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com Entertainment STACKBATTLE LEGEND 당일.

아침 일찍부터 사람들이 몰려 국립 요요기 콜로세움에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DJ와 뮤지션이 선보이는 각종 행사와 신제품 발표 등 이런저런 이벤트가 한바탕 벌어질 것이다.

메인 이벤트인 시부야 vs 아키바는 오후 6시부터 시작되는데, 그때까지 게스트 DJ들이 벌이는 스테이지와 STACK 배틀도 벌어진다.

예상 관람객 수는 도합 3만 명, 콜로세움 주변에 스테이지와 임시 관람석이 펼쳐져 있고, 포장마차 케이터링까지 출동하다보니 축제 분위기가 물씬 풍겨온다.

입구 게이트 앞 관계자 전용 입구로 으쓱대는 표정을 짓는 소녀가 찾아온다.

“사쿠라노 미미토, 게스트예요!”

흥, 거칠게 콧방귀를 뀌며 말한다.

접수원은 미미토의 매듭팔찌에 붙은 ID-J를 확인해 보더니 빙긋 웃어보였다.

“네, 확인되었습니다. 들어오세요.”

“네네. 수고하세요.”

하고 우쭐거리며 게이트를 지나친다.

“뭘 그리 잘난체를 하고 계신가요. 히다카 씨 쪽 초대손님으로 들어온거잖아요.”

히나와 시안도 마찬가지로 ID-J를 확인해 초대장을 확인받아 미미토의 뒤를 따른다.

“뭐냐니, 이렇게 큰 이벤트에 초대 손님이잖아?! 그 말인즉슨 내가 제일 잘 나가고 있다는 뜻 아니겠어!”

“그냥 초대받아 온 거예요. 그냥 공짜로 들어온거라고요.”

시안도 동의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게 좋은거지! 아무튼 바로 이 내가 신분 상승을 해낸 거라고. 말하자면 셀럽 같은게 된 거야!”

히나가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쉰다.

“저기요, 셀럽이란 건 저런 사람들을 보고 하는 말이거든요.”

손가락으로 차량용 게이트 앞에 멈춰 선 검은 도색을 한, 아주 긴 자동차를 가리켰다.

멈추자마자 조수석 문이 열리더니 작은 체구 실루엣이 튀어나왔다. 검은 고양이를 떠올리게 만드는 민첩한 움직임으로 차 뒤쪽으로 돌아나간다. 트렁크에서 돌돌 말린 붉은 카펫을 꺼내더니 양 끝을 잡고는 땅바닥에 굴렸다. 붉은 카펫이 마치 철길처럼 관계자 입구로 펼쳐진다.

그러더니 몸집이 작은 소녀는 뒷자석 문을 공손하게 열었다.

“아키 님, 이리로 오시지 말입니다!”

“수고했어.”

검은색과 금색이 어우러진 힐 슈즈, 긴 다리를 감싸는 그물 타이츠. 매력적인 허리통에 그냥 봐도 비싸 보이는 타이트 스커트를 두르고 있다. 얇은 허리를 반짝 조여 오는 벨트에 금으로 만든 액세서리. 놀라울 정도로 풍만한 가슴과 가늘고 긴 목을 타고 올라가면 조각처럼 아름다운 작은 얼굴이 보인다. 올라간 끝에는 마무리로 웨이브가 도드라지는 빛나는 금발이 보인다.

아름다움이란 아름다움은 모두 걸친 듯안, 아주 호화로운 여자가 차에서 내려 걸어왔다.

미미토가 갑자기 지상에 강림한 여신에게 시선을 빼앗긴다.

“뭐……뭐야? 저 사람.”

“아자부 시로카네 아키 아닌가요? 미나토 시로카네 여학원에서 온.”

이야…… 꼴값이 풍년이네 민폐 오졌다 돈 좀 있다고 우쭐대는 꼬라지 좀 봐 졸부 ㄹㅇ 개쉬름 지가 공주나 된다는 듯이 염병떠는 거 꼴보기싫어.

시안은 폰으로 뒷계에 독설을 한바탕 쏟아내고 있다.

“그러는 너도 공주잖아……. 좀 사악한 쪽으로.”

“……뭐?!!!!!”

시안은 톱니 이빨을 드러내고는 뻐끔뻐끔 뭔가 항의하고 있지만, 목소리가 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다.

“저래봐야 좀 키크고 몸매 좋은 것밖에 안되잖아? 귀여운 우리들하고 비교하면 화장 진한 늙은이는 상대도 안 되는 거야.”

“……있죠. 근거 없는 자신감만 쓸데없이 넘쳐서 아주 그냥 존경스러울 지경이네요.”

그렇게 하라주쿠 세 사람은 들리지 않을 거리에서 아자부를 한껏 디스해대고 있다.

“타마, 수고가 많네.”

아키에 이어서 차에서 내린 긴카도 타마의 노고를 치하하는 말을 건넨다. 하지만

“긴카를 위해 한것이라곤 1밀리도 없지 말입니다.”

아키를 대할 때와는 딴판인 태도로 막돼먹게 대답한다.

“타마, 주최자분들께 인사드리러 갈 거야. 본부가 어디지?”

“예! 지금 안내하겠습니다!”

다시 도르륵 태도를 바꾸더니 폰으로 대회장 안내도를 열고는 아키를 이끄는 모양새로 걷기 시작한다.

긴카도 뒤따라 걸으려다 뭔가 눈에 밟혔다.

“어허?”

참가자들이 식사를 때울 수 있도록 마련한 포장마차 안에 매혹적인 글귀가 나부끼고 있었다.

