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주쿠와 시합이 있고 난 다음날.

소토칸다 문예 고등학교 덴온부 동아리방에 레이나와 카즈네, 후타바 세 사람이 모여 있었다.

“첫 시합이었으니까 진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하지만 이걸로 아무것도 얻어간 게 없다고 생각하는 건 좋지 않아. 그러니까 지난 시합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그래…… 그런데 하라주쿠 부원들은 모두 정말 즐거운 플레이를 보여줬어. 굉장히 자극을 받아서 의욕이 샘솟더라!”

“그건…… 졌으니까 분하다는 뜻인가요?”

후타바가 던진 질문에 레이나는 ‘으음.’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분하다면 분한 건데……, 그보다는 하라주쿠 모두가 플레이하는걸 듣다 보니 새롭게 득음했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득음……이라고요?”

“그냥 내가 미처 모르고 있었다, 정도밖에 안 되긴 한데 말이지.”

하며 레이나는 머쓱해져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그 덕분에 나도 새로운 소리에 도전해 보고 싶어졌어.”

카즈네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인즉슨 하라주쿠 스타일을 지향하겠다는 소리?”

“그게 아니고…… 그, 노래를 부른 걸 쇼트 믹스 해보고 싶어!”

납득한 후타바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확실히 레이나 씨가 선곡하는 노래는 보컬 없는 노래가 많았었죠.”

카즈네도 레이나의 유연한 사고력에 감탄하고 있다.

사실은 앞으로 STACK 배틀을 하는 데 있어서 레이나가 해결해야 하는 숙제 중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떻게 레이나에게 말을 꺼낼지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래도 괜찮겠어? 스타일을 바꾼다는 거.”

“이제 프로그레시브 하우스가 싫어졌다는 말은 아니야. 새로이 좋아하게 된 것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이었어. 좋아하는 것을 만나면 두근두근하고 ‘우와~.’ 하는 느낌으로 흥분해서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되잖아!”

후타바는 홀린 눈으로 레이나를 바라보았다.

“레이나 씨는 그릇이 큰 분이시군요.”

“아니면 그냥 새로운 게 좋거나.”

그렇게 세명 일동 웃음.

“그래서, 마음에 드는 트랙은 찾았니?”

“이것저것 찾고는 있는데, 귀여운 부분이 그닥 많지는 않아도 괜찮으니까, 역시 클럽 트랙 느낌이 물씬 풍기는 게 좋겠지. 그러면서도 밝고 해피하면서, 발랄하게 댄스뮤직으로 춤추게 되어버리는, 그런 느낌인 노래!가 좋을 것 같기는 한데……. 아직 이거다! 싶은 걸 찾진 못했어.”

레이나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던 후타바는 문득 떠올린 것을 말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곡을 스스로 만들어보는 쪽은 어떠세요?”

“내, 내가 직접?!”

“그치. 후타바는 손수 곡을 쓰곤 했었지. 전에 아이돌 광전사(Idol Berserker)도 그렇고.”

“네……에에에?! 뭐, 뭐예요 그 제목?!”

깜짝 놀란 후타바에게 카즈네는 인터넷에 올라가 있는 비디오를 보여준다.

“교내 파티를 찍은 동영상이 올라와서 꽤나 화제가 되고 있어. 후타바가 쓴 자작곡은 보통 제목을 안 지어놓으니까, 비디오에 설명을 다는 사람들이 임의로 제목을 지어 놓거든. 그런 노래 중 하나가 〈아이돌 광전사(Idol Berserker)〉.”

“그, 그런 게……. 제 이런 모습이, 세상에나……. 게다가 광전사라니……. 제가…….”

세상의 종말을 맞이한 얼굴을 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재생 수도 순조롭게 불어나고 있어. 막 만들어진 소토칸다 덴온부 홍보용으로는 그야말로 최고지.”

“……최악인데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후타바였다.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레이나가 벌떡 얼굴을 들었다.

“후타바 쨩이 말한대로 트랙메이킹에 도전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미미토 쨩도 스스로 만든 곡을 틀고 있는 것 같아서 좋아 보였거든!”

미미토란 이름이 나와서 보니, 레이나의 머릿속에는 그 파티 이후에 일어났던 싸움이 떠올랐다.

“하라주쿠 친구들, 괜찮은걸까?”

“걱정하는 것도 이해는 하는데, 지금 우리 코가 석 자잖니?”

“응. 작곡 해야지! 일단 해 볼게!”

