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뒤, 레이나와 카즈네, 후타바까지 세 사람은 학교가 오후 일찍 끝나는 날 중 하루를 정해 하라주쿠에 찾아왔다.

전철역을 나오니 바로 정면에 진구마에 산도 학원이 있다.

언뜻 보면 아파트처럼 생긴 빌딩에, 아래층은 옷가게가 있다. 여기서 학생들이 만든 옷을 팔고 있는 것 같다.

“덴온부 동아리방은 타케시타 거리 입구 쪽인데… 그 전에 모처럼 왔으니 참배하러 가지 않을래?”

카즈네는 선로에 놓인 다리 너머를 가리켰다. 그 앞에는 커다란 나무가 우거진 숲이 있었다.

후타바가 “아.”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카미조노 진구 말씀이시군요. 매년 새해 첫 참배 뉴스 같은 곳에서 많이 소개되던.”

“그럼. 도쿄 도에서 제일가는 파워 스팟 중 하나야. 분명 잘 듣는 곳일거니까, 이왕 온 김에 소원이라도 한 번 빌고 가자.”

“소원…….”

레이나가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무슨 일 있어, 레이나?”

“아니야. 가자! 나도 소원 빌러 갈래!!”

세 사람은 큰 도리이를 지나 자갈길을 따라가지만 한참을 가도 좀처럼 혼덴신사에서 신령을 모시는 주된 신전이 나타나지 않는다. 경내가 꽤 넓은 것 같다.

“우와~. 굉장해…….”

벽에 둘러싸인 훌륭한 혼덴이 나타났다.

고개 두 번 숙이고 박수 두 번, 그리고 소원을 빈 뒤 다시 한 번 고개 숙이기.

참배를 마치고, 자연스레 경내에 나 있는 거목 두 그루가 있는 쪽으로 걸어간다.

“레이나는 뭐라고 빌었어?”

카즈네가 묻자, 레이나는 조금 쑥스럽게

“언니와 다시 만날 수 있길 빌었어.”

예상치 못한 대답에 카즈네와 후타바는 말을 잇지 못했다.

달리 말하면, 레이나와 언니는 지금 만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말이 된다. 애당초 레이나에게 언니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금시초문이었다.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내용으로 미뤄볼때 레이나가 아버님과 둘이서만 살고 있다는 점까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님께서 돌아가셨는지 이혼을 하셨는지 하는 이야기는 함부로 물어볼 만한 화두가 아니다.

다른 이야깃거리를 찾으며 비틀거리는 카즈네의 눈에 경내를 청소하던 무녀가 들어왔다.

“헐, 진짜 귀여워.”

머리를 양쪽에서 경단처럼 묶고 거기서부터 땋아 내렸다. 하얀 기모노에 자주색 하카마.

어딘가 근심이 가득한 눈빛은 허무함에 신성함까지 느껴진다.

“사진 촬영쯤은 부탁드려도 괜찮겠지…….”

휘청휘청 다가오는 카즈네의 손에는 이미 핸드폰이 들려 있다. 그런 카즈네의 어깨를 레이나가 지긋이 잡는다.

“카즈네, 범죄를 저지르면 안돼. 여기는 아키바가 아니라서, 아무리 학생회장이라도 체포당할 거야.”

“범죄라니, 네가 그렇게 딴지 거는 것도 이상하거든?! 꼭 내가 아키바에서는…….”

미소녀 무녀가 세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조용.”

“죄, 죄송합니다.”

레이나와 카즈네, 조용히 있던 후타바까지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이 기회를 놓칠세라 카즈네가 말을 걸었다.

“저, 이 나무…… 훌륭하네요. 어떤 내력이 있는 건가요?”

“이건…… 신령님이 머무르는 나무. 메오토구스(夫婦楠)……. 인연을 맺어다 준다는.”

“아하……. 근사하고 로맨틱하네요…….”

카즈네는 모든 일을 척척 해내는데다 가끔 삭막하게 보일 때도 있었지만, 의외로 마음 속에 순정을 품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 카즈네를 레이나와 후타바는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그러다 이 설명을 해준 무녀가 이상한 살기를 내뿜고 있는 것에 시선을 강탈당한다.

