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바 2
소토칸다 문예 고등학교는 아키바 에어리어에 있는 고등학교다.
더욱 자세하게는 시에히로초 근처로, 레이나가 집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지각하지 않을 거리에 있지만. 이날은 아무리 봐도 집에서 너무 늦게 나왔다.
어떻게든 수업 시작할 시간에 딱 맞춰 교문을 통과했지만, 그래 봐야 첫날이라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그렇게 헤매다 보니 결국에는 지각하고야 만다.
수업을 끊어먹고 전학 인사를 하다니, 마음이 참 괴롭다.
그리고 쉬는 시간.
갑자기 지각한 걸로 빈축을 사지나 않을까……. 걱정하던 레이나의 책상 주변으로 반 친구들이 몰려왔다.
“히다카는 홋카이도에서 왔지? 살던 곳은 어땠어?”
먼 곳에서 온 전학생이 흥미진진했나보다. 첫인상이 나쁘진 않았다는 생각에 레이나는 마음이 놓였다.
“그게 말이지. 근처에는 풀밭이 있고, 숲이 있고, 산이 있고, 논이랑 밭이 쭉 이어져 있는 느낌이야!”
“아, 아하……. 근처에 번화가 같은 건 있었어?”
“없을 리가~. 제대로 있다고! 자동차로 30분 정도 갈 거리쯤에.”
그렇게 대답해주자, 반 친구들은 상상조차 못 했다는 얼굴로 한숨을 내쉰다.
어? 뭔가 불편한 이야기만 꺼낸걸까? 레이나는 조금 불안해졌다.
“굉장하다……. 아키바에서는 자연환경 같은 건 사치 중에서도 사치야.”
“그렇다기보단 자연 같은 게 하나도 없지.”
“여행 가는 것도 일부러 불편한 곳으로 가는 게 유행이고.”
모두 어딘가 동경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그러면, 여기 와서 좀 많이 놀랐겠네?”
조금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레이나는 당황하며 좌우로 손을 휘저었다.
“아, 그렇긴 한데 어렸을 때 도쿄에서 살았어. 그때는 아키바 에어리어는 아니고 좀 외진 곳이었는데.”
“그렇니. 아키바에서 모르는 게 있으면 뭐든 편하게 물어봐.”
상냥한 반 친구들만 있는 것 같아 레이나는 기뻐졌다.
소토칸다 문예 고등학교는 남자부와 여자부로 나뉘어 있어, 학교 건물도 떨어져 있다. 레이나에게는 사실상 여자 고등학교다.
홋카이도에 있을 때 친구한테서 “여고는 무서운 곳이야.”하며 온갖 무서운 소릴 다 들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히다카, 동아리 활동은 어떻게 할거야? 긍까. 어느쪽 전문이야?”
“전문?”
“애니? 만화? 아니면 라노베일까?”
“나는 얘 특촬물 쪽인 것 같은데!”
“아냐아냐, 이만큼 귀여우면 코스프레라구!”
무슨 뜻인지 알아먹은 레이나가 무심코 웃어버렸다.
“애니메이션이라면 메카물을 좋아해! 그…… 프라모델 만드는 것도 좋아하고.”
“아항! 그렇구나!! 보기랑은 좀 다르네!!”
“여자애 모델러는 귀하니까, 모형 동아리 같은 쪽에서 엄청 반겨줄 걸?”
프라모델 취미가 꽤 신기한 모양인지, 레이나는 생각지도 못한 뜨거운 리액션을 받고 있다. 홋카이도에 살 때는 주변에 프라모델 동호인이 한 명도 없었다.
이래서 오타쿠 문화에 강한 소토칸다 문예 고등학교구나.
하지만 레이나는 다른 동아리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치만 나는 모형 동아리 말고 덴온부에 들어갈 생각이야!!”
갑자기 조용해졌다.
모두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덴온부?”
“어? 우리 학교에 덴온부 있었나?”
프라모델 취미와는 또 다른 의미로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었다.
“어? 그, 그니까! 도쿄에서는 DJ가 유행하고 있다고 해서……. 덴온부가 엄청 인기가 많다고 들었는데?!”
당황한 얼굴로 그렇게 묻자, 다들 ‘아~.’ 하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렇기는 한데 여기는 아키바라서~.”
“소토칸다는 서브컬쳐긴 해도 오타쿠 문화에 특화되어 있으니까……. 음악에는 약한걸. 아이돌 파는 애들이라면 있지만.”
“그쪽으로 수업도 별로 안 할텐데? 덴온부라거나……. 애초에 음악쪽으로.”
“그치. 이 근처에 그런 걸 하는 데가 어디 있더라? 잘하고 싶으면 시부야로 갈거고.”
“최소한 덴온부를 하려고 소토칸다에 오는 애는 없을걸…….”
“……마,”
레이나는 뻣뻣한 웃음 그대로 굳었다. 그 위로 비오듯 식은땀이 흐른다.
“말도 안돼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
이대로 포기할 순 없다. 레이나는 방과 후 교무실을 찾았다.
“덴온부라고?”
담임선생님은 그렇게 되묻더니 안경을 쓱 바로잡았다.
“잠깐만 기다려 보렴.”하고는 살짝 웃고, 책상 위 키보드를 두드리고는 허공에서 나타난 홀로그램 모니터에 손을 뻗어 뭔가를 찾듯 스크롤했다.
“으음……. 일단 있긴 한 것 같아.”
“덴온부가 있는 거죠?!”
