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야 역 앞, 벽에 디스플레이가 있는 빌딩. 거기가 테이온 국제학원 덴온부 동아리방이다.

미미토는 그 앞에 섰다.

나는 1등이 아니야.

이제부터는 분수를 깨닫고 조용히 살아가자. 앞으로는 이상한 꿈을 꾸지 말자.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목표로 했던 시부야 테이온 국제학원과 한번 배틀을 해 보고 싶어.

아직 테이온과는 한번도 대전해보지 못했으니까.

여태껏 문전박대만 받아오고, 단 한번도 승부를 못 해봤지.

어차피 이길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어.

그래도, 스스로 깨닫기 위해서 필요한 의식이야.

누구든지 좋아. 누군가와

“우리 학교에 무슨 일이야?”

“?!”

미미토가 돌아보니 숨이 넘어갈 정도로 아름다운 소녀가 서 있었다.

검은 단발머리에 파란 브릿지.

소녀스러운 파란 원피스 위에 투박한 검은 가죽 점퍼, 검은 통굽 부츠를 빨간 고정 밴드로 매어 놓았다.

가련함 위를 펑크로 무장한 소녀다.

“저, 저기…….”

……이 사람, 보통내기가 아니다.

미미토는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꼈다. 그리고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며 당황하고 있다. 육식 동물의 미움을 산 토끼처럼.

그런 미미토를 그 소녀는 매서운 눈초리로 바라본다.

“내 말 못 들었어? 무슨 용건이냐고 물었잖아.”

오싹하게 등골이 싸해진다.

그 목소리가, 그 눈빛이, 마치 차가운 칼날 같다. 주변 공기까지도 갑자기 서늘해진 느낌이 들었다.

미미토는 떨리는 몸을 부여잡고 간신히 목청을 쥐어짜낸다.

“나, 나는 하라주쿠 진구마에 산도 학원 덴온부 부장 사쿠라노 미미토야. 테, 테이온 덴온부와 시, 시시, 시합을…….”

그 소녀는 “아….” 하며 맥 빠진 대답을 했다.

“연습경기라면 웹사이트에서 신청할 수 있으니까.”

“어…….”

“그런데 좀 많이 밀려있어서 언제라고 약속은 하지 못해. 그래도 괜찮다면.”

“…….”

미미토는 자신도 모르게 땅바닥으로 시선을 떨구었다.

“그, 그래서 말인데, 시부야 1인자와 시합해볼 수 있어?”

“아니. 상대 레벨을 보고 우리가 시합할 부원을 매칭해 줄거야. 우리는 부원이 백 명 정도 있으니까. 하라주쿠 진구마에라고 했지…….”

소녀가 핸드폰을 꺼내어 랭킹을 보고 있는 것 같다. 화면을 보던 눈꼬리가 스윽, 기울어진다.

“미안해. 어쩌면 신청을 해도 맞는 상대를 찾아주지 못할 수도 있어. 그래도 괜찮으면 신청해 보든지.”

그렇게 말하며 소녀는 학교 건물 안으로 사라진다.

미미토는 혼자 뚝 남겨졌다.

“뭐야…….”

결국 이번에도 문전박대당했다.

상대해 주지도 않았다.

“어차피…… 나 따위는, 이 정도밖에 안돼…….”

뺨에 뜨거운 것이 느껴진다.

눈동자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멈추려고 해도, 닦아내도, 계속 흘러 넘친다.

미미토는 고개를 숙이고 발길을 홱 돌린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는 하라주쿠를 향해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막판에 비참하게 찾아간 시부야였지만, 상대조차 하지 못한 채 얻어터지기만 했을 뿐이다.

시부야 덴온부는 부원이 백명씩이나 있는 것도 처음 알았다.

하라주쿠는 두 명 모으는 것조차 벅찬데.

게다가 그 두명도 별로 의욕없고.

그래도 걔네들은 동아리에 가입해 주기라도 했지.

다른 학생들은 내 말 들어주지도 않았으니까.

다시 생각해보니…… 걔네들 아주 소중한 사람이었을지도 몰라.

모처럼 생겨난 동료.

그런데…… 아무래도 서로 상처만 주게 되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라곤 모르는건지.

어느 쪽이든간에, 이젠 끝이야.

끝나버렸어. 전부 다.

모처럼 소중한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어쩌면 이미 손에 넣었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다 망쳐버렸어.”

미미토는 제 몸을 질질 끌고가듯이 겨우 하라주쿠로 돌아왔다.

집에 가려고 했는데.

“……아.”

정신을 차려 보니 동아리방 앞까지 와 있었다.

아무도 있을 리가 없는 방에.

아, 동아리방도 학교에 반납해야 하네…….

그런 생각을 하며 문을 여니

거기엔 히나와 시안이 있었다.

