달린 고양이귀가 깡총깡총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그럴 것 같다면서 어째서인가요? 이렇게 미행까지 하고…….”

“기획서를 쓰는 것까지는 자신이 있었는데……. 그래도 예선에서 아자부와 맞붙는다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야. 처음으로 이런 행사에 참여하는 고등학교 동아리라면 예선에서도 같은 수준으로 맞춰줘야 할텐데, 상대랍시고 랭킹 2위 미나토 시로카네 여학원과 매칭시켜준다니?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겠어.”

“정말…… 그렇네요.”

“그래서 쿠로가네 씨가 하는 행동을 잘 관찰해보면 뭔가 짚히는 게 나올지도 몰라. 이를테면 저 차가 미나토 시로카네 여학원으로 가는지 시로카네 집안으로 갈지, 어쩌면 아예 제3의 장소로 향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후바타의 허연 목에서 꿀꺽 소리가 난다.

“그, 그 말은…….”

“우리가 누군가 꾸미는 음모에 휘말려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시, 싫어요. 뭔가 무섭잖아요!”

후타바는 울면서 바르르 떨었다.

“여, 역시 돌아가는 게 좋겠어요. 레이나 씨, 행선지를 바꿔 주세요!”

앞좌석에 앉은 레이나는 험악한 얼굴로 타마가 타고 있는 자동차 뒷자를 노려보고 있다.

“기사님! 앞차 절대 놓치지 말아주세요!! 신호등에 걸려서 보내주는 일도 없게 해 주시고요!”

“왜 그렇게 의욕이 넘치는 건데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목소리로 하소연하는 후타바에게 레이나는 상쾌하게 웃는 얼굴로 대답한다.

“그래도 수사 첩보물 같아서 멋지잖아!”

“훼…….”

“기사님도…… 있진 않잖니.”

완전 자율주행으로 움직이는 무인택시에 타고 있다. 비상용으로 핸들과 페달이 달려 있지만, 평상시에는 조작할 수 없도록 수납해놓은 구조다.

“어~, 그래도 제대로 운전해 주고 계시잖아! 이 자동차 자체가 기사님이라 할 수 있는거야!”

“뭐어, 아무렴 어때…….”

카즈네는 스마트폰으로 택시에 내장된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에 접속해서, Iris를 검색해 쿠로카네 타마가 나온 영상을 재생한다.

금새 자동차 한가운데에 홀로그램이 솟아오른다. 마치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은 현장감이 느껴진다. 택시에 딸린 오디오 치고는 꽤 소리가 좋다. 중저음에 기분이 좋아진다.

“봄에 있었던 공식전 플레이야.”

레이나도 수사 첩보물 놀이하던 걸 잊어버리고 타마의 디제잉에 열중했다.

“이게 타마 쨩이 디제잉하는 거구나…….”

“장르로 따지자면 하우스네.”

“세련되면서도 멋져서 아자부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른의 여유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멜로디도 굉장히 아름다워요.”

“그치. 겉보기엔 중학생 같아보이지만……. 역시 아자부의 에이스라 불릴 만 해. 사람이 겉으로 드러난 것과는 다를 수가 있구나.”

기분 좋은 음악에 카즈네도 후타바도 자연스레 웃음짓는다.

“어때? 레이나는.”

“음……. 엄청 잘 한다고 생각해. 그런데…….”

레이나의 시선 끝에 DJ 부스 안 타마가 있다.

“……타마 쨩, 별로 즐거워 보이지는 않아…….”

“응? 그게 무”

무슨 일이냐 물어보려 했는데 택시가 멈췄다.

앞을 보니, 타마가 탄 자동차가 왼쪽으로 비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타마가 내리자 자동차가 제멋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카즈네 일행도 황급히 택시에서 내려 타마를 쫓아간다.

레이나도 신기한 얼굴로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둘러본다.

“여기가 아자부야?”

“에어리어로 따지면 롯폰기인데…….”

카즈네도 고개를 갸웃거린다.

타마의 모습이 곧장 바 한쪽으로 사라진다.

“……BABEL?”

“가게 이름이 그런가보네.”

후타바는 허리를 잔뜩 뒤로 빼고 있다. 당장이라도 도망칠 것 같다.’

“어, 어쩌지요 우리……. 저는 이쯤에서 돌아가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들어가 볼까.”

“레, 레이나 씨~이.”

레이나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후타바를 내버려 두고 거리낌 없이 문을 연다.

가게 안은 조금 낡았다는 느낌이 드는 진짜배기 바였다. 벽에는 위스키 병이 쭉 늘어서 있고, 세월이 담긴 통나무 카운터에서 광이 난다.

아직 저녁 시간 전이라 가게 안 손님은 뜸하다.

그런 가게 안쪽에 DJ 부스가 있다.

“타마 쨩…….”

그 DJ 부스 안에서 타마가 디제잉을 하고 있다.

흘러 나오는 노래는

“유로비트?!”

카즈네가 작은 목소리로 놀란다.

“아, 아까 영상에서 했던 것과 플레이가 완전 다르네요…….”

후타바도 놀라 중얼거린다.

타마는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곡을 구사하며 자유자재로 강렬한 드롭을 만들어내고 있다.

