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부 3
미나토 시로카네 여학원은 벽돌로 지은 고풍스런 건물로, 가만히 보고 있자면 유럽에 있는 오래된 기숙학교가 떠오른다.
덴온부 동아리방은 학교 안에 있고, 이쪽도 호화롭다. 마치 파리의 오페라 하우스라 착각할 정도다. 안에 들어서면 그 인상이 더욱 강해진다. 나무와 대리석으로 풍성하게 꾸민 호화로운 로비에는 여신처럼 아름다운 여인상이 빼곡히 걸려 있다.
그런 속세를 벗어난 듯한 로비에, 마치 좋은 집안 자제분처럼 보이는 학생들이 품위있게 담소를 주고받고 있다.
메이드를 따라 그 틈을 지나가니 꽤 눈에 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얼굴을 하고 있는 타마와 그 뒤를 걷는 레이나 일행에게, 좋은 쪽이든 싫은 쪽이든 이목이 모일 수밖에 없다.
“……어머, 저 분들은 누구실까요?”
“시로카네 님의 메이드 씨와 함께 있는 걸 보니…… VIP급 게스트가 아닐까요?”
“그래도 조금 실례되는 말이지만 그렇게 보이지는 않네요.”
학생들이 레이나 일행을 바라보며 소곤소곤 대화를 주고받았다.
메이드장이 걸어보며 레이나 일행을 돌아본다.
“번거롭게 해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마침 학교 정기 파티가 열리는 날이라서요.”
“파티……면 덴온부가 하는 플레이도 들을 수 있나나요?”
“네, 지금은 아키 님이 돌리고 계십니다.”
중후한 문을 열고 들어서니 최신 설비를 갖춘 댄스 플로어가 나왔다.
빙글빙글 회전하는 형형색색 스포트라이트. 그 빛을 반사하는 미러볼. 뿜어져 나오는 연기를 찢어 나가는 레이저.
“괴, 굉장하네요……. 저희 동아리방과 차이가 너무 커요.”
눈을 동그랗게 뜬 후타바가 중얼거렸다.
플로어 자체 면적도 아키바 동아리방보다 10배는 족히 넘을 것 같다. DJ 부스는 그 넓은 플로어 가장 안쪽에 있었다.
“우와! 시로카네 아키야! 실물이야!!”
그렇게 외치며 카즈네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내민다.
디제잉하고 있는 사람은 금발을 늘어뜨린 소녀. 마치 외국 화보 모델처럼 멋진 스타일. 얼굴도 그리스 조각상처럼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
밖에 장식되어 있는 여신상이 그대로 살아 숨쉬며 디제잉하는 느낌이다.
레이나가 그 모습을 희미하게 바라보면서 거대한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에 몸을 맡겼다.
정통파 하우스. 보컬 곡 한가득. 굉장히 멋지면서 예쁘다. 무리하게 노래를 잇지 않아. 상냥하면서도 너무나도 우아해. 느긋한 템포. 칠 아웃 하는 느낌.
레이나는 플로어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거나 뛰어다니는 학생은 한 명도 없다. 소리에 몸을 맡기고 치맛자락이 흐트러지지 않을 정도로 느슨하게 몸을 흔드는 학생이 대부분이다.
“이게 아자부의 음악이구나…….”
아주 편안하고 온화한 클럽 뮤직. 이런 곳에 있으면 왠지 자신까지도 품위 있는 아가씨가 된 기분이 든다.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에 DJ 부스에 한 남자가 찾아온다.
아니, 이곳은 여학교인데. 남자는 출입 금지 아냐?
레이나의 생각을 눈치챈 메이드장이 살짝 귀띔해 준다.
“저 분은 하이지마 긴카 님이세요. 아키 님의 학교 친구로, 남자처럼 옷을 입는 걸 좋아하시죠.”
하이지마?
얼마 전 아버지가 소개시켜 준 트랙메이킹 조언을 해 주신 분도 성이 하이지마였다.
그러고 보니, 하이지마 씨가 일하는 스튜디오도 아자부 에어리어에 있었지……. 아자부에서는 보기 흔한 성씨일까?
