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야 3
그 새끼를 발견한건 작년 가을이었다.
그 시절, 나는 송장처럼 빈둥거리기만 했다.
동아리방은 내 방처럼 쓰고 있었다. 여기서 뒹굴거리고 자다 보면 정말 시체가 된 것 같지만, 따로 뭐라고 할 녀석은 없다.
그보다 이몸 호오 카린에게 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부터가 애초에 테이온에는 아무도 없다.
최신 DJ 장비부터 빈티지 신디사이저까지, 동아리방을 다 채울 만큼 기자재가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그 외에도, 기분 내키는 대로 던져놓은 게임이나 장난감, 가구나 트레이닝 기구같은 잡동사니들이 이곳저곳에 굴러다니고 있다. 대부분 종이상자 안에 넣어놓긴 했지만.
옷도 옷장에 넣어두기 귀찮아서 그냥 널부러뜨려놓고 있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 사실 나도 잘 몰라. 어쩌구 스폰서였나 광고 업체였던가, 듣도보도 못한 브랜드에서도 꼭 입어달라며 이것저것 보낸 것 같던데.
처음에는 좀 좋다 싶었는데 이젠 아주 그냥 신물이 난다.
옷만 보내주면 모를까 샘플이니 선물이니 하는 것도 끊임없이 보내온다. 버리기도 귀찮아서 그냥 내버려두고 있다. 덕분에 넓었던 방도 이젠 창고인지 쓰레기장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이것저것 널부려져 있는 방에 잡동사니와 함께 널부러져 있다 보면 정말 죽은 거나 다름없는 기분이 든다.
테이온에 들어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기분이 엄청 다운되기 시작한게.
아무것도 할 기분이 안 들고, 전부 다 때려 부수고 싶고, 플레이도 엉망진창으로 하고 싶어지고 맛이 간 트랙을 휘갈기듯이 만들고 싶어지기도 하고, 나부터 내가 지금 의욕이 있는건지 없는건지 잘 모르겠어.
아무튼 지금 난 산송장이나 다름없다.
아무것도 듣기 싫고 보고 싶지도 않아.
“이번 대회를 쓸어간 시부야 테이온 국제 학원!! 그에 더해 선봉장 한 사람이, 모든 경기를 휩쓸어가 버리는 전대미문의 사태까지!”
시끄러.
“그 선봉은 바로, 시부야가 자랑하는 현대 최강 DJ, 호오 카린.”
심지어 내 이야기냐. 콕 집어서 괴롭히는 거냐고.
동아리방이 있는 건물 외벽에 모니터와 스피커가 붙어 있다. 거기에 지난 대회 하이라이트를 틀어제끼고 있다.
그 대회 별로 재미있지도 않았다고.
고등학교에 올라오면 좀 더 미친 새끼들이 뒹굴뒹굴대고 있을 줄 알았다. 테이온이라 해도 이거밖에 안되나? 확실히 좀 한다 싶은 애들이 더 있어보였지만, 이 녀석이나 저 녀석이냐 싱겁게 끝나버려서 재미가 없다. 좀 더 괴물같은 새끼들이 드글댈 줄 알았는데.
그런 괴물이랑 싸우고 이긴 뒤에 앉아야 했을 옥좌를, 어째선지 뭘 해보기도 전에 차지해버린 기분이 든다. 재미없게 이기고 앉은 자리다 보니, 옥좌가 아니라 그냥 속 빈 강정이라 불러야 할 것 같다.
그래서인가.
요즘 기분이 다운된 게.
나 조금은 기대했었다고, 테이온.
차라리 더 위를 노려볼까? 어르신들께 맞서 세대를 뛰어넘어 싸워볼까…… 아냐. 그래도, 어른들을 상대해선 안되지.
학생답게 덴온부에서 청춘을 보내야 할까……. 빌어먹을.
“……그러면 이 다음에는 경기장에 온 팬 여러분들의 목소리입니다.”
“끝내주게 기분 좋았어요! 즐거웠어요~.”