규동

거기다 체인점이 아닌 전문점에서 출장 나온 것이다. 긴카는 주머니에서 은으로 된 회중시계를 꺼냈다.

식사 시간까지 앞으로 10분 남았다. 본래 주최자와 점심 미팅을 가질 예정이었지만 눈앞에 찾아온 유혹이 더욱 강했다.

“이제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테이블에 돌아앉고 하다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10분 내로는 힘들겠지. 그렇게 되면 미팅은……. 아키, 너에게 맡길게.”

그렇게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포장마차로 향했다.


시노노메 카즈네는 대기실을 빠져나와 홀로 대회장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지금 콜로세움 안에서는 연예인이 참가하는 이벤트가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 야외 부스에는 여러 악기와 DJ 장비들이 빽빽하게 펼쳐져 있었다.

“거기, 검은 머리 하고 있는 예쁜 학생분.”

화려한 복장을 하고 있는 여성이 불러 세웠다.

“DJ에 관심 있으신가요? 그럼 편안하게 만져보세요~.”

거기 줄지어 놓여 있는 장비들은, 어저께 리허설에서 확인한 신형 DJ 유니트였다. 기존 모델에 원가절감을 하고서는, 그만큼 가격을 낮춰 보급형으로 만든 제품이라고 한다. 이번 뉴 레전드 행사는 이 제품을 홍보하는 취지도 있다.

보급형 모델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 구하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아마 클럽이나 덴온부 명의로 도입을 고려해 달라는 뜻이겠지.

오늘 이 DJ 유니트를 사용해 STACK 배틀을 하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속 한구석이 쓰려온다.

“이쪽은 제안 기능이 탄탄해서 초보자 분들도 쓰기 좋도록 더욱 프렌들리하게 만들어졌답니다.”

“그, 렇군요.”

어거지로 붙임성 있게 웃으면서 대답한다.

“네~엡. DJ 유니트가 항상 Iris에 연결되어 있어서, 인기 있는 노래나 지금 재생하는 노래 다음으로 틀기 좋은 노래와 CUE 포인트를 추천해주는 기능이에요. 이것만 있으면 선생님 같은 분도 바로 디제잉을 시작할 수 있고요. 탑 랭커 DJ같은 플레이를 해내게 될 걸요!”

택도 없는 소리 말어.

마음속으로 욕지거리를 퍼부으면서도 웃는 얼굴로 대답한다.

“호오……. 그건 좀 대단한데요.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 꼭…. 아, 그리고 음악 제작 시스템도 함께 고려해보세요! 이쪽도 작곡을 서포트해 주니까 초보자도 쉽게 작곡할 수 있어요.”

카즈네는 애매하게 웃음지으며 부스를 나섰다. 그리고 나무 그늘 아래 벤치를 발견하고는 그 위를 쓰러지듯 걸터앉았다.

확실히 최신 모델에 탑재된 편의 기능은 뛰어나. 지금 아키바 덴온부에 있는 보급형 모델로도 충분히 쓸만하긴 해도. 나처럼 경험이 적은 사람이라도 마음 가는 대로 트랙메이킹과 디제잉을 해낼 수 있는 정도야.

그치만

“어허? 너는.”

겉보기에 남자 같은 여인이 포장마자 음식 꾸러미를 내려놓으며 말걸어왔다.

“아키바 에어리어 카즈네잖아. 이런 데서 뭘 하고있지?”

“하……하이지마 긴카?!”

“풀 네임으로 불러주네, 고마워.”

“악, 아뇨……. 죄송합니다. 좀 놀라서요.”

“여기 괜찮아?”

옆에 앉아도 괜찮냐, 고 말하는 것 같다.

“네, 네에. 그러시죠…….”

가볍게 웃음짓자 긴카가 걸터앉는다. 그냥 앉기만 해도 굉장히 우아해 보인다. 행동 하나하나가 실로 스마트. 역시 아자부의 잘 나가는 집안, 하이지마 가문 영애답다.

거기다 이런 모습까지 하고 있으면, 당연히 미나토 시로카네 여학원에서 많을 것이다. 어찌보면 자신의 라이벌, 아니. 선망의 대상이겠지.

멀뚱멀뚱 그 옆모습을 바라본다.

얼핏 보면 남자같지만 가까이서 보니 굉장한 미녀란 점을 느낄 수 있다. 피부 관리도 철저하고 머릿결은 곱고 부드러울 것 같아. 속눈썹이 긴 데다, 눈동자도 아름다워.

거기에 집안도 유복하고, 음악적 재능도 많다지……. 사기캐가 따로 없다는 생각에, 카즈네는 맥이 빠져버렸다.

평상시엔 이런 잘생긴 여자 옆에 앉으면 흥분해서 정신줄 붙들고 있기도 힘들텐데, 지금은 하나도 들뜨지 않아.

하하……. 드디어 갈 데까지 가버린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긴카가 보따리에서 네모난 상자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무심코 받아버렸다.

“헛? 저, 이거…….”

“그냥 계속 쳐다보길래. 먹고 싶어서 그런거 아닌가?”

긴카는 자기 몫을 무릎에 올려놓고는 뚜껑을 열었다.

규동?!

“그냥 규동이랑 치즈 규동이 있었거든. ‘어느 쪽을 고를지 모르겠을 땐 둘 다’던 말이 떠올라서 그만, 둘 다 사 버렸지 뭐야.”

그걸 두 개나 샀어?! 혼자 먹으려고?!

“아뇨, 저, 그게. 죄송해서요.”