“히나……, 시안?!”

아기자기한 인테리어의 일부가 된 것처럼 앉아 있다.

“……왜 당신까지 있는 거야?!”

오도카니 있는 레이나에게 무심코 딴지를 걸었다.

“하라주쿠 덴온부가 위기라고 해서, 안절부절 할 수 없게 되어버렸거든……. 그래서 두 사람과 함께 미미토 쨩을 기다리고 있었어.”

레이나는 카미조노 진구에 가서 반강제로 시안을 끌고 동아리방에 왔다. 그러자 조금 떨어져 있는 구석진 곳에서 슬쩍슬쩍 들여다 보던 히나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두 사람도……. 그러면 그 말은.”

미미토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히나와 시안을 번갈아 바라본다. 하지만 두 사람은 후다닥 시선이 마주치지 않게 피한다.

하지만, 부정하지는 않는구나.

그러니까 그런 거구나.

반가워.

반갑지만

이미 미미토의 마음은 완전히 지쳤다.

어차피 나는 1등이 될 수 없는걸.

게다가…… 다시 세 명이 모여 부대껴도, 금방 싸우고 헤어져버릴 거잖아.

그러니까, 이제

“나, 미미토 쨩이 DJ 플레이하는거 정말 좋아!”

눈앞에 레이나의 얼굴이 있었다.

“으악?!”

너무 가까워서 미미토는 저도 모르게 넘어졌다.

예전 같으면 “당연하지!”라 대답할 일이었지만, 지금 미미토에게는 그럴 기운조차 없다.

“내…… 어디가?”

힘없이 묻는 미미토에게 레이나는 상냥하게 미소짓는다.

“그러니까 굉장히 미미토 쨩다운 점이 가득해서 말야. 미미토 쨩이 정말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 놓아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어.”

미미토는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 어쩌라고? 어차피 1등 같은 거 못 할건데.”

히나가 낯빛을 바꾸었다.

“미미토…….”

어쨌든 히나는 미미토가 밀어붙이는 힘에 이끌렸기 때문이다.

동업자와 겪는 갈등을 견디지 못해 도망친 자신과는 다르게, 미미토는 정면에서 맞서고 있다.

언제나 딴지만 걸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미미토를 대단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히나 자신조차 자각하지 못했지만, 사실은 미미토가 기죽지 않는 것이 히나에게 마음 속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그랬었는데

“그러니까, 이제 더는 힘내지 못할 것…… 같아.”

그 말을 듣고 히나는 자신조차도 놀랄만큼 충격을 받았다.

“미미토…… 무슨 소리예요, 그게.”

늘 하던 대로 담담하게 밉살스러운 말을 하고 싶은데,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그리고 시안도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미미토.”

시안도 미미토에게 짜증내면서도 미미토를 마음에 들어하고 있었다.

꿈을 향해서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미미토의 자세를 좋아했다. 하고 싶은 일도 찾지 못한 채, 그저 뭔가 해야겠다 생각하기만 하며 초조해하던 자신과는 큰 차이가 있으니까.

거창하게 말하면 동경.

나도, 꼭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누군지, 그걸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꿈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미미토가 더이상 힘을 낼 수 없다면, 우리한테도 무리인걸.

그런 분위기로 동아리방이 가득 차있을 때

“괜찮아!”

레이나가 미미토의 손을 잡았다.

“왜냐하면, 미미토 쨩은 미미토 쨩이라는 점에서 1등이니까!!”

“……뭐?”

미미토는 “도대체 이 녀석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라 말하며 얼굴을 찡그린다. 하지만 레이나는 멈추지 않는다.

“확실히 STACK 배틀은 승패가 결정되고 랭킹도 있어. 하지만 그건 게임처럼 하는 것뿐이지, 그 사람이 가진 가치 전부를 결정하는 건 아니잖아.”

“그래도 결국에는 랭킹으로 다 결정되는 거잖아.”

“지난번에 플레이할 때 미미토 쨩이 실수했었잖아. 그때 나 엄청 충격받았어.”

“아……. 이 와중에 갑자기 디스야?”

“팬 분들이 굉장히 즐거워하고 있었거든. 내가 실수할 때는 아무도 안 기뻐해 주니까……. 그래서 놀랐어.”

“그건 그 사람들이 날 놀려먹으려 그러는 거야!”

“아냐. 그 사람들은 미미토 쨩이 플레이하는 것도 제대로 듣고, 춤추면서 즐거워하고 있었어. 분명 그 사람들은 미미토 쨩을 정말 좋아해주고 있어. 실패한 점도, 하지 못한 것도, 그러면서도 열심히 노력하는 점도 전부 가지고 있는 미미토 쨩을 좋아해주고 있어.”

