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주쿠 3
무녀의 이름은 이누보사키 시안이라고 한다.
레이나는 헤어진 지 얼마 안 되어 다시 만난 것에 기뻐했지만, 시안이 희미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여전히 표정 없고 반응도 없이, 그저 수수께끼처럼 핸드폰만 만지는.
“아~. 이건 말야, 시안이 뒷계에다가 글을 쓰고 있는 거야.”
하고 미미토가 알려 주었다.
아무래도 미미토와 히나는 그 계정의 글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지 물어보았지만, 미미토와 히나는 애매하게 웃기만 할 뿐이다.
그렇게 걸어서 덴온부 동아리방으로.
카즈네가 말한 대로 타케시타 거리 끝자락에 있는 빌딩이었다.
1층이 라운지였고, 지하에 플로어가 갖춰져 있엇다.
건물 안에는 하라주쿠만이 가진 개성으로 가득 차 있다. 팝 같은 배색에 귀여운 굿즈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오늘은 교내 파티가 열리는 날이니까 배틀 하기에도 딱이네. STACK 배틀로 대결이다! 히나, 시안, 즉시 공지를 하거라!”
두 사람은 마지못해 핸드폰에 뭔가를 치기 시작한다. 그것을 곁눈질로 보면서 카즈네가 물었다.
“그래서, 규칙은 어떻게 할까?”
STACK 배틀에는 여러 가지 경기 방식이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양측이 합의만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도 겨뤄도 된다. 하지만 동아리 활동으로서 하는 공식 시합에는 어느 정도로 공통된 기준이 마련되어 있는 법이다.
한 사람이 20분간 플레이를 하는 쇼트 세트.
스탠다드 세트라면 40분.
롱 세트는 1시간이다.
기본적으로 한 사람이 DJ 부스에 들어가 대기 시간이 끝나는 즉시 상대 팀으로 교체하는 턴제와, 한 팀 세 명이 연속해서 플레이를 이어간 후 상대팀과 교대하는 팀 턴제.
그리고 플로어가 여러 개 있다던가 해서 동시에 플레이할수 있다면, 각 플로어마다 한팀 3명이 연속으로 플레이하는 리얼 타임제라고 부르는 방식도 있다.
미미토가 벽시계를 확인해 보니 지금 시각 다섯 시.
“쇼트 세트 3대 3으로. 히나가 오늘 마감이 있대니까 후딱 끝낼 수 있도록 동시에 하자. 메인 플로어는 우리들이, 라운지는 너희들이 하면 되겠지?”
분명 아키바에게 불리한 조건이다.
하지만 우리들이 들이닥친 쪽이고, 대전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니까. 카즈네는 그렇게 판단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모두들 괜찮지?”
“응!”
레이나는 아무튼간에 디제잉만 할 수 있으면 기쁜지,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힘차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흐윽……. 진짜로 하는 건가요오…….”
반대로 후타바는 울먹이는 눈으로 떨고 있었다.
그러던 사이에 시작 시간이 다가왔고, 손님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손님이 많지는 않다. 미미토의 팬으로 보이는 사람과 아이돌을 좋아할 것 같은 남자, 캐릭터 굿즈를 착용하고 있는 여자, 모드족 남녀, 우연히 쉬는 시간인 가게 점원, 그리고 분명히 다른 장소에 있어야 할 것 같은 아저씨 군단.
“……좀… 카오스네.”
“확실히…… 아키바와 비슷한 부분이 있네요.”
“그래서! 누구부터 시작하지?!”
금방이라도 달려나갈 듯이 설렘에 가득찬 레이나가 물었다.
“빨리 돌리고 싶지? 레이나부터 해도 좋겠어.”
“야호! 그러면 나부터 시작할게!”
그리고 드디어 STACK 배틀이 시작되었다.
일단 라운지에도 손님들 반응을 측정하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따라서 Iris가 플레이 내용 뿐만 아니라, 회장 분위기를 얼마나 띄울 수 있는지까지도 판정해낼 수 있다.
그리고 인터넷 중계도 평가에 반영된다.
Iris를 거쳐 플레이 동영상도 인터넷으로 중계된다.
이런 랭크가 낮은 사람들끼리 벌이는 대전을 볼 정도로 호기심이 있는 사람은 별로 없긴 하지만.
레이나가 돌리기 시작하지만, 라운지에는 손님이 거의 없다. 이래서야 플로어 분위기를 띄우는 걸로 추가 점수를 얻을 가능성은 거의 기대하기 힘들다.
“후타바, 우리는 정찰을 하러 가는 거야.”
