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히다카 미츠키.

어머니는 이름난 피아니스트. 아버지는 DJ인 말그대로 음악인 집안.

이라고는 하지만, 아버지의 본업은 비행기 정비사다.

비행기 정비 솜씨는 잘 모르지만 DJ로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내가 철이 들 무렵에는 대외적으로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EDM 세계에서 전설 속 DJ라 불리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집안에서 조촐하게 파티할 때 턴테이블과 믹서를 만지는 것밖에 기억하지 못하는걸.

언제 한번 아버지에게 물어보았다.

왜 DJ를 그만두었냐고.

“그만둔 게 아니란다. 이렇게 가족들 앞에서 하고 있잖니.”

내가 묻고 싶었던 건 그런 게 아니었다. 프로처럼 큰 무대에 서서, 많은 관중들 앞에 서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자유롭게 음악을 하고 싶었거든.”

자유?

“나는 누가 시키는 음악따윈 하지 않을 거란다. 일에 시달리게 되면 몸 이곳저곳에 여러 문제가 생겨 버리고 말지. 하면 할수록 제약만 늘어가고 점점 짊어져야 할 것들이 늘어나버려. 좋아한다고만, 하고 싶다고만 해서 어떻게 될 일이 아니야.”

아버지는 괴로워하며 말했다.

“음악은 나한테 있어 아주 소중한 일이야. 그러니 음악만큼은 자유롭게 하고 싶어.”

어머니의 표정이 구겨진다.

“그건 도망치는 것밖에 안 되잖아.”

“일처럼 했다가는 좋아하지 않는 일까지 떠맡게 되어버려. 그래선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없게 된다고.”

“당신도 이제 투정 부릴 때는 지났잖아. 이제 다 큰 어른이면 조금은 생각해 보라고. 비행기 정비사 일도 언제 잘려버릴지 모르잖아?”

“이런 짓 계속했다간 음악이라면 다 싫어져 버릴지도 몰라. 그리 될까봐 무섭단 말야.”

“재능도 기회도 있는 사람이 도대체 왜 그냥 썩혀두는거야?”

그 후부터 아버지와 어머니는 언쟁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아주 화목한 가족이었는데.

나는 우리 가족이 좋아.

이 집이 좋아.

아버지도 어머니도 동생도 좋아.

맞다. 나 쌍둥이 동생이 있어.

외모도 성격도 많이 달라, 별로 안 닮은 쌍둥이야.

동생은 나보다 성적이 나빠. 학교 점수도로 칭찬받은 적은 없긴 하지만, 뭣보다 음악적 재능이 하나도 없어.

그 무렵부터 나와 여동생은 어머니한테서 클래식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했어. 어머니는 나를 엄청 칭찬해주셨어. 나도 내가 재능 있는 사람이란 확신이 들었지.

한편 동생은 안타까울 정도로 재능이 없었어. 잘 하지도 못하면서 실력이 늘어날 기미도 안 보였지.

어머니는 일찌감치 내 동생한테서 기대를 접어버렸어.

그래도 애가 성격이 밝고 긍정적이라서 다행일까. 아니, 머리가 좀 모자라서 말귀를 제대로 못 알아듣는걸지도 모르지.

아버지도 내 동생도 어머니가 품은 기대에 따라 주지 않아.

어머니한테는 나밖에 없었어.

어머니가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면 언성이 높아져도 곧 가라앉아. 어머니가 불만을 터트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

하지만 그건 거꾸로 말하면 내가 열심히 안 하면 가족이 뿔뿔히 흩어지게 되어버린다는 뜻이겠지.

내가 이 가족을, 이 집을 지키고 있는거야.

어머니가 품은 기대에 따라, 아니 그 기대 이상으로 결과를 가져오면 집 분위기는 평화로워져. 동생이 음악을 더 강요당할 일도 없어.

못하는 일을 억지도 시키면 괴롭잖아.

동생은 음악 말고 다른 길을 찾아가면 돼.

아버지와 어머니의 음악적 재능은 내가 다 물려받았어. 그래서 음악인으로서 길은 나 혼자서만 걸어가도 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

하지만 그날.

초등학교 시절, 음악 발표회가 있던 날.

나는 충격을 받았다.

각자 자신있는 악기를 사용해서 아무렇게나 연주를 해 보이면 되는 거였어. 나는 이미 콩쿠르에서 몇 번이나 우승을 휩쓸었으니까, 말 그대로 애들 장난밖에 안 되는 일이었지. 어째서 내가 이딴 곳에서 연주를 해야 하나, 그런 불만밖에 없었어.

그래도 나는 음악실 피아노로 연주해 냈어. 소리도 제대로 안 나오는 피아노였지만 최선을 다해 쳤어. 반 친구들에게 내 실력을 제대로 보여줄 생각이었어.

하지만 다 치고 나니 다들 따분해하는 얼굴만 보였지 뭐야.

연주 초반에는 ‘잘 친다.’같은 유치한 감상이 들려오긴 했는데, 중반부터는 아무 말도 없었어. 내 연주에 감동해서 말을 잇지 못하는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야.

곧바로 싫증나버린게지.

나는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아주 배알이 꼬일 뻔 했어.

스스로 마음 속으로 되뇌었지.

이 자식들은 음악을 들을 자격조차 없는 애들이구나.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식과 교양이 필요해. 그 차이를 알아듣는 감수성도 필요하고.

선택받은 사람들만 그 차이를 알아듣고, 그 뜻을 알아듣고, 즐길 수 있어.

아무리 훌륭한 음악이라도 듣는 사람이 무능하면 쇠 귀에 경 읽기고,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야. 보물을 썩혀 내버리는 짓밖에 안 돼.