“…….”

“팬 분들은 미미토 쨩이 랭킹에서 몇 등이라 좋아하는 게 아니야. 미미토 쨩이 미미토 쨩이라서 좋아하는 것뿐이야.”

“……내가…… 나라서?”

“히나 쨩과 시안 쨩도 분명 그럴 거야.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몇 번이고 싸우고서도 그때마다 화해할 수 있겠어.”

히나와 시안은 살짝 뺨을 물들이더니 시선을 피했다.

“사람은 사람마다 사고방식도,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모두 달라. 싸우고 나서도 자기 마음만 정리하기에 바빠서 싸운 사람과 있었던 일을 돌아볼 겨를조차 없는 사람도 있고……. 나도 마찬가지로 소중한 사람과 맺은 관계가 깨진 적이 있는데…….”

레이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갑작스레 레이나가 낯빛을 바꾸자 미미토는 불안함을 느꼈다.

“……레이나?”

“하지만! 난 여기서 포기하고 싶지 않아! 언젠가는 음악이 나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과 나를 이어줄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하라주쿠 부원들 사이가 이렇게 깨지는 거 난 싫어! 절대 그렇게 안 둘거야!!”

눈에 눈물이 맺힌 레이나를 보며 미미토는 할 말을 잃었다.

올곧은 눈동자와 그 말이 미미토의 가슴을 울렸다.

꺼진 줄만 알았던 마음 속 불꽃이 다시 타오르기 시작한 느낌이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도 없이, 내가 나라는 점에서부터 이미 난 충분히 매력적이란거지?”

미미토가 ‘흥’, 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어차피 원래부터 허세 부린 거잖아.

그냥 허울만 좋았을 뿐이었다고.

그렇다면 이제 와서.

꿈에 젖어 지내는 게 뭐가 나빠?

현실이 뭐래?

현실이 언제까지나 계속될거같아?

허세도 쭉 밀어붙이면 언젠간 진짜가 될거라구.

지금은 1등이 아니지만

언젠가는!

미미토의 얼굴에 화사하게 웃음이 감돈다.

“아키바 치고는 좋은 소리를 해주잖아. 칭찬해 줄게. 즉, 그건 이미, 나는 초월적 존재란거지?! 역시 나는 최강이야!!”

갑작이 안색이 밝아진 미미토를 히나와 시안은 입을 벌리고 아연실색하며 바라보았다.

“아. 왠지 홀가분해진 기분! 이야. 저 밖에서 뭐라고 떠들어대든 아무 의미도 없는 거네. 그냥 뭐 짖는 소리밖에 안 되는 거잖아. 그딴 걸 일일히 상대하기보다”

내가 목표로 하는 1등을.

미미토의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나는, 내 역사상 제일 센 내가 될 거야! 그렇게 되면 구데기 시부야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게 될 걸!!”

히나는 움츠러든 웃음을 지어보이며 미미토를 바라보았다.

“또 엉뚱한 쪽으로 자신감을 가져버렸네요……. 아이고 맙소사.”

“……하지만 미미토다워.”

그런 두 사람을 향해 미미토는 웃음꽃을 활짝 피운다.

“그래! 왜냐면! 나는 사쿠라노 미미토니까!!”

어설픈 소통 장애 세 명이니까.

그래서 나는 이 두 사람이 좋아.

앞으로도 분명, 셀 수 없을 정도로 싸우겠지. 동아리가 무너지는 초유의 사태도 여러번 겪게 될 거야.

비록 그렇다 한들

히나와 시안, 너희들이 아니면 안돼.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내 입으로는 말 안 해줄거지만.

미미토는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그 다음주, 아키바와 하라주쿠의 재시합이 열리게 되었다.

재시합이 열릴 경기장은 카미조노 진구. 6월 축제에 열리는 DJ 공양. 그곳이 승부의 무대다.

“설마, 정말로 디제잉으로 공양을 드린다니…….”

카즈네가 기가 막힌 얼굴로 혼덴 앞에 설치된 무대를 올려다봤다.

이건 토박이 아저씨들이 시안을 위해 기획한 의식이다. 시안의 어머님 되시는 칸누시는 처음에는 난색을 표했으나 끝내 허가를 내려 주셨다.

시안이 무녀를 그만두고 싶어했던 건 아니었다는 것에 안심한 것과, 딸이 신사 근무 외에 다른 것에 관심을 보인 적은 처음이라며 배려를 해 주신 덕을 크게 보았다.

여태껏 들어본 적 없었던 DJ 공양은 사람들을 많이 끌어모았다. 원래 젊은 참배객이 많은 신사이지만, 이날은 한층 더 폭넓은 손님이 모여 관객 수가 오백 명 가까이 되었다

무대 뒤에서는 미미토, 히나, 시안 이렇게 셋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디제잉 하는 거, 처음이야.”