그렇게 레이나가 생각에 빠지려 할 때 긴카가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우와. 잘 해…….”
무심코 속으로 할 말이 입으로 튀어나왔다.
선곡도 스타일도 기본적으로 아키가 하는 것과 같지만, 긴카는 구석구석 능숙함이 빛난다.
이퀄라이저를 조절하거나 페이더를 움직이는 방법, 이펙트를 거는 방식, 믹스가 들어가는 타이밍에서 하나하나 따져보면 아주 적은 차이지만, 그것들을 합쳐 보면 전체적으로 퀄리티 차이가 크게 드러난다.
남자처럼 옷을 입은 겉모습과 다르게 정중하고 섬세하다.
그리고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다.
마치 몸 안에 메트로놈이 들어 있는 것 같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아키 님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이쪽으로 오시지요.”
메이드장이 안내하는 대로 VIP 라운지로 들어섰다.
하얀 가죽 소파에 걸터앉은 시로카네 아키가 부드럽게 웃어보인다.
“잘 오셨습니다. 소토칸다 문예 고등학교 덴온부 여러분.”
레이나 일행이 거기에 대답하려 하자 아키가 타마를 노려보았다.
“타마. 도대체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다른 에어리어 분들께 폐를 끼치면 어쩌나요.”
“죄, 죄송합니다!! 혹시 몰라서 일단 적진을 둘러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키는 머리가 아픈 듯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대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 당신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요. 아자부가 최고로 치는 음악을 플로어에 나타내 보이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걸요.”
“예…….”
“그리고, 제 차를 마음대로 끌고 나갔다면서요?”
“냐앗?! 그, 그건……. 조사를 위한 도구라고나 할까…….”
“비용은 타마의 급여에서 까 둘 테니 그렇게 알아 두세요.”
타마는 눈물을 글썽이며 아키의 발 밑에 무릎을 꿇었다.
“으갸아아아악!! 그것만은 용서해 주시지 말입니다아아아아!! 아키 니이이이임!!!”
“아키, 그 정도로만 해 둬.”
남자처럼 옷을 입은 여인이 VIP 라운지를 찾았다. 조금 전까지 디제잉하던 하이지마 긴카였다.
“훈련을 시키는 부분에 있어서는, 나쁜 짓을 했을 때는 상대가 기억하는 동안 혼내 줘야 한다고 책에 적혀있었는걸요.”
타마가 불쑥 고개를 들었다.
“그거 반려동물 훈련시키는 이야기 아닙니까?!”
레이나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저, 저기, 적어도 저희들한테 폐를 끼친 건 아니었어요 그게……. 타마 쨩이 아키바에 놀러와 줘서 기뻤고…….”
“허어…….”
긴카가 레이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혹시 네가 히다카 레이나 쨩?”
“헤?! 어, 어째서 제 이름을…….”
긴카가 레이나에게 다가가 손가락 끝으로 레이나의 턱을 끌어올렸다. 그것을 본 카즈네는 코피가 터질 뻔 했다.
뭐야! 이거 그림같은 턱 끌어올리기?!
“네 이야기는 아버지한테 들은 적 있어. 재능이 넘치는 아주 귀여운 아이라던데……. 최소한 귀여운 건 사실인 것 같군.”
요염한 목소리로 속삭이면서 상큼하게 윙크한다.
“백합 회로 풀 가동?!”
“카, 카즈네 쨩……. 진정해요.”
잔뜩 흥분한 카즈네를 후타바가 달랜다.
정작 레이나는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 어안이 벙벙하다.
“저, 아버지라면…… 혹시 후가 씨 말씀이세요?”
“맞아. 우리 아버지가…….”
“긴카!”
아키가 날카롭게 소리치는 목소리가 울렸다.
돌아보니 아키가 눈을 치켜뜨며 긴카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런이런.”
긴카는 어깨를 으쓱거리곤 레이나에게서 몸을 뗀다.
“손님 앞에서 언성을 높이다니, 평소에는 얌전한 너답지가 않은데. 어딘가 화가 나기라도 했어?”