“……인싸.”

어두운 눈을 하고 핸드폰 자판으로 무언가를 쓰고 있다. 악물고 있는 이빨이 마치 뾰족뾰족 톱니처럼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인연을 맺어 주기는 얼어죽을. 이쪽은 아무 인연도 만나지도 못했건만, 왜 다른 사람 인연이나 맺어다 줘야 하는 거야? 개짜증.

이렇게 쓰고 있는 것 따위는 세 사람은 알 턱이 없다.

무녀는 핸드폰을 품에 집어넣고 감정이 없는 얼굴로 돌아와, 레이나에게 물어본다.

“……당신은 짝 찾기를 기원하러?”

“아니. 그런데 메오토구스란 거 좋다. 우리 집은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홀라당 밝혀진 레이나의 집안 사정에 카즈네와 후타바는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무녀의 표정은 그대로였지만 주변 분위기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알아……. 우리 집은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어, 그렇구나.”

레이나는 그 슬픔을 상상하며 자기 일처럼 생각했다. 슬프거나 외롭겠지. 입 밖에 내지 않았어도 표정을 보면 금방 그 기분을 알 수 있다.

무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레이나가 공감해 주는 것이 기뻤던 모양인지 입술 끄트머리에는 무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쭈욱 무표정만 보이고 있었던 만큼, 그 희미한 미소는 아주 귀하게 느껴진다.

“여러분들은…… 하라주쿠에 관광을 하러……?”

“그것도 있는데, 진구마에 산도 학원 덴온부에 볼일이 있어서 왔어.”

“……덴온…부?”

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눈을 깜빡거리는 걸 보니 살짝 놀란 것 같다.

“그러면……, 여러분도 덴온부?”

레이나는 기뻐하며 팔을 벌려 좌우에 있던 카즈네와 후타바의 팔짱을 꼈다.

“응! 아키바의 소토칸다 문예 고등학교야.”

“사이… 좋아 보이네….”

“물론이지! 그야 같은 덴온부 동료니까. 친구야. 절친이야!”

“……절친이라.”

그러더니 다시 핸드폰을 꺼내서 뭔가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청춘이냐. 반짝반짝해서 너무 짜증나. 절친이라던가 그런 거 하나도 안 부럽다고. 이쪽은 태어날 때부터 신령님네 자식이랍시고 둥가둥가 당한 덕분에 친구 같은 거 1도 없구만. 신사 말고는 난 아무것도 몰라~

정신없이 타자를 치고 있어서 이번엔 말을 걸어도 대답 하나 해 주지 않는다. 세 사람은 작은 목소리로 감사의 말을 하고는 그 자리를 떠나기로 했다.

“조금 별난 무녀님이네요.”

“응. 그래도 착한 사람이었지.”

후타바와 레이나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카즈네가 갑자기 뭔가 생각났는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신사 칸누시신사에서 일하는 신관. 여기서는 그중 우두머리 신관을 가리킨다 자리는 대를 이어 여자가 계승한다던데. 이곳 따님도 무녀님을 하고 있는데다 어머님과 쌍으로 미인이래서 화제가 되었다지. ……어쩌면 아까 만난 사람이…….”

하며 서운하게 뒤돌아보지만, 이제 와서 다시 뒤돌아가서 확인해 보기도 조금 어색하다.

서먹해졌다 말할 수도 있다.

“레이나? 그, 너네 사정을 우리도 엿들어 버린 게 되어서 미안.”

“응? 별것 아니니까 괜찮아. 내가 멋대로 말을 꺼낸 것도 있고, 그닥 숨길 일도 아닌걸.”

레이나는 핸드폰 화면을 이리저리 만지작대더니, 카즈네와 후타바에게 보여주었다.

“이게 우리 언니야. 쌍둥이 언니라구!”

어릴 적 사진이었다.

두 사람 모두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1학년쯤 되어 보인다.

레이나는 지금 모습 그대로 어려지기만 한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언니 되시는 분은 검고 긴 머리에 피서지 아가씨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하얀 원피스, 꽤 정숙하고 품위있어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그리고 그 옆에서 기운 넘치는 표정을 한 레이나와는 좋은 쪽으로 대조되게, 상냥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런 어린 여자들 투샷은 카즈네의 가슴을 정면으로 궤뚫는다.