“카린 끝내줌다! 너무 최고 아님까?”
“카린 정말 좋아! 심쿵했어요!”
“카린은 옷 입는 센스도 완전 좋지. 시부야 에어리어 패션은 카린이 이끌고 있는 셈이야!”
이게 어딜 봐서.
가만히 앉아서 듣고 있자니 짜증이 치밀어올라서 일어났다.
창문 쪽으로 가서 커튼을 열어본다. 어느새 해가 지고 있다. 어둑어둑해진 시부야 거리에 홀로그램 광고 네온사인이 난무하고 있다.
그 사이로 대형 드론 같은 것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AI 스피커다.
어쨌든 이 시부야 에어리어에는 특수한 입자 같은게 떠 다녀서, 그 덕분에 저런 게 날아다닐 수 있다던데, DJ 유니트도 둥둥 떠 있기는 마찬가지잖아? 그건 시부야 말고 다른 데서도 쓸 수 있는 이유가 뭐냐고 언제 한 번 물어본 적 있다.
밀폐된 장소 안에서는 그 입자를 가득 채우기 쉽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입자에는 공기청정 효과가 있다니, 공조기라던가 공기 청청기 하는 것들이 그런 입자를 내뿜고 있다니 뭐니, 나는 잘 모르겠다.
AI 스피커가 스크램블 교차로 상공에서 멈추고는 아래쪽으로 조명과 스피커를 내리쬔다. 거기에는 여자 두 명이 DJ 유니트를 사이에 두고 서로 노려보고 있다.
이 교차로에서 네 방향으로 뻗은 도로는 DJ 프리 배틀이 벌어지는 장소다. 그러다보니 지나다니기가 아주 쉽지는 않다.
길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STACK 배틀을 하고 있는 애들이 몇 그룹이나 있었다. 그래봐야 이 녀석이고 저 녀석이고 다 싱거워.
시부야에서는 DJ만 잘 하면 뭐든 손에 넣을 수 있다.
돈도, 지위도.
“……하지만, 적은 어떻게 해도 손에 넣을 수 없었어.”
그때, 어디선가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소리나는 쪽으로 걸어가니, 핸드폰 스크린에서 나온 빛이 옷더미 사이에서 새어나왔다. 옷을 치우니 핸드폰이 굴러 떨어진다. 화면에 테이온 선생 이름이 떠 있다.
그냥 무시하려 했지만, 스마트폰 진동 소리가 바닥에 울려서 시끄러.
집어 올리기만 하려 했는데 잘못 건드려버렸다. 전화가 받아졌다.
“아! 여보세요, 카린? 너 지금 어디에 있어?”
가볍게 혀를 차고는 대답했다.
“동아리방.”
“뭐?! 이제 시상식 시작하니까, 빨리 와!”
“무슨 소리야?”
“1학기 시상식! 우수한 학생에게 표창장을 준다고 몇 번이나 말했었잖아?! 이제 곧 시작하니까 어서 오라고!”
“아……. 나는 빠질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니! 네가 와야 시작할 수 있다니까!! 이번 시상식에는 클래식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학생도 있다던데, 네가 그렇게 나오면 그 학생한테도 폐를 끼치게 되잖니?!”
“……아. 알았어.”
“저번에 준 드레스 있잖아. 그거 제대로 입고 와.”
“네에네에.”
척척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드레스라고?
탑처럼 쌓은 상자를 둘러봤다. 분명 이 중 어딘가에 있겠지. 아마도.
나는 맨 먼저 눈에 밟힌 외투를 바닥에서 주워 입었다. 그 다음 제일 가까이 보이던 양말을 아무거나 집어 신었다. 양쪽이 길이도 색깔도 짝짝이지만 아무렴 뭐 어때.
동아리방을 나오고 도겐자카를 지나 시상식장으로 향했다. 아, 신발도 짝짝이로 신고 와 버렸네.