아키는 스륵 하고 다가온 긴카를 토라져서 올려다본다.
“그 손님께 실례되는 짓을 한 건 누구인가요. 막무가내로 밀어붙이지 말아 주시겠어요?”
“밀어붙였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나는 그냥 서비스 정신이 넘쳐 흐를 뿐이야. 이 학교 사람들이 나한테 기대하는 일을 할 뿐이고.”
“하여튼……. 만나기만 하면 그런 소리나 하시고…….”
“후후, 무엇보다도 네가 기대하고 있잖나.”
“그 가벼운 입 좀 다물어 주시겠어요? 도무지 말이 통하질 않네요.”
아키는 분한 듯이 말하고는 대화를 끊었다.
옛날부터 이 모양이야. 정말이지 이 사람은 언제나 나를 홀려 놓고선 상처를 주잖아.
그러면서도 너무나도 상냥해.
어디로 튈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모르겠고, 빈틈도 없어.
정말 화날 정도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아키바 덴온부에서 한 사람, 검은 머리 소녀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저기……. 저는 소토칸다 문예 고등학교 학생회장 시노노메 카즈네라고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차분한 목소리에 아키도 정신이 들어 기분을 전환했다.
“그런데 어째서 저희를 부르셨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데요. 레이나 말처럼 타마가 폐를 끼친 것도 아니니 뭔가 보상해주실 것도 없는걸요.”
“그렇지요……. 단적으로 말하면 당신들에게 흥미가 있었기 때문인데요.”
“그런데 저희 입으로 말하기도 뭐하지만, 생긴지도 얼마 안 된 소토칸다 덴온부에 랭킹 2등 시로카네 여학원이…….”
“그러게요. 그 들어본 적도 없고 랭킹 끝자락에 있는 아키바가 왜 뉴 레전드 출전을 걸고 우리와 STACK 배틀을 하게 되었을까요? 굉장히 흥미가 생길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아키가 물끄러미 카즈네를 바라보았다.
“그건……. 오히려 저희들이 궁금한 일인걸요.”
카즈네 뒤에 있던 레이나와 후타바도 끄덕였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새삼 아키바 세 사람을 관찰한다.
학생회장 이 친구는…… 우수하네요. 아키바에 썩혀두기 아까울 정도인걸요. 저희 그룹에 면접을 보러 온다면 바로 붙여 줘야죠.
뒤에 숨죽이고 있는 아이는 업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것 같아요……. 마음도 연약하고 자존감도 바닥을 기고 있네요. 실력이 있어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것 같아요. 얼굴은 반반하니까 로비 데스크로 보내면 어떨까요? 그런데 별로 눈치가 없어 보이네요. 불합격입니다.
그리고……. 긴카가 히다카 레이나라고 부른 이 아이. 어째서 긴카가 풀 네임을 알고 있는지는 나중에 따져보도록 하고요…….
아키는 새삼스럽게 레이나를 위아래로 훑어 보았다.
이 아이는…… 잘 모르겠어요.
솔직하고, 순박하고 아방한데요. 하지만 그것 뿐만이 아닌 뭔가……. 이 아이 속에는 도대체 뭐가 숨겨져 있는 걸까요?
그냥 잡동사니일까요, 아니면…… 광맥일까요.
“……당신, 히다카 레이나 씨라고 하셨었지요?”
“아, 네. 저, 저희가 무슨 이상한 수를 써가면서까지 출전할 생각은 없어요. 저희들도 깜짝 놀랄 일이에요.”
“그렇군요. 그렇다면 주최측이 변덕을 부렸다 칩시다. 그래서 아키바 에어리어는 어떤 음악을 하고 있지요?”
“어떠냐……고 물어 보셔도…….”
레이나는 곤란한 표정으로 카즈네와 후타바의 얼굴을 보았다.
“카즈네 쨩도 후타바 쨩도 하고 있는 음악 장르가 다르다 보니…….”
“허?”
아키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걸요. 어떤 음악 장르를 지향하는지가 그 에어리어의 가치관을 나타내는 것. 그냥 애들 장난처럼 적당히 하자는 생각으로 덴온부를 하고 있는 건 아니고?”