“전산상에는 동아리로 등록되어 있는데다가 동아리방도 있는 걸로 보이는데. 그러니 부원이 적어도 한 명은 있을 거란 말이겠네.”
“야호!!”
레이나의 마음에 희망의 빛 한 줄기가 내렸다.
삐링 하는 소리와 함께, 레이나의 윗도리 호주머니 속 핸드폰이 진동했다. 선생님이 그 주머니를 가리켰다.
“동아리방 위치를 보내 놓았어. 한번 찾아가보는 건 어떠니?”
“감사합니다!”
레이나는 푸욱 고개를 숙이고는, 교무실을 나와 곧장 학교 건물을 뛰쳐나갔다.
보내준 주소로 지도를 검색해보니, 덴온부 동아리방 위치는 학교 건물 바깥으로 찍혀 있었다.
“동아리방이라면서……?”
학교를 나와 집으로 향한다. 내비게이션에 따르면 집에서 의외로 가깝다.
“……여기?”
큰 거리가 교차하는 모퉁이에 있는 건물. 검은 벽 한가운데 세련된 입구가 있다. 올려다 보니 아주 큰 소토칸다 문예 고등학교 마크와 SOTOKANDA라 적힌 간판이 걸려 있었다.
입구 출입문을 열어 살며시 안을 들여다보았다.
교실 절반 정도 되는 공간에, 삼각형 테이블과 의자가 3개. 그리고 벽쪽에는 아케이드 게임 기체가 늘어서 있다.
그 중 한 대, 리듬게임 앞에 소녀 한 명이 서 있었다.
푸른 빛을 띈 검은 머리를 흔들어 가며 현란한 손놀림으로 게임을 하고 있다. 화려한 춤을 추는 것 같아보인다.
옆모습을 보니 이성적이고 지혜로워 보이면서도 아름다워서, 그 진지한 눈빛을 보니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는다.
‘우와. 예쁘다…….’
무심코 말을 거는 것도 잊어버린 채, 레이나는 그 모습에 넋이 나가 버렸다.
스테이지를 하나 마치니 그 소녀가 레이나의 기척을 눈치챘다. 약간 차가운 눈빛이 레이나를 쏘아본다.
“무슨 일이니?”
“엇?! 그, 그게…….”
갈팡질팡하고 있으니 그 소녀가 물끄러미 레이나를 바라보았다.
“……어, 좀 생겼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얼굴 한가득 웃음이 번졌다.
“너무 긴장하지 마. 화내는 거 아니야.”
“아. 그 여기가, 그 덴온부 동아리방이라 해서…….”
소녀가 눈섭을 움찔댔다.
“동아리방이었어. 지금은 내 집무실이야.”
“집무실이요?”
“나 학생회장이거든.”
“어?! 하, 학생회장?!”
레이나가 깜짝 놀라니, 그 소녀는 피식 웃음짓는다.
“시노노메 카즈네야. 2학년이고. 너는 오늘 전학온 애 맞지? 이름이 어떻게 되니?”
“히다카 레이나예요. 저, 그래서 덴온부는……?”
카즈네는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대고 음 하고 생각에 잠긴 듯한 행동을 했다.
“정말 미안한데, 덴온부는 사실상 폐부라서 말이지. 다른 동아리로 가 보는걸 추천할게.”
“그럴수가…….”
레이나가 맥이 빠져 어깨를 늘어트리니 마치 비에 젖은 강아지같다. 카즈네의 뺨이 발그레 달아오른다.
“아……. 귀여워.”
“예?”
얼굴을 치켜든 레이나에게 카즈네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악……. 그래! 지금부터 내가 추천하는 다른 동아리를 안내해줄게.”
“그, 그래도……. 저기?!”
레이나의 손을 잡고 억지로 바깥으로 끌고간다.
“저, 저기, 저는…….”
“괜찮다니깐. 신경쓰지 않아도 돼. 우리 히다카 집은 어디야?”
“그게……. 이 길에서 조금 들어간 곳에 있는 프라모델 가게예요.”
“그렇니? 그러면 우리집이랑 엄청 가깝잖아. 우리집은 철길 근처에 있는 오락실이야.”
“오락실이……. 오락실이라고요?!”
“가게 이름은 ‘파드라우트(Fardraut)’야. 다음에 한번 놀러와. 아, 그리고 말은 편하게 해도 돼. 학년도 같으니까, 카즈네라고 불러도 좋아.”
“응. 고마워, 카즈네 쨩! 그럼 나도 레이나라고 불러줘.”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웃는 레이나의 얼굴에 카즈네는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카즈네 쨩?”
“아, 아무것도 아니야. 신경 안 써줘도 돼.”
라며 점잖은 척 웃으며 대답한다.
‘위험해, 위험하다고.’
하마터면 헤벌레한 얼굴을 들킬 뻔한 카즈네는 식겁했다.
시노노메 카즈네는 귀여운 여자애를 좋아한다.
예쁜 여자애가 좋아. 앳된 여자애도 좋아. 아기 동물같은 여자애가 좋아. 무뚝뚝한 여자애도, 츤데레도 좋아. 아무튼 좋아. 스트라이크 존이 넓지만 전부다 귀여우니까 좋아.
귀여운 아이는 하늘에서 내려주신 은총이다.
하느님이 더렵혀진 이 땅에 하사하신 기적.
즉, 인류에 대한 보상이다.
학생회장이 된 것도 모든 학생의 개인정보를 열람할 권한이 생기기 때문이다. 마음에 든 아이의 신상 정보를 바로 입수할 수 있다. 이게 크다.