아까 전화했던 선생이 도착한 내 모습을 보고는 헛것을 본 얼굴을 하더니만, 그래도 아주 펑크를 낸 것보다는 낫다 생각한 모양인지 바로 나를 무대 위로 올려보냈다.
진행을 맡은 선생이 이때다 하고 내가 표창장 받는 이유를 읊어댔다.
“호오 카린 학생은 지난 대회를 혼자서 쓸어가는 압도적인 실력으로 테이온에 우승을 안겨주었습니다! 이제 고등학생 부문에서는 천하무적입니다. 거기에 더해 올여름 해외 페스티벌에 출전하는 쾌거를 이뤄내는 등, 젊은 세대 DJ로서 누구나 인정받는 우두머리이자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점을 높게 평가해 최우수 학생으로 표창합니다.”
천하무적, 이래.
상대할 적도 없이 이기기만 해 봐야 어디 쓸모가 있겠냐.
택도 없는 소리 말어.
나는 더 짜릿한 승부를 해 보고 싶단 말이다.
온 힘을 다해서, 뼈를 깎고 영혼을 갈아넣어서, 한계에 맞설 정도로, 서로 죽일듯이, 목숨 바쳐 싸우는 배틀을.
그런 배틀을 할 만한 적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시답잖은 트로피니 상패니 다 집어치우고, 제일 강한 적을 달라고.
나는 시상식장에 와 있던 덴온부 부원으로 눈길을 돌렸다.
개중에는 여름 대회에서 같은 팀이었던 녀석도 있다.
노려보는 걸 보니 지 자리를 뺏겨 분한 모양이다.
원망과 분노는 강한 추진력이 되겠지.
그런 마음을 품고 어서 나를 쓰러트리러 와라.
내가 적을 만들고 싶어서만 이러는 게 아니야. 이렇게 하다가는 테이온은 위상이 땅으로 떨어질 테지.
확실히 이 녀석이고 저 녀석이고, 그냥 평범하게 잘 하는 정도다.
그 사이를 확 치고 나오는 녀석이 없다.
사실은 지난 대회에서 다른 팀원들한테 돌리라고 양보해 봐도 테이온이 우승하기는 마찬가지다. 몇 경기는 흘려보내주긴 하겠지만.
그딴 건 내가 바라는 최강이 할 짓이 아니야.
“이제 그 다음으로, 클래식 부문에서도 최우수상 학생이 또 있습니다. 최우수상에 두 사람이 뽑힌 일은 이례적입니다!”
나는 새삼스레 옆에 있던 학생의 존재를 깨달았다.
……누구야? 이 녀석.
파란색 콘서트 드레스를 입고 온 검은 머리.
눈을 내리깔고 어딘가 허망한 표정. 잘 생겼고 곱상해 보이는 상판때기라 순간 인형을 세워놓은 건 줄 알았다.
“세토 미츠키 학생! 어릴 때부터 신동이라 불려 온 세토 학생은 고등학교에서 실력을 더욱 키우고 있습니다! 주니어 클래식 콩쿠르에서서도 단연 1위! 시부야 테이온 국제 학원이 자랑하는 클래식 유망주라 불릴 만 합니다!”
인형같은 얼굴에서 눈동자만 움직였다.
그 눈동자에 내가 비친다.
유리 구슬 같던 눈동자에, 갑자기 생기가 돈다. 아니
…….
등줄기를 오싹 떨리게 할 만한 것이 덮쳐온다.
생기라 부를 만한 게 아냐, 그보다 더 격렬하고 흉악한게 빛난다.
뭐야?
이 녀석…… 대체 뭐지?
인형같은 무표정에 눈빛만 그렇지가 않아.
마치 부모를 죽인 원수를 바라보는 눈을 하고 있다.
“아……. 세토 미츠키랬나?”
“…….”
“나 늦게 나와서 많이 기다렸지? 미안하다.”
미츠키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밋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차라리 오지 말지 그랬니.”
“엉?”
“그러면 시상식 따위 안 했을텐데.”