“미미토. 목소리가 떨려요.”

히나는 오늘도 흰 마스크로 얼굴 아래쪽 절반을 가리고 있다. 신상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지만 긴장한 얼굴을 감추는 효과도 있었다.

“그렇게 얼굴을 가려도 다리가 후들거리는 건 다 보이거든?”

“으……. 그, 그치만 저는 두번째 순서니까요. 끝판왕을 맡은 미미토는 책임이 막중하니까 잘 좀 해 주세요.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라는 말이 있으니까, 모든게 다 미미토에게 달린 거라고요.”

“책임회피 하려고 그러지 마! 나한테 더 부담 주지도 말고!!”

“첫 타자를 맡은 시안이 제일 부담이 클텐데 저렇게나 침착하잖아요. 좀 보고 본받으세요.”

시안은 아까부터 한마디도 하는 일 없이, 눈을 반쯤 감고 있다. 그야말로 무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정말…… 침착하게 있구나.”

“여기가 시안네 홈 경기장이기도 하니까요. 문자 그대로 침착 그 자체인 것 같아요.”

그런데 반응이 없다.

“근데, 시안 말이야악?!”

얼핏 보면 침착해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보니 온몸이 안마기가 된 것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시, 시안? 괜찮아? 고장난 거 아니지?”

그때 마침 시작시간이 되었다.

대답할 여유도 없이, 시안은 뾰족니를 달그락달그락 울리면서 스테이지를 오른다.

“괘, 괜찮은 걸까?”

“걸음거리가 완전히 로봇이네요…….”

삐걱삐걱 소리날 것 같은 걸음거리로 DJ 부스에 들어간다.

그러자 관중석에서 박수갈채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시안은 관객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맨 앞에 진을 친 토박이 아저씨들 무리로 시선을 내린다.

숨소리같은 심호흡을 한 번, 그리고 플레이를 시작한다.

막상 플레이가 시작되니, 방금 전까지 긴장하던 것들이 모두 어디로 간걸까.

의외로 시안은 침착함을 되찾았다.

부스 앞에 늘어선 토박이 무리가 평소처럼 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륜이 새어 나오는 아이돌 콜과 오타게로 착각할 법한 응원 댄스가 시안의 신경을 박박 긁어대고 있다.

그런 짜증이 긴장감을 넘어섰다. 그리고 여느때처럼 핸드폰을 꺼냈지만, 텍스트를 때려넣으려던 손가락이 멈춘다.

저런 방법으로도 응원해 주고 있네.

응원해주는 방식은 마음에 안 들지만.

시안은 핸드폰을 치우고 플레이에 집중했다.

하라주쿠다운 귀여움을 베이스로 한 듣기 좋은 선곡, 변함없이 저음을 울려대는 플레이였지만, 지난번처럼 난폭한 중저음을 듣게 하는 방법은 아니다.

이퀄라이저와 페이더를 조작하는 시안의 움직임은 우아함과 단아함, 그야말로 공양의 춤.

이 땅의 역사와 문화를 사랑하고, 모인 사람들이 이 땅의 신령에게 감사를 드리는 공양에 어울리는 플레이다.

시안의 모습과 DJ 플레이에서 거룩함마저 느껴진다.

‘재미있어.’

시안의 입가에 아주 희미하게 웃음이 번졌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주어진 시간 20분이 지나갔다. 곁으로 히나와 미미토가 다가온다.

“잘 하잖아! 시안.”

칭찬하는 미미토에게 시안은 조금 수줍게 시선을 낮춘다.

“어쩌면 나……. 디제잉 하고 싶은걸지도.”

“어?”

“빨리 뭐든 하고 싶다거나 아무거나 해도 상관없다는 게 아니라……, 이게 바로 내가 하고 싶었던 거였을지도……. 그리고…….”

흘긋 미미토와 히나를 곁눈질로 본다.

“다 같이…… 있을 수 있어서.”

“시안…….”

미미토의 가슴에 무엇인가 북받쳐 온다.

그런 생각이 미미토의 눈물샘을 터트리려 할 때, 히나가 미미토를 밀쳐냈다.

“야! 뭐하는 짓이야?!”

“예예, 거기서 비켜주시죠. 제가 세팅해야 하잖아요.”

히나가 DJ 유닛 앞에 스케치북을 펼치니 등 뒤에 있는 스크린이 하얗게 변한다. 디지털 페이퍼 스케치북이 영상을 쏘는 프로젝터에 무선으로 연결된 것이다.

“뭐 하려고 그래?”

“일러스트를 그릴 거예요.”

미미토는 어리둥절해서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너, 신상 퍼지는 거 싫다며…….”