“너무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기분 내키는 대로 산 거라, 혼자서 둘 다 먹기엔 양이 좀 많거든. 같이 해치워 줬으면 좋겠어.”

사람을 혼절시킬 정도로 상큼하게 웃으며 말하니 거역할 수가 없다.

“……잘 먹겠습니다.”

“참고로 말하자면 내가 치즈규동에 걸린 것 같은데……. 이건 하늘이 정해준 답이라 생각해도 되겠지?”

“어, 어어. 물론이죠.”

인류가 규동을 먹기 시작한건 언제부터일까?

아니 그게 아니라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아자부 에어리어 하이지마 긴카와 함께 벤치에서 규동을 까 먹고 있다니, 무슨 이세계 판타지 같은 거냐고.

“음. 역시 이 쌈마이한 맛은 끊을 수가 없어. 그야말로 B급 음식을 향한 기대를 충족시켜주는데.”

“예?”

“이런 요리, 우리 셰프는 안 만들어주거든. 아키네 집에서 만들어 준 적이 있긴 한데, 최고급 재료로 섬세하고 빚어낸 고급스러운 맛이라 그냥 요리 같았어.”

최고급 재료와 최고 요리사가 만든 B급 미식이란 것도 매력적인데. 그래도 셀럽이라 불리는 가진 자들이 추구하는 방향은 서민들의 욕구와는 좀 다른 것 같아.

……가진 자들의 여유란 거겠지.

굳이 그런 사실을 밥상머리에서까지 떠올려 버리다니, 너무 신경질적인 거 아니냐고 스스로에게 추궁하고 싶어진다.

“왜 그래? 혹시 배고픈 게 아니었나?”

어느새 젓가락이 멈춰 있었다.

“아, 아뇨! 맛있어서요.”

생각을 어떻게 정리하지 못한 채로 규동을 꾸역꾸역 먹어댄다. 옆에는 남자 차림을 한 여성분이 있고, 걱정은 어느새 저만치 나가 있는데다, STACK 배틀 때문에 부담감이라던가 여러가지로 머리가 핑핑 돈다. 아무튼 어서 먹고 이 자리를 뜨자. 그런 생각만 하며 마냥 먹어댄다.

“……잘 먹었습니다.”

“응. 정말로 잘 먹더라.”

막상 그렇게 말해주니 또 부끄럽다. 빨리 먹기 시합 같았을까.

“저, 저는 이쯤에서……. 아, 얼마 보내드리면 될까요?”

현금은 들고 있지 않지만 ID-J를 사용하면 사람들끼리 돈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 실제로는 은행을 끼고 이루어지는 일이긴 하지만.

“이쪽에서 일방적으로 떠넘긴 거니까 안 줘도 돼.”

“그래도…….”

“그 대신 들려주지 않겠나?”

“뭘요?”

아자부에서 아키바에게 물어보고 싶은 건 따로 없을텐데.

지난번에 이긴 건 우연의 일치다. 실력으로 따지면 아자부가 훨씬 위니까. 아키바가 질문에 대답해가며 뭔가 가르친다고 해 봐야 저쪽에 그닥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네 고민.”

…….

“기대하던 식당에 갔더니 문 닫아버린 표정을 하고 있어서.”

그건 대체 무슨 표정이야.

“하하……. 그 시부야랑 대전을 한다니까, 역시 긴장돼서요.”

“시부야와는 관계없는 일 아닌가?”

긴카는 카즈네의 손에 있던 빈 규동 그릇을 집어들고는, 자신이 먹고 난 규동 그릇도 함께 차곡차곡 봉투에 집어넣었다.

“아! 죄송합니다!”

황급히 일어나려는 카즈네를 가볍게 제지하고서, 가까운 쓰레기통에 버리러 간다.

“나는 분명 네가 자기 일로 고민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예?”

“오지랖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마음에 짐을 덜어놓고 경기에 임해줬으면 좋겠거든. 아키바가 최선을 다해 줬으면 좋겠어.”

“…….”

“너희들은 아자부를 꺾고 시부야와 대전하지. 우리들 패배를 짊어지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런 너희들이 당당하게 경기에 임하기를 바라면 내가 너무 이기적인가?”

그렇게 말해가며 몰아세우네, 교활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반박할 수가 없어.

“……사실 저, 제가 엄청 잘난 줄 알았어요.”

마음 속에 엉켜있던 것들을 조금씩 뱉어냈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할 줄 안다고 무엇이든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실제로는 아주 유능한 것 같더만. 그렇지 않고서야 학생회장 같은 걸 어떻게 하겠어?”

“잡일 같은 거예요. 학교랑 동아리, 사람과 사람 사이를 조율하고 예산을 편성해 주는, 그런 중간에 끼는 일이랑 사무처리밖에 없어요.”

“그런 걸 해낼 사람도 흔하지는 않을텐데……. 그래서?”

“요즘 많이들 한다고 해서 덴온부를 시작하긴 했지만, 하다 보니 진심으로 하게 된 것 같아서……. 그래도, 진심을 다하면 다할수록 넘을 수 없는 벽을 느끼게 된 것 같아서.”

“………….”

“제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긴 한데, 저는 노력으로 재능을 일궈내는 타입이라 생각하거든요. 장기적인 목표를 먼저 정하고,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를 분석한 뒤 단기적인 목표를 정해서 소화해 가는 식으로요. 그러면 최종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니까요.”

“실로 논리적이구나.”

“하지만, 레이나나 시부야 사람들한테는 이런 방법이 통하지 않아요.”

절로 시선이 떨구어진다.

“이론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요. 통계로 쌓인 데이터나 Iris가 해주는 제안만으로 그런 플레이는 생겨날 수 없어요. 감각적이라고 해야 할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분명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도통 알 수가 없어요.”