조금 의외다. 클래식 하는 애들 중에는 우아하고 진중한 학생이 많다. 얘도 생긴것만 보면 그런 느낌인데.
“너도 싫었냐? 이딴 거.”
“그럼. DJ 따위랑 똑같은 취급을 하다니, 구역질이 다 올라와.”
“…….”
다른 음악과 학생들 중에서 DJ를 눈엣가시처럼 보는 녀석들은 그럭저럭 있는 편이다.
하지만 미츠키가 보이는 혐오감은 다른 녀석들이 보이는 것과 어딘가 달랐다.
“…… 그럼 세토 미츠키 학생. 연주 준비를 해 주세요.”
하나도 안 듣고 있었는데, 아무튼 미츠키가 피아노 연주를 선보이는 흐름이 되어버린 것 같다.
무대 위에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었지, 이제야 그 이유를 알았다.
나는 무대 끄트머리로 들어가 멈춰 팔짱을 끼고 바라봤다. 여기서 바라보면 소리도 잘 들리고 미츠키의 얼굴도 잘 보이겠지.
이 자식 본성은 뭘까?
저 인형 같은 얼굴 아래에 뭐가 있지?
“……훗.”
절로 웃음이 튀어나왔다.
내가 다른 사람한테 관심을 가지다니, 오랜만이잖아.
연주가 시작되었다.
순식간에 청중들이 미츠키가 치는 피아노 연주에 빠져들었다.
아름답다.
참으로 아름다운 연주다.
그리고 완벽하다.
과연, 이렇게 하면 콩쿠르를 쓸어가는 것도 이해가 가.
그런데,
이 아름다움 아래, 저 깊이 무엇이 숨겨져 있나?
그냥 예쁘게 잘해봐야 이런 연주가 나올 수가 없다.
어디선가 불안함과 슬픔, 위태로움이 느껴진다. 그런 감정이 관객들을 의식 저편에서 호소하며 잡아끌고 있다.
연주하는 미츠키의 얼굴이 보였다.
괴로워하는 것처럼 눈썹을 치켜세우고 구원을 바라는 것처럼 희미하게 입술을 들썩인다.
그 눈동자와 순간 맞부딪혔다.
마치 빛도 닿지 않는 깊은 바다를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그러다가도 불꽃이 튀는 것 같다.
그것은 깊디 깊은 절망.
이 세상 모든 것을 저주하는 원망.
이 세상 모든 것을 태워버릴 분노.
팀원들이 나에게 겨누는 감정과는 차원이 다르다.
정점을 가볍게 뛰어넘는 테크닉과 탁월한 음악 센스를 가득 칠해놓은 연주 저 구석 어딘가에 세상을 파멸시키고자 하는 원한이 서려 있다.
청중들은 그런 사실은 알지도 못하고 탁월한 연주 기술에 넋이 나갔다.
“……이런 데 있었구나.”
자연스레 웃고 말았다.
“찾았다, 미친 괴물같은 새끼.”
가슴이 너무 두근거려 튀어나갈 것만 같았다.
그 다음날, 나는 동아리방이 아니라 테이온 본 교정으로 향했다.
여기 피아노 연습실이 있으니까.
닥치는 대로 문을 열고 확인하다 보니 5트만에 성공.
“……외부인은 출입 금지야.”
세토 미츠키는 갑자기 쳐들어온 나를 보며 표정 하나 꿈쩍도 않고는, 그러면서도 깔보는 목소리로 말했다.
“같은 학교 학생이잖아. 외부인이라니.”
넓은 연습실이다.
아까 둘러본 연습실은 그랜드 피아노 한 대가 비좁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여긴 두 대가 놓여있고, 그럼에도 공간이 남아서 소파와 탁자까지 두고는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게 해 놓았다.
아무래도 미츠키는 클래식과 학생 중에서도 특별 취급, 인 것 같다.
나는 미츠키 옆으로 다가가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야 너, 덴온부 들어와.”
“…………뭐?”