“뭐 싫기는 한데요. 그렇지만…….”

히나는 마스크를 벗엇다.

“맞기 싫어서 숨어버리는 건…… 괜히 저를 공격하려는 이들을 힘 안 쓰도록 배려해주는 모양이 되니까, 바보 같은 짓이었다고 생각해요. 절 싫어하는 사람을 조심하는 것도 부질없는 짓이었어요.”

“히나?”

“그래서 오늘은 그림 그리는 방송을 한다고 미리 공지해 왔답니다.”

히나가 시안의 마지막 곡에서 자신의 첫 곡으로 잇는 동시에, 스케치북에 일러스트를 그리기 시작했다.

경내에 있는 관객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일러스트레이터 미나카미 히나의 팬들도 신사로 몰려오는 모양이다.

미미토와 시안이 핸드폰으로 인터넷 방송 사이트를 검색해보니, 이쪽에도 시청자 수가 급격하게 불어나고 있었다.

일러스트레이터 히나의 이름값을 사용해 시청자 수를 벌어오고 있다. 그리고 응원 메시지는 고스란히 STACK 배틀에서 득점으로 이어진다.

그렇다곤 하지만, 실제로 해내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미미토는 스스로 온 힘을 다해 자기자신을 세상에 알리고 있지 않던가요.

그런데 저는 스스로 핑계를 대며 도망치기만 하네요.

조금 더 당당하게 살고 싶어.

저 히나에게도 날개는 있습니다.

미미토한테 되는 일이라면, 저한테도 되는 일이죠.

……뭐, 그런 글러먹은 토끼 녀석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같은 소린 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절대 본인한테는 이야기 안 해줄거지만요.

히나가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고 카즈네가 흥분해서 외친다.

“굉장해! 미나카미 히나가 라이브 드로잉하는 걸 맨눈으로 볼 수 있다니! 거기다가 디제잉까지 하면서! 거기다가 틀고 있는 노래와 이미지가 맞는 그림을 그리면서!”

후타바도 입을 딱 벌리고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빠르면서…… 잘 하고…… 저런걸 다 해내네요…….”

레이나도 눈을 반짝이고는 스테이지 위에 있는 히나를 바라보았다.

“우와~ 굉장해! 이게 히나 쨩이 DJ 플레이할 때 모습이구나!”

“정말로 우리 소토칸다에 필요한 사람인걸…….”

안타까워하는 카즈네를 보며 레이나는 미소짓는다.

“하지만 히나 쨩은 저 두 사람과 함께 있는 히나 쨩이니까 이럴 수 있는걸거야. 분명.”

그 말을 들으니 카즈네도 그럴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난생 처음 겪어보는 20분이 지나고, 그렇게

“자! 하라주쿠 에이스,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이몸, 사쿠라노 미미토가 등장했어! 나를 떠받들도록 하여라!!”

귀여운 와중에 조금 다크한 분위기를 풍기는 선곡.

밝고 즐거운데 어딘가 불안과 위태로움이 도사리고 있다. 그런 전개가 계속된다.

하라주쿠에는 타케시타 거리같은 양지 뒤에, 하라주쿠의 뒷면과 같은 밤 하라주쿠가 드리운 그늘이 도사리고 있다.

귀여움과 섬뜩함, 팝함과 그로테스크가 공존하는 불안정함. 그것은 마치 미미토 일행과 하라주쿠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 같았다.

DJ 플레이 속에서 미미토는 속마음을 뱉어내고 있다.

그 다음 트랙이 미미토의 마지막 선곡일거란 생각에 레이나는 긴장했다.

그리고 미미토는 저 높이 한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킨다.

“자, 이 다음엔 바로 이몸의 신곡이다! 감사히 듣도록 하여라!! 나를 떠받들거라!!”

스크린에 가사가 비치고 미미토가 노래한다.

팝핑 팡에 야파파파파
튀어올라 매일매일 팝콘처럼
두근두근 중요하지요

전뇌 롤리팝

자신감이 넘쳐 흐르는 미미토는 반짝이고 있다.

우격다짐에 가까운 뻔뻔한 선언이 오히려 시원시원하다.

뭐 어쨌든 저쨌든 차밍 포인트
그게 바로 나라고!

관객들도 레이나 일행도 모두 신이 났다.

“자! 히나, 시안, 너희들도!”

미미토가 히나와 시안을 스테이지로 불러냈다.

부끄러운 표정을 지은 히나와 시안이 다가온다.

“정말이지…… 이런 연출, 저는 좀 싫거든요.”

“……창피해.”

그런 말을 하면서 페이더에 셋이 손을 댄다.

“이제 라스트야! 명심해서 듣도록 하여라!!”

미미토가 외치며 동시에 페이더를 올린다.