“아악……. 이 얼마가 귀중한…….”

“카즈네 쨩, 침 흘리고 있어, 침.”

카즈네가 침을 훔치고 있는 동안 후타바가 물끄러미 화면을 바라본다.

“쌍둥이…인데도 머리색이 다르네요.”

“응. 쌍둥이는 쌍둥이지만 우리는 완전히 똑같진 않은 쌍둥이래. 생김새가 비슷하기는 하지만, 단번에 쌍둥이라고 알아볼 정도는 아니야.”

“저, 그게, 레이나, 그 사진 나한테 줄 수 있어? 이상한 데 쓰지는 않을게.”

후타바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카즈네 쨩……, 말이 그게 뭐예요.”

“응. 좋아.”

레이나는 따로 경계하는 기색 없이 카즈네에게 사진 파일을 보내주었다.

“그러면 이 다음에는 감사의 뜻으로 하라주쿠 관광을 시켜줄까? 몇번 와본 적 있으니까 가이드 정도는 해줄 수 있어.”

카즈네의 제안에 두 사람은 소리 높여 찬성하고는 오모테산도로 향했다.


오모테산도를 교차로까지 걸어와 왼쪽 메이지 거리로 꺾는다. 라 포레 앞을 지나 한참을 가니 왼편에 하라주쿠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가 있었다.

“우와아아아~. 여기가 타케시타 거리! 대단해! 뭔가 엄청 컬러풀해!”

거리 풍경과 길을 걷는 사람들을 보며, 레이나는 흥분을 감출 수 없을 전망이다. 화려하고 팝, 귀여우면서 팬시, 그리고 개성적인 디자인으로 가득하다. 마을 전체가 마치 테마파크 같다. 과자 상자 속에 섞여 들어간 것 같아.

아키바에서는 길거리에 코스튬 플레이어들이 활보하고 있지만, 하라주쿠는 의복 문화가 어디까지나 패션에서 출발한 문화이다. 아키바처럼 작품에서 출발한 것과는 결이 다르다.

그리고 귀여움에 특화되어 있다.

“하라주쿠 에어리어는 원래 시부야 지역과 하나였지만 몇 년 전에 분리되었어. 대강 음악을 담당하는 쪽이 시부야로, 패션을 담당하는 쪽이 하라주쿠로 나뉘어졌지.”

“에어리어를 나누는 일이 자주 있는거야?”

카즈네는 고개를 저었다.

“보통은 자주 없어. 어느 에어리어에 사는가는 그 사람 취미나 개성, 말하자면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는 수단 중 하나야. 하지만 하라주쿠와 시부야는 원래부터 각자 따로 지내고 있었어. 그래서 에어리어가 나뉠 때도 특별히 소란이랄게 일어나진 않았고. 거기다 테이온도 있다보니.”

“테이온?”

“시부야에 있는 테이온 국제 학원. 음악에 너무 치우쳐진데다가 수준이 너무 높아져서 여러모로 문제가 있었다더라고. 그래서 에어리어를 나누면서 진구마에 산도 학원을 새로 설립했다는 거야.”

막힘없이 설명하는 카즈네를 레이나는 존경어린 눈빛으로 바라본다.

“레이나 쨩, 진짜 박식해…….”

“대전 상대니까. 이 정도로 사전에 알아놓고 있어야지…. 후타바 쨩은 아무 말이 없는데 잘 따라오고 있어?”

후타바는 카즈네 뒤에서 숨듯이 따라오고 있었다.

“그렇군요. 모두 멋지네요……. 저희 너무 튀는 거 아닐까요……. 교복을 입고 있어서요.”

“그래도 하라주쿠는 귀여운 캐릭터 비슷한 것도 많고, 메이저하게 뜬 애니메이션이라면 캐릭터 상품도 많이 있어. 오히려 아키바하고는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그치만…….”

“그렇지. 그리고 후타바 쨩은 정말 귀엽잖아. 디제잉을 할 때도 아이돌 그 자체인 것 같은데, 하라주쿠 친구들한테도 인기 있어지는 거 아니야?”