인형 같은 얼굴에 놀라는 표정이 가득 번졌다. 허를 찔린 모양인지, 본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은근 귀여운 얼굴도 할 줄 아네, 이 녀석.
그리 생각한 것도 아주 잠깐, 곧바로 씁쓸한 표정으로 덮어 씌운다.
“당신, 머리가 어떻게 됐어?”
“나한테 그렇게 말해주면 칭찬이거든.”
“……언어능력도 불구가 됐나 보네.”
미츠키는 지긋지긋함을 가득 담아 한숨을 내쉬더니 멍청이를 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왜 내가 DJ 따위를 해야 하는 거야? 하등하고 저질이고, 그런 음악적 가치도 없는걸 말이지.”
“그렇지만 전자음악하고 DJ는 이제 세계적으로 메인스트림이라고. 클래식 하는 사람들이 앞으로 얼마나 남을 것 같냐?”
“양으로 볼 게 아니라 질로 봐야지. 클래식은 지배 계층의 기본 소양이야.”
미츠키는 안타까움을 담아 웃음지었다.
“댄스 뮤직 인구가 많은 건, 권력 피라미드에서 아래쪽을 차지하기 때문이지. 그 정점에 클래식이 군림하고 있어서 그 숫자는 적어. 진정 선택된 자들에게만 그 연주와 감상이 허용된다.”
그런 반론이 들어올 걸 알고 있었던 것마냥 술술 읊어댄다.
“흐음. 그렇냐…….”
나는 옆에 놓인 그랜드 피아노에 앉았다. 도대체 뭘 할 셈이야, 그런 얼굴을 하며 미간을 찌푸리는 미츠키에게 피식 웃음지었다.
그리고 치기 시작했다.
“뭐…….”
미츠키가 놀란 얼굴 그대로 굳었다.
“쇼팽 피아노 소나타…… 2번 ‘장송’, 1악장……?”
“딩동댕.”
나도 쳐 봤다고.
어쿠스틱 피아노를 만져보는 건 오랜만이긴 한데, 역시 조율도 잘 되어있어서 맑고 고운 소리가 나온다.
마이크로 담아낸 소리라면 내 샘플러로 똑같은 소리를 낼 수 있다. 하지만 라이브는 단 한 번 뿐이다. 다시 말해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 연습실을 내부 환경, 놓여 있는 물건, 공기, 습도, 그리고 나와 미츠키, 그것들이 모두 모여 만들어내는 단 한 번의 기회.
이 소리는 두 번 다시 없을, 단 한 번 뿐인 연주.
어떻게 보면 허무해서 좋아.
그래도 어쿠스틱만큼은 아니지만, 사실 DJ에게 있어서도 그 점은 마찬가지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적지만.
다 치고, 건반에서 손가락을 떼고는 미츠키를 으쓱하고 바라 보았다.
“어떠냐?”
“……아주 어이가 없네.”
얼레? 갑자기 채점 시간입니까?
미츠키는 허파 속 공기를 전부 토해낼 정도로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큼 재능이 있는 사람이 어째서 덴온부 따위나…….”
합격인가보네. 절로 훗, 하고 코웃음을 쳤다.
“……피아노 좋지. 좋은 악기야. 하지만 나는 불편해.”
“갑갑해서?”
“쉽게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복싱보다 이종격투기가 더 재미있다? 아무튼 그런 느낌이야.”
“……그렇게 비유해봐도 난 잘 모르겠는데……. 어찌되었든 내가 덴온부에 들어갈 일은 없을거야.”
“왜?”
피아노 두 대를 사이에 두고 미츠키와 서로 바라보았다.
“……나는 댄스 뮤직이, 클럽이, 무엇보다도 DJ가 정말 싫어. 이 세상에서 뿌리를 뽑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그렇구나, 그래서 나를 그렇게 노려봤구나, 아 지금도.
이 새끼, 처음에는 인형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럴 리가. 무서울 정도로 감정이 흘러넘친다. 아니, 터져나올 정도다. 얼굴에 드러나진 않지만, 그 속에서 감정이 끓어넘치고 있지 않나.
