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바 1
아주 큰 스피커에서 소리가 울려 퍼진다.
넓은 대지와 하늘에 도전하듯, 포 온 더 플로어 리듬이 쏟아져 나온다.
공기가 떨리고, 소리가 몸을 감싼다.
몸속까지 떨리는 감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마치 댄스 뮤직에 안겨 있는 것 같다.
히다카 레이나는 그 느낌을 아주 좋아했다.
대자연 속에서 열리는 야외 DJ 페스티벌.
지금 스테이지에서 턴테이블을 돌리는 사람은 레이나의 아버지다.
DJ는 신비하다.
어쩌면 그저 노래를 틀고 있는 것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여러 가지 노래를 짜 맞춤으로써 그 노래가 가진 매력을 더욱 강하게 끌어낼 수 있다. 그리고 다양한 노래를 이어감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매력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일류 DJ가 플레이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마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다.
플레이를 듣고 있다보면 리스너의 눈앞에는 본 적 없는 풍경이 떠오르면서,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드라마가 펼쳐진다.
아니면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생각나게 하면서 듣는 이들의 마음을 강하게 흔들어 버린다.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레이나.”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다.
뒤돌아보니, 그곳에는 그리운 얼굴.
“언니?!”
검고 긴 머리에 우아한 미소, 피아노 콩쿠르에서 입은 하얀 드레스.
언니는 동생인 레이나가 보기에도 언니는 완전히 규중의 아가씨같다. 도저히 쌍둥이 자매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레이나와 언니는 일란성 쌍둥이가 아니다. 그러다보니 닮지 않은 게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다르다고 레이나는 생각하곤 했다.
머리 색이나 얼굴 뿐만이 아니라, 성격까지도 달랐다.
거기에다가 재능도.
“언니, 어째서 여기에…… 어라?”
레이나가 홋카이도에 온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그러니 언니와 만나게 되는 것은 7년 만이다.
지금 레이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니, 언니도 고등학생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눈앞에 있는 사람은 초등학생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건 레이나도 마찬가지야.”
레이나도 어느새 초등학생이 되어 있었다.
머리를 쓰다듬는 감촉이 느껴진다.
올려다보니, 그리운 어머니가 미소짓고 있었다.
“엄마…….”
“……므응?”
아직 커튼이 달리지 않은 창문에서 아침 햇살이 비치고 있다. 눈부시다.
“그렇구나……. 꿈이었구나.”
그렇겠지, 하며 조금 쓸쓸하게 생각하며 살짝 웃었다.
홋카이도에 온 뒤로 몇 번이나 두 사람이 나오는 꿈을 꾸었다. 오늘 꿈은 훨씬 더 리얼했는데?
“잠꼬대는 그만하고 어서 일어나 학교에”
올려다보니 처음 보는 천장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어어……? 어어어?!”
가볍게 패닉에 빠진 레이나는 벌떡 일어났다.
와본 적 없는 방이야.
하지만, 늘 덮고 자던 이불에서 제대로 자고 있었다. 즐겨 입던 주황색 파자마도.
주변에는 골판지 상자가 쌓여 있다.
“여, 여기 어디야?!”
황급히 창문으로 달려가 밖을 내다보았다.
창밖에는 웅대한 자연도 넓은 하늘도 없었다.
그 대신에 눈에 들어온 것은 아스팔트 도로와 시야를 가로막는 빌딩이 만들어내는 산. 허공에 떠 있는 반짝반짝 홀로그램 사이니지. 사이니지 속에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나 새로 나온 게임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내려다보니 홀로그램이 아닌 현실 속에 웬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있나 했더니, 메이드 코스프레를 한 사람이었다. 분명 근처에 있는 메이드 카페 점원이겠지.
“아.”
그랬다.
“도쿄로 돌아왔다고 했었지…….”
누가 본 건 아니었지만 잠이 덜 깬 자신에게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그건 그렇고
어제까지 홋카이도에 있었다는 사실이 거짓말같다.
레이나와 아버지 레이아는 어제 아침, 삿포로 역에서 신칸센을 타고 도쿄로 돌아왔다. 이삿짐 업체는 비행기를 타고 갈 것을 권했지만, 레이아는 막무가내로 기차만을 고집했다.
예전에 비행기 정비사를 하던 레이아는 정리해고를 당한 것을 계기로 홋카이도로 이사왔다. 어쩌면 그게 트라우마였을까.
신칸센을 타고 가는 동안 레이아는 곧잘
“대단해! 쇠바퀴로 시속 사백오십 킬로미터를 뛰어넘었다!! 이대로 자기 부상 열차를 뛰어 넘어봐!! 최신 테크놀로지 틈바구니에 구식이 파고들어 싸우면 가슴이 웅장해지지!!”