“그, 그러지 마세요~.”

후타바는 귀를 누르면서 울상을 지었다.

그렇게 실없는 소리로 수다를 떨며 걷다보니 달콤한 냄새가 주위를 감돈다. 카즈네는 그 향기가 흘러 나오는 크레이프 가게를 가리켰다.

“역시 하라주쿠에 온 이상 이걸 먹어봐야겠지?”

그러자, 후타바가 갑자기 기운을 차렸다.

“아! 그럼요! 역시 다른 에어리어에 왔으면, 그곳 명물을 먹어 봐야 하는 거예요.”

그런 말을 하며 제일 먼저 쇼케이스 앞으로 달려가니, 레이나와 카즈네는 그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뒤를 따른다.

기나긴 고심 끝에 후타바는 바닐라 초코 크림, 레이나는 카라멜 크림, 카즈네는 팥 크림맛을 주문했다.

세 사람은 크레이프를 먹으며 타케시타 거리를 바라보며 한가롭게 돌아다니고 있다.

이대로 쭉 가다가 타케시타 거리 출구까지 가면 진구마에 산도 학원 덴온부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가게가 너무 많아 좀처럼 나아가질 못한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카즈네가 발걸음을 멈춘다.

“어, 오락실이 있어! 들렀다 가 보자. 솜씨 좀 봐야겠어.”

크레이프를 다 먹은 카즈네는 의기양양하게 오락실로 들어간다.

레이나와 후타바도 카즈네를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가게 안을 한바퀴 빙 둘러본다.

“음, 역시 크레인 뽑기 게임이 많네……. 어.”

카즈네는 뽑기 게임 경품 하나를 눈여겨보앗다.

수수께끼의 생물이 있었다.

귀 모양을 보아하니 토끼 같지만, 땅딸막한 하늘색 몸에서 짧은 팔다리가 나 있었고, 오른손에는 웬일인지 커다란 도끼를 들고 있다.

그리고 원래는 귀여웠어야 할 조그만 눈과 입이 악마에게 홀린 것 같은 표정을 지어내고 있었다.

“이거, 미나카미 히나가 디자인한 캐릭터구나. 인형으로 만들어진 건 처음 보는데….”

카즈네는 그 크레인 게임 앞에 선 사람이 드리운 그림자를 보고는 눈을 부릅떴다.

베레모를 쓴 여자아이다. 세일러복 칼라가 달린 원피스를 입고 있는 아이. 몸집은 작지만 스타일은 좋다.

“본인이 있었잖아?!”

카즈네의 언성이 높아지자 그 작은 여자 아이, 미나카미 히나는 놀라 시선을 건넸다.

“당신은…….”

“놀라게 했구나, 미안해. 나는 아키바에서 온 소토칸다 문예고 학생회장인 시노노메 카즈네라고 해.”

“?!”

히나는 찌릿하고 뒤로 물러났다.

“아키바에서…… 무슨 일로?”

카즈네는 경계하는 동물을 달래듯 온화한 학생 회장 미소를 띄운다.

“미나카미 히나 맞지? 사실은 네 팬이야. 코미케에서 갔을 땐 너희 스페이스에 들른 적도 있었다고.”

“……그런가요? 그건 고맙습니다.”

아직 완전히 경계를 풀지 않은 것 같다. 말투도 억양 변화가 적고 패기가 없다고나 할까, 어딘가 의욕이 없게 들린다.

“분명 소토칸다에 와 줄 거라고 해서 기다렸는데……, 혹시 진구마에로 간 거니?”

“예, 뭐어.”

“아쉽게 되었네. 인기 일러스트레이터인 네가 꼭 소토칸다에 와 주길 바랐었거든.”

카즈네는 학생회장으로서 학교 스탯을 높이는 점에 집중했다.

소토칸다는 만화, 애니, 게임 등 오타쿠 문화가 강한 지역이었다. 당연히 히나와 같은 실력도 인기도 있는 일러스트레이터가 있으면 좋다.

“있지, 카즈네 쨩. 걔랑 아는 사이야?”

레이나가 뒤에서 얼굴을 내밀자, 히나가 작게 소리를 질렀다.

