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com Entertainment STACKBATTLE LEGEND,

통칭 뉴 레전드.

순수하게 STACK 배틀만 벌어지는 대회가 아니다. DJ 장비를 비롯해 음향기기를 만드는 뉴컴엔터테인먼트가 주최하는 행사다.

뉴컴 사에서 만든 신제품을 발표하고 선전하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지만, STACK 배틀도 함께 진행한다.

토너먼트가 아닌 한판 승부로, 갖가지 계산 끝에 대전표가 짜여졌다.

지금은 상업적인 의미가 강한 행사이지만, 맨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제 1회 STACK 배틀 세계대회에서 시작된 이벤트로 그 뿌리가 아주 깊다. 뉴컴에게도 아주 중요한 이벤트고, DJ들에게도 전설적인 이벤트다.

그런 뉴 레전드까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이날, 대회장으로 쓰일 국립 요요기 콜로세움에는 소토칸다 문예 고등학교와 테이온 국제 학원이 언론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스테이지 위로 책상과 의자가 나란히 놓여 있고, 아키바와 시부야 양측 학교에서 온 덴온부 여섯 명이 한 줄로 앉아 있다. 그 앞을 에워싸는 백 명이 넘는 취재진.

그런 레이나조차 얼굴이 웃음을 머금고 굳어버릴 정도로 긴장했다.

“괴, 굉장하다…….”

“큰 대회잖니. 사람들이 엄청 주목하고 있는데다가 최강 시부야와 무명 아키바가 싸우는 구도도 재미있어 보여서 괜히 더 그런 것 같아.”

카즈네는 긴장하지도 않고 기자가 한 질문에 술술 대답해냈다. 그 대신 레이나는 잔뜩 긴장해버려 엉망진창으로 대답해 대회장에 큰 웃음을 선사했다.

그리고 후타바는

“이예에~ 이렇게 커다란 대회장이라니, 텐션 떡상해버려어~ 다들 꼭 내 스테이지에 보러 와 줘야 해☆”

카메라에 아이 컨택하며 더블 피스.

취재진을 앞에 두고 평상시 후타바의 모습은 벌써 무의식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 대신 아이돌 후타바의 인격이 드러나버려 어떻게 보면 무적이 된 셈이다.

기사로 쓰기 좋은 그림이 나오자 취재진들도 만족하는 것 같았다.

그 다음은 최강 시부야 차례.

“세토 미츠키 씨에게 묻겠습니다. 대전 상대로 만날 아키바 에어리어 히다카 레이나씨와 사실 친자매, 거기다 쌍둥이라는 소문이 있는데요…….”

연예 뉴스 사이트 기자가 한 질문에 온 대회장이 술렁거렸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자매끼리 맞붙는…”

“그런 질문 해봤자 아무런 의미 없잖아?”

날카롭게 베어내는 목소리로 기자가 던진 질문을 썰어버린다.

질문을 한 기자는 미츠키의 눈빛에 압도당해 할 말을 잃었다.

당장이라도 사람을 죽일 것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대답할 가치도 없어. 시시한 질문이야. 역시 DJ 이벤트는 취재진들 질문 수준도 낮은 것 같네.”

대회장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진다.

미츠키는 힘차게 일어나서는 정적 사이를 뚫고 나가버렸다.

그 뒷모습을 레이나가 걱정스럽게 시선으로 쫓아간다.

“……언니.”

정신을 차린 기자가 황급히 그 뒤를 쫓아갔다.

대회장은 어수선해졌지만 사회자는 얼마 뒤 정신을 차렸다.

“어……. 그러면 다음으로 넘어가서, 테이온 국제 학원 1학년, 카이가 루키아 씨.”

“네~엡.”

손등이 덮일 정도로 긴 소매를 들어올리며 루키아가 활기차게 대답했다. 사회자는 그런 루키아가 귀여웠는지 미소를 참지 못한다.