Future
언젠가 네가 어른이 되어버린다 해도
절대 잊어버려선 안돼 이 빛깔 모두 다

다시 신곡. 하지만 이번에는 셋이서 만든 노래다.

우리들을 봐 줘
더욱 더 빛나고 있어

세 사람의 마음을 담아서.

언젠가 우리도 어른이 되어버리는 걸까
그럴 거라면 조금 더 손을 잡고 있어줘

마지막에는 다 함께 불렀다. 히나와 시안은 작은 목소리로.

소리가 잦아들고 플레이가 끝났다.

평소에는 조용한 경내가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으로 가득찼다.

카즈네는 박수를 치며 얼굴을 굳혔다.

“허들이 올라가 버렸네…….”

“으어어…….”

후타바는 이미 울상을 짓고 있다.

“응.”

레이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 평소 레이나답지 않다. 두 사람이 레이나를 바라보며 역시 주저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레이나가 벌떡 얼굴을 들었다.

“하지만 굉장히 열광할 수 있었어!!”

눈동자에 불이 붙은 것처럼 반짝이고 있다.

“그렇지. 주눅들어 있을 때가 아니야.”

“그럼! 메카 애니에서 말하는 라이벌 캐랑 하는 대결이야! 더욱 뜨거워져야지!!”

그런 비유는 어떨까 싶었지만, 카즈네는 쓴웃음을 지으며 후타바의 등을 떠밀었다.

“그러면 부탁할게, 아키바의 돌격대장.”

“으에에에엑?! 첫 번째는 카즈네 쨩이 할 예정이었잖아요?!”

“그 예정을 바꾸기로 했어.”

많은 관중 앞 무대에 오른 후타바는 그 순간 긴장이 한계돌파.

피버 구간에 들어가 터져버렸다.

“이얏호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오늘 와줘서 고마워~엇!! 후타바 잔뜩 힘낼게! 그러니까 모두 목소리 크게 부탁해! 이렇게 된 김에 사랑도 크게 부탁해♥.”

무대 아래에서 미미토가 바득바득 이를 갈고 있다.

“으~. 역시 저 여자 짜증나! 남의 구역에 찾아와서 뭔 아이돌 행세야! 내가 훨씬 더 귀여우니까!! 저런 전파 셋트리 구데기라구!!”

허나 히나는 빨려 들어갈 것처럼 스테이지를 올려다보고 있다.

“그런데…… 어쩐지 창작 의욕이 샘솟습니다. 이런 캐릭터도 괜찮겠다…… 이 다음엔 한번 스케치하고 싶어.”

“뭐어?! 그러면 날 그려달라구.”

“으윽…….”

히나는 무진장 싫은 얼굴로 대답했다.

“왜 그런 얼굴이야?”

시안은 초스피드로 뒷계에 글을 쓴다.

하여간 저 토끼새끼 생기다 만 거야 아님 어디가 퇴화해버린거야. 혼자 내버려두고 외로움에 사무쳐 저세상 가도록 만들어버릴까.

늘 하던 짓이지만 이번에는 어딘가 다르다.

이정도 싫은 소리에 틀어질 사이는 아니라고 말로 확인한 건 아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안도감이 든다.

그 뒤로 미미토는 후타바가 해내는 통통 튀는 플레이를 듣는 와중에 갈수록 표정이 험악해져갔다.

“크……. 그런 거였구나. 내가 남긴 여운을 지우러 온 거였네.”

어안이 벙벙한 관객들을 보며 카즈네도 싱글벙글 웃는다.

“저렇게 분위기를 띄워놓았으면 우리가 그 흐름을 따라가기만 해서는 불리해져. 그러니 일단 그 흐름을 엎어버린다. 우리 소토칸다에는 그만한 파괴력을 가진 묵직한 한 방이 있어.”

“정말이네.”

레이나는 믿음직스럽게 후타바를 올려다본다.

펀치 가득한 노래로 마냥 띄워놓기만 하고 있다. 후타바가 빠른 BPM으로 질주하듯이 달리는 플레이에 관객들도 밀려나고 있다. 그 기세는 방금 전 하라주쿠 플레이를 본 기억을 말끔히 씻어낼 정도였다.

“그러면, 다음에 내 차례야.”

카즈네가 스테이지로 향한다.

“힘내서 잘 하고 와! 카즈네 쨩!!”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카즈네는 스테이지로 올라가 후타바 옆으로 간다.

“카즈네 쨔앙~! 이얏~호!!”

힘차게 하이파이브. 그리고 관객들에게 던지는 손키스. 후타바는 손을 휘휘 저으며 스테이지 아래로 내려간다.

카즈네는 I-DJ를 DJ 유니트에 대어 Iris에 있는 자기 계정에 로그인.

‘완전히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는 대비하고 있었어.’