고개를 숙이고서는 말을 이어간다.

“아자부 분들을 만났을때도 똑같았어요. 탑 랭크 DJ를 만나면 만나갈수록 나는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만 짙어져요. 분명 같은 노래를 들어도 받아들이는 정보량 자체가 다른 거겠죠. 거기다 그런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더이상 분석해낼 수조차 없었어요. 그래도 시부야 에어리어 세토 미츠키 씨는 저랑 비슷한 타입이 아닌가 싶어서 한번 말씀을 여쭤봤는데요…….”

“어떠했나?”

“음악적 재능부터가 하나부터 열까지 달랐어요. 게다가 저는……. 그런 경지까지 다다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전부 털어놓자 오히려 후련하다.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지만.

“역시 노력으로 실력을 닦는 사람은 타고난 사람을 이겨낼 수가 없구나, 그런 현실만 계속 깨닫게 되네요.”

있는 힘껏 웃어보였다.

긴카가 물끄러미 웃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고마워. 네 속마음을 들려줘서.”

“아뇨. 저야말로 넋두리만 늘어놓았는걸요, 감사합니다. 조금이나마 홀가분해졌어요.”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도 비슷한 사람이 있거든. 이해해.”

“예?”

누구 이야기야?

“사람은 그 주변에 있는 것들이 지닌 가치를 깨닫지 못하는 법이야.”

“위로해주시는 거예요?”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일이야. 타고난 사람들은 어떤 한 가지 부분에 있어서는 초인적이지만, 절대 만능이라고 할 순 없어. 잘하는 것 빼고는 도무지 쓸모가 없어서, 오히려 글러먹은 인간들이 많다니까.”

“글러먹은 인간들이라뇨…….”

별안간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러니까 노력으로 일궈낸 사람이니 타고난 사람이니 하는건, 그냥 유형이 다를 뿐이지, 거기에 위아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는.”

“그건…….”

“그러니, 이 자리에 계신 본보기가 될 천재분께 말씀을 여쭤볼까?“

예?

“너도 듣고 있었지? 나름대로 느낀 바를 말해 줬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벤치 두 칸 옆을 바라보며 말했다.

거기 드러누워 있던 형체가 벌떡 일어났다.

얼굴 위에 올려놨던 대회장 지도 밑으로 우거지상이 나타났다.

호, 호오 카린?!

왜 이런데서 자고 있는 거야!!

그리고 난 또, 하나도 눈치 못 채고 있었던 거야?!

카린은 머리를 긁적긁적 긁어댔다.

“알게 뭐냐. 그딴 거, 생각해 본 적 없거든~.”

하하……. 그러시겠죠.

“때려치울 테면 때려치워. 그런 녀석들 매년마다 지천에 널릴 정도로 생겨난다고. 난 그런 따라지들한테는 관심없어.”

벤치에서 일어나더니 긴카를 도전적인 눈빛으로 바라본다.

“오지랖 그만 부리고 느이도 슬슬 진심을 보여 봐. 아자부 친구.”

“무슨 소리지?”

“흥……. 뭐 아무렴 어때. 이만 가본다.”

카린은 등을 돌리고 떠나려 한다.

“아, 맞다.”

걸음을 멈추고는 어깨 너머로 돌아섰다.

“너 임마, 아키바였지?”

“히? 아, 네.”

카린이 자기 존재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렇다면 이자식이나 나 같은 애들한테 털어놓지나 말고 ‘동료’라던가 그런 친구들하고 상담해보는 게 어떻냐?”

“……어.”

동료?

머릿속에 레이나와 후타바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키바는 그런 느낌 아녔어? 난 자세히는 모르지만.”

카린은 그렇게 말하고는 성큼성큼 떠나갔다.

긴카는 그 뒷모습을 눈을 휘둥그레 뜨고 바라보고 있었다.

“놀라운데……. 설마 저렇게 제대로 된 조언을 해주다니.”


국립 요요기 콜로세움에는 일반인들에게 판매하지 않는 특별석이 있다. 보통 스폰서 전용으로 판매하는 VIP 룸이다.

관계자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에 있어서, DJ와 뮤지션들이 출연하기 전에 이야기를 나눠볼 수도 있고, 뒤풀이에 참가할 수 있는 혜택도 있다.

유명한 프로듀서인 하이지마 후가도 VIP 룸 하나를 통째로 빌려 놓았다. 평상시라면 비즈니스 상담을 하기 위해 이런 방을 빌리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이다.

“……고 단언할 수 있을까.”

재미있는 일이라면 언제나 아는 사람과 벌이는 잡담 가운데 벌어지는 법.

그렇다 한들 어디까지나 결과적으로 그래왔단 말이다. 처음부터 그런 걸 기대해선 안되겠지. 오늘은 단순히 쉬러 온 것 뿐이다. 일단 고급 이탈리안 브랜드 정장을 입고 있지만, 셔츠에 넥타이로 러프하게 걸치고 있다.

교섭을 한다거나 달성해야 할 목표 없이, 그냥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과 친목을 다질 뿐이다.

그런 소박한 기쁨을 누릴 기대로 가득 차 있다.

옛날에는 좋았는데.

언제부턴가 가면을 쓰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가 얼마 남지 않게 되어버렸다.

그랬었지, 마음속으로 되뇌이던 바로 그때

“여기가 맞나?”

노크도 안 하고 문을 벌컥 연다. 오만상이 문틈을 내려다보았다.

“기다리고 있었잖아, 레이아.”