“네, 네엡.”
카즈네와 후타바가 지하 플로어로 내려오자, 일종의 묘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팝하고 귀여운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기운 넘치는 아저씨들이 근육의 벽을 만들어내고 있다.
“뭐, 뭐야? 이 손님층…….”
어리둥절하고 있는 카즈네와 후타바를 향해 사십대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돌아보며 말을 걸었다.
“오? 아가씨들, 공주님 팬인가?! 앞으로 가서 응원해 줘, 어서!”
““공주우?!””
놀라서 외친 소리에 다른 아저씨들도 고개를 돌렸다.
“하하! 이 일대는 카미조노 진구다 다스리는 영지나 다름 없으니까, 우리같은 토박이들한테는 차기 칸누시이신 시안 님은 공주님이라 할 수 있지!”
역시 소문대로 모녀가 무녀를 하고 있는 집안이라 해도, 시안에게는 독특한 팬클럽이 있었던 것이다.
“그, 그래도, 덴온부 파티까지 쫓아오시다니, 대단하네요…….”
“아무래도 공주님은 청순가련, 더러움을 모르는 아가씨니까! 이상한 놈들한테 속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그래서 우리 하라주쿠 상인회는 거리 전체에서 시안 님을 지켜보고 있지. 이상한 벌레들과 나쁜 친구들이 꼬이지 않도록 말이야!!”
“아, 아하하……. 그렇군요.”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카즈네와 후타바는 앞으로 나아갔다.
“공주님으로 지내는 것도 어딘가 이래저래 힘들어 보이네요…….”
후타바는 스테이지 위에 있는 시안을 올려다 보았다.
시안이 보이는 플레이는, 노래를 이어 나가는 방법이 깔끔하고, 선곡도 통일감이 있었다. 어딘지 품위 있게 잘 자란게 느껴지는 플레이였다.
얼핏 듣다 보면 귀엽고 세련된 인상에, 하라주쿠스럽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잘 들어보면 저음이 상당히 강하다. 귀여운 멜로디 뒤에 중저음이 공격적으로 울려 퍼진다.
마치 어떤 불만을 호소하듯.
그리고 때때로 핸드폰을 손에 들고 뭔가를 쓰고 있다.
저 토박이 아재들 신속히 꺼져 주길 바람. ㄹㅇ 짜증나. 존나 짜증나. 이런데까지 방해하러 다 찾아온거냐고. 암튼 신사랑은 상관없이 내가 하고 싶은 게 따로 있는데.
이런 불만을 쏟아내고 있는 것 따위는 토박이 아저씨들을 포함해 플로어에 있는 손님들은 누구든지 알 길이 없었다.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미미토와 히나 뿐이었다.
시안은 핸드폰을 치우고는 문득 얼굴이 흐려졌다.
‘하고 싶은 일…….’
어릴 때부터 준비된 삶을 살아왔다.
이 카미조노 진구는 좋아한다.
장래에 신관 일을 하게 될 것도 싫지는 않다고.
어머니는 엄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상냥한 분이시다.
……하지만,
주어진 대로 살기만 하는 인생이 정말로 좋은 것일까?
준비된 길을 걷기만 하는 게 정말로 좋은 인생일까?
……뭐든 다른 걸 해봐야겠다.
주변 친구들이 꿈을 말하고, 좋아하는 걸 말하고, 진로에 대해서 말하는 걸 들을 때마다,
더욱 초조해진다.
점점 불만이 쌓인다.
사실은 난, 그저 인질이 된 몸이 아닐까.
신령님네 아이라며 치켜세워지고, 주어진 길밖에 바라볼 수 없고, 정해진 행동밖에 할 수 없이 스스로 생각할 힘을 빼앗기고 있는걸지도.
그러한 근거 없는 섬뜩한 불안감이 속에서 꿈틀거린다.
그걸 부정하고 싶어서 뭐든 시작하려고 했어.
조금 더 자유롭게, 여러가지를.
그럴 때마다, 꿈에서 신령님을 만난다.
‘무엇이 하고 싶으냐?’고
…….
나는 그 물음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뭔갈 하고 싶어.
하지만 뭘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어.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 하는 것.
나는 뭐가 될 수 있을까.
뭐가 되고 싶은걸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물음을 계속해서 외친다.
……나는 어떤 사람이야?
그런 조급함으로 어떻게 되어버릴 것 같았을 때, 우연히 미미토와 히나를 만났다. 딱히 적극적으로 덴온부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물에 빠지기 직전 우연히 눈앞에 있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이었다.
덴온부가 유행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어.