“아?! 덴온부의……. 어째서 여기에….”

“엇? 날 알고 있었어?”

레이나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단숨에 히나와 거리를 좁힌다.

“악?!”

엉겹결에 히나는 넘어지지만, 레이나는 공세를 멈추지 않는다.

“혹시, 어 그게 히나 쨩이라고 불러도 돼? 히나 쨩도 덴온부야?”

“이미 그렇게 부르시고 계시잖아요……. 하아. 그렇습니다만.”

카즈네는 또 놀랐다.

“그랬어?! 그렇다면 더더욱 잘 맞겠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소토칸다로….”

“잠깐만 기다려요!!”

입구 쪽에서 귀여운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목소리의 주인은 온몸으로 ‘나 귀엽지?’라 외치는 여자애였다.

아기자기한 취향을 두른 옷차림에 핑크빛이 도는 긴 트윗테일. 심지어는 토끼 귀처럼 생긴 머리띠까지.

“우리 부원을 멋대로 빼 가려 하지 말아줄겠어? 덴온부 부장인, 바로 나를 그냥 두고 말이야!”

“부장이라…. 그렇다면 네가.”

카즈네가 미리 조사해온 이름을 채 꺼내기도 전에 그 소녀가 잘난 척 으스대기 시작했다.

“그럼!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세계 최고 DJ가 바로 나! 사쿠라노 미미토얏!!”

카즈네와 후타바, 그리고 히나까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세계 최고?

허나 레이나만은 순순히 받아들였다.

“대단해! 세계제일이구나!!”

“어……. 뭐, 그래.”

미미토는 멋쩍게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가 하지만, 금방 그것을 얼버무리듯 레이나를 콕콕 가리킨다.

“그, 그건 그렇고! 아키바 녀석들이 뻔뻔하게도 하라주쿠에 오다니, 배짱이 두둑하구나!”

그러더니 이번에는 후타바를 가리키고서는,

“히익?!”

“이런 나한테 반항할 생각을 한 너희들을 가볍게 털어주도록 하지!”

“저, 저희들은……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녜요~.”

하기사 반항할 생각까진 없었겠지만, 대전을 하기 위해서 찾아온 건 사실이었다. 카즈네는 이쪽 페이스에 맞춰 배틀각을 재고 있었는데

“그렇나요. 그러면 저는 이만.”

히나가 집에 가려고 하고 있었다.

“잠깐만! 어째서 집으로 가려고 하는 거야?! 지금부터 아키바랑 STACK 배틀을 시작할 타이밍이잖아?!”

“으…….”

거리낌없이 싫은 표정을 지어낸다.

“저는 싫습니다. 일러스트 마감도 하러 가야 하고……. 미미토가 혼자서 하면 되잖아요.”

레이나 일행은 어안이 벙벙했다. ‘하라주쿠는 뭐 하는 팀이야?’ 하는 물음표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너도 시안 뒷계 보고 아키바네 덴온부가 올 줄 알고 달려온 거 아녔어?!”

미미토가 말하자 히나의 뺨이 꿈틀댄다.

“또 무슨 독설을 퍼붓고 있던가요…….”

“아키바 패거리가 덴온부에 볼일이 있다면 싸우러 쳐들어 온 게 아니겠냐고!!”

“그렇군요. 힘내십쇼. 그럼 저는 이만.”

“잠깐만! 아직 집에 가지 마! 히나도 부원이잖아?!”

눈물 맺힌 시선으로 호소하는 미미토와, 싫은 표정을 지은 히나.

더더욱 곤혹스러워하는 레이나 일행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두 사람은 구구절절 대화를 이어갔다.

“애초에 지금은 시안도 없지 않습니까. 세 명이 모여 있지도 않다고요. 별로……. 아.”

“…….”

어느새 근처에 한 소녀가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미미토는 기운을 차리고 외친다.

“시안! 아이 참. 뭐야, 다 알고 있었으면서~. 이것으로 하라주쿠 덴온부 전원이 모였네!!”

“…….”

그 소녀는 대답도, 고개를 끄덕거리지도 않고 계속 레이나를 바라보고 있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무녀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있지만, 아까 신사에서 만난 무녀임에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