히다카 레이아, 기다리던 사람 중 한 명이다.

웃으며 대답하자 레이아가 잔뜩 구겨진 표정으로 걸어들어온다.

티셔츠 위에 진베이를 걸치고는 칠부 바지를 입은 다리 끝에는 샌들. 동네 마실 나온 아저씨 차림을 하고 있다.

“하튼 간에, 왜 이런 곳으로 불러내는 거냐. 전에 갔던 술집 같은 곳에서 봐도 괜찮잖아.”

“여기도 추억의 장소 중 하나잖아?”

“그닥 좋은 추억은 아니그든요.”

“레이나 양 하는 거 응원해줘야 하지 않겠어.”

레이아는 머쓱해서 어쩔 줄 모른 채 머리카락을 꼬아댔다.

“뭐, 지난번에는 신세 좀 졌다. 뭘 그런 걸 다 챙겨줬더만.”

“별 거 아니니까 부담 갖지 말고. 아무튼 먼저 한잔하자.”

레이아는 VIP 룸 안을 바라보더니 곧장 유리벽까지 걸어간다.

거기엔 스테이지와 사람으로 가득 찬 스탠딩 객석, 광대한 아레나까지도 역시나 빽빽하게 인파로 가득 차 있는 모습이 잘 보인다. 아레나는 올 스탠딩 댄스 플로어다.

“이렇게 넓었던가.”

“제 1회 STACK 배틀 세계 대회……. 벌써 20년 전 일이네.”

후우가는 바 카운터에서 칵테일을 말고는 잔을 들고 레이아 앞으로 다가왔다.

“여기, 클럽에서는 언제나 첫 잔으로 럼콕 마셨잖아.”

“잘 기억하고 있구만……. 그러면 너는 진 토닉이었지.”

“가끔 탄산수만 마시기도 해. 늬들이 개가 될 때까지 마셔서 떡이 되면 그 뒤치닥거리는 내가 해줘야 하니까말야.”

“난 별로 떡 된 적은 없었다. 호무라 같은 녀석이 난리친 거지.”

레이아는 단숨에 럼콕을 절반이나 비웠다.

“데킬라 샷 같은 걸 한번 잡았다가는…….”

“그건 그렇고, 호무라 이자식 계속 외국에만 있잖아? 갸는 일본에 올 계획이 있긴 한 거냐?”

그때 문이 부서질 기세로 열렸다.

“어~이! 나님, 등장!!”

화려한 은발에 파이어 패턴을 넣은 것 같은 붉은 헤어 컬러. 그 이상으로 화려한 알로하 셔츠 앞섬은 풀어헤침. 가슴 근육과 복근을 과시하는 것처럼 맨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검은 선글라스를 벗고는 햇볕에 그을린 얼굴이 피식 웃는다.

“오랜만이다! 후가!!”

숨막힐 듯 뜨거운 남자가 찾아왔다.

호오 호무라.

DJ 세계 랭킹에서 몇 번이나 1등을 했던 남자. 20년 가까지 상위권에 자리잡고 있는 카리스마 DJ다.

성큼성큼 다가오거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후가와 악수한다. 저도 모르게 얼굴이 찌푸려지는 악력이었다.

“아……. 그런데, 얼마 전에 보긴 했잖아.”

“그야 랜선 너머로는 봤겠지. 그런데 그보다도…….”

맹금류를 연상케 하는 힘찬 눈동자가 레이아를 사로잡는다.

“레이아아!! 억수로 오랜만이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는 덤벼대듯 포옹.

“끄어억?!”

뼈와 살이 어그러질 정도로 세게 쥐어짠다.

“으어어억!! 이거 좀 놔 또라이야! 내장 다 튀어나올라!!”

“아, 미안 미안. 그런데 레이아, 살이 좀 찐 것 같지 않냐?”

풀려 나오자 레이아가 쓸쓸하게 대답한다.

“당연하지. 지금은 동네 프라모델 가게 아저씨니까.”

“프라모델 가게……? 변함없이 희안한 걸 좋아하는 녀석일세.”

“우연히 아는 사람이 가게를 정리한다 해서 그대로 넘겨받았어.”

후가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레이아와 호무라에게 한 병씩 나눠주었다. 받고 나서 세 사람은 병을 딱 부딪힌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레이아가 호무라에게 물었다.

“그저저나 너 말야, 이런 이벤트에 찾아올 여유가 있긴 해? 전 세계를 누비는 잘 나가는 DJ란 사람이?”

“엉? 여유는 없지만 가끔은 딸내미 활약하는 거 보고 그래야지!”

후가가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뜬다.

“카린 양이 찾아와 달라고 했나?”

“아! 후가한테서 이런 이벤트가 있단 걸 듣고 간만에 전화해 봤거든. 그러니 ‘빌어먹을 애비, 찾아오면 죽여 버린다.’고 하더군. 쑥스러워 하는 거 봐, 귀엽지 않아? 와 달라는 말을 이렇게 돌려 말하는거잖어! 이렇게 나오면 당연히 찾아와야지.”

라며 반갑게 말한다.

후가는 호무라가 쓸데없이 긍정적인 소리를 하는 걸 내버려두고 레이아에게 묻는다.

“그래서 레이아는 프라모델 가게 계속 할 생각인가?”

“……비행기 정비사 일거리도 줄었으니까. 이제 나도 좀 먹고 살아야지. 늬들 같은 카리스마 DJ들하고는 다르게 이쪽은 소시민이거든.”

호무라는 데킬라 병을 따면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비행기? 나는 많이 타고 다니는데.”