이런 상황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미리 다른 세트리스트도 준비해 놓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침착하게 있을 수 없다. 아직 나는 관객들이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임기응변으로 틀 노래를 바꾸거나 하진 못해.

틀었을 때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게임 수록곡으로 시작해 텐션 높은 곡에서 서서히 텐션과 BPM을 떨어트리는 선곡.

지금 분위기를 달구는 역할이 아니야. 말 그대로 잇기만 할 뿐이다.

지금 우리가 하라주쿠에 앞서고 있는 것은 두 가지.

첫번째는 팀워크.

쇼트 세트인 점을 거꾸로 활용해, 셋이서 하나된 흐름을 만든다.

선발인 후타바는 하라주쿠가 채워넣은 바람을 날려버리고, 나는 중간계투 역할을 맡아 서서히 텐션을 올리는 역할.

다음 차례에 플레이할 레이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레이나가 단번에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두 번째 승리의 열쇠, 아키바의 비밀 병기 히다카 레이나가 최대한으로 활약할 수 있도록. 나는 그러기 위한 바람잡이다.

그렇지만 조금 자기주장도 해봐야겠는걸.

카즈네는 태연하게 오리지널 트랙을 슬쩍 끼워 넣었다.

레이나가 디제잉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떠올랐던 이미지를 노래로 만든 것이다.

그 이미지 그대로 물결치는 대로 흘러다니는 것처럼.

달링 달링
두 사람은 사랑을 하고 있었어
파도에 잠겨 가는 야경 속 배에서

20분이 지나고, 레이나가 카즈네에게 다가온다.

“굉장해 카즈네 쨩! 예쁘고, 로맨틱하고, 엄청 멋진 노래야!!”

카즈네는 수줍어하며 대답했다.

“네가 준 노래야.”

“뭐?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런 건 됐고, 뒷일을 부탁할게. 아키바의 비밀 병기님.”

카즈네는 레이나와 소리내어 하이파이브를 하고는 스테이지에서 내려온다.

이어서 레이나의 플레이가 시작된다.

하라주쿠 세 명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번에는 각자 다른 플로어에서 했었으니, 이번엔 제대로 감상해 줄게!”

미미토가 큰소리를 쳤지만, 레이나의 첫 노래를 듣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 노래?!”

그것은 지난번에 선보였던 미미토의 오리지널 트랙이었다. 설마 레이나가 쓰리라고는 생각치 못했지만, 트랙 자체는 Iris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어 있었으니까 사용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어째선지…… 미미토가 할 때보다 소리가 더 예쁘네요.”

“그럴 리 없어! 말도 안되는 일이야.”

사실은 분명 말이 된다.

같은 데이터, 같은 장비, 같은 환경.

그런데 소리가 달라.

“어째서야…….”

레이나는 사전 준비와 미미토가 플레이하던 모습을 참고해서 이 회장에서 어떻게 소리가 나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소리가 가장 잘 들리도록 이퀄라이저를 세밀하게 조절하면서 노래를 틀고 있다.

그리고

“어?! 갑자기 딴 곡이 되어가고 있는데?!”

분명히 미미토의 목소리인데 박자가 다르다. 히나와 시안도 눈살을 찌푸린다.

“그냥 다음 곡이랑 믹스하고 있는 것 뿐이…”

아니었다.

두 곡을 겹치는 매쉬업. 미미토의 보컬을 남기고 나머지를 컷, 다른 노래 반주로 겹치고 있었다.

그리고 미미토의 목소리를 이퀄라이저로 완전히 페이드 아웃시키고 난 뒤, 다음 곡을 불러낸다.

다음은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한 명곡.

레이나는 관객을 바라보며, 표정이나 기분, 분위기를 읽어낸다.

반응이 아주 좋다.

그렇다면!!

거기서부터 레이나는 인기 있는 명곡으로 방향을 틀어버린다.

심지어 지금까지와는 다른 쇼트 믹스. 기관총과 같은 소리의 연타.

카즈네 일행도, 관객들도, 미미토 일행조차도 쾌감과 고양감이 뺨을 때리는 감각에 취한다.

그 흥겨운 흐름은 정신을 되찾아 침울해 있던 후타바까지 다시 일으켜세웠다.

“굉장하네요……. 명곡을 아주 그냥 때려박고 있어요.”

“그런데, 그냥 인기 있는 곡을 이어붙이기만 하는게 아니야. 노래를 트는 데 있어서 일관된 ‘컨텍스트’가 있어.”

“컨텍스트……라고요?”

“각 트랙이 서로 연관이 있어. 첫 노래는 사쿠라노 씨 노래였지만, 거기에 매쉬업한 노래와 그 다음 노래는 같은 트랙메이커가 작업했고, 그 다음 노래는 같은 가수가 불렀던 노래, 그 다음은 같은 작품에 쓰였던 노래야.”

