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프롤로그
이 에어리어는 치안이 나쁘다.
음악적 비유로 하는 말이 아니다.
이곳은 한 때 신주쿠 에어리어로 불리고 있었다.
각 에어리어를 연결하는 터미널 에어리어인 탓에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 사람이 모이면 상업시설도 자연히 늘어난다.
오래된 백화점, 새로 오픈한 쇼핑몰, 음식점, 오락시설 등이 늘어서 있다. 항상 새로운 서비스가 제공되며 밝고 활기찬 도시이다.
선로를 사이에 두고 반대편으로는 고층 빌딩가를 중심으로 한 비즈니스 에어리어. 그리고 옛 도청-도쿄 에어리어 관청이 있는 쌍둥이타워가 우뚝 솟아 있다. 말하자면 법과 질서가 이 에어리어를 지키고 있다.
이곳은 도쿄 에어리어의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적 중심지이기도 하다.
수도 한복판, 가장 깨끗하고 청렴하며 올바르고 아름다워야 할 도시.
그럼에도
그런 신주쿠 에어리어 언저리에, 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것 같은 에어리어가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찬란한 네온이 빛나는 아시아 굴지의 환락가.
그러나 거기서 한 꺼풀 벗기면, 끝없는 어둠이 펼쳐져 있다.
범죄 수는 도쿄 에어리어에서 단연 1위. 상해, 폭행, 공갈, 강도, 사기, 절도, 살인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범죄가 이곳에서 벌어진다.
신출귀몰하는 불법 영업장들.
횡행하는 위법 테크놀로지.
갈 곳을 잃은 젊은이가 헤매고, 다른 에어리어에서 지낼 수 없는 전과자, 수배 중인 범죄자가 도망쳐 온다.
더욱이 외국에서도, 날마다 수상한 인간이 유입되어 온다. 반사회적 조직이 진출하여 지역 그룹과 항쟁을 벌이는 일상.
말 그대로 치안이 나쁜 동네이다.
원래는 신주쿠 에어리어이지만 신주쿠 거리에서 신오쿠보 주변까지 일대를 사람들은 이렇게 불렀다.
가부키 에어리어.
물론 경찰도 공무원들도 몇 번이나 정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매번 헛수고로 끝나고 공무원들의 평가를 깎아먹기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신주쿠 에어리어는 과감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버렸다.
가부키 에어리어를 버리는 것이다.
신주쿠 에어리어는 이런 짐짝 같은 구역을 그만 감당하기로 하고, 신주쿠 에어리어를 여러 개로 분할하여 도쿄 에어리어 관청이 있는 지역은 옛 마을 이름을 부활시키는 뜻에서 요도바시 에어리어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가부키 에어리어라 불려왔던 구역은 명실상부 가부키 에어리어로 독립하여 카오스가 지배하는 지대가 되었다.
그런 밑바닥 거리를 관통하는 거리 어귀에, 가부키초 일번가라고 적힌 아치가 걸려 있다.
그 아치 너머로 바깥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소녀가 있다.
시선 끝에 있는 것은 거리 하나만 사이에 둔 이세계.
올곧기만 한 바깥 세상.
꺼림칙함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건물 벽면에는 거대한 홀로그램 모니터가 떠 있다.
“유서 깊은 이벤트, 뉴 레전드에서 바로 새로운 전설이 탄생했습니다! 시부야 에어리어 테이온 국제 학원, 호오 카린!!”
“…….”
소녀는 어딘가 먼 곳을 응시하는 듯한 눈빛으로 호오 카린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꽤나 높이 올라가 버렸네…… 카린.”
후드가 달린 파카는 길이가 짧은 배꼽티. 소매는 팔꿈치에 칼집이 들어간 일본풍 꽃 모양 장식. 녹색을 베이스로, 주황색과 흰색으로 강조한 그 배색은, 어딘지 모르게 가부키에 쓰이는 커튼을 연상시킨다.
“……마토이.”
뒤에 서 있던 소녀가 말을 걸어오자 오가미 마토이(大神 纏)는 돌아보았다.
거기에 서 있던 것은, 거무스름한 피부를 한 세일러복을 입은 소녀. 헤이세이 시절 교복을 커스터마이즈한 것 같지만, 머리에 쓴 여우탈이 요염한 자태를 풍기고 있다.
소녀는 마토이의 옆에 서더니 의지가 강해보이는 눈망울로 모니터를 올려다본다.
“호오 카린?”