아키가 지적하자 레이나는 당황했다.
“네? 그, 그렇게 되는 건가요?”
“당연하지요!”
아키는 일어서서 어디서 꺼내왔는지 깃털 달린 부채를 펼쳤다.
“이 아자부는 고상하고 우아한 사운드를 기조로 합니다. 아름다우면서 섬세하고 대담한……. 전통과 역사가 뒷받침하는 그야말로 클럽 음악의 왕도라 부를 만한!”
아키는 당연하게 말했다.
“아자부의 음악이 최고 중 최고예요! 다른 에어리어의 음악 따위는 아자부에 비하면 저렴하고 얄팍하면서 가치가 떨어지는 잡음일 뿐이에요. 시부야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어요.”
톡 하고 부채로 미러볼을 가리킨다.
“도쿄 에어리어에 있는 모든 미러볼은 이 아자부, 바로 저를 위해 돌아가야 하는 것이어요!!”
레이나는 아키의 기세에 압도당했다. 하지만 말하는 내용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모두 각자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있는걸요. 어느 쪽이 뛰어난지는 결정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싶은…….”
“그걸 정하는 게 STACK 배틀이고 랭킹인 거예요.”
“그건……. 그렇지만요.”
확실히 STACK 배틀은 승패가 결정된다.
하지만 레이나는 이 대전 결과를 바탕으로 절대적인 우열이나 상하 관계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라주쿠 덴온부와 배틀을 했을 때는, 결과도 결과였지만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얻었는걸요. 거기다 하라주쿠가 디제잉하는 것도 너무 좋았던 거 있죠. 이기고 지는 것보다 더 많은 소리를 듣게 되어서 정말 기쁘고…….”
레이나가 마치 말대꾸처럼 대답하자 아키가 시큰둥한 목소리로 레이나의 말을 잘랐다.
“거꾸로 제가 물어보도록 하죠. 당신 자신의 가치관은 무엇인가요?”
“네?”
“당신이 가장……. 다른 무엇을 희생해도 될 정도로 중요하게 여길 수 있는,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음악이 뭐냐 이거예요.”
가장?
“그건…….”
레이나의 눈이 흐려진다.
아키라면 아주 간단하게 대답할 질문이다. 그래서 말을 더듬는 레이나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초조하게 재차 질문한다.
“당신 스스로 가장 아끼는 음악이 뭔지도 모르면서, 당신은 어째서 DJ를 계속하고 있는 건가요?”
“어.”
“당신이 DJ를 하는 목적 말이에요. DJ를 함으로써 무엇을 얻으려 하고 있나요?”
“그건……. 그건, 언니한테…….”
긴카가 눈썹을 약간 움직인다.
‘언니라고?’
하지만 그 작은 변화를 눈치채는 사람은 없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녜요. 바로 당신 이야기를 하자는 거예요. 당신에게는 줏대라 부를 게 없나요?”
아키가 레이나에게서 답을 이끌어내길 포기했는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제 손으로 미나토 시로카네 덴온부를 정점으로 끌어올려 아자부의 문화적 가치를 드높일 생각입니다. 다시 말해 아자부의 자산 가치를 높이고 싶은 것이어요.”
“그건……. 돈을 위해서, 인 거네요?”
아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당연하죠. 달리 이유가 또 있겠어요?”
그런 말을 들어도 레이나에게는 그 발상이 없다. 말을 잇지 못한다.
그런 레이나를 아키가 내려다보며 말했다.
“레이나 씨, 사람 사이를 무엇이 이어준다고 생각해요?”
“예? 그렇게 말씀하시면……. 음, 우정이라든가…… 사랑이라든가 하는 것을 말하는 건가요?”
“돈과 이해관계, 다시 말해 경제가 사람을 연결해요.”
다시 레이나가 생각지도 못한 답이 돌아왔다.