“나는 구형만 만질 줄 알고 요즘 나오는 기체는 몰라. AI 정비 시스템 도입하고 난 뒤론 인원도 많이 잘라대고……. 거기다가 군용 비행 시스템이 민항기에 투입되고 나면은 일반 정비사들은 그냥 속수무책이야.”

아, 하며 후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플로터 시스템 말하는 거지?”

“응, 그거. 알고 있었어?”

“이번 뉴 레전드에서 그걸 선보이려던 것 같던데. 신형 AI 스피커에 탑재되어 있더라.”

“뭐라고?!”

후가가 유리창 너머를 가리키자 레이아가 유리창으로 달려간다. 스테이지 앞에 일반 AI 스피커보다 몇 배는 커 보이는 덩치가 놓여 있다.

레이아를 따라 호무라도 유리창에 얼굴이 닿을 정도로 몸을 내밀었다.

“오, 꽤나 크구만!”

“설마……. 저기다 넣은 거야, 진짜로?”

“지금까지 쓰던 입자식으로는 저렇게 크게 만들어내긴 힘들잖아. 아, 그래도 소리를 전파하고 공간 투영도 하려고 입자를 내뿜기는 한다더라. 이번 모델부터는 홀로그램 VJ 기능도 들어갔대.”

레이아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입자로 소리를 전파하고 공간 투영을 한다라……. 분명 중동 테러 조직 제압할 때 사용한 걸로 소문난 그거 아냐?”

후가는 어깨를 으쓱하기만 했다.

“어떤 관계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어. 다만 이번 신제품은 저 신형 AI 스피커와 보급형 DJ 유니트……라더라.”

“뉴컴 제품이냐……. 마음에 안 드는군.”

그런 레이아를 보며 호무라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러냐?”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날 멋대로 이용해먹으려 하는 느낌이 확 들잖아. 실체도 모르는 누군가의 꼭두각시가 되는 건 질색이다.”

후가는 여전하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튼 그래서 레이아, 현역 무대로 돌아올 생각은 없어?”

“허?”

“다시 함께 해보지 않겠냐, 그 말이다.”

그러자 호무라도 눈에 빛을 냈다.

“오, 그거 좋구만! 재미있을 것 같지 않냐!!”

“사람 말 하는 거 똑바로 들어. 나는 이용 당하는 건…….”

“그건 너 하기 나름이지. 거꾸로 네가 이용해먹을 수도 있어.”

“아아! 레이아는 항상 어려운 생각이 많다니깐! DJ랑 오디언스가 있으면 그 외에는 죽이 되는 밥이 되든 상관없잖나?”

그리고 히죽 도전적인 웃음을 지어보인다.

“뭐, 지금 배틀하면 내가 압도적으로 이기겠지만!”

“……그렇겠지.”

후가는 쓴웃음을 머금은 레이아의 옆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레이아의 눈은 웃고 있지 않다.

뭐야.

꽤 미련 있으면서.

역시 진짜 재미있는 일은 시시껄렁한 잡담 속에서 생겨나잖아.

그때 대회장 안이 어두워지고 환호성이 터졌다. 커다란 AI 스피커에 빛이 스치고, 중력을 벗어난 것처럼 위로 떠오른다.

“오! 시작한다?!”

호무라가 창문에 찰싹 붙었다.

STACK 배틀 시작 분위기를 띄우는 음악이 흘러 나오며, 조명과 레이저 광선 연출과 함께 AI 스피커가 스테이지로 입체 영상을 내보낸다.

아키바와 시부야에서 온 대전자 여섯 명의 모습이다.

“오! 우리 딸내미다.”

“레이아네 딸도 있네.”

“뭐라고?! 설마 레이아네 집 딸내미랑 한 판 붙는건가?! 하하핫하하!! 최고잖아!! 한바탕 뒤집어지겠구만!!”

호무라는 신이 잔뜩 난 한편 레이아는 애매한 기분이었다.

아키바에는 레이나.

그리고 시부야에는 미츠키.

“하필이면 상대로 만나는거냐…….”

“뭐 어때! 응원 대항전으로 가 보는거야!!”

“아니……. 너희 딸내미 말고.”

레이아는 공중에 뜬, 거대한 입체 영상 속 두 명을 바라보았다.

“내가 멋대로 짊어진 빚을 애들한테 떠넘기는 게 아닐까 싶어…….”

조금 더 좋게좋게 다시 만날 방법은 없었을까. 이제 와서 그렇게 뉘우쳐 봤자 돌이킬 수는 없었다.


“자! 기다리고 기다리던 뉴 레전드 스페셜 STACK 배틀이 펼쳐집니다!! 시부야 테이온 국제 학원 대 아키바 소토칸다 문예 고등학교!!”

공연장을 뜨겁게 달구는 MC와 더불어 화려한 영상 연출이 스테이지 위에 펼쳐진다. 시부야 거리를 누비는 입체 영상이 흘러나온다.

마치 진짜 시부야 거리를 날아다니듯 붕 뜨는 기분이다.

“현재 천하 무적! 사상 최강! 시부야 테이온이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방향을 꺾어 도쿄를 내려다 보듯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그리고 아키하바라로 급강하.

“무명 신인 팀! 랭킹으로만 보았을 때는 거의 최하위, 아키바 소토칸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자이언트 킬링을 이뤄낼 것인가?!”

머리 위로 불꽃이 치솟아 오르고, 반짝반짝 일렁이는 빛 알갱이와 흩날리는 꽃잎이 관중석까지 쏟아진다.

마치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입체 영상에 레이나는 흥분했다.

“우와~! 대단해!!”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입체영상을 띄우다니……. 어떻게 한 걸까?”