“이번 뉴 레전드에 품고 갈 포부를 들려주시겠습니까?”

“내 포부는 언제나 똑같애! 배틀 할 수 있으니까 기~대된다~!!”

어린아이같은 대답. 그 대답이 앳된 외모에 더해져 삭막해졌던 대회장 분위기가 완전히 풀렸다. 기자들도 모두 흐뭇해하는 것 같다.

“대답만 들어도 참 든든하네요. 루키아 씨는 STACK 배틀을 정말로 좋아하시나봐요.”

“응, 좋아! 사냥하는 거 너무 재미있어!”

사회자의 등골이 오싹 떨렸다.

귀엽기만 했던 루키아의 눈빛이 한순간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사회자는 눈을 깜빡거리고는 얼굴 근육을 써 가며 웃음지었다.

“어……. 그럼……. 이번 대전 상대인 아키바에 대해…….”

“아키바? 그게 뭔데~?”

“예? 그게…….”

사회자는 억지로 웃음짓느라 얼굴에 쥐가 날 뻔했다. 농담으로 저런 소리를 하는걸까? 분명 그럴 거라며 속으로 외쳤다.

“이번 뉴 레전드 대전 상대 아키바 에어리어 소토칸다 문예 고등학교 분들 이야기입니다.”

“걔네들 잘해?”

사회자는 난처한 눈빛으로 아키바에서 온 세 사람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을 따라간 루키아는 아키바 세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쟤네들이야? 별로 맛없어보이는데~.”

너무 자유분방한 대답.

그리고 인터뷰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되지도 않는다.

사회자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말해두겠는데, 루키아한테 제대로 된 대답을 기대할거면 포기해.”

몸을 뒤로 기대고 앉아있던 카린이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예?”

“얘는 그냥 먹잇감 냄새에 이끌려서 여기 온 것 뿐이고.”

“아, 아하하, 먹잇감이라니……. 과자 같은 거 말씀이신가요? 그런 걸로 이끌려 왔다니 좀 귀여우신 것? 같네요.”

사회자가 어떻게든 대화를 따라가보려 노력하는 모습을 카린은 전혀 신경써주지 않는다.

“먹잇감은 STACK 배틀 상대를 말해. 이 녀석은 전투광이야.”

카린의 목소리에 반응한 루키아가 갑자기 의자에서 튀어올랐다.

공중에서 빙그르르 돌고는 카린이 앉은 자리 바로 앞 테이블 위에 고양이처럼 착지했다.

“역시 루키아 카린이 좋아! 함 뜨자 카린! 지금 이 자리에서!!”

루키아는 번득번득 빛나는 눈으로 카린을 바라본다. 그것은 사냥감을 바라보는 포식자가 가질 법한 눈빛. 입에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는 송곳니가 엿보인다. 그렇게 웃는 입가에는 금방이라도 침이 흘러나올 것 같았다.

“저, 저기 루키아 씨. 그러시면 안돼요. 테이블 위로 올라…….”

사회자가 제지하자 루키아는 희번득한 눈빛을 그쪽으로 돌린다.

“좀 닥쳐 임마.”

“……윽!?”

이번에는 루키아가 또렷하게 사회자에게 살기를 내뿜었다.

그 표정에는 더이상 귀여움을 찾아볼 수 없다.

어딘가 흉포하면서도 사냥하고자 하는 본능.

“루키아 방해하면 잡아먹어버릴거야?”

송곳니를 드러내고는 흉악하게 웃는다.

그 자리에 있던 취재진들은 루키아가 정말 사회자의 숨통을 끊어버릴까봐 몸을 움츠렸다. 그만큼 루키아는 진짜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사회자가 물러서자, 루키아는 무섭게 웃는 얼굴을 다시 카린에게 들이민다.

“역시 다른 적들보다는 카린이 최고야! 루키아, 카린을 쓰러트리고 그 플레이를 먹어치우고 싶어! 그래도 돼?!”