“돈이라뇨……. 그런”
“이를테면 오늘 있었던 파티 이야기를 해 보죠. 이 파티는 다시 말해 학생들 간에 벌어지는 사교계예요. 지금 디제잉을 하는 사람은 우리 자회사 사장의 따님이고요, 음향 장비를 담당하는 사람은 대형 외식 프랜차이즈를 경영하는 기업 임원의 따님이어요. 그 기업 최대주주가 시로카네 가문이고요.”
장난감 파는 구멍가게 딸내미한테는 완전히 딴 세상 이야기다.
“그래도……. 사람 사이 관계가 돈밖에 없을거라 생각하진 않아요. 예를 들어 아버지랑 저는!”
“아버님께서 돌봐 주시나요? 용돈을 받지 않나요?”
레이나는 머릿속이 혼란에 빠졌다. 아키가 말하는 소리는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사고방식이었다. 더구나 논리만 따지자면 그럴싸한 소리처럼 들린다.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던 인간관계가 한순간 무너지는 기분이다.
“덧붙이자면 직접 돈을 주고받는 관계만 말하는 게 아니어요. 이를테면 형태가 없는 정신적 이득도 포함하는 거예요.”
“그래도…… 그래도! 사람과 사람 사이는 그런 관계가 아니어도 이어질 수 있는 거예요! 카즈네 쨩이나 후타바 쨩 하고는”
“덴온부 부원들이죠? 여러분 각자 덴온부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함께하니 모두에게 이득인 것 아니겠어요. 가령 그쪽 학생회장 분께서는, 덴온부가 랭킹 상위에 올라가면 학교 네임 밸류가 올라가겠지요. 학교로써 광고효과가 아주 좋아지니까요. 광고 선전 비용이라고 볼 수 있기 않겠어요.”
카즈네는 반박할 수 없었다.
“예……. 아주 큰 메리트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죠.”
아키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들의 우정을 의심하는 건 아니어요. 하지만 마음으로만 이어진 인연은 신기루처럼 약하고 부질없는 것이에요.”
아키는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이어진 관계는 튼튼하고 신뢰할 수 있어요. 계약으로 묶은 관계가 제일 보안이 뛰어나지요. 가장 소중하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가장 견고한 사슬로 묶어두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아키바 세 사람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다.
레이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져 뭐라고 대답할지 몰라 난처해졌다. 그래도 뭐라도 말해야겠다는 생각에 억지로 말을 쥐어짜냈다.
“그……그래도, 언니랑은…… 금전적으로 접점은 없지만…….”
“언니 되시는 분? 그분과 당신 사이에 어떤 접점이 있지요?”
레이나는 깜짝 놀라 숨을 삼킨다.
없어.
아무것도 없어.
만나기만 하면 어떻게든 생길거라 근거 없이 믿고 있었다.
그 결과는, 거절.
이제 레이나는 한마디도 반박할 수 없었다.
한밤중 도쿄 수도 고속도로를 스포츠카 한 대가 달리고 있다.
운전석에는 긴카, 조수석에는 아키가 앉아있다. 물론 자율주행.
자동차는 단 둘이서 함께할 수 있는 밀실이다. 주위에 늘 누군가 있는 아키에게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다. 두 사람은 흘러가는 도쿄 야경을 바라보며 누가 들을 걱정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다음에는 시부야를 이겨야 해요. 우리 꼭 이길 수 있겠죠?”
긴카는 몇 가지 대답을 생각해냈다.
긍정적인 대답 선택지를 고르면 소란 없이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어떠려나…….”
긴카는 말끝을 흐리고 팔짱을 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지난 몇 개월간 시부야에 설욕하기 위해 이 고생을 해온 것 아니어요?”
“확실히 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어. 아키도 작년보다 실력이 훨씬 늘었고 강해졌지. 타마가 들어오면서 한 팀으로서 종합 전투력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야. 인정할 수밖에 없어.”
“그런데도 어째서 말을 흐리죠?”
“내가 다시 물어보겠는데, 아키는 지금 아자부로 그 시절 시부야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건.”
반드시 이길 수 있다 단언하지 않는 것이 올바른 경영자의 자세다, 그렇게 아키는 생각했다.