“역시, 너 이 녀석 마음에 든다.”
“뭐?”
“시상식에서 연주 잘 하더라.”
“그래.”
“어떻게 저런 연주를 할 수 있을지, 납득이 가더라고.”
“무슨 뜻으로 하는 소리야?”
“정점을 뛰어넘는 테크닉과 천재라 부를 만한 음악적 센스. 그것을 통해 놀라운 완성도로 자아내는 연주. 천국을 보는 것처럼 맑고 아름다운 세상이지만 뚜껑을 따 보면 그 안엔 지옥이 있어. 분명 까마득히 긴 시간동안 피나는 연습으로 쌓아 올린 실력이겠지.”
“그런 건 피아니스트라면 당연한걸.”
“하지만 네 녀석 동기부여는 예사롭지가 않아. 그 원동력은 마그마처럼 구질구질하게 끓어오른 분노와, 이 세상 모든 것을 저주해 죽이고 싶어하는 원한이다. 역겹고, 더럽고, 추하고,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은 그런 엄청난 감정이 배어 나오고 있어. 그런 파멸적인 향기에 사람들이 끌리는 걸까. 그래서 다들 네 녀석 연주에 빠져드나봐.”
“……?!”
미츠키의 얼굴이 분노에 차 일그러졌다.
“멋대로 상상하지 마.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
“그럼 네 녀석이야말로 왜 그렇게 DJ를 미워해? 어릴때 따 당했어?”
“당신하고는 상관 없는 일이잖아!”
“그랬나보네. 나는 네 녀석이 있었으면 해. 그럭저럭 잘 하는 녀석들 따위는 필요 없어. 네 녀석같은 미친 괴물같은 새끼가 필요하다고.”
“누굴 당신 동료로 삼으려고 그래!”
“누구한테든 내 동료가 되어달라고 부탁할 생각은 없어!”
“그럼 뭔데?!”
“내 적이 되어라!!”
미츠키는 저도 모르게 혼란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당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젠…… 도무지 모르겠어.”
“내가 무슨 소리를 하든지 못 알아들어도 이거 하나만은 알겠지.”
“……뭔데?”
“네 녀석이 피아노를 계속 잡으면, 어떻게 해도 DJ는 못 이겨.”
“윽……?!”
“아무리 네 녀석이 연습을 쌓아내고 좋은 연주를 해 낸다 한들, DJ도 댄스 음악도 그 연주로 아프기는커녕 간지럽기만 할테지. 그래서 네 녀석이 DJ에 한방 먹일 수 있는 건 단 하나밖에 없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DJ가 되어라, 세토 미츠키!! 같은 싸움판에서 STACK 배틀로 이겨낸다면 DJ를 꺾을 수 있다! 그리고 어디 한번 나를 꺾어봐라!!”
“당신을……?”
“현재 DJ 1인자는 바로 이 몸 호오 카린이다. 나를 이겨내면 네 녀석은 말할 것도 없이 DJ 그 정점에 서겠지. 그러고 나서 한마디만 해 주면 되는 거야.”
“뭐라고?”
“DJ 따위 아무런 가치도 없다, 고.”
나는 스툴에서 일어나 건반을 바라본 채 꿈쩍도 않는 미츠키를 남겨두고 피아노 연습실을 나왔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돼.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젠장~. 분명 홀딱 넘어올거라 생각했는데에에에에에!”
동아리방 천장을 바라보고 투덜거리며 나는 토라져서 누웠다.
미츠키 이 새끼 반응도 없는 거냐고!
다른 미친 새낄 찾으러 나가봐야 하나
갑자기 문이 열렸다.
“뭐…….”
뭐지? 하고 고개를 드니 입구에 드레스 차림을 한 실루엣.
“……미츠키?”
불 꺼진 방은 어둡고 미츠키는 복도 불빛을 등져 칠흑같이 어둡다.
어떤 표정인지 알 수는 없으나, 뭔가 은빛으로 빛나는걸 들고 온 것 같다.