금방이라도 물어뜯을 기세로 달려드는 루키아를 바라보며 카린은 콧방귀로 대답했다. 루키아가 내뿜는 살기는 산들바람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쓰러트린다니? 네녀석이 할 수 있을 것 같아, 루키아?”

루키아는 다시 얼굴을 가까이 대고 아주 가까이 카린을 노려보았다.

“할 수 있어!”

맹수 같은 눈동자를 카린도 눈빛으로 맞받아친다.

“나한테서 이겨본 적도 없으면서 말이지.”

“아하하하하! 그렇게 옛날 이야기는 하나도 기억 안 나!!”

번쩍번쩍거리는 눈동자에 광기가 차오른다.

“그때보다 루키아 강해졌어! 이번에는 카린을 울려볼테야!!”

“입만 살아서는. 동물의 왕 흉내나 내는 캣초딩 주제에.”

“루키아 역시 치킨 언니 사냥해볼래.”

죽일 듯이 서로 노려보기만 하는 눈싸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긴장하며 몸을 떨었다.

“글쎄다~. 아키바 녀석들 쓰러트리고 오면 한 번 생각해볼게.”

“진짜로?! 앗싸아~!!”

루키아는 눈을 반짝였다. 펄쩍펄쩍 높이 뛰어다니면서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갑자기 맹수가 귀여운 아기고양이로 변한 것 같다. 루키아는 테이블 위로 달려가며 아키바에서 온 세 사람 앞으로 미끄러지고, 레이나 일행은 무심코 자세를 움츠렸다.

“야 니네들, 루키아와 배틀하자! 지금 당장! 어서 어서 어서!!”

“그, 그게……. 배틀은 며칠 뒤에…….”

“못 기다려, 못 기다려, 못 기다려! 지금! 지금 여기서 바로 하자!!”

그 모습을 보다 못한 테이온 교직원들이 달려와 루키아를 붙잡았다.

“루키아한테 뭐하는 짓이야?! 당장 불어! 당장 안 불면 니네들 다 잡아먹어버릴테다!!”

결국은 네 사람이 달라붙어 루키아를 회의장 바깥으로 연행해간다.

멀어져 가는 루키아가 우렁차게 외치는 것을 들으며 카즈네는 지친 목소리로 속삭인다.

“저게 테이온 3인자…….”

테이온은 덴온부 그 정상에 군림하는 명문 고등학교. 하지만 그 학교를 대표하는 자들의 실체는, 이름만 듣고 상상한 것과 거리가 멀었다.

미디어에서 제어불능이라는 소문이 들리는 호오 카린이 아직까지 멀쩡해 보인다. 이제는 그 카린 차례가 되었다.

그 카린은 귀찮아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면 이제 나도 간다.”

역시 이쪽도 지나치게 제맘대로 행동하는 느낌이다.

“기, 기다려 주세요! 이제 카린 씨 인터뷰할 차례인데, 그게……. 역시 시부야 테이온이시네요. 상식을 뛰어넘는다고나 할까요? 팀 동료들끼리도, 그……, 함께 실력을 갈고 닦는 사이인 거죠?”

사회자가 어떻게든 좋은 방향으로 이야기를 매듭지으려 했다. 하지만 카린은 사회자가 하는 말을 듣고는 얼굴을 찡그린다.

“어? 뭔 소리야. 동료라니.”

“……어, 그, 그러니까, 같은 팀에서…… 팀워크 같은…….”

“그딴 건 없어.”

카린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테이온에는 동료도 팀워크도 필요 없어. 필요한 건 하나만 있다.”

카린이 눈을 번쩍 빛내며 레이나를 바라본다.

“제일 강한 적만 있으면 돼.”

레이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카린은 곧바로 시선을 사회자로 돌린다.