희망적인 관측만 가지고 무모한 결정을 내리지 않지. 어려서부터 경영 감각을 익힌 보람이 있어.
“물론, 우리는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허나 이대로는 포화상태야. 아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그렇지 않아요. 아직 더 늘릴 여지도, 할 수 있는 일도 남아 있어요.”
“그래 봤자 나아갈 수 있는 수준에 한계가 있어. 예전에는 쉽게 한 걸음 갈 수 있어도 지금은 열심히 노력해도 한 마디밖에 나아가지 못해.”
“명품이란 그런 것이어요.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은 그 작은 차이에서 가치를 느낄 수 있을테니까요.”
“하지만 판단하는 쪽은 Iris와 일반 관중이다.”
아키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더니 시트에 몸을 기댔다.
“하여간……. 짜증이 치밀어 오르네요. 우리같은 진심으로 좋은 음악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음악 듣는 귀도 제대로 달려있지 않은 사람들한테서 평가받는다는 사실이요…….”
아키는 드링크 홀더에 놓인 잔에 손을 뻗고는 거품이 일렁이는 금빛 액체에 입을 댄다.
“그러니 저런 시부야같은 품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시끄럽기만 한 우범 지대 음악이 떠받들어지는 것이어요. 정말 한탄할 노릇이어요! 긴카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네 기분이 어떤지는 알아. 하지만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문제에도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해.”
아키는 축 늘어져 시트에 가라앉는다.
“그런 방법만 있으면 고민 같은건 하지 않았을텐데요.”
“이제 어쩔래? 슬슬 집으로 돌아갈까?”
“한바퀴만 더 돌죠.”
“알겠습니다. 공주님.”
긴카는 자율 주행 AI에 수도 고속도로를 한바퀴 더 돌도록 설정했다.
한 바퀴 도는 시간을 생각해보면 앞으로 두 바퀴는 더 돌 수 있겠어. 그렇게 되면 어림잡아 공주님을 집으로 바래다 줄 시간이 될거야.
“아버님도 학교도 덴온부가 일궈낼 성과를 기대하고 있어요. 아자부가 하는 음악이 최고임을 보이지 않으면……. 이번에야말로.”
긴카는 잠시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야.”
“그런가요? 그렇다면…….”
“가식과 약간의 희생이 뒤따를 수 있다, 그래도 괜찮겠나?”
“리스크가 없는 비즈니스는 존재하지 않아요. 그 위험 부담을 관리해내는 것이 일류 경영자가 할 일이니까요. 그래서 그 방법이란 게 무엇이지요?”
“아아. 먼저 아키바와 대결하는 것이 먼저겠지.”
“아키바?”
아키는 맥빠진 얼굴을 했다.
“아키바 분들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솔직히 그 분들은 저희 상대가 되지 못해요. 정말이지 주최측은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긴카가 쓴웃음으로 대답한다.
“안중에도 두고 있지 않으면서 아키바 아이들에게 그렇게 짓궃은 말을 한 이유가 무엇이지?”
“그건……. 조금 기분이 나빴으니까요.”
마음 속으로는 도대체 누구 때문에 그랬을 것 같냐고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긴카가 아키바의 그 아이를 귀여워한 것에 질투했다, 스스로 자백하는 꼴이 된다.
물론 그것말고 다른 이유도 있다.
“분명 그 레이나란 아이, 태도부터가 천진만한하고 편안해보여서 부아가 치밀어 오른걸지도 모르겠네요.”
“부러웠던 게 아니고?”
아키는 입을 떡 벌리고 긴카를 노려본다.
둘만 있으면 아키는 이렇게 귀여운 표정을 짓는다. 시로카네 집안의 차기 당주로서 짓는 얼굴이 아닌 또래 여자 아이같은 얼굴이다.
“아무튼 아키바와 비교하려 하셔도 부질없어요. 에어리어 전체를 아우르는 음악 기조도 갖고 있지 않은걸요.”
“그대신 우리는 스폰서를 맡고 계신 에어리어 중진 분들의 고견을 듣고 비위를 맞춰드리지 않으면 안돼……. 음악 취향도 맞춰드려야 하고 말이야.”