레이나가 무심코 가게를 가로질러 DJ 부스를 덥썩 붙잡는다.

“타마 쨩, 대단해!!”

“냐앗?! 네녀석이 어째서 여기에 있는 겁니까?!”

“뒤를 밟았지!!”

“흐갸아아아!! 그거 범죄입니다! 역시 아키바 거지 동네는 치안도 개판입니다!!”

털을 곤두세우며 경계하는 타마를 세 명이서 필사적으로 달랬다.

“……정말이지. 뒤를 밟는다거나 그거 범죄 아니니까? 이래서 서민들과 엮이면 곤란합니다!”

겨우 자리를 잡아 테이블석에 네 명이 둘러앉았다.

레이나는 사과하면서도 가게 안을 둘러보고 있다.

“정말 미안해……. 그런데 이 가게도 그닥 셀럽한 느낌은 안 드는데.”

“그거 실례되는 말이지 말입니다!”

타마가 분개하자 레이나는 바로 사과했다.

“뭐어. 조금 낡았단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곧 다시 일으켜 세울 겁니다! 타마는 완성하고 말 겁니다! 그래서 힐즈 꼭대기에 신생 BABEL을 오픈해 보일겁니다!!”

카즈네는 납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기 위해서 시로카네 집안에서 일하고 있구나. 그런데 쿠로가네 씨 본인은 롯폰기 에어리어에 속한 셈이네?”

“뭐 그렇습니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아키 님한테서 입은 은혜가 있지 말입니다.”

타마가 BABEL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가만 있었으면 진작에 폐업해버렸을 겁니다. 하지만, 아키 님께서 자금을 대 주신 덕분에 망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 은혜에 보답하려고 아키 님을 위해 일하는 겁니다.”

후타바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거렸다.

“뭔가…… 감동적이네요.”

“게다가 시로카네 집안에서 지내니까! 동경했던 셀럽 생활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페이도 두둑하고, 전에 했던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던 게 바보같이 느껴집니다. 그 빌어먹을 점장새끼…… 그따위로 부려먹을 거라면 그만한 돈을 내지 말입니다!”

“하하…….”

후타바가 느꼈던 감동이 약간 희미해졌다.

“그런데 말야. 타마 쨩은 아자부에서 디제잉해서 즐거워?”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야, 여기서 디제잉할 때 더 즐거워 보였거든. 아자부에서 했던 것보다 여기서 아까 했던 스타일 쪽이 타마 쨩이 진짜 좋아하는 플레이가 아닌가 싶었어.”

잠깐 틈을 보인 타마는 얼굴을 찌푸렸다.

“허어? 당신은 무슨 소리를 하고 있습니까?”

“무슨 소리냐니……. 그야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라던가, 좋다고 생각하는 곡 전환 스타일을 들었으면 해서…….”

타마는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DJ는 손님을 위해서 플레이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뭘 좋아한다던가 무엇을 좋다고 생각하는지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레이나는 충격을 받아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무 상관, 없다고?”

“바로 그겁니다. 무엇을 위해서 돌리는가 하는 이야기 아닙니까? 당연히 돈 때문입니다. 돈만 두둑히 준다면 장르든 스타일이든 저한테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그러면…… 아자부에서 플레이했던 건?”

“그건 아키님의 요구에 따르기 위해서입니다. 아자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느낌으로 하는 겁니다.”

“……그렇구나.”

무엇을 좋고 싫어하는지 따위는 상관없어.

어이없어하며 그런 말을 하는 타마를 보고 레이나는 충격받았다.

“그러면 타마 쨩은…….”

레이나가 말을 꺼내려는 그때 문이 열렸다. 거침없이 타마가 영업용 인사를 하는데

“어서 오십시……요오오오?!”

가게에 들어온 사람들은 메이드 군단이었다.

족히 열 명은 될까? 줄줄이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모두 너무 미인이고 나이는 20대쯤 되어 보인다. 그 중에서도 존재감이 돋보이는 갸름한 얼굴에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메이드가 차가운 눈초리로 타마를 노려본다.

“타마.”

“아, 예! 메이드장님!!”

의자가 뒤집어질 정도로 급히 일어서서 경례한다.

“또 제멋대로 아가씨 자동차를 끌고 나갔습니까. 거기다”

레이나 일행을 흘끗 둘러보더니, 메이드장은 다시 엄한 표정을 지으려 타마를 바라본다.

“아키바 에어리어 분들께 폐를 끼쳤나 보군요.”

“아, 아닙니다. 이 녀석들은 우연찮게 가게에 찾아온 것 뿐입니다.”

“GPS로 자동차 이동 경로를 추적했습니다.”

메이드장이 가볍게 손뼉을 치자 뒤에 늘어선 메이드 군단이 타마를 움켜 잡았다.

“흐갸아아아!! 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변명은 아가씨 앞에 가서 하시지요.”

레이나 일행이 멍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배웅하고 있는데 메이드장이 아름답게 경례했다.

“여러분들도 꼭 와 주세요. 시로카네 집안의 차기 당주이신 시로카네 아키 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시로카네…… 아키 씨가요?”

레이나가 어리둥절해서 이름을 되물으니 후타바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 바들바들 떨고 있었고, 카즈네는 조그맣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