“제일 가까이 있는 놈들이 제일 위험한 적. 그렇기에 시부야는 최강이 되었다. STACK 배틀은 팀전이지만, 상대한테서 안 지기만 하면 되는 거다. 동료도 팀워크도 필요 없어. 친하게 지낼 필요 따위 있을 것 같냐.”

사회자는 완전히 할 말을 잃었다. 이제 카린이 하는 말을 잠자코 듣기만 할 수밖에 없다.

“시부야는 누구나 위만 바라보고 있다. 옆에 있는 놈들을 발판삼아서 위에 있는 놈을 끌어내리고, 위에 있는 놈들은 밑에서 기어오르는 놈들을 가차없이 걷어차 버려. 상대가 꾸는 꿈을 깨부수고 네 꿈을 손에 넣어라. 그런 각오 없이 시부야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레이나가 카린의 얼굴 옆을 바라보았다.

가오를 잡거나 멋을 부리지도 않고 있는그대로 사실을 담담하게 말하는 것 같은 인상이다.

“예를 들어보자. 사흘 뒤에 아키바와 경기하는데, 아마 시부야 녀석들은 전부 아키바 쪽을 응원할걸?”

“예……?”

레이나는 무심코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카린은 눈동자만 움직여 레이나를 바라본다.

“우리들 중에서 누가 지면……. 그녀석은 랭킹이 떨어져 벼릴테니까. 그렇게 되면 학교 대표 자리가 한자리 남는다. 모두들 자기 성공을 위해서 타인이 불행을 겪기를 바라는 게지.”

그렇게 말하고는 카린이 대회장을 떠나버려, 프레스 인터뷰는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레이나를 비롯해 아키바 일행은 너무나 어이없던 나머지 잠시동안 일어나서 나가야 한다는 사실조차 까먹어 그 자리 그대로 남겨졌다.

“저 사람들이…… 시부야 사람들…….”

레이나는 실없이 중얼거렸다.

예전에 하라주쿠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사람 됨됨이를 드러내는 말은 하지 않았다.

오늘 이야기를 들어보니 새삼스럽게도 그 특이함과 존재감에 압도당했다. 살아가면서 만나볼 일 없는 존재를 만난 것 같다.

후타바는 겁먹은 눈빛으로 조금 전까지 시부야 세 사람이 앉아있던 자리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뭐, 뭔가……. 시부야 분들, 너무 치안이 안 좋은 거 아닐까요…….”

카즈네도 지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치, 양아치같다 해야 할지 상식이 없는 사람들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어……. 무법자들을 한데 모아둔 것 같아.”

“아, 저런 또라이들이랑 STACK 배틀 하라니 못하겠어요……. 무섭잖아요…….”

울먹이는 목소리로 호소하는 후타바를 달래듯이 카즈네가 어깨에 손을 올린다.

“확실히 최강 학교로 군림하는 명문학교……같은 평판을 듣는 애들이 이러고 다닐 줄 상상이나 했겠어.”

레이나는 시선을 떨구고는 테이블 한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레이나, 괜찮아?”

“어? 응……. 괜찮아.”

레이나의 속을 헤아려보니 카즈네는 가슴이 아려왔다.

“레이나는 우리보다 더 충격받았겠지…….”

“……걱정해 줘서 고마워, 카즈네 쨩.”

레이나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 카즈네와 후타바의 손을 잡고 출구로 나섰다.

“언니 일은 이미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렸으니까……. 그래도.”

후타바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도?”

“카린 씨가 한 말이 마음에 걸려서…….”

“아. 시부야는 팀이 어쩌고 하던 이야기요?”

카즈네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저런 거 신경써줄 필요 없어. 우리하고는 너무 다른 이야기잖아.”

“그러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저는 지금 아키바 팀이 정말 좋아요. 카즈네 쨩이랑 레이나 씨 말고 다른 사람이랑 뭘 한다니……. 상상도 못 하겠어요.”