덴온부는 인기가 있으니까, 하다 보면 있는 그대로 나를 봐주는 사람이 많아질지도, 카미조노 진구 소속 무녀가 아닌 나를 누군가가 발견해 줄지도 몰라.
그러나 나를 봐주고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신사 관계자들 뿐인걸. 그 사람들은 덴온부를 하는 나를 응원해주는 게 아냐. 카미조노 진구 소속 무녀를 응원하고 있는 거야.
“………….”
시안은 무의식적으로 이퀄라이저의 저음을 강하게 비틀었다.
언밸런스한 중저음이 카즈네의 내장을 뒤흔들었다.
“귀엽기는 한데, 어딘가 불안해지는 소리야…….”
“앗, 카즈네 쨩. 이제 그만 돌아갈 시간이에요.”
후타바가 하는 말을 듣고, 카즈네는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정말이구나. 20분은 짧네…….”
계단을 올라 라운지로 돌아오니, 거기에는 손님 네다섯명밖에 없었다. 그것도 폰을 만지면서 시간을 때우기만 할 뿐, 레이나가 플레이하는 디제잉을 듣고 있는 것 같진 않다.
게다가 레이나의 얼굴도 침통해져 있다.
“무슨 일 있었어?”
“아, 카즈네 쨩. 그게……, 주어진 시간이 짧다 보니까, 잘 구성해 내기가 쉽자 않았어.”
“아…….”
레이나는 최신식 DJ 유니트를 조작하는 방법만 익혔을 뿐이지, 아직 STACK 배틀 공식 경쟁전에 맞춘 형식을 배우지는 않았다.
레이나는 아버님인 레이아의 영향으로, 프로그레시브 하우스 트랙을 롱 믹스하는 스타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한 곡마다 시간도 길다. 아무리 짧아도 한 곡당 5분. 10분이나 하는 곡도 드물지 않다. 레이나는 그것들을 연결하는 도중에 기승전결을 만드는, 마치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플레이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20분으로 구성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아쉬워하며 레이나는 카즈네와 교대했다.
카즈네가 ID-J를 DJ 유니트에 대니 Iris에 카즈네의 데이터가 다운받아졌다.
그 중에서 20분에 맞춘 세트 리스트를 호출한다. 한 곡당 시간을 짧게 잡은 쇼트 믹스다.
‘설마 오늘 배틀할 줄은 몰랐는데……. 미리 만들어두길 잘한 것 같아.’
레이나의 마지막 노래에서, 이퀄라이저 손잡이로 저음 부분을 커트. 동시에 자신의 첫 곡을 페이더에 올려서 저음과 고음 이퀄라이저를 돌려가며 아름다운 멜로디를 가진 게임 음악 어레인지 버전이 고개 내밀게 한다.
“아, 맞다! 하라주쿠 쪽을 보러 다녀와! 누구 차례일지는 잘 모르겠는데, 미나카미 히나가 어떻게 플레이할지 궁금했거든!”
이런 카즈네의 부탁으로, 레이나와 후타바는 지하로 내려갔다. 시안의 차례가 끝났기 때문일까, 내려가는 도중에 토박이 군단이 스쳐 지나간다.
그럼에도 지하 플로어에는 아직 스무명 안팎으로 사람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에서 절반은 춤추는 기색 없이 벽에 기대어 스테이지를 쳐다보기만 하고 있었다.
히나는 담담하게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흰 마스크로 코 아래를 가리고 있는 부분이 조금 마음에 걸린다.
움직임도 작고 등이 구부정하다보니, 마치 DJ 부스에 숨는 것 같은 플레이다. 그럼에도 귀여우면서 퓨처감 있는 트랙으로 세트 리스트를 빈틈 없이 채워넣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은 비장의 출연자 미미토.
플로어에는 이제 열 명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도 미미토는 기운차게 호소한다.
“자~ 드디어 세계에서 제일 귀엽고, 거기다 디제잉도 제일 잘하는 사람이 바로 나! 사쿠라노 미미토가 등장했어! 감사히 듣도록 하여라! 나를 떠받들거라!!”
그리고 첫 곡째가 되어, 도대체 무엇을 틀 셈인가, 숨가쁘게 바라보고 있으니.
“?!”
갑자기 소리가 꺼졌다.
정숙하다.
“?!?!?!”
미미토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고 식은땀이 흐른다.
DJ 유니트 위로 손과 시선이 맴돌았다.
그러다 DJ 부스 앞에 진을 치고 있는 팬 네다섯 명은 박장대소.
그 웃음소리에 미미토는 울먹인다.