게다가 다른 학교 학생들과 교류할 기회도 생긴다. 아직 만나지 못한 미개척지엔 더더욱 귀여움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 속셈이 가득찬 카즈네지만, 그렇다 해도 멀리서 숨덕질하는 것 이상으로 이상한 짓을 하진 않는다. 저 동아리방을 사유화한 것도 마음에 든 애들을 동아리방으로 끌고오기 위해서가 아니다.
본가가 오락실을 하니 카즈네가 입수한 아케이드 기체를 둘 곳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비밀 보관고로 쓸 장소가 필요했다.
저 동아리방 안쪽에는 카즈네의 비밀창고가 있다.
여태껏 모아둔 미소녀 굿즈, 사진, 동영상 등. 남들 모르게 꼭꼭 숨겨두었던 물건들이 안쪽 작은 방에 봉인되어있다.
컬렉션 속에 파묻혀 다른 사람들의 이목따윈 신경 안 쓰고 뒹굴거릴 장소가 카즈네에게는 필요했다.
그러니 절대 그 자리를 내줄 수는 없어.
어떻게든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내고야 만다!
그런 생각을 웃는 얼굴 아래에 꽁꽁 숨긴 채, 카즈네는 다른 동아리가 얼마나 대단한가를 레이나에게 말하며 주오 거리를 걸어간다.
“본가가 프라모델 가게라니까 모형 동아리 먼저 둘러보지 않을래?”
카즈네는 주오 거리에 맞붙은 빌딩 안으로 망설임 없이 들어간다.
“저기, 카즈네 쨩? 덴온부도 그렇고, 동아리방이 학교 밖에 있는거야?”
“응. 저 학교 건물 안에 다 있으면 좁아져서 말이지. 동아리방 상당수가 아키바 에어리어 곳곳에 흩어져 있어. 활동 내용에 어울리는 장소를 학교 측에서 확보해주고 있는 거지.”
문을 열자 10명 정도 되는 여학생이 원을 그리며 얼굴을 맞대고 있었다. 아마도 완성된 모형을 에워싸고 품평회를 하는 모양이다.
“실례하겠습니다. 잠시 견학하고 싶어서요.”
“어! 하, 학생회장?!”
“설마 압수수색하러 온거야?!”
당황한 모형 동아리 회원들에게 카즈네가 방긋 웃는다.
“어머? 혹시 뒤가 구린 짓을 한 거 아니니?”
“아, 아니! 절대 안 했어요!!”
바들바들 떨며 비오듯 땀을 흘리는 모형 동아리 부원들. 분명 거동이 수상하다.
“우, 우리, 절대로 중고품을 되팔거나 완제품 모형을 팔거나 하지 않으니까요!”
“그런가봐. 내일 학생회실로 와서 조사 받자.”
레이나는 뜻하지 않게 카즈네가 학생회장답게 단호하게 일처리하는 것을 목격하고 말았다.
여러 동아리를 둘러보다 저녁이 되어 홀로그램 사이니지가 더욱 아름답게 빛나고 돋보인다.
“예뻐……. 어딘가 테마파크 같아.”
“그래? 나는 질리도록 봐서 별 느낌 없는데.”
“아니. 굉장해. 역시 도쿄는 굉장해.”
초등학생마냥 소박하게 감상을 말하는 레이나를 보며 카즈네는 오늘 몇 번이나 속으로 ‘귀여워.’라 외쳤는지 모른다.
“그래서, 이 중에서 마음에 드는 동아리는 있었니?”
그렇게 말하며, 카즈네는 난처한 표정으로 눈썹을 찡그렸다.
“뭐, 내로라하던 모형 동아리에서 조금 삑사리가 났지만 말이지.”
확실히 그 뒤로는 동아리 견학이나 가입 설명을 들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다른 동아리를 찾아갔을 때도 학생회장님의 시찰할세라 두려움에 빠져 어딘가 서먹서먹했다.
“다 함께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좀 친근한 학생회장이 되고 싶긴 했는데…….”
탄식하는 카즈네를 바라보며 레이나는 위로하며 웃었다.
“그치. 아무리 학생회장이 학교 깊숙한 곳에서 실권을 잡고 흔든다거나, 악의 조직과 연루되어 있다거나, 초능력자거나, 세계 정복을 꿈꾸는 무서운 사람들이나 하는 거긴 해도 카즈네 쨩은 좋은 사람이야.”
“……레이나가 상상하는 학생회장들은 왜 하나같이 그러는 거야.”
“안 그래?”
“그럴 리 없잖아! 네 머릿속이 더 무섭거든!”
카즈네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자신을 진정시키며 긴 머리를 빗었다.
“그러니까, 마음에 드는 동아리를 못 찾으면 그냥 귀가부에 있어도 좋지.”
“음……. 미안해. 역시 나 덴온부가 하고싶어.”
“그래도, 안타까운 일인데 덴온부는 사실상 폐부야. 동아리방으로 쓰던 장소도 지금은 나 혼자서 사용하고 있어.”
“그런가……. 어? 그치만 아까 야마구치 선생님께서 최소한 한 명은 부원이 있을 거라고…….”
뜨끔.
카즈네의 마음이 움찔거렸다.
그렇지만 절대 얼굴에 티는 안 났을텐데, 레이나는 가만히 카즈네를 바라보고 있다.
“카즈네 쨩……. 사실은 부원이었다거나…….”
아방해 보이는 애가 어째서 이런 데만 예리한거야?!
