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주쿠 1
시노노메 카즈네가 콜라 잔을 들었다.
“자 그럼, 제 1회 소토칸다 문예고등학교 덴온부 주최 파티의 성공을 기념하며,”
히다카 레이나, 카야노 후타바 두 사람도 잔을 들어올린다.
“““건배!!”””
이곳은 아키바에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 어제 열린 파티의 뒤풀이를 하고 있다.
“그래도 정말 재밌었어! 카즈네와 후타바의 플레이도 너무 좋았고, 다들 기뻐하는 것 같아서 최고로 좋았어!”
레이나가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웃으니 카즈네도 따라서 미소짓는다.
“학생들한테서 반응이 좋아서 정말 다행이야. 아키바에서도 덴온부가 뜰 수 있겠다는 반응이 있기도 했고.”
“솔직히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데요”
후타바가 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하지만 반성할 점도 많아. 공연 장소를 준비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었고, 다른 동아리와 조율을 하기도 빠듯했어. 다음번까지 해결해야 할 숙제로 목록을 만들어 올 테니까…. 왜 그래?”
레이나와 후타바가 ‘오~’하고 감탄한 얼굴로 카즈네를 바라보고 있다.
“굉장해! 역시 멋진 사람이야! 저게 바로 학생회장의 능력이지!”
“그러게요. 어른스러워서 동경하게 돼요….”
“그만해. 별 거 아니야.”
이렇게 쿨한 척은 다 하고 있지만, 마음속은 아주 딴판이다.
‘크으으으으! 미소녀 둘 사이에서 부대끼는 짜릿함! 최고야! 이거 양손에 든 꽃 같은 거지? 어쩌면 하렘을 노릴 수도 있는 거잖아?’
폭주해버릴지도 모를 망상을 어떻게든 이성으로 막아냈다.
“그보다, 정식으로 덴온부로서 Iris(이리스)에 등록했으니, 이제부턴 랭킹에도 제대로 올라가 있을 거야.”
“랭킹?”
레이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덴온부 순위를 말하는 건데요…. 혹시 레이나씨 모르고 계셨나요?”
덴온부 부원이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는 사실이다. 후타바에게는 그런 상식이라 불릴 만한 것도 모르는 레이나가 신기했다.
“그렇게나 디제잉을 잘하시면서….”
“아하하, 쑥스럽네.”
“칭찬한 거 아니거든.”
카즈네가 날카롭게 딴지를 걸자, 레이나는 가볍게 쇼크를 받았다.
“매듭팔찌에 붙인 ID-J는 잘 가지고 있지?”
카즈네가 자신의 왼소매를 걷는다. 희고 가느다란 손목에는 검은 금속 조각이 달린, 파란색과 흰색 무늬가 있는 매듭팔찌가 채워져 있다.
“응. 제대로 가지고 있어”
레이나도 왼쪽 소매를 걷는다. 거기에는 주황, 초록, 노랑 삼색 매듭팔찌가 매여 있었고, 카즈네와 똑같이 금속 조각이 붙어 있었다.
“DJ 유니트 쓸 때 그걸로 인증했잖아? 그건 Iris라는 시스템에 접속하는 열쇠 같은 거야.”
“그 Iris가 뭐야?”
“엄청 많은 노래와 전세계 DJ 정보를 담고 있는 데이터베이스….”
“이것들을 한 곳에 모아서 관리하고 있는 시스템이야. 우리가 미리 준비하는 트랙 리스트와 큐 포인트, 실제로 플레이했던 DJ 정보도 거기에 모여 있어.”
“우와~. 굉장하다…….”
감탄하고 있는 레이나에게 후타바가 보충 설명을 덧붙인다.
“그러니까, 전국 어느 DJ 유니트든 ID-J만 있으면 동아리방이나 집에서도 똑같이 플레이할 수 있는 거예요.”
“굉장하다! 뭔가 SF 같은데!
“아니, 현대 기술이긴 한데……. 아무렴 어때. 여기서부터가 진짜 중요해. STACK 배틀이라는 말은 들어 봤지?”
“응. 처음에 카즈네 쨩이랑 후타바 쨩이랑 했던 시합 말이지?”
“맞아. 이런 DJ끼리 벌이는 승부를 STACK 배틀이라 불러. 덴온부는 기본적으로 STACK 배틀에서 승패를 겨루는 동아리 활동이야. 그 결과가 순위에 반영되는 거지.”
“스포츠나 격투기 같은 거네.”
“뭐……. 그런 비슷한 이미지일지도 모르겠다.”
카즈네는 레이나가 이해하기 쉽게 말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스포츠라고 해도 육상 경기라면 타임이라는 승패를 정량적으로 내리는 근거가 있지. 하지만 디제잉은 그렇지 않아. 그래서 리듬체조나 피겨 스케이팅 같은 쪽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지.”