카즈네가 무심코 후타바를 껴안았다.

“아, 아아! 정말이지, 후타바 너는 어쩜 이렇게 귀여울 수 있어?!”

“카, 카즈네 쨩, 이러시면 부끄러워요오…….”

레이나는 뭔가 떠올랐는지 고개를 들었다.

“팀이라……. 그거야!”

“무슨 일이야, 레이나?”

“다 같이 합숙하자!”

““……합숙?””

카즈네와 후타바는 엉겁결에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합숙 이벤트!

그것은 다시 말하자면, 공략하고 싶은 캐릭터와 단숨에 거리를 좁히는 보너스 스테이지. 그리고 평상시에는 볼 수 없던 캐릭터의 본모습, 무방비한 모습, 밖에서는 좀체 보여주지 않는 모습을 보너스로 감상할 수 있는 꿈같은 시간!!

“……이라 생각했던 시절이 저한테도 있었습니다…….”

“왜 그래, 카즈네 쨩?”

“아니……. 내가 생각한 합숙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서.”

어째서인지 세 사람은 레이나네 집에서 프라모델을 조립하고 있다.

덧붙이자면 옛날에 방송했던 애니메이션에 등장한 리얼 로봇이었다.

“……그러니까, 온천에 가거나, 바다에 가거나 뭐 그런식으로 어디 묵는다든지 함께 놀러가는 그런걸 보통 합숙이라 부르지 않아?”

“그런 것도 재미있을 것 같지만 지금 떠나기엔 좀 힘들지.”

6일 뒤에 뉴 레전드가 있다. 지금부터 여행 계획을 짜고 준비하고, 합숙하며 연습을 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다.

“……그치.”

카즈네는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그래서 일단 우리집에서 모이자 한 거니까.”

“그, 그렇지! 여기 레이나 방이고! 처음으로 초대해 준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두말할 것도 없이 보너스 스테이지인 거네!”

카즈네는 방 안 냄새를 맡기라도 하듯 심호흡을 했다.

“카즈네 쨩이 괜찮아져서 다행이야~.”

기운을 차린 카즈네를 보며 레이나는 기쁘게 웃음지었다.

한편 후타바는 신기한 모양인지 두리번거리며 레이나의 방을 둘러보고 있다.

콘크리트 벽과 목재 바닥. 가구라고는 목재 상판이 있는 책상과 아담한 부스, 옷장 하나 뿐이었다. 보통 또래 여자아이들과는 다르게 따로 꾸미지도 않은 심플한 방이었다.

“어딘가 어른스럽고 멋져요……. 좀 아기자기할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심플하네요.”

“아빠한테서 영향을 받은 것 같아. 기능성을 따진다거나 천연 소재를 쓴다거나 하는 부분이 그래서일까.”

“호오……. 그런 거였군요.”

책상은 원래 공부를 하기 위해 놓은 것 같지만, 칼이나 줄과 도료 같은 것들이 줄지어 놓여 있어 프라모델 조립 작업대로 쓰는 일이 더 많아 보인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바닥에 앉아 있다. 돗자리를 깔고는 그위에 셋이서 둘러앉아 프라모델을 조립하고 있는 것이다.

“저……. 그런데 저희 왜 프라모델을 만들고 있는거죠?”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레이나는 프라모델 상자를 건넸다. 그리고는 “밀린 프라모델이야!”라며 무슨 뜻일지 모를 소리를 하고는, 어쩌다 보니 상자를 뜯어서는 설명서를 펼쳐다 결국 런너에서 파츠를 뜯어내고 있었다.

“카린 씨는 그렇게 말했지만 우리한테는 팀워크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러니 덴온부 활동뿐만이 아니라……, 나에 대해서도 조금 더 알아줬으면 좋겠다 생각해서.”

카즈네와 후타바는 레이나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기뻤다.

“그렇구나……. 그럼 제대로 한 번 만들어볼까?”