“아, 아니……. 그게 말이지”
빠안히. 레이나의 때 묻지 않은 눈동자가 카즈네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으……. 그, 렇지? 부원이 전부 나가버려서 정말로 폐부되어버리면 그 건물 계약도 끊어지니까……. 고심 끝에 정한 거랄까…….”
“그렇구나. 역시 카즈네 쨩이 부원이었어!”
카즈네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했다.
“아, 다시 말해 두는데 부원은 안 받아! 덴온부 같은 건 안 해!”
“그치만 부원이잖아?”
“끄……윽!”
“카즈네 쨩, 분명 디제잉 잘 할거야. 아까 리듬게임도 그렇게나 잘 했잖아.”
“그거랑 무슨 상관이야!”
그렇게 반박했지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리듬게임을 계기로 디제잉에도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덴온부 동아리방을 손에 넣으면서 굴러다니는 장비도 조금 건드려본 것이다.
그때는 재미있었지. 게임을 공략하듯 하느라 잠깐동안 푹 빠졌어.
하지만 그새 질려버렸다.
웬만한 테크닉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디제잉 뿐만 아니라, 카즈네는 웬만하면 다 할 수 있었다.
공부를 그렇게 많이 하지 않아도 성적으로 곤란할 일이 없고, 운동신경도 좋은 편이라 육상이며 구기며 다 잘한다.
대인 스킬도 뛰어나다. 붙임성도 좋고 상대의 감정을 읽어내는 능력도 탁월하다. 마음을 헤아리며 기뻐할 만한 말을 해 주면 그 사람은 자기 편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
학생회장 선거에서도 압승을 거두었다.
그러니까, 삶에서 어려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
다른 학생들이 흔히 말하는 고민이란 걸 해본 적이 없었다.
인생은 이지 모드.
게임보다도 쉬워.
그래서 뭔가에 진심으로 빠져본 적은 없어.
그런 자신에게, 레이나가 덴온부 같은 거에 들어가보겠다고 필사적으로 애쓰는 행동같은 건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할 수 없네.”
“같이 덴온부 하는 거야?!”
카즈네는 팔짱을 꼈다.
“들여주려면 조건이 하나 있어. STACK(스택) 배틀에서 날 이겨봐.”
“엇? STACK 배틀이라니……?”
“덴온부에 들어오고 싶다면서 STACK 배틀을 모른다니, 뭔 소리야.”
카즈네는 머리를 싸매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느 쪽 DJ 플레이가 더 나은지를 겨루는 경기야. 선곡이나 기술, 플로어 분위기를 얼마나 띄우는지 같은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AI가 점수를 매기는 거지.”
“아하……. 콩쿠르 같은 걸까?”
“그렇게 이해하면 될 것 같아. 아무튼 레이나가 지면 이 이야기는 끝. 덴온부는 그만 포기해.”
카즈네는 벌써 이긴 듯 미소짓는다.
심술맞지만 어쩔 수 없다.
STACK 배틀이 뭔지도 모르는 초보같은데 승산이 없다 생각하고 포기하겠지.
“응……. 알았어.”
생각보다 이해력이 좋아서 카즈네는 안심했다.
“그, 다행이야. 덴온부가 아니어도 앞으로도 친구로”
“대신 내가 이기면 같이 덴온부 해 주는거지?”
어?
사뭇 진지한 눈빛이 카즈네를 향했다.
“그렇지? 카즈네 쨩.”
“……그럼. 그치만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까, 내일 방과후에 어때?”
레이나가 갑자기 해맑은 얼굴이 되었다.
“응! 알았어. 오늘 정말 고마웠어! 카즈네 쨩!! 그럼 내일 봐!”
기쁜 얼굴로 손을 흔들고 레이나는 달려갔다.
“…….”
멀어져 가는 레이나의 등이 홀로그램 사이니지 너머로 사라져간다.
어째서야?
그 일편단심 필사적인 눈빛에 압도당했다.
혹시, 내일…… 지는 건 아니겠지?
카즈네는 고개를 흔들고는 집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설마. 질 리가 없어. 예전에 디제잉에 잠깐 빠졌을 때 만들어놓은 세트리스트. 그거 잘 나왔잖아. 그거 쓰자.
걸음을 멈추고 동아리방으로 방향을 꺾었다.
일단 리허설을 해 둘까. 마지막으로 만진 지 오래되었으니까, 감이 떨어졌을지도 몰라.
지나가다 보인 쇼윈도에 자신의 모습이 비친다.
어라?
나 왜 웃고 있지?
게다가 매번 거울 앞에서 확인하는 학생회장답게 점잖게 웃는 그런 얼굴이 아니야.
마치 소풍 가기 전날 어린이같은 웃음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방과후, 덴온부 동아리방이었던 곳.
1층은 라운지 공간으로 되어있고 지하는 댄스 플로어다. 카즈네가 들여온 아케이드 게임 기체가 여러 대 굴러다니고 있긴 해도, 스테이지 위 DJ 부스는 그대로 있다.
“이제 그럼 레이나, 준비는 되었어?가 아니고……. 그 짐은 뭐야?”
레이나는 바퀴 달린 금속 상자를 끌고 왔다. 얼핏 보면 여행용 캐리어 같지만 주사위처럼 정육면체 모양이다.
“뭐냐니, 레코든데?”
카즈네는 미간을 찌푸렸다.
“레코……드?”
“이게 DJ 부스구나……. 그런데…… 어? 턴테이블은 어딨어?”
“턴…… 테이블?”