“응. 덴온부 정점에 군림하는 제왕. 아니, 이제 신이라 불러야 할까.”
“신이라고?”
아베노=샤쿠지=마야(安倍=シャクジ=摩耶)는 눈살을 찌푸리며 노려보듯 카린을 바라본다.
마침 리포터가 호오 카린과 인터뷰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이번 STACKBATTLE은 아주 훌륭했습니다. 호오 카린 씨는 플레이 하시면서 어떠셨는지요?”
“그럭저럭 재밌었을지도?”
“그 말은…… 카린 씨는 언제나 시합 후, 복잡한 표정을 짓고 계실 때가 많았습니다만…… 오늘은 확실히 기분이 좋아보이시네요?”
카린은 히죽히죽 미소짓는다.
“뭐. 요즘 싸울 맛 나는 녀석이 없었으니까.”
마야는 마토이의 옆모습을 들여다보았다.
마토이의 눈동자가 가늘어지고 다소 험난한 분위기가 감돈다.
“그렇겠지… 너한테는… 타고 난 사람 눈에는 비치지 않는구나, 불행한 운명에 발버둥치는 존재따윈 말이지.”
카린은 카메라를 향해 쏘아붙인다.
“나는 그다지 돈이나 스테이터스를 원하는 게 아냐. 가장 강한 적을 원한다고.”
마야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뀐다.
“오만불손, 안하무인. 부모 빽 믿고 나대는 호가호위. 역겨운 자식.”
“마야는 어려운 말을 쓰는구나”
마토이는 모니터를 등졌다. 그녀는 표정이 평소 짓는 온화한 미소로 돌아왔다. 걷기 시작하자마자 일번가 앞에서 익숙한 얼굴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아, 마토이랑 마야~ 여기 있었구나~ (*°▽°)ノ”
지뢰계 코디를 한 소녀가 손을 흔들며 다가온다.
핑크와 보라색 배색에 프릴이 달린 소녀소녀한 원피스. 핑크 배낭에 통굽 신발.
화장을 꼼꼼히 해놓아 원래 큰 눈동자가 한층 더 강조되어 있었다.
그런 리무루 옆에, 공중에 떠 있는 수수께끼에 싸인 물체 ‘포메모리’. 분홍색 양이나 강아지처럼 보이지만 검은 날개가 달려 있어서 조금 악마처럼 보인다.
그것은 가부키 에어리어에 틀어박혀 지내는 여자애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인형과 큰 차이가 없어보인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이 들고 다니는 인형은 공중에 뜨지는 않는다.
“리무루. 뭔일?”
“정말이지! ‘뭔일?’이 아니잖아! 리무루 한참 기다렸다구! (╬ ° Д°)”
그러나 마토이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 진짜로 잊혀졌다니! 후엥”
리무루는 옆에 떠 있는 포메모리를 잡더니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배를 때렸다. 그러자 포메모리는 토하듯이 폰을 내뱉었다.
리무루는 손재주 있게 핸드폰을 받아내고 포메모리를 내팽겨친 후,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하여 스케줄 앱을 실행한다.
“자, 이 스케줄 봐! 미팅이라구! 슬슬 그 계획을 실행한다고 말했지! 리무루가 열심히 세운 작전이니까! 칭찬해조, 칭찬해조!”
“아~ 네네. 대단해 대단해”
“너무해! 영혼 없는 리액션!”
귀찮은 듯 리무루를 외면한다. 그러자 인터뷰가 다시 귀에 들어왔다.
“그래서 오늘 꽤 재미있었어. 아키바에도 재미있는 녀석이 있구나.”
“……?”
마토이는 다시 모니터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그곳에 카린은 없었다. 이미 다른 뉴스로 바뀌어 있었다.
“무슨 일이야? 마토이.”
“……아니. 아키바 덴온부라니 처음 듣는 거 같아서.”
마야는 납득이 가지 않는 얼굴을 하고는 마토이의 어깨를 두드린다.
“신경 꺼. 아키바고 자시고 목적지는 변함 없다고.”
“맞아 맞아♪ 왜냐면, 마토이랑 마야잖아. 이미 우승. 벌써 가부키가 최강!”
리무루는 설렘을 주체하지 못하겠다는 듯 경박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인기쟁이로! 리무루도 모두에게 사랑받아버려~ 극진히 대접받게 되버려~ (≧▽≦*) 에헤헤.”