하며 불타오르고 있었지만, 레이나는 도통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간에, 정리해고를 계기로 홋카이도로 넘어가서 산 지 벌써 7년.
홋카이도에서 보내는 일상에 완전히 익숙해지자마자, 이번에는 갑자기 도쿄로 돌아오게 되었다.
레이나는 놀라웠지만 특별히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다.
아버지한테서는 휘둘리는 일은 일상다반사다.
거기에 더해, 레이나에게는 이런 변덕을 즐길 여유가 있었다.
7년 전에 한 이사도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즐거운 일뿐이었다.
도쿄에 있을 때와 생활환경은 전혀 달랐지만, 생활환경이 다른 것으로 당황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았던 적보다는 설렘을 느낀 적이 더욱 많았다.
알지 못했던 것, 자신과 다른 것과 만날 수 있다는 점은 레이나에게 있어 신선한 놀라움과 기쁨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래서 이번에 갑작스럽게 이사를 하게 되어도, 레이나는 싫다고 생각하기는커녕, 새로운 생활을 향한 기대와 즐거움으로 잔뜩 부풀어 있다.
거기에다가 도쿄로 돌아오면…… 어쩌면……,
“……아.”
창밖으로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부리나케 달려가고 있었다.
“저거 교복이 소토칸다…….”
레이나가 전학온 ‘소토칸다 문예 고등학교’는 요즘 시대에도 교복을 입도록 하는 몇 안되는 학교 중 하나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교복으로 정해진 것은 흰 와이셔츠와 네이비색 스커트에 학년별로 색이 다른 리본 타이뿐. 그 위에는 알아서 자유롭게 걸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또 한 사람이 달려간다. 이번에는 더욱 초조한 표정으로.
“……엇?”
머리맡에 둔 핸드폰을 집어드니, 8시 30분.
“지각이다아아아악!”
황급히 갈아입을 옷을 찾지만, 아직 골판지 상자 한가운데에 있다.
어제 이삿짐을 풀던 도중에 힘이 빠져 잠들어버렸다.
옷이라 적힌 골판지 상자를 뜯어, 안을 뒤적거린 뒤 어떻게든 속옷과 교복을 발굴해내고야 만다.
“변신! 변신할 때 스피드로!”
마음만 급해져서 허둥지둥 자질구레한 헛동작이 많다.
그래도 간신히 옷을 갈아입고 벽에 걸려 있던 상의를 잡아 소매를 꿰찬다. 곧바로 방을 뛰쳐나와 3층에서 2층으로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세면대에 뛰어들어 평소에 걸리는 시간의 절반 이하로 세수를 마치고 양치질을 끝낸다. 잘 때 벗어둔 머리끈과 핀에 손을 뻗는다.
오른쪽 머리는 가볍게 묶어 머리끈으로 묶어내고, 왼쪽은 핀 두 개로 X 모양이 되도록 고정한다.
시계를 확인해보니 8시 35분. 아침 먹을 여유는 없어.
1층에 내려서니 거기엔 프라모델 상자가 가득 찬 선반이 빼곡히 늘어서 있다. 그 틈을 빠져 나가니 바깥에는 40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살짝 곱슬기가 있는 갈색 머리를 묶고 듬성듬성 수염을 기른, 지겨울 정도로 많이 본 얼굴이다.
레이나의 아버지, 히다카 레이아다.
감색 진베이 차림으로 태평하게 가게 간판을 올려다보고 있다. 간판에는 레트로한 글씨체로 ‘히다카 모형점’이라고 쓰여 있다.
“아빠, 왜 안 깨워줬어?!”
“어?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니?”
하고 손목을 바라보지만, 그 손목에는 시계 같은 건 안 차고 있었다.
“뭐, 전학 첫날인데 지각 정도 해도 별 일 없을걸?”
“그러면 더 안돼! 첫인상부터 망쳐버릴 거라고! 거기다가 ‘전학온 첫날부터 지각하는 친구는 우리 동아리에 안 넣어줄겁니다.’ 같은 말을 하기라도 하면 어쩌냐고?!”
레이나는 그 말을 끝내기 무섭게 달리기 시작했다.
“동아리? 모형 동아리나 로봇 연구동아리라도 들어갈 생각이닛?!”
멀어져만 가는 레이나의 등을 향해 레이아가 외친다. 레이나는 걸음을 늦추지 않고 뒤돌아보며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아니! 덴온부(電音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