“으음. 레이나? 일단, 일단 말이야? 혹시 몰라서 확인해두는데, DJ 유니트가 뭔지는 알지?”
카즈네는 눈앞에 있는 검은 장비를 가리켰다.
양옆으로 큰 원반처럼 생긴 조그 다이얼. 그 주위에는 버튼이 줄지어 있고, 중앙에는 믹서부. 모니터 패널이 붙어있어 이거 한 대만 있으면 디제잉을 할 수 있다.
“일단 AI 스피커는 아니지만 일반 스피커라면 있는데……. 이렇게만 있어도 할 수 있는 거잖아?”
하지만 레이나는 곤란한 얼굴로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얇은 홈이 패어 있는 검은 원반을 들고 있을 뿐.
카즈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레코드?! 우와?! 완전 처음 봐!!”
레이나는 조그만 다이얼 위에 레코드를 올려놓았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거야? 바늘 같은 게 없는데도 굉장하네.”
“억지스러워! 그렇게 해서 돌아가면 오히려 더 신기할걸!!”
하지만 저것은 먼 옛날에나 쓰던 물건이다. 지금은 CDJ조차 쓰는 사람이 없다.
컴퓨터에 연결하는 DJ 컨트롤러도 사라지고, 지금은 뉴컴 사가 개발한 완전 일체형 DJ 유니트가 대세다.
뉴컴 사의 서버에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어, 생체 데이터를 ID로 등록하면 전세계 어디서든 자기 계정에 로그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음악을 데이터처럼 가지고 다닐 필요도 없게 된 것이다. 하물며 부피도 큰 음반을 들고 다니는 짓은 시대착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너 혹시 타임 리프라도 하고 왔니?”
“시간 같은 건 안 뛰어넘었어! 쓰가루 해협일본 혼슈 지역과 홋카이도를 가르고 있는, 동해와 태평양을 잇는 해협은 넘어왔지만.”
카즈네는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다.
지금 업계 표준인 뉴컴 DJ 유니트도 처음 봤다니……. 초심자라 부를 게 아니라 아예 경험이 없는 사람이잖아.
어젯밤 가장 마음에 드는 세트리스트에 루프를 등록해놓고 CUE 포인트를 확인해서 리허설을 하고 온 자신이 한심하다.
“역시 그만 두자. 시간 낭비…….”
“어, 어쩜 좋아. 카즈네 쨩……. 사용법 하나도 모르겠어…….”
버려진 강아지 같은 얼굴로 바라보고 있으니 카즈네의 심장이 멎을 뻔 했다.
귀이이여우어어어어엇♥!!
“어, 어쩔 수 없지. 내가 기본적인 사용법을 알려줄게.”
그런 구실로 말 그대로 자상하게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카즈네 쨩, 괜찮아? 호흡이 거칠고 얼굴이 벌개졌는데……?”
“헉?! 무슨 말이야! 학생회장이니까 괜찮거든!!”
자기도 무슨 말인지 모를 소리로 받아쳤다고 반성한 카즈네는 스스로 냉정해지라며 타일렀다.
“일단은 트랙 데이터, 다시 말해 곡을 고르는 법을 알려줄게.”
카즈네는 호주머니에서 작고 검은 금속조각을 꺼내 DJ 유니트 위에 있는 터치 패널에 갖다댔다.
그러자 DJ 유니트가 깨어나 백라이트와 인디케이터 램프가 모두 켜진다.
“오옹?! 멋지다! 뭔가 로봇 조종석같아!”
눈이 반짝거리는 레이나에게 카즈네가 금속조각을 흔들어 보였다.
“이게 없으면 ‘Iris(이리스)’에 로그인할 수 없어.”
“이리스?”
“뉴컴사 서버……라 말해도 모르겠지……. 그냥 많은 곡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거야.”
카즈네는 터치 패널을 건드리다 그 옆에 있는 다이얼과 버튼을 조작한다. 장르별로 구분해놓은 곡 리스트가 주르륵 나타난다.
“엇?! 이거 다 써도 되는거야?”
“그럼. 그런데 레이나는 ID가 없지?”
레이나는 곤란한 얼굴로 끄덕였다.
“오늘은 내거 빌려줄게.”
“진짜?! 카즈네 쨩 고마워!!”
“그리고 승부 방법 말인데, 본격적인 STACK 배틀이 아니라 약식으로 할게. 손님도 없으니까, 선곡과 기술로만 점수를 매겨 보도록 하자.”
카즈네는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여러 정보가 숫자로 적혀 있었지만 선곡 점수와 기술 점수만 켜져 있었다.
“DJ 유니트에 있는 데이터가 Iris에 보내지고, 그 플레이가 얼마나 잘 되었는지를 AI가 판정해 줘. 핸드폰은 그걸 보여주기만 하는 인터페이스인데.”
레이나는 이리저리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아하……. 그렇구나. 시, 신기하네.”
하나도 이해 못했구나.
“내가 먼저 해볼게. 레이나는 한번 보기만 해봐.”
“응! 카즈네 쨩이 하는 플레이 엄청 기대돼.”
의례적으로 하는 빈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말이란 게 느껴진다.
덴온부를 다시 할 생각은 없지만, 레이나에게 DJ 플레이를 가르쳐주기만 하는 거라면 괜찮지 않을까? 카즈네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저런 귀여운 아이와 아무 문제 없이 꽁냥꽁냥댈 수 있고, 마음껏 쓰담쓰담……같은 생각을 하면 안되겠지.
가만두면 폭주해버릴 것 같은 망상에 당황하며 고삐를 맨다.