“아니라구! 이건 일부러 그런 거야!! 연출이었다고!! 알고 있지?! 착각하면 안돼!!”
분개해서 떠들어 대는 미미토가 재미있다는 듯이 더욱 반응이 좋다.
“미미토 쨩 힘내~.”
“신경쓰지 마, 신경쓰지 마. 우리 미미토 정상영업 합니다!”
“오히려 이게 빠지면 섭하지!”
이런 야유가 쏟아지자 미미토는 더욱 벌겋게 달아올랐다.
“시끄러시끄러시끄러~워! 잠자코 듣고만 있으라고오오오오오오!!”
그렇게 겨우 첫 노래가 시작되었다.
카즈네는 쓴웃음을 지었다.
“당연한 전개였네. 자기 입으로는 세계 제일이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실력이 좋지는 않아. 덴온부도 올해 결성된 지 얼마 안 된 것 같고.”
“그런데….”
레이나는 가만히, 스테이지 아래에서 펜라이트를 흔드는 팬을 바라보았다.
“다들 즐겁게 듣고 있어.”
“네……?”
미미토가 선보이는 선곡은 그야말로 귀여움의 왕도. 반짝반짝거리고 귀여우면서 이모셔널한 트랙이 이어진다.
그리고 중반부
“자~ 그래그래. 내 이몸의 오리지널 트랙이야! 감사히 듣도록 해라!”
레이나와 카즈네는 동시에 놀라는 소리를 질렀다.
“카즈네 쨩, 자작곡이래!”
“설마 트랙메이킹도 하는 거야?”
미미토가 등지고 있는 영상에 Princess Memeism라고 문구가 흘러 나왔다.
그것은 미미토의 심정을 너무나도 귀엽게 노래한, 그야말로 미미토의 미미토에 의한 미미토를 위한 노래였다.
“그렇구나. 이게 미미토 쨩이네. 굉장하다…….”
“이제 그만 돌아갈까? 후타바가 걱정되기도 하고.”
하기사 평소대로라면 대폭주하고 있을 터였다. 두 사람은 위층 플로어로 돌아왔다.
하지만 라운지에는 잔잔한 미소로 조용히 플레이를 하고 있는 후타바가 있었다.
“두분 다 다녀오셨나요~. 아무도 없어서 차분하게 플레이할 수 있었답니다♪”
확실히 손님은 한 사람도 없었다.
카즈네는 저도 모르게 천장을 쳐다보았다.
“이렇게 되면…… 지겠는걸.”
예상대로 Iris는 하라주쿠가 이겼다고 판정했다.
“이……이겼나?”
“이겼네요…….”
하라주쿠 세 사람은 감동에 떨고 있었다.
“뭐, 잘못된건 아니지! 우리들이 이긴 게 되는거지!”
“네, Iris가 그렇게 판정했으니까요. 믿을 수가 없지만요.”
“해, 해냈다! 해냈어! 다른 학교와 시합한걸로 첫 승리야!!”
미미토는 히나와 시안의 손을 잡고 깡총깡총 뛰며 기뻐했다.
하지만 아키바에서 온 세 사람이 보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내니, 갑자기 자세를 고치고 폼을 잡는다.
“어때?! 알겠어? 이것이 바로 하라주쿠의 실력이다! 엎드리거라!”
상대에게 패배를 맛보이는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감각에 미미토는 조금 긴장했다.
패배자가 원통해 하는 것을 보며 느끼는 이 우월감. 자신이 대단하다는 것을 확인할 때 느끼는 기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상대를 짓밟는 이 느낌을
“정말 대단했어, 나 정말 즐거웠어!”
“……어?”
레이나는 전혀 분하지 않아보였다. 오히려 웃음꽃이 잔뜩 피었다. 그리고 잔뜩 상기되어 뺨을 물들이고 있다.
그리고 미미토의 손을 잡았다.
“히익?!”
“모두 개성이 있어서 좋았는데, 특히 미미토 쨩이 플레이하는 걸 보고 굉장히 큰 자극을 받았어!”
‘미, 미미토……쨩?!’
상상했던 것과 다른 반응에 미미토는 크게 당황했다.
“괜찮다면 앞으로도 사이좋게 지내지 않을래? 친구가 되고 싶어!”
‘친구?!’
미미토는 몸을 떨면서 레이나의 손을 뿌리치고는 히나, 시안과 얼굴을 맞댔다.
“뭐, 뭐야 이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저도 잘 모르겠네요. 수수께끼예요. 틀림없이 진 데다가 인성질까지 당했으니 한 대 맞을 거라 생각했는데요.”