겨우 평정심을 지키고는 자리로 돌아왔어.

하지만 곧바로,

다시 내 마음을 어지럽힌 일이 일어났어.

동생이 카세트 라디오 두 대를 꺼내 디제잉을 시작했어.

절망적으로 악기가 서툰 동생이 뭐라도 해볼 만한 방법이겠지.

나한테는 얘가 어떻게든 발버둥치는 걸로 보였거든.

재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내 동생이 어떻게든 발표 자리에서 뭐라고 해내려 노력하는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 아니겠어.

그랬어야 했던 건데,

반 친구들이 동생이 틀어놓은 노래에 환호성을 질러대고 뒤집어지기 시작했지 뭐야.

나는 그 열광의 도가니 한가운데에서, 혼자 멍하게 있었어.

마치 홀로 남겨진 사람처럼.

내가 빚은 소리는 반 친구들에게 닿지 않았어.

하지만 내 동생이 빚은 소리는 닿았지.

사람을 기쁘게 해 주었고, 열광하도록 만들었어.

그때 내 기분을 뭐라 표현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어.

인정받지 못해서 아쉬웠던 걸까.

불합리한 일을 겪어서 서러웠던 걸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향해 화가 났던 걸까.

반 아이들의 박수갈채를 받은 동생이 나에게 다가왔어.

꼬리를 흔들며 달려오는 강아지처럼.

뭔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웃음짓고는.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용암처럼 검붉은 것들이 흘러나와 마음 속을 휩쓸기 시작했어.

나는 레이나에게 거리낌없이 말했다.

“그딴 걸 음악이라 할 순 없어.”


그러고 얼마 안 가 부모님은 이혼.

어머니를 따라 온 나는 히다카 미츠키에서 세토 미츠키가 되었어.

아버지는 레이나를 데리고 집을 나섰고.

그 뒤로 어머니가 기대치를 점점 높이기 시작했어. 이미 가족이 반으로 갈라진 뒤였지만, 나는 어머니가 계속 기대를 높여감에도 계속 그 기대를 따랐어. 콩쿠르를 여러 번 휩쓸었어.

어머니는 마음이 아주 섬세한 사람이야.

이제 어머니에게 버팀목이 될 사람은 나 혼자뿐이야.

나는 어머니에게 희망이 되어주지 못한, 어머니와 나를 버린 아버지를 원망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가 버린 레이나도 미워하기 시작했어.

그래도,

분명 아버지도 레이나도 사실은 다 같이 살고 싶다고 생각할 거야. 지금은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르겠어도, 내가 열심히 하면 언젠간 거기에 내 소리가 닿을지도 몰라.

그러면 다시 모든 게 원래대로

하지만 어머니는 차츰 우울해지는 일이 많아지기 시작했어.

얼마 가지 않아 콘서트를 열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고, 의사가 권유한 걸 받아들이고 해외로 요양을 떠나버리셨지.

원래대로 되어버리긴커녕 완전히 산산조각 나 버렸다.

이제 우리 집에는 나 혼자 뿐이야.

한때 시끌시끌하고 따스함으로 가득 차있던 집.

이제는 텅 빈 싸늘한 집구석.

추억만이 망령처럼 떠도는 깊은 바다에 잠긴 무덤같았다.

아버지와 레이나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나랑 어머니는 지금 이렇게나 힘들어하고 있는데.

분명 두 사람도 지금 엄청 괴로워하고 있을 거야.

나는 어딘가 의지하는 마음으로 인터넷을 검색했어.

검색해서 찾아낸 동영상은 홋카이도에서 열린 야외 페스티벌.

거기서 아버지와 레이나가 디제잉하는 모습을 찾아냈어.

많은 청중 앞에서 둘이서 번갈아가며 턴테이블을 돌리고 있었어.

둘 다 얼굴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고 있더라. 같이 살았을 때도 이렇게 해맑게 웃는 모습은 본 적 없었어.

그리고 열광하는 사람들.

내가 나간 콩쿠르와 발표회보다 몇 배, 아니 수십 배는 됐으려나.

드높이 솟은 하늘에 흰 구름이 지니가고 있어.

여기까지 풀 냄새가 전해질 정도로 아름다운 초원과 숲과 나무.

저절로 눈물이 났어.

어째서야?

어쩜 그렇게 즐거울 수 있어?

나는 이 싸늘한 집구석에 혼자 있는데.

나는 이렇게나 괴로워하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나 고통받고 있는데.

나는 벌써 어떻게 웃는지도 다 잊어버렸는데.

어쩜 그렇게 고민 한 점 없이 밝게 웃을 수 있어?

울어버리고 말았어.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하고 난 뒤 처음으로 울어버리고 말았어.

마음 속에 뭔가가 부서져버린 것처럼 울어버리고 말았어.

땅을 치며 울어버리고 말았어.

나 혼자서 소중히 생각하고 있으면 뭐 하냐고. 다들 언제 그랬냐며 이젠 알아서들 잘 살고 있잖아.

손이고 손가락이고 소중히 여겨 왔는데, 이젠 다쳐도 아무 상관 없어. 손이 부서져라 땅을 마구 치며 울어버리고 말았어.

몸 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끓어오를 정도로 뜨거운, 그리고 내 마음을 전부 태워버릴만큼 진한 불꽃.

이게 진짜 분노구나.

아버지가 미워.

레이나가 미워.

이젠 어머니도 미워.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원흉인 DJ가 미워.

헤드폰을 머리에 끼고는 귀를 막았어.

노이즈 캔슬링이 진공과도 같은 정적을 만들어냈어.

그렇게 한들 마음이 미쳐 날뛰는 소리는 없앨 수 없었어.

“전부 다 없어져버리면 좋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