카즈네는 준비해 놓은 플레이리스트에서 첫번째 트랙을 골라 왼쪽 플레이어에 불러들인다.
PLAY 버튼을 누르자 스피커에서 그 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바로 오른쪽 플레이어에 다음 트랙을 준비한다.
DJ는 곡을 골라 들려주는 사람이다.
우선 제일 중요한게 선곡.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고르는 게 기본이긴 하지만, 그 전에 때와 장소에 맞는 장르를 골라 왔다는 전제가 먼저 있어야 한다.
어떤 이벤트에 찾아오는 손님이라면, 그 이벤트가 내세우는 장르 노래를 듣고 싶어 온 것일테니.
가령 하우스를 틀어야 할 이벤트에서 하드 테크노를 틀면 그게 아무리 좋은 트랙이라 할지어도 청중들은 ‘뭔가 잘못되었어.’하게 되어버린다.
하지만 오늘 손님은 레이나 한 사람.
그리고 점수는 AI 시스템이 내린다. 그렇게 된다면 장르는 마음대로. 자신이 제일 잘 아는 장르로 승부하면 된다.
오늘 카즈네가 준비한 세트리스트는 게임 뮤직 한아름. 카즈네의 본가가 이 아키바에서 오락실을 운영하고 있으니, 카즈네에게는 가장 익숙한 장르다.
처음 접한 음악이니 가장 잘 안다.
그런 지식을 살려가며, 점수를 따기 쉬운 노래를 골랐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점수를 벌 수 있도록 노래를 이어붙이고 있다.
그러다 마침내, 이전에 카즈네가 만들었던 플레이리스트 중에서 AI가 가장 점수를 많이 준 플레이리스트가 만들어졌다.
내가 이기는 건 따놓은 당상. 진짜 문제는 어떻게 이기느냐지. 기왕이면 레이나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카즈네 쨩 멋져!” 같은 생각을 해 줬으면 좋겠는걸!
카즈네에게는 무슨 일이든 남들보다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거기에 조금 불순한 동기가 더해지니 카즈네는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첫 곡은 그냥 틀기만 해도 된다. 진짜 문제는 두번째부터다.
지금부터 DJ가 갖춰야 할 소양이 본격적으로 도마에 오른다.
클럽에서는 기본적으로 노래를 논스톱으로 계속 달린다.
그러기 위해 플레이어를 2대 사용해 교대로 곡을 튼다.
그 때문에, 두번째로 중요한 것이 바로 곡을 연결하는 방법이다.
곡에서 곡으로 너무 티나게 이으면 듣는 사람들이 흥이 깨져버린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전환해야 해. 그러기 위해서
카즈네는 BPM 싱크 버튼을 눌렀다.
BPM은 Beats Per Minute를 줄인 말로, 1분에 비트가 몇 번 찍히는지를 나타내는 수치이다.
이것을 통해 노래의 템포, 알기 쉽게 말하면 스피드를 알 수 있다.
곡을 부드럽게 연결하기 위해서는 이 BPM을 맞출 필요가 있다.
DJ 유니트에는 자동으로 이 BPM을 맞춰 주는 기능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자동으로 맞춰 준다고 해도 원판끼리 BPM이 너무 달라져 버리면 억지로 이어붙인 느낌이 크게 든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카즈네는 빈틈없이 준비해 왔다.
첫번째 노래는 원래 BPM이 126, 두 번째 노래는 130. DJ 유니트에 달린 모니터 속 파형도 확인해 가며 리듬이 맞는지 재차 확인한다.
그리고 크로스페이더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천천히 밀어낸다.
크로스페이더는 오른쪽 플레이어와 왼쪽 플레이어에서 나오는 소리를 각각 얼마나 나오게 만들지 조정할 수 있도록 좌우로 슬라이드할 수 있게 만든 스위치다.
오른쪽 끝까지 밀어내자 이제 두 번째 노래로 완전히 바뀌었다. 카즈네는 곧바로 왼쪽 플레이어에 세 번째 데이터를 로드한다.
다음 곡은 BPM이 상당히 크게 바뀐다. 이럴 때는 순식간에 곡을 전환하는 컷 인을 선보일 수 있다.
컷 인은 기본적인 기법으로, 특히 BPM을 맞추기 어려운 노래끼리 잇거나 보컬 노래를 다룰 때 편리하다.
거기에 더해 컷 인은 다른 테크닉과 조합하는 식으로 더욱 다양한 연출을 더할 수 있다. 카즈네도 이렇게 이음으로써 보너스 포인트를 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두번째 곡은 미리 루프 포인트를 설정해 놓았다.
루프 버튼을 누르면 미리 정해 놓은 부분을 몇번이고 반복하도록 되어 있다.
어젯밤 연습했던대로 ‘여기다’ 싶을 타이밍에 루프 버튼을 눌렀다.
‘좋아. 드럼 루프에 잘 들어왔어.’
그리고 그 루프를 조금씩 짧게 만들어간다.
그렇게 서서히 드럼을 연타하는 드럼롤 같은 연주가 만들어진다. 그러니
‘이러면 싫어도 신날 수밖에 없지.’
AI도 여기서 추가 점수를 붙이는 점은 이미 실험을 통해 중명해보인 상태.
그리고 세 번째 노래는 후렴부에서 시작하고 싶어. 여기서 후딱 해내고 포인트를 더 챙기는 거야.
그러기 위해 시작 지점을 가리키는 ‘CUE 포인트’를 미리 쳐냈다.