“그렇구나. 따로 채점하는 사람이 있나보네.”
“사람이 채점하는 게 아니야.”
카즈네는 빨대를 물고 콜라를 한 입 후루룩 들이마시며 대답했다.
“채점하는 쪽은 사람이 아니라 Iris.”
“그건 아까 말했던 그… 대단하다던 시스템?”
“그래. Iris는 DJ 정보가 모여 있다고 했었지? 플레이한 데이터로 Iris에 저장돼. 그리고 선곡이나 기술 등 여러 요소를 판정해서 시스템이 점수를 매기는 거야.”
“아하……. 노래방 같은 거네.”
비슷하면서도 다르지만, 구체적으로 따지고 들면 레이나가 혼란스러워 할 것 같아 카즈네는 방금 이야기는 흘려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이 전혀 반영이 되지 않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야. STACK 배틀 인터넷 중계 화면에는 실시간으로 댓글을 쓸 수 있는데, 수가 많은 쪽이 사람들을 더 열광시킨다고 해서 더 많은 점수를 주는 식으로 Iris가 판정할 거야.”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후타바가 모처럼 끼어들었다.
“제대로 된 설비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인터넷 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는 손님의 환호성이나 뜨거움도 점수로 매길 수 있어요.”
“그런 것까지 할 수 있다니…. 어떻게 한 걸까?”
후타바는 자세한 것까지는 모르는지 곤란한 미소를 카즈네에게 보였다.
“자세한 건 제조업체인 뉴컴 사 기업비밀인 것 같아. 플로어에 있는 사람을 한 사람 한 사람 데이터화 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 표정, 움직임, 체온같은 여러 정보를 수집하는 것 같아”
“아하~…….”
“뭐, 그런 여러가지 기술이 모여서 랭킹이 만들어졌다는 거지.”
카즈네는 핸드폰 앱을 켜서, 학교 이름이 줄지어 있는 순위표를 보였다.
“상위권 체면은 변하지 않는구먼.”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카즈네의 핸드폰을 레이나와 후타바가 들여다보고 있다.
레이나는 가장 위, 정점에 군림하는 학교 이름을 읽어 내려갔다.
“시부야 에어리어에 있는 테이온 국제 학원……?”
“흔들리지 않는 정점. 최강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학교야. 특히 이 학교 에이스인 호오 카린이 아주 끝내줘. 아직 2학년인데도 톱 DJ로 활약하고 있다더래. STACK 배틀에서도 지는 일이 없고.”
“잡지와 광고에서도 자주 봤어요.”
그러면서 후타바는 자기 핸드폰으로 검색한 사진을 보여주었다.
아주 아름다운 소녀였다.
하지만 레이나는 소녀의 아름다움보다 그 박력에 눈이 이끌렸다.
흰 머리에 번개 같은 붉은 브릿지. 팔짱을 낀 모습에서도 자신감이 넘친다. 카메라를 바라보는 눈동자는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잠시 주저할 정도로 강렬했다. 그 눈은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맹금류를 떠올리게 하였다.
“이 사람이 호오 카린 씨……. 나랑 같은 학년인데도 대단하네…….”
“우리들이 시부야를 상대하는 건 아직 있을 수 없는 일 같지만, 일단 이름 정도는 알고 있어 두는게 좋겠어. 2위 아래부터는 경쟁이 치열해서 엎치락 뒤치락이긴 한데…… 지금 2위는 아자부 에어리어에 있는 미나토 시로카네 여학원이야….”
후타바가 두 손을 모으며 눈을 빛내고 있다.
“도쿄 에어리어에서 제일가는 귀한 집안 아가씨 학교예요. 동경하고 있답니다.”
“시부야와는 또다른 구름 위에 있는 존재야.”
그렇게 대답한 카즈네였지만, 어떻게든 잘 해서 가까워지고 싶었다. 상류층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다. 분명 반짝반짝거리고 우후후하면서 기분 좋을 거야.
아키바 덴온부가 강해져서 언젠가 대전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다가갈 수 있을까 그렇게 막연하게 생각해본다.
그렇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런 상위 학교가 소토칸다를 상대해 줄 리가 만무했다.
“그래서 우리 덴온부는 몇 등일까?”
레이나는 기대에 찬 얼굴로 랭킹을 스크롤했다. 주욱 늘어선 학교 이름을 끝없이 내려가다 보니, 겨우 소토칸다 문예 고등학교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제일 아래에 있네.”
“꼴지인 겁니까…….”
“당연하지. 등록만 했을 뿐이고 다른 학교랑 STACK 배틀을 한 적이 없잖아.”
‘맞아. 이게 현실이야. 시부야나 아자부 같은 곳은 구름 위 존재지.’