“그건 투자에 대한 정당한 댓가인걸요. 떼를 쓰는 것도 아니고, 거래와 계약으로 이뤄진 일이니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키는 어렸을 적부터 비즈니스 세계가 가진 각박함을 질릴 정도로 보아 왔다.
“투자받은 것 그 이상을 돌려주어 신뢰를 얻는 것이죠. 그것을 바탕으로 더 큰 투자를 따내 양성 피드백을 만들어내는 것이어요.”
“거기에 단순히 경영권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아키 자신을 드러내고 브랜딩해가 스스로 가치를 높이는 쪽으로, 명실공히 시로카네 집안의 차기 당주로써 지위를 굳힌다……. 주변 기대에 맞춰 당주 역할을 해 내는 것도 정말 못 해먹을 짓이야.”
긴카 역시 아자부의 명가에서 자라났다 할 수 있지만, 그 배경은 아버지가 아주 유명한 DJ이자 뮤지션이기 때문이다. 아키처럼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지는 않다.
한편 시로카네 가문은 거대한 기업체를 소유하고 있다. 만약 사업이 잘못된다면 그 영향을 받는 사람수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어쩌면 수많은 가족의 행복한 일상을 파괴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될 지 모른다, 그런 거대한 부담이 아키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이미 그 준비는 시작되었다. 아키는 덴온부 활동과 함께 비즈니스 엘리트로서 가져야 할 소양도 교육받고 있다.
긴카는 그런 아키를 걱정하고 있다. 아키는 우수하기 때문에 둘 다 소화해낼 수 있겠다만, 그렇다 해서 무리하지 않는 것은 아닐테니.
사실은 덴온부 같은 걸 할 여유 같은 건 없으면서.
언젠가 쓰러지지 않을까 안절부절하지 못한다.
“……그런데 말이죠. 긴카는 지금도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 것이지요?”
“응?”
“그 모습 말이에요.”
“아아……. 이거 말이지.”
긴카는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따지고 보면 부모님의 취미였다.
여자아이한테 보이쉬한 옷을 입히면 그냥 재미있으니까.
긴카도 싫어하지 않았다. 거기다 주변 아이들 반응도 좋았다.
어떤 기대를 받으면 보답하고 싶어진다. 남자아이 같은 행동을 더욱 연마해 냈다.
신사처럼 행동하면 여자아이들이 열광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장난스레 플레이보이처럼 밀어붙이면 새빨개져서 당황하는 아이들을 보는 것도 좋아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 어느 여자아이에게서 진심으로 사랑을 고백받았을 때는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그 아이가 여자애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을 남자아이로 착각했다는 걸 깨닫고는 한번 더 놀랐다.
결국 그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으니까.
그 일은 깊이 반성하고 있다.
그래서, 계속해서 남자처럼 옷을 입는것이 그 속죄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어버렸다면,
어쩌면 그 고백은 마녀의 저주였을지도 모른다.
그 후, 여자아이 같은 옷과 행동을 봉인당하고 말았다.
긴카는 빛나는 금빛 머리를 가진 마녀를 바라본다.
“무슨 일이에요?”
“아니. 언제 봐도 아키가 참 예뻐서.”
“……끅?!”
그 순간 아키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더니 주전자처럼 머리에서 김을 뿜어냈다.
“무, 무슨 말을 하시는 거예요, 갑자기?!”
“미안하다. 생각만 해야 하는데 입 밖으로 내 버렸어.”
“…….”
아키는 어깨를 으쓱대며 수줍게 고개를 숙엿다.
다른 상대라면 재치 있게 받아칠 수 있었을텐데, 긴카 상대로는 아무래도 불리하다.
문득 레이나게에 쏟아낸 설교가 생각난다.
경제적 유대감과는 다른, 감정과 마음으로만 이어진 사이.
그런 불안한 연결고리를 믿을 만큼 저는 순진하지 않아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참 로맨틱하네요.
“역시 조금 부러웠던 걸까요.”
흘러가는 야경을 바라보며 아키는 나직히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