CUE 버튼을 누르고 PLAY 버튼을 누르면 CUE 포인트에서 재생하기 시작한다.
그 말인 즉슨 후렴부가 시작된다는 소리.
PLAY 버튼을 누르는 동시에 크로스페이더를 가운데에서 순식간에 왼쪽으로 꺾는다.
충분히 분위기를 띄우고 나서 곡조를 바꾼다. 이렇게 가장 거친 부분을 드랍이라 하는데, 그런 부분을 DJ 플레이로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좋아. 완벽해. 이렇게 연습한 대로만 하면 분명 점수를 많이 따낼 수 있어.’
카즈네는 미리 정해 놓은대로 담담하게 플레이를 펼치며 예정했던 대로 끝냈다.
플레이하는데만 집중하느라 레이나가 보이는 반응을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처음으로 그 표정을 보니
뺨을 잔뜩 붉힌 채 초롱초롱한 눈으로 카즈네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단해. 대단하잖아, 카즈네 쨩!!”
레이나는 흥분을 억누르지 못하며 팔짝팔짝 뛰었다.
“그 다라라락~한거랑 즈왕~하면서 곡 이곳저곳에서 팔딱팔딱 뛰게 만든 건 어떻게 한 거야?!”
“아하하……. 그런 걸 해주는 기능이 있어서 쓴 것뿐, 이야.”
칭찬 받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레이나가 느끼는 감동이 너무 소박하고, 솔직하면서도 너무 크다보니 카즈네는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카즈네가 한 플레이는 총점 72점. 반쯤 장난삼아 날뛴 비전문가 치고는 대단한 점수다.
“이제 다음은 레이나가 해볼 차례인데. 일단 곡을 골라볼래?”
“응. 어……. 아, 다행이다. 아는 노래가 있어.”
“당연하지. Iris에 저장된 아카이브잖아. 없는 노래가 거의 없어.”
“그런데, 그 노래가 없네……. 그것도 없고.”
“어?”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이런 노래가 다 있을 정도인가 싶을 정도로 귀한 트랙도 올라가 있는 Iris다. 레이나는 얼마나 희귀한 노래를 알고 있는거야?
“음. 그래도 알고 있는 노래가 꽤 많이 저장되어 있는 것 같아서 괜찮을거야! 다 골랐어.”
그렇게 말하며 레이나는 플레이어에 트랙 데이터를 불러들인다. 아직은 서툰 솜씨지만 빠르게 배운 것 같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카즈네가 모르는 곡이었다.
음……. 들어본 적 없지만 좋은 노래야.
포 온 더 플로어 리듬을 쓰는 댄스 트랙이지만 멜로디가 아름답네.
모르는 사이에 눈을 감으며 감상하고 있었다.
넋나간 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카즈네가 문득 정신을 차린다.
노래가 너무 긴걸.
아니야, 그게 아니야.
어……. 언제부터 곡이 바뀌었지?!
카즈네는 핸드폰을 꺼내 약식 STACK 배틀 앱을 확인해본다. 앱에서는 두 번째 트랙을 재생 중이라고 표시하고 있었다.
……어느 사이에.
너무 자연스러워서 알아차리지 못했어. 그렇지만 레이나에게 BPM 싱크 기능을 알려준 적은 없는걸. 그 말은 이걸 사람 손으로 해내고 말았다는 뜻이잖아.
설령 두 노래가 BPM이 같은 노래였다고 해도, 역시 어려운 일이야. 타이밍을 딱 맞춰서 이렇게 부드럽게 롱 믹스를 이어가다니…….
정신을 차리고 보니, 레이나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즈네의 가슴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덜컥 뛰어버린다.
뭐, 뭐야?
레이나가 순수하게 바라보는 눈동자가 자신의 마음 속을 궤뚫어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레이나가 DJ 유니트에 달린 터치패널과 다이얼을 조작하고 있다. 새 트랙을 검색하는 듯한 움직임이다.
곡을 다시 고르려고?
지금 틀고 있는 곡이 얼마나 더 지나서 끝날지는 모르겠는데, 위험부담이 너무 크잖아. 시간이 안 맞아서 곡이 끊겨버리면……. 그렇게 될 게 무섭다보니 카즈네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일이다.
하지만 레이나는 침착하게 새로 고른 노래를 플레이어에 불러온다.
다음에 곡을 전환할 때는 놓치지 않으리라 카즈네는 기합을 넣었다.
하지만 곧바로 노래에 푹 빠지고 만다.
……어떻게?
얘 어떻게 내 취향인 노래만 골라서 틀고 있어?
어디를 들어도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멜로디.
소리에 부드럽게 감싸안기는 느낌.
이런 느낌, 아까 자신이 달렸던 플레이리스트에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몸이 물결치듯 흔들린다.
눈을 감으니 어째서인가 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자신이 여주인공을 맡은, 마치 꿈꾸는 것 같은, 소중한 사랑 이야기.
사랑하는 사람과 한밤중 바다에서 벌이는 밀회.
달콤하고 애절하며 밝힐 수 없는 비밀스러운 사랑. 그런 사랑에서 어딘가 파멸의 향기가 난다.
파도 사이로 사라진 두 사람은 바다 밑으로 마냥 가라앉는다.
되게 슬픈데 열정이 담긴 이야기.
자신과는 전혀 인연이 없다.
실수 없이 사람들과 교류하고, 현실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나.
영화에서나 볼 러브 스토리는 나한테는 일어날 수 없어.
항상 여유롭게 살고 싶어. 격한 감정 같은 건 사양할게.