카즈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레이나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다른 학교 애들과 STACK 배틀을 하자!”
“흐에에에에에에?!”
당황한 후타바가 새된 소리를 냈다.
“그, 그그, 그러니까, 교내 파티도 부끄러워서 기억이 날아가는데…… 다, 다, 다른 학교랑 배틀을 한다고요?”
카즈네도 복잡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긴다.
“음. 아직은 시기상조가 아닐까 싶어?”
“둘 다 엄청 잘 하니까 괜찮을 거야! 그리고 다른 학교 덴온부 친구들이랑 함께 플레이한다니 정말 재미있을 것 같잖아!”
레이나 얼굴에 흐드러진 웃음꽃을 보고 있자니, 카즈네는 자신이 너무 신중한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 알았어. 일단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준비하는 데에만 시간을 다 쓰고 막상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면 아깝기도 하지. 후타바도 괜찮지?”
“솔직히 무서운……데요. 저도 레이나 씨처럼 긍정적으로 되고 싶다고 생각해왔으니까… 좋은 것 같아요!”
후타바가 자신을 앞둔 벽을 넘어설 결심을 하자, 카즈네는 따뜻한 미소를 내주었다.
“알았어. 그러면 상대 학교를 찾아보자.”
카즈네는 조건을 붙여가며 검색하기 시작했다.
“랭킹이 별로 높지 않으면서…. 가능하다면 우리랑 마찬가지로 활동력이 낮은 곳…은….”
검색 결과가 핸드폰 화면 속에 줄지어 있다.
그 중에서 한 학교 이름이 눈에 띈다.
“하라주쿠에 있는 진구마에 산도 학원. 여기가 좋겠다.”
“이 자식……. 뭐야.”
진구마에 산도 학원 덴온부 동아리방에서 사쿠라노 미미토가 태블릿 화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재생하고 있는 영상 속에서 한 소녀가 디제잉을 하면서 춤을 추고 있었다. 노래는 귀여운 아이돌 송. 트윈테일 머리를 흔들면서 카메라를 향해 윙크. 게다가 얼굴 앞에서 꺼내보이는 피스 사인.
온몸에서 귀여움이 넘쳐 흐르고 있다.
“뭐야, 이런 거! 하나도 안 귀여워! 내가 훨씬 더 귀여워!!”
아니나 다를까, 대항심을 불태우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미나카미 히나는 마음 속으로 미소지었다.
‘역시 미미토가 속상해하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속이 시원하네요. 스트레스 해소에 참 좋습니다.’
“히나, 그래서 이게 뭐가 어떻게 된 건데?!”
“얼마 전에 우연히 본 아키바 덴온부입니다. 미미토가 흥미를 보일 것 같아서요.”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꽤 괜찮은 플레이였습니다. 생긴 지 얼마 안 되었다고 하는데, 손님들도 많이 있어서 아주 신바람이 났더군요.”
“윽……. 그래서 그게 뭐가 어쨌다는 거야?!”
“우리 동아리는 파리만 날리고 있잖습니까.”
“그, 그런 건 내 귀여움을 모르는 애들이 나쁜 거라구!”
패션이 중심인 진구마에 산도 학원에서는 소토칸다 문예 고등학교 이상으로 덴온부의 존재감이 희미하다. 교내 파티를 열어도 거의 모든 학생들이 그냥 지나친다.
“아키바 따윌 도대체 왜 찾아간 거야?! 이 배신자 같으니라고!”
“제가 참가한 전시회가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요. 저도 아키바는 별로 가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러면 안 가면 되는 거 아냐!”
미미토는 재차 태블릿 화면 속 동영상에 눈을 떨구었다.
많은 손님들이 춤을 추고 있다. 팔을 치켜들고 있다.
즐거운 표정이 DJ 부스를 향하고 있다. 화면을 넘어서까지 이 장소가 뿜어내는 열기와 일체감이 전해져 온다.
분해.
이쪽은 플로어로 손님을 모셔 오는 것만으로도 고생인데.
이 하라주쿠는 귀여운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어.
그런데 여기에 이렇게나 귀여운 내가 있는데, 왜 다들 무시해! 말도 안 된다고!!
미미토는 한번 더 동영상을 노려본다.
특히 이 트윈테일 여자 짜증나. 지가 아이돌이라도 되는 줄 아나봐. 게다가 이거 자작곡이야?!
으윽! 너무 구려! 뭐야 이 전파곡! 낡았어 낡았어!
“왜 그래요, 미미토? 혹시 부러우세요?”
주변을 둘러보니 히나가 희미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흥! 하나도 안 부러워!”
태블릿을 히나에게 돌려주며 말한다.
“왜냐하면 바로 내가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세계 제일 DJ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