“아니, 중간고사.”

“……?!!!”

레이나는 삐질삐질 진땀을 흘렸다.

“도,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좋은 성과를 남기면 성적이 별로 안 좋아도 용서해 준다고 하던걸…….”

“그렇기는 한데, 우리는 일궈낸 성과랄 게 아직 없는걸.”

“……그렇네요.”

“시부야에 있는 톱 플레이어는 일반 과목 수업을 아예 듣지 않아도 된다더라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

“카즈네 쨩은 여유있어 보이네…….”

“그렇지도 않아. 최근에는 덴온부를 하느라 바빴고……. 전교 1등은 힘들지 않을까 싶어.”

고민하는 수준이 레이나와는 달랐다.


그리고 레이나는 시험기간을 이겨냈다.

카즈네와 문답을 열심히 한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낙제점은 피할 수 있을 전망이었다. 마음 속으로 안심했다.

그리고 지금, 레이나는 시험이 끝난 휴일을 이용해 작곡에 도전하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자기 방에서 프라모델을 만들고만 있다.

1/100 리얼 로봇 파츠를 런너에서 분리해내, 줄로 절삭면을 다듬는다. 그리고 난 뒤 조립.

“프라모델이라면 간단하게 조립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야…….”

이미 레이나 머릿속엔 어떤 이미지로 곡을 구성할지 다 완성해 놓긴 했다.

하지만 그것을 조립하려 해도 파츠라고 할 만한 게 없다.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건반악기를 치거나 기타를 치면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레이나는 악기를 잘 다루지 못하고 악보 쓰는 법도 모른다.

“아~, 진짜! 어쩌지?!”

그때 문을 노크하는 소리에 이어, 다박수염을 기른 40대 남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레이나, 잠시 심부름 좀 다녀오지 않겠니.”

“응……. 저기 아빠. 작곡 해 본적 있어?”

“무슨 일이니?”

레이나가 사정을 말하자, 레이아는 다박수염이 난 턱을 어루만지며 끙끙거렸다.

“그랬구나……. 그렇다면 이 아빠보다 더 맞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분을 소개시켜주지.”

“진짜?! 아빠 고마워!!”

그렇게 되어서,

다음날 레이나는 소개받은 상대를 찾아갔다.

‘진짜…… 여기 맞아?’

레이나 앞에는 고층 오피스 빌딩이 우뚝 솟아있다.

‘분명 동네 아저씨 정도겠거니 생각했는데…….’

전철 야마노테 선(山手線) 타마치 역에서 잠깐 걸어갈 거리. 에어리어로 보자면 아자부 에어리어가 되겠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에 다시 한 번 압도당했다. 모든 것이 세련되고 품위있고 호화로웠다.

굉장히 엉뚱한 곳에 와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어, 레이나구나. 많이 자랐네.”

“……예?”

회색 머리를 한 미남이 말을 걸었다.

“하하하, 전에 만났을 때는 아직 걸음마를 떼고 있었을 때니까 말야. 내가 하이지마 후가야. 레이아한테서 이야기 많이 들었단다.”

아빠 친구라고 해서 비슷한 아재겠거니 생각했는데 예상과는 딴판이었다. 단정하게 정리한 머리. 다박수염이라니 당치도 않다. 깔끔하게 입은 정장은 분명 해외 명품 브랜드임에 틀림없다.

“죄, 죄송해욧, 기억이 나지 않아서요. 아, 그리고, 바쁘신 와중에 정말 죄송합니다.”

굽신굽신 고개를 숙이는 레이나에게 후가는 상냥하게 미소지었다. 그리고 20층 사무실로 안내받으면

“여기는…….”

음악 스튜디오였다.

아늑한 분위기 속에 디자인에 공을 들인 비싸 보이는 소파가 늘어서 있다.

방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믹서 수십 대가, 그 너머 유리창으로 보컬 녹음 부스가 보인다.

“작곡 때문에 고민 중이라고 하던걸?”

“아……. 네. 저기, 여기 완전 프로들이 작업하는 공간……인 거죠?”

“그렇지? 내 스튜디오니까……. 어? 레이아가 아무 말도 안 했어? 설마.”

레이나가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이자, 후가는 골치아픈 듯 이마를 눌러댔다.

“정말이지 그 양반은……. 이것 참 미안하게 되었구나. 나는 음악 프로듀서를 하고 있어. 원래는 DJ를 하고 있는데, 리믹스나 트랙메이킹도 하고 있거든. 레이아하곤…… 뭐 그냥 오래 알고 지낸 사이지.”