정말로?
사실은 감정이 격렬하게 물결치는 걸 원하는 게 아니었어?
두 사람이서 바다 속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뜨거운 사랑을.
아니, 연애 뿐만이 아니야.
나는, 온 몸과 마음을 걸고 몰두하는 무언가를.
나는
“카즈네 쨩?”
“히?”
어느새 레이나가 플레이를 마쳤다.
“무, 무슨 일이야?! 괜찮아?”
“어? ……아!”
눈물을 흘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아냐……. 먼지 같은 거니까, 티끌이 들어갔나봐.”
억지로 웃음을 짓고 얼버무리며 손수건으로 눈을 누른다.
나 왜 울고 있는거야?
모르겠어. 아니 사실은 알아.
나를 울린 아이가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어.
“그렇다면 좋겠지만……. 아, 나는 몇 점이었어?”
카즈네가 핸드폰 화면으로 눈을 떨구었다.
52점.
“…….”
레이나는 롱 믹스를 확실히 잘 플레이 해냈지만, 점수를 따내는 측면에서 보자면 너무 수수했다.
그래도
카즈네는 앱을 닫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고, 내가 져 버렸는걸.”
“어?! 그러면…….”
카즈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웃음을 지어보였다.
“앞으로 잘 부탁해. 덴온부 신입 부원님.”
“우와아아아! 해냈다아아아아아! 고마우어어어어어어! 카즈네 쨔아아아앙!!”
레이나가 달려들어 안았다.
“자, 잠깐, 레이나.”
“카즈네 쨩 잘 부탁해! 앞으로도 DJ 유니트로 이것저것 가르쳐줘!!”
레이나의 부드러운 감촉과 따뜻함에 무심코 몸을 쓰다듬고 싶어지는 것을 필사적으로 참는다.
“아……. 레이나, 중간에 선곡 바꿨잖아? 왜 그랬어?”
“카즈네 쨩을 보니까 다른 곡을 트는 게 더 좋을 것 같았거든.”
“같았다니……. 그런 생각을 어떻게 해 냈어?”
레이나는 ‘으음.’하고 묵직한 소리를 냈다.
“어쩐지 카즈네 쨩은 그런 노래를 트는 걸 더 좋아하지 않을까 싶었거든.”
그렇구나.
카즈네는 AI한테서 점수를 따 내는 부분만 생각하고 있었다. 관객은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있었음에도.
하지만 레이나는 나, 관객 딱 한명을 위해서 디제잉을 해 줬구나.
……그렇다 해도 취향이라든가 기분 같은 걸 잘 알아차리는구나. 초능력자인가. 아방한 줄 알았는데 사실은 천재인 거였어.
마음속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으려니 레이나가 자연스럽게 해낸 롱 믹스가 생각났다.
“레이나는 디제잉 초심자가 아닌거지?”
“응. DJ 유니트를 써 본건 처음이었는데……. 아날로그 턴테이블하고 믹서는 아빠한테서 쓰는 방법을 배웠거든.”
“아빠?”
카즈네의 기억 가운데에서 검색 결과가 한 건 휙 튀어나왔다.
“혹시……. 아버님이 히다카 레이아?”
레이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랐다.
“어떻게 안 거야?!”
“아니, 알고 자시고 할 게 아니라…….”
히다카 레이아. 제 1회 STACK 배틀 세계 대회 우승자.
지금으로부터 약 십 년 전, 뉴컴 사가 풀 AI 시스템을 도입해 개발한 라이브 시스템 ‘FAIHS(Full Artificial Intelligence Holography Speaker)’와 DJ 유니트를 사용해서 벌이는 STACK 배틀을 발표하며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야심차게 진출했다.
그 기념비적인 첫 대회에서 레이아는 아날로그 장비를 들고 와서는 DJ 유니트를 사용하지 않는 패기 넘치는 짓을 저질렀다. 거기에다 하필이면 대회에서 우승하고 만 것이다.
뉴컴 사가 오죽하면 배알이 꼬였을까. 레이아는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공식 무대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레전드의 따님이었나……. 그런 집안에서 타고나다니. 속았다!”
“?”
정작 그 본인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리고만 있다.
“암튼간에 카즈네 쨩이랑 덴온부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게 되니까 기뻐! 당장 내일부터 활동 시작이네!”
“그럴 수는 없어.”
“엇?!”
“학교 안에서 활동하는 거라면 괜찮지만……. 다른 학교와 시합을 벌이거나 정식 동아리 활동으로 해 나가라면 Iris에 동아리로 등록할 필요가 있거든. 그러기 위해선 부원이 최소 3명은 있어야 해.”
“세 명?”
어리둥절하더니 레이나는 카즈네를 가리켰다.
“카즈네 쨩.”
그리고 나서 자신을 가리킨다.
“하고 나.”
“그치.”
“그리고 카즈네 쨩.”
“이미 셌어! 나를 두 번 세면 어떡해! 날 반으로 갈라버릴 셈이야?!”
레이나는 곤란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치만…… 소토칸다에서 덴온부를 하고 싶어하는 친구는 없었고……, 반 친구들도 덴온부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는걸.”
어깨를 축 늘어트리는 레이나를 바라보며 카즈네는 입에 손을 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한테 방법이 없는 게 아닌데.”
“어?! 진짜?!”
히죽, 하고 카즈네는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보면 일석이조려나……. 후후후후.”
“카즈네…… 쨩?”
레이나는 카즈네가 웃는 것이 어딘가 수상쩍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