“그러죠!”

두 사람은 마주보며 웃고는 프라모델 만들기에 심취했다.

파츠를 분리해낸 뒤에 조립한다. 접착제를 쓸 필요는 없다. 게다가 부품이 이미 도색이 되어있어 설명서대로만 조립해도 꽤 그럴싸하다.

카즈네는 인생 첫 프라모델을 완성하고는 드높이 올려들었다.

“다 됐다! 어때?!”

“오~! 카즈네 쨩 대단해!!”

“어, 진짜?”

후타바도 감탄하며 카즈네가 만든 프라모델을 바라보았다.

“진짜 대단하세요……. 제가 보기에는 레이나 씨가 만든 프라모델이랑 구분도 못 하겠는데요.”

레이나는 카즈네가 만든 프라모델을 받아 구석구석 확인해 보았다.

“으음…… 파츠도 깔끔하게 분리했고 조립도 빈틈없이……. 역시 카즈네 쨩이야! 못 하는 일이 없어!”

못 하는 일이 없대.

“정말이에요. 카즈네 쨩은 어릴 때부터 뭐든지 다 잘했어요. 정말 뛰어나셔서……. 저랑은 완전 달라요. 정말 부러워요.”

뛰어나대.

“…….”

“응? 뭔 일 있어, 카즈네 쨩?”

“아니. 아무 일도 아니야. 그건 그렇고…….”

카즈네는 일어서서 레이나의 DJ 부스로 다가갔다.

“아하하. 역시 여기가 궁금했어?”

“뭐, 그치. 요것들 아자부 때 들고간 거 맞지?”

“응. 아빠가 물려주신 건데.”

은빛 턴테이블 두 대 사이에 낡은 아날로그 믹서가 놓여 있었다.

최신 DJ 유니트와 존재감이 달랐다. 한마디로 하면 그냥 복고풍이지만, 어쩐지 신비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레코드는 몇 장 없는 것 같네.”

DJ 부스 밑에 세워둔 레코드가 몇 장 없었다. 아자부 때는 더 많이 갖고 왔었다.

“아. 지하에 아빠가 세워둔 비밀 기지가 있어서. 다시 갖다놓았어.”

““비밀 기지?!””

그 다음 세 사람은 집안 탐험을 한다며 지하로 내려가 보았다.

무시무시한 걸 보고 싶은 마음이 반쯤 있었다. 문을 열어보자, 그 안에 프라모델 재고와 어디에 쓰일지 모를 기계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리고 천장까지 세워둔 선반 한가득 쌓아놓은 아날로그 레코드 컬렉션. 그런 선반들이 도서관처럼 줄지어 서 있다. 카즈네와 후타바는 그 물량에 압도당했다.

그리고,

“다음은 내 차례네. 우리 집에 가 보자.”

카즈네는 그렇게 말하며 자기 집 오락실로 두 사람을 데리고 갔다.

거기서 카즈네는 게임 솜씨를 실컷 뽐냈다. 두 사람이 해주는 칭찬을 잔뜩 들어 흐뭇해하는 것 같았다.

그 다음에는 후타바네 집 라이브 하우스.

“마침 제가 좋아하는 그룹이 라이브 하고 있어요! 두 분도 꼭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꼭이요 꼭!!”

그렇게 말하며 레이나와 카즈네에게 막대 모양 라이트를 건네줬다.

“이걸 휘두르는게 국룰이지요!”

“어……. 이거, 뭐야?”

“블레이드예요!”

“광선검 같고 멋있다!! 이걸 휘두르면서 싸우는 거니?”

“어떻게 보면 싸움입죠! 응원도 어떻게 보면 진검승부인걸요!!”

알 수 없는 대화를 주고받던 세 사람은 라이브하우스로 돌격 앞으로. 거기서 레이나와 카즈네는

“우오오오오오옷! 미나 쨔아아앙! 오늘도 귀여워 죽겠어어어어!!”