카즈네는 흩날리는 꽃잎을 손바닥으로 받아내려 했지만 꽃잎은 손을 빠져나가 바닥으로 빨려들어가 사라진다.

“이제 선봉 1번 선수!! 소토칸다 문예 고등학교에서 찾아온 아이돌 버서커!! 카야노 후타바!!”

깜짝, 후타바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레이나와 카즈네를 돌아보며 울상을 지었다.

“저, 저 말예요……. 이상한 호칭도 붙은 것 같은데요…….”

“이젠 포기하자. 어느정도 정착된 것 같으니까.”

“별명이 생긴 거잖아, 좋은데!!”

이런 기분을 이해해주지 않는 카즈네와 레이나를 보고는 후타바는 더욱 위축되었다.

“……하나도……. 안 좋은데요. 부끄러워요…….”

“나는 뭐라고 불릴까? 기대된다, 카즈네 쨩!”

“아……. 까먹고 있었다. 캐치프레이즈는 후타바한테만 붙였어.”

“너무해요!”

“그리고 테이온 국제 학원 넘버 쓰리이이이!! 귀여움의 탈을 쓴 호랑이! 콘크리트 정글 속 동물의 왕! 시부야 행동대장, 타이가 루키…….”

“잠깐만 있어봐아아아아아아!!”

이름이 불리던 루키아가 큰 소리로 안내방송을 멈춘다.

“어……. 무, 무슨 일이신가요?”

“이 승부, 루키아는 연승전으로 하고 싶어!”

갑작스러운 제안에 아나운서와 대회 주최진 모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카린이 아키바를 쓰러트리고 오면 승부해 준댔어! 그러니까 루키아가 혼자 아키바를 전부 쓰러트리고 말 거야!”

“자,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룰은 이미 정해졌고, 진행도 그에 맞게 순서를 정해 놓어서…….”

“그런 거 루키아는 신경 안 써! 루키아가 혼자 아키바를 상대한다면 상대하는거야!! 루키아, 한 판이라도 더 하고 싶어!!”

관객들이 빼곡히 모여 있는 플로어가 웅성대며 파도처럼 일렁이고 있다.

눈을 치켜뜨고 송곳니를 드러낸 루키아를 보며 후타바는 바들바들 떨었다.

“여, 역시, 시부야 분들은 치안이 엉망이에요…….”

“그것도 그런데, 좀 떼쓰는 것 같아…….”

카즈네는 어이없어하며 중얼거린다. 하지만 마음 속 어딘가에는 선망도 느끼고 있다.

저런 게 천재인가봐.

자기 중심적이고, 제멋대로고, 다른 사람들 사정이나 민폐 같은 건 하나도 신경 안 쓰잖아.

그냥 자기 욕망만을 바라보고, 그것만 생각하면서 헤쳐나가잖아.

난 저렇게는 못 되겠어.

“카린도 혼자서 다 쓰러트린 적 있다 했어! 그러니까 루키아도 그렇게 할래!”

난처한 아나운서에게 카린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지 않아?”

“예에?!”

“세 명이 루키아한테서 내리 진다면 미츠키가 나올 필요가 없어. 그리고 내가 나올 필요도 없게 되고.”

“그, 그치만…….”

“이 조건 안 받아들이면 우리도 배틀 안 해. 이만 가 본다.”

대회장 전체에서 비명 같은 웅성거림이 터져 나온다.

운영진이 분주하게 우왕좌왕하더니, 아나운서에게 귓속말을 한다.

“어, 으음. 갑작스럽지만 이번 스페셜 STACK 배틀은, 승자가 계속 상대하는 방식으로 하겠습니다. 먼저 세 판 진 에어리어가 최종적으로 패배하게 됩니다!!”

대회장 곳곳에서 야유가 솟구쳤다.

“에이~. 그러면 미츠키와 카린이 하는 건 못 듣는 거 아냐.”

“루키아 무쌍으로 끝나버릴걸~.”

불만이 퍼져나오고 욕설이 울려퍼진다. 아키바 세 사람은 그런 소동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장본인 루키아는 아주 신났다.

“아하하하하! 그럼 된 거야!! 자, 슈퍼 루키아 타임 시작한다~!!”

갑자기 뛰어 나오더니 몸을 비틀고 전방으로 공중제비하며 DJ 부스로 뛰어 들어온다.

“Let’s PARTY!!”

ID-J 로그인도 그 순간에, 갑자기 플레이 버튼과 세로 페이더를 쏘아 올렸다.

신형 AI 스피커가 순식간에 눈뜬다. 기존에 있던 모델보다 음압이 훨씬 강한 스피커가 넓은 회장을 가득 채운 입자를 진동시킨다.

관객의 가슴에 폭음이 울렸다.

갑작스럽게 레드 존을 꺼내들며 청중들을 억지로 끌어올린다.

함성이 높아지고, 천장을 향해 팔이 치밀어 오른다.

“다 같이 달려보자!! 너희들 루키아 잘 따라오도록 해애애애!!”

우오오오오오오오, 땅울림 같은 우렁찬 외침이 대회장을 뒤흔든다.

후타바는 스타트가 완전히 늦었다.

“으아아아……. 그게 그게, 처, 처음에 어떻게 하려고 했더라?!”

이번 배틀은 맞붙는 양측이 동시에 플레이를 진행한다.