“엥? 뭐냐 그건. 너 우릴 이용해먹고 있는 거냐?”
마토이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가부키 에어리어 깊숙한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뭐 어때. 욕망에 솔직한 건 좋은 거야.”
마야도 마토이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한다.
“사람이 너무 좋다고.”
“아니. 리무루가 인기가 많아져도 딱히 나한테 피해는 없잖아. 그러니까 뭐 어때.”
마토이는 빙긋 미소짓는다.
“마야도 욕망대로 살아가라고. 나한테 눈치 볼 거 없어.”
“그러고 있다니까”
“정말?”
“그럼.”
마야는 빌딩에 끼인 좁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널 떠받들거야. 그게 내가 하고 싶은 거니까.”
“나를?”
“그래. 여기선 안 보이는, 저 한참 위까지. 마토이 넌 어디까지 올라가고 싶지?”
마토이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길쭉한 밤하늘이 보였다. 네온 불빛이 가득해 별 따위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분명히 저 너머에는 찬란하게 빛나는 별이 있어. 꼭대기에 빛나는 별……, 거기에는 지금 봉황이라 불리는 별자리가 있지.”
“마치 신화 같구만.”
“그래, 그녀는 신화를 만들었어. 그리고 주역인 신은 바로 그녀 자신이고. 인간으로 나타난 신이지.”
“난 신같은 거 싫어.”
“그렇구나……. 그럼 머지않아 나를 싫어하게 될지도 모르겠네.”
“다른 사람이 만들어낸 신 말이지.”
마야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마토이를 바라보았다.
“다시 물어볼게. 너는 뭐가 되고 싶은거지?”
마토이는 문득 미소짓는다. 그리고 검지를 하늘로 가리킨다.
“새는 계속 날아다닐 수는 없어. 봉황은 곧 땅에 떨어질 거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해 정점에 빛나는 것은 늑대 별자리”
그리고 숨을 작게 들이마셨다.
“옛 신은 죽는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신이 될 거야.”
“······!”
“나는 이 잘못된 신화를 깨부수고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 내겠어”
마토이의 눈동자는 마치 무구한것처럼 맑다.
그러나 겉보기에만 그렇다는 것을 마야는 알고 있다.
이 여자가 품은 절망과 분노는 사람이 품을 것을 뛰어넘어 있다.
분명 그게 세상을 파괴해 줄 거야
“새로이 태어날 신에게 너는 무엇을 바라나, 마야?”
“그런거, 정해 놓았다고. 난……”
“아~ 왠지, 아까부터 무시? 리무루, 무지하게 고생했는데 이런 대접 좀 아니지 않아?”
뒤따르던 리무루가 목소리를 깔고 중얼거렸다.
마토이는 걸으면서 고개를 뒤로 젖혔다.
“의지하고 있어, 리무루. 네가 가져다 준 것도 잘 쓰고 있고, 물어다 오는 정보도 도움받고 있어.”
“엇? 정말? 그럼 리무루가 짜온 작전으로 멋진 모습 보여줬으면 좋겠다~ (*´ω`*)”
“알겠어. 그래서 뭐 하기로 했더라?”
“인사치레로 돌아다닐건데…… 진짜로 까먹고 있었어? 가능하다면 하루에 두세 학교는 돌아다니고 싶은데.”
“마토이, 그럼 아키바부터 할까?”
“음…….”
입가에 손가락을 대고 살짝 위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리무루는 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쓸어올려 데이터를 스크롤시킨다.
“갑자기 시부야는 좀 그렇고…… 근처라면…… 하라주쿠라거나……”
“하라주쿠.”
마토이가 중얼거리며 리무루가 하는 말을 끊는다.
“하라주쿠에 덴온부가 있었어?”
“어? 아……. 뭔가 새로 생긴 것 같더라.”
마토이는 먼 곳을 바라보며 대답한다.
“그래……. 그럼 거기로 하자.”
리무루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 이왕이면 좀 더……”
“야, 리무루.”
마야가 무시무시하게 말했다.
“마토이가 그렇다잖아.”
“오키! 그, 그럼, 하라주쿠로!”
리무루는 당황한 기색으로 스마트폰 스케줄 앱을 조물거리기 시작했다. 마야는 그런 리무루를 등지고, 마토이를 곁눈질한다.
“마토이, 너…….”
“기대되는데.”
마토이는 천사같은 미소를 지었다.
“새 세상의 날이 밝는다. 내일은 분명 미래의 경사스런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