후타바가 아주 하이텐션이 되어버린 모습을 보았다. 레이나와 카즈네는 지금 분명 디제잉할 때처럼 다른 인격이 정신줄을 잡고 있다고 생각했다.

“레이나 씨! 카즈네 쨩! 어떤가요?! 콜 넣는 방법은 모르시겠지만 일단 주변 사람들 하는 걸 보고 블레이드 흔들어요! 한 박자 늦게 흔들어도 괜찮으니까요!!”

“으, 응…….”

레이나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카즈네의 귓가에 속삭였다.

“있지. 후타바 쨩 말이야, 혹시 평소 모습 맞는거지?”

“그런 것 같아……. 저렇게 찢어대는 거 보면 분명 다른 쪽 후타바인 것 같은데.”

두 사람은 후타바가 경쾌하게 감상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묘하게 팬과 아이돌이 한 마음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꼈다. 마치 DJ와 플로어 사이를 보는 것 같다.

있는 힘껏 흥분한 후타바가 날카로운 얼굴로 레이나와 카즈네를 돌아본다.

“두 분 다 괜찮으세요?! 따라오실 수 있겠습니까아?!”

“응! 엄청 즐거워!”

“물론이지. 기왕 이렇게 왔는데 안 즐기면 손해잖니.”

카즈네는 이미 사람들이 블레이드 색을 어떻게 바꾸고 어떻게 흔들어대는지 패턴을 파악해 놓았다.

그러고는 셋이서 함께 팔을 흔들고, 함께 콜을 넣는다.

덴온부 동아리 활동을 할 때는 언제나 혼자서 부스에 들어간다.

세 사람은 동료. 서로 의지하는 동료. 너무 좋아하는, 소중한 친구.

하지만 싸울 때는 혼자인걸.

문득 레이나의 귓속으로 카린이 한 말이 떠오른다.

“동료도 팀워크도 필요 없어.
제일 강한 적만 있으면 돼.”

마음 한편으로는 카린이 하는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역시 나는,

“자자~. 다음 노래를 좀 격해요! 한번 날뛰어 보죠!!”

“바라던 바야.”

“응! 머리가 하늘까지 닿도록!!”

신나게 날뛰었다.

땀이 난다.

그저 소리에 맞춰가며 동료들과 다 함께.

“…….”

한마음 한 뜻이 된 것 같다.


이렇게 미니 합숙은 끝, 이라고 생각했다.

“아……. 설마 이런 서프라이즈가 있었다니……. 지금 이 순간 살아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카즈네는 몸을 뜨거운 물에 어깨까지 담그고는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여기는 아키바에서 두 정거장쯤 떨어져 있는 유원지와 야구장 근처에 있는 도시형 리조트 스파.

손님이 없어서 노천탕은 세 사람이 전세를 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카즈네는 바로 옆에서 레이나와 후타바가 뜨거운 물에 들어가 살짝 발개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레이나 후타바랑 같이 온천에 들어가게 되다니……. 이거 꿈 아니지? 전체 이용가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청불이었습니다! 잖아!

“아키바 근처에 이런 곳이 있었구나~. 후타바 쨩 고마워!”

“저 때문에 땀범벅들이 되셨으니까요……. 마침 라이브 하우스에 들른 손님한테서 티켓을 받았는데 혼자 오긴 좀 그래서…….”

온천에 들어가 피부가 달아오르고 꺄아꺄아하는 미소녀들……. 하아……. 고귀하도다……. 할 수 있다면 데이터로 기록하고 싶지만 이런 데 카메라를 들고 오면 안 되잖아.

아악! 어째서 이 시대가 되어서도 인류는 눈으로 들어오는 데이터를 저장하는 기술을 못 만들어내?! 공순이 공돌이들아 일 좀 열심히 해봐. 이렇게 된 이상 시신경에 새겨 버려서 두고두고 개인소장하는 수밖에 없잖아……. 후후후후헤헤헤헤헤헤헤헤.