“하지만…… 여태까지 레이나 씨는…… 이 장르 노래는 전혀 모르고 계셨잖아요.”

“그치. 거기에다 단순히 노래를 알고 있다고만 할 일이 아니야. 관련있는 노래만 틀기만 할 뿐만 아니라, 각 노래에서 가장 특색 있는 부분만 칼같이 쓰고 있어. 곡에 대한 이해도가 아주 그냥 오져.”

미리 쓰기 쉽도록 큐 포인트를 등록해 놓고, 관객들 반응을 보면서 자유롭게 조합해 실시간으로 전개를 만들어 나간다.

관객과 함께 세션을 하듯이 절묘한 그루브가 생겨난다.

카즈네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와는 기본적으로 DJ 레벨이 달라먹었어.’

“전설 속 DJ로 단련되어 수백 년을 뛰어넘어 온 신화 속 인물에게 최신 장비를 쥐어주면 이렇게 되는 거란다.”

“예? 방금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카즈네는 축제 인파를 바라보며 픽 웃었다.

“소토칸다가 이겼다고 말했어.”

그렇게 못을 박았다.

“이제 마지막! 마지막까지 신나게 가 보자고~!! 첫 오리지널곡!! 처음으로 선보입니다!!”

레이나가 하는 MC에 관객들도 환호성으로 화답한다.

자 어서 이 곳에서 계속해서 춤을 추자
계속해서 춤을 추자 언제까지나
미러볼도 빛이 날 정도로 빛이 날 정도로
계속 계속 계속


카즈네의 말마따나, Iris는 아키바가 이겼다 판정했다.

결과가 비춰진 화면을 미미토는 멍한 표정으로 올려다본다.

“말도 안 돼……. 전에는 이겼는데…….”

눈에서 저절로 눈물이 쏟아진다.

“미미토…….”

“…….”

히나와 시안은 불안한 얼굴로 미미토를 바라본다.

미미토는 깜짝 놀란 얼굴로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고 있다.

최선을 다했어.

확실히 아키바가 한 플레이, 짜임새가 굉장했지.

하지만

나도 좋은 플레이를 해냈다고. 틀림없이 오늘 나는 내 역사상 최고로 좋은 나였어.

그렇지만 지고 말았다.

“으으으으으…끅! 분하다아아아아아악!!”

갑작스레 소리를 질렀다.

감정을 폭발시키고, 바둥바둥 날뛰고, 발을 동동 구른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뭐야아아아아아아아아 분해 분해 너무 분해 분하다고 분해 진짜 분해!!”

지금껏 미미토가 해 오던 짓에서 큰 차이가 없어보인다.

하지만 마음속은 달랐다.

졌으니까 분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레이나네들이 미워진다거나 하는 기분은 전혀 들지 않아.

그렇지만 분해.

미미토가 눈물을 닦더니, 레이나를 콕콕 가리켰다.

“다음에도 이렇게 이길 거라 생각하지 마라! 우리도 더 많이 많이 잘하게 될거니까 말야!!”

“응! 내가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있었던 건 하라주쿠 모두가 굉장했기 때문이야! 다음에 또 같이 놀자.”

구름 한 점 없이 해맑게 웃고 있는 레이나를 보고 있자니, 미미토의 마음 속에서도 의욕이 솟아오른다.

졌을 때 느꼈던 부끄러움, 상실감, 존재 자체를 전부 부정당한 감각이란 게 느껴지지 않는다.

조금 더, 좀 더 최고인 내가 되고 싶어.

그래서 이 히다카 레이나와 한 자리에 서고 싶다.

나를 인정해 준 이 아이의 기대에 따를 수 있도록, 바로 나에게.

“……그래도.”

미미토는 새삼 손발을 버둥거리며 속상해한다.

“그래도 역시 분한 건 분한 거야~!!!!!”

발을 동동 구르는 미미토를 히나는 미적지근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볼품없네요. 그렇지만 미미토가 처량해 하는 모습을 보자니 신기하게도 마음이 평온해지는 거 있죠.”

“마음에 들어…….”

“너네들 사실 나 싫어하는 거 아냐?!”

그런 하라주쿠끼리 주고받는 말에 레이나는 무심코 웃고 말았다.

그때였다.

“방금 돌리고 있던 게 너였나?”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돌아보니 목소리 주인이 서 있었다.

흰 머리에 빨간 브릿지

양쪽 색이 다른 양말과 신발.

압박감까지 느껴지는 그 존재감.

사진으로 보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사냥감을 노리는 눈동자가 레이나를 사로잡는다.

“너, 재미있는 소리를 내는구나.”

호오 카린이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