‘프로듀서…… 하이지마 씨?’

생각해보니 아티스트 여러 그룹에 곡을 주고, 프로듀싱까지 해 주면서 잔뜩 대박을 쳐내는 프로듀서가 하이지마 후가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본인도 뮤지션으로서 댄스 뮤직계에 있어 명곡이라 불릴 노래를 몇 곡이나 낸 적이 있다. 레이나도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 있다.

“저……. 혹시 하이지마 씨는, 그 괴괴굉장히 유명한 하이지마 후가 씨….”

“하하하, 유명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풀 네임을 기억해 주니 기쁘네.”

“아이고야! 죄, 죄송합니다. 아버지가 설마 이런 거물 프로듀서한테 저같은 애 고민을 상담시켜 주실 줄은…….”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몇 번이나 사과했다.

그러나 후가는 의외라며 두 손을 흔든다.

“사과할 필요 없단다. 그보다 네 이야기를 들려주겠니. 너를 한번 만나보고 싶었거든.”

그렇게 재촉을 당하며 레이나는 작곡하다 생긴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렇구나. 잠시만 기다려 보렴.”

잠시 자리를 비운 뒤에, 서류 가방을 들고 온 후가는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펼쳐놓는다.

그 안에는 버튼 여러 개와 다이얼, 디스플레이가 늘어선 네모난 상자가 들어 있었다.

그 메카같은 디자인이 레이나의 로봇 사랑을 크게 자극했다.

‘멋있다…….’

“이건 ‘아트로포스’라고 부르는 음악 제작 시스템인데, 이거 한 대로 트랙메이킹을 할 수 있어. 프라모델을 좋아하니까 머릿속에서 음악을 파츠처럼 조립할 수 있는데 그 파츠의 형태는 만들어낼 수 없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레이나에게 딱이라고 생각해.”

“이걸로 작곡을 할 수 있나요?”

“그렇지. 이 안에 이 스튜디오가 가진 기능이 한데 담겨 있는 것과 같아. 악기도 말이지.”

“악기도요?!”

“요녀석은 DJ 유니트처럼 Iris에 연결되어 있어. Iris에는 작곡을 지원하는 시스템도 있는데, 이 ‘아트로포스’는 그 기능을 사용하기 위한 단말기란다.”

“그러니…… 이 기계로…… 작곡을 도와주시겠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런 뜻이 되는거지. 음악 이론 같은 건 몰라도 괜찮아. 직감과 센스를 사용해서 곡을 만들 수 있어. 음악 소재도 쓰다가 부족할 일이 없을 정도로 넉넉히 탑재되어 있단다. 이렇게 사전에 준비된 파츠를 타임라인에 맞춰 조립하는 되는거야.”

“파츠를요……?”

레이나의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쓰고 싶은 노래의 장르나 만들고 싶은 분위기를 지정해 주면 추천하는 리듬 패턴과 코드 진행을 알려주는 식으로 여러가지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요즘 잘 나가는 음악 트렌드나 목표로 삼은 청중들을 분석하는 것도 되기는 한데…… 일단은 먼저 노래를 만들고 완성시키는 것부터 해야겠지?”

“네! 굉장해요! 이거라면 저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하하하, 기대가 되는구나. 아, 그런데 여기에 보컬은 탑재되어 있지 않다 보니까, 시간이 있을 때 여기 와서 녹음해도 되긴 한데…….”

“그, 그그, 괜찮아요! 노래는 학교 더빙녹음 스튜디오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럼 완벽하네.”

후가는 빙긋 웃으면서 케이스 뚜껑을 닫고는, 레이나에게 건넸다.

“그래도…… 괜찮으신가요? 저한테 이런 걸 빌려주셔도….”

“응? 그냥 주는 건데.”

“그, 그런가요?! ……그치만 받을 수 없어요! 이런 비쌀 것 같은 물건을 이렇게 선뜻…….”

떨떠름해 있는 레이나를 보며 후가도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으음……. 레이아에게 말을 전해주는 걸로 퉁치자꾸나. 슬슬 그 녀석이 귀국하니까. 이번에는 셋이서 마시자고 전해다 줘.”

“……그 녀석이요?”

도무지 수지가 안 맞는 거래인데다가, 전달라는 메시지 내용도 도통 무슨 뜻인지 레이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면 이걸로 거래는 성사되었군.”

얼타고 있던 사이에 강매당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