가위?
문을 닫자 미츠키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보였다. 차갑기만 한 얼굴, 소름 끼치는 뭔가가 풍겨온다.
그런 여자가 둔탁한 빛을 뿜는 가위를 한 손에 쥐고는 찾아왔다.
나는 등골이 오싹 떨려 벌떡 일어났다.
“너, 너 임…….”
미츠키는 가위를 펼치고는 자기 목을 향했다.
“이건 계약금으로 절반.”
“잠깐?! 기다…….”
싹둑, 하는 소리와 함께 미츠키의 긴 머리카락이 잘려나갔다.
왼손에는 시체같은 머리카락 뭉치가 쥐어져 있다.
“너 임마…….”
“받아주지 않겠니.”
“……계약금은 또, 무슨 소리야?”
“수업료.”
“뭐?”
“호오 카린, 나한테 DJ 가르쳐 줘.”
“…….”
숏컷 세토 미츠키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진심으로 나를, DJ를 조져 버리겠다는 눈빛이다.
나는 미츠키가 내민 검은 머리 뭉터기를 받았다. 묵직하네.
“너 임마……. 예상을 제대로 뛰어넘는 미친 새끼구나.”
그렇게 말하자 미츠키가 겁대가리도 없이 웃음짓는다.
“어느 분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미친 괴물같은 새끼라던데?”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그럼 자……. 우선 모양부터 다듬어볼까.”
나는 방을 가득 채운 종이상자를 흘끗 보았지만, 그렇다 한들 어디에 무슨 옷이 있는지는 모른다.
금방 포기하고는 미츠키를 데리고 시부야 거리로 나왔다.
공원 거리를 따라 대형 패션 쇼핑몰로 들어섰다.
거기서 미츠키가 입은 옷을 뜯어고쳐보자.
“이거 좀 괜찮지 않냐?”
검은 가죽 점퍼를 골랐다.
원래 입고 있던 드레스는 기장을 줄이고 가죽 벨트로 허리를 둘러 원피스로 만들었다. 클래식 하던 시절 모습을 남겨두고 그 위를 강렬한 가죽 점퍼로 봉인해 두면, 좋은 방향으로 다시 태어난 미츠키 대폭발! 이 될 거야.
하지만 미츠키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내 다리를 보고 있다.
“구두랑 양말을 짝짝이로 신은 사람이 그렇게 말해봤자…….”
“얌마, 이래봬도 나 패션 리더라 불리고 있다고? 나는 무슨 소리인지 도통 모르겠다만.”
미츠키는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내뱉었다.
“역시 덴온부에 들어가는 거 다시 생각해 봐야 할까…….”
“기다려봐! 괜찮다니까, 잘 어울린다고! 네 녀석 귀여우니까 분명 쿨해 보인다니까!!”
“…….”
새침하게 시선을 피하는 미츠키가 조금 귀여웠다. 그 뒤로 양말과 구두를 사고, 대충 적당한 가게에서 탈의실을 빌려 갈아입고 나왔다.
그리고 딴사람이 된 미츠키와 나란히 시부야 거리를 걸었다.
“어쩐지 진정이 안 되는걸…….”
“그렇냐? 잘 생겼는데.”
“흥.”
뾰루퉁한 얼굴이 조금 발개졌다.
겉으로는 쿨한데, 의외로 그 안에 든 감정은 풍부하단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이제 부실로 돌아가자. 얼른 DJ 레슨 해 줘.”
“그래. 그건 그렇고…… 계약금은 받았는데 나머지 잔금은 어떻게 치를 생각이야? 미리 말해두는데 머리카락은 이제 필요 없어. 진짜.”
미츠키는 도전을 가득 담아 웃음지으며 나를 노려본다.
“당신, 호오 카린을 때려눕히면 수업료 다 내고도 떡을 치겠지?”
이 새끼가.
“……그럼. 오히려 한참 남겠는데.”
분명 나도 전투 모드로 웃고 있었을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