“……(바들바들).”
소곤소곤 상담하는 목소리가 주섬주섬 새어 나왔다.
아키바 멤버 세 명은 긴장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레이나가 어떻게 다시 미소를 지으면서, 재차 이야기했다.
“그, 그게…… 깊은 뜻은 없는데, 정말로 좋은 시합이었다고 생각해. 나는 너희들이랑 친해지고 싶을 뿐이야…….”
미미토는 의심 가득한 눈으로 레이나를 바라본다.
“진짜로……?”
카즈네도 쓴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정말이야. 우리는 이제 막 덴온부를 시작했으니, 다른 학교와 어울린 게 이번이 처음이야.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 교류하고 싶고, 할 수 있다면 재대결도 하고 싶은걸.”
“……재대결.”
미미토의 머릿속에서 손익 계산 회로가 돌아간다.
다시 대결 했다가 그때 가서 지는 건 싫은데. 한 번 이겼으면 그 뒤로는 도망가고 싶어. 하지만 아키바 하는 실력 같으면 몇 번을 해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이기면 이 기쁜 감각을 몇번이고 더 맛볼 수 있어. 내가 넘버 원, 나는 대단하다, 그런 기분 좋은 걸 더 느낄 수 있는 셈이네!
“좋아! 그 도전 받아주도록 하지!! 세계에서 제일 귀엽고, 거기다 DJ도 제일 잘 하는 바로 나, 이런 내 실력을 몇 번이고 깨닫게 해 줄게!”
이겼답시고 가슴을 쭉 펴고 있는 미미토를 히나는 부끄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한 번 이긴 걸로 잘도 거기까지 우쭐대는군요. 오늘도 실수 투성이였지 않았습니까.”
“그…… 그건 일부러 그런거야! 너무 완벽하면 이겨봤자 시시하기만 하잖아? 게다가 진심을 너무 담아 버리면 너희들 플레이가 딱딱하게 들리니까 대충 해주는 것 뿐이라고.”
“허어?”
히나가 화나 눈썹을 찡그렸다. 시안은 표정을 바꾸진 않았지만 핸드폰을 꺼내고 뒷계에 엄청난 기세로 글을 써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미토의 핸드폰이 진동한다.
미미토와 히나는 시안이 글을 쓸 때마다 알림이 오도록 설정해 놓았다.
미미토가 자기 핸드폰 화면을 보니
등장하기만 해도 사람들이 빵 터지는 울보 토끼가 말인지 막걸리인지 모를 소리를 해대니까 개웃겨. 초장부터 끊어먹기나 하고 말야ㅋㅋㅋㅋㅋㅋㅋㅋ 여윽시 세계 최고의 디제이
“그러니까 그건 연출이었다고! 그리고 너는 또 말야, 뭐야 그 아저씨 집단! 하나도 안 귀여워서 이쪽 세계관 붕괴 위기거든요! 전통인지 뭔지 나는 잘 모르긴 한데, 아무리 봐도 사용감 가득한 낡아빠진걸 이곳으로 갖고오지 말아주겠어?!”
그러자, 드물게 시안이 발끈한 표정을 지었다.
ㄹㅇ개짜증 미미토도 토박이 아재들도 전부 짜증나 전부 다 짜증나 없어져버려 사라져버려 꺼져 버려
아키바 세 명은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 알 수가 없다. 그저 험악한 분위기만 전해져 오고 있다.
“크……윽. 너, 너희들 정도는 말이야, 그냥 인원수 채우려고 넣어준 것뿐이니까! 덴온부는 세 명이 있어야 할 수 있다니 이 몸이 특별히 하잘것없는 너네들을 보살펴주는 셈 치고 들여준거라고!”
“윽?!”
히나와 시안의 안색이 변했다.
“……아.”
그순간 미미토의 얼굴에도 ‘아차.’ 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예 그러신가요. 저도 원래는 하기 싫었는데요. 지금이 기회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럼 이만.”
히나는 굳은 표정으로 소토칸다 세 사람에게 인사하고는 출구로 향했다.
“내…내일 회의 있으니까! 동아리방으로 와줘! 와 주는 거야!”
미미토가 부르지만 히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났다. 그리고 시안도 가방을 어깨에 메고는 말 없이 걸어간다.
“시, 시안? 저기…….”
허나 시안은 흐트러짐 없이 정면을 바라보며 나갔다.
홀로 남은 미미토는 허탈해져 아래쪽 구석만 바라보고 있다.
레이나 일행이 말을 걸어도, 대답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