“저기……. 카즈네 쨩, 아까부터 뭐라 중얼대고 계신 거죠……?”

“거기다가 어째선지 실실 웃고 있는데.”

“헉?!”

설마 입 밖으로 내뱉고 있을줄은 몰랐어서 카즈네는 당황했다.

“그래도 카즈네 쨩이 왜 그런지 알 것 같아!”

설마?! 레이나도 그렇게 생각해?! 우리 언제부터 1일이었어?!!

“오늘 굉장히 재미있었으니까 계속 실실 웃게 되는 거지.”

“어, 어어……. 그렇지.”

눈부시다! 레이나가 티없이 맑게 웃는 모습이!

카즈네는 죄책감을 느끼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서로를 알아보자는 목표은 잘 이뤄낸 것 같아. 아주 충분히,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정말이에요. 우리 훌륭하게 해냈어요.”

“이제는 각자 개인기를…….”

카즈네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그런 카즈네를 보고는 레이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응? 아……. 각자 갖고 있는 숙제도 해결해가야 한다, 뭐 그런 말을 하려 했어…….”

“카즈네 쨩?”

“아! 아무것도 아니야. 별로 신경 쓸 일 아니야.”

허나 레이나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카즈네의 눈동자를 들여다본다.

“하지만 팀이니까 서로 돕는 거잖아?”

예리하다.

카즈네의 심장이 덜컥 뛰었다.

조금 아방하면서도 레이나는 사람들 마음에 일어나는 변화를 알아채는 데 있어 민감하다. 그러니 디제잉할 때도 플로어 분위기를 금방 읽어낼 수 있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걸 솔직하게 털어놓을까?

“……정말로 별거 아니야. 내 세트리스트가 매번 똑같은 느낌으로 짜이는 건 아닌가 싶어서.”

역시 이건 말 못 해.

부끄러워서 그런 걸까? 아니야, 다른 사람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분명 아니야. 그리고 나 스스로 정리하지도 못했어, 전할 수 없어.

“으음. 그러면 장르를 조금 더 넓혀보는 건 어때?”

레이나는 순순히 대답해줬어.

내 말을 그대로 들어준건지, 아니면 말로만 맞춰주고 있는지는 모르겠어.

“그러면 DJ 유니트에서 세트리스트에 맞게 추천 선곡해주는 거 있잖아요. 그런 기능을 활용해 보는 건 어떠세요?”

“그렇게 해 볼게. 고마워, 후타바.”

“이히히……. 어째 카즈네 쨩이 저한테 고마워해준다니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저는 그냥 글러먹은 사람인걸요.”

“그런가? 플레이할 때는 늘 굉장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럼, 질투가 절로 날 정도로 굉장하던걸.

“그치만, 저는 그럴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나서요…….”

후타바가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후타바 쨩, 오늘 라이브 때 어땠는지는 기억하지?”

레이나가 묻자 후타바가 바로 대답했다.

“그럼요!”

“그러면 그걸 어떻게든 참고해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하지만 후타바는 손을 흔들며 강하게 부인했다.

“그거랑 이건 완전 다른 거예요. 아이돌이 하는 라이브를 보는 건 천사가 노래하고 춤추는 걸 보는 것 같지만, 제가 디제잉 하는 걸 보고 나면 어째 공개처형당한 느낌이 든단 말예요.”

“처……처형?”

“후타바……. 아무리 그렇다 해도 말이 너무 심한거 아닐까…….”

두 사람 분위기가 싸해지고 있단걸 알지도 못한 채 후타바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저는 한 번 무대는 전부 다 기억해요! 그렇게 멋진 라이브를 보고 머릿속에 담아두지 못한다면…… 아주 절망적이지 않겠어요.”

후타바가 행복하게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