현장에 찾아온 관객은 입장할 때 지급받은 이어폰으로 어느 쪽이 하는 플레이를 들을지 선택하고, 그쪽 AI 스피커가 진동시키는 입자를 이어폰으로 수신해 들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입장할 때 지급받은 손목 스트랩, 가슴에 붙인 스티커가 몸에 음압을 전달한다. 그렇게 해서 온몸을 뒤흔드는 진동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먼저 루키아가 플레이하는 걸 듣고 그 감각을 맛보고 나면, 일부러 후타바의 플레이로 돌릴 생각이 잘 들지 않게 될 터이다.

“흐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이, 일단 소리가 안 나오는 것 같은데?! 아, 게인(gain)을 안 맞춰 줬잖아! 얼레?! 아직도 소리가 안 나는 것 같은데에에~……. 헉?! 페이더도 안 맞춰 놓았네. 침착하자, 침착하자. 분명 괜찮을 거야. 연습 잘 하고 왔잖아……. 윽?! 노래 잘못 틀었어?! 아, 아무튼 일단 컷 인으로 이어가기 좋았던 그 노래로! 햐아아아아악 큐, 큐, CUE 포인트 어디였더라?!”

패닉에 패닉이 꼬리를 물면서 후타바의 머리는 완전히 오버 플로우. 필사적으로 침착하라고 자신에게 타이르며 되뇌인다.

아, 아무튼 진정해야 해! 이러는 와중에도 관객 분들을 전부 시부야로 뺏기고 있……. 어?!

후타바는 새삼스럽게 광대한 아레나를 관객들이 가득 메우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 냈다.

하지만, 그 모습을 안 보기만 하면 괜찮을 거야.

그게 바로 후타바가 준비해 온 작전이었다.

하지만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버렸다. 보고 말았다.

괘, 괘괘괘괜찮아! 야채 같은 거, 뿌리채소 같은 거라 생각하자고! 저건 감자, 이건 토란, 요건 고구…….

어두운 객석 속에서 무수한 빛이 꿈틀거리고 있다. 관객들이 착용하고 있는 이어폰이나 링에서 새어나오는 빛이었다. 어느 쪽 플레이를 듣고 있는가를 빛깔로 알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시부야는 빨강, 아키바는 파랑.

셀 수 없는 붉은 깜빡거림이 물결처럼 일렁이며 마치 자신을 금방이라도 덮칠 것 같은 한 무더기 벌레처럼 보였다.

모든 관객들이 자신을 적대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휘익, 시야가 꺾인다.

아……. 이젠, 못해.

후타바의 의식이 저 깊은 곳으로 빠져들어간다.

저 멀리, 지하 깊은 곳에 지어진 절대 안전 대피소.

거기로 가면 안전해, 안심할 수 있어.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어.

내가 거기 틀어박혀 있는 동안 또 다른 내가 어떻게든 해 줄거야.

역시 그게 제일 좋겠어.

창피하지만, 꼴사납지만, 다른 분들 발목을 잡을 순 없으니까.

마음 속 문을 연다.

얼레?

내 마음 속 방에 이미 누가 있어.

잘 알 것 같으면서도 본 적 없는 뒷모습.

그 모습이 뒤를 돌아본다.

“야호~.잖아♥. 고생 많았져.”

어.

내가 있어.

그런데, 어딘가 조금 달라.

나는 이렇게 티 없이 웃을 수 없어. 이렇게 자신감 넘치는 태도도 가질 수 없는걸.

이건 야.

또 다른 카야노 후타바.

“어……. 어째서…….”

내가 여기에 있는 동안에는 내가 다 해주는 거였잖아. 그런데 왜 여기 있는 거야?

“어어~? 그야가 그렇게 원했으니까.”

“응?”

“그야, 내가 튀어나오면 부끄러워하는 거 아녔어~?”

“그, 그건…….”

“다른 사람도 아니고소원인걸. 당연히 따라 줘야지~.”

“자, 잠깐만. 그래도 가 드러나 주지 않으면 곤란해지는걸…….”

“어어? 그거 좀 이상하지 않아?”

가 얼굴을 찌푸린다.

“날 가리키면서 말야, 이런 건 지가 아니라며 부끄럽다며 다 말해 놓고서는, 편할 때만 부려 먹으시겠다? 그건 좀 너무하잖아.”

“그……그건…….”

“그래도 보고 싶잖아?”

“보고 싶다니……. 뭐, 뭘 말야?”

“좋은 경치.”

나는 숨을 삼켰다.

하라주쿠 분들과 레이나 씨가 굉장하다고 말했던 그 경치.

디제잉을 하는 모두가 볼 수 있는 광경.

자신의 플레이로 많은 사람들이 춤추고 즐기는 모습.

그건 분명 굉장한 경치임에 틀림없어.

그런데 나는 본 적이 없어, 볼 수가 없어.

그 경치는 나 대신 어려움을 이겨내 주는 몫이니까.

“그렇지……. 너무 있는대로 부려먹었지. 내가…… 미안해.”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제대로 알고 있어? 자기 자신한테서 미움받는거 진짜로 슬퍼.”

“……응. 알아.”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감정을 아주 스트레이트로 드러낸다.

“호? 적당히 둘러대는 거 아냐? 싫어한다고 말한 건 그쪽이면서.”

“그야, 나는 나를 싫어하니까.”

는 한쪽 눈썹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마음도 약하고, 겁도 많고, 소극적이고, 언제나 다른 사람 시선만 신경쓰고, 다른 사람들 눈치보면서 불안해 하고, 뭐든지 시작하기도 전에 다 포기해 버리는 내가…… 싫어.”

이런 고백을 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야.

그래도 할 수밖에 없잖아.

자신을 대하기가 무서워.

할 수 있으면 그냥 이대로 못 본 척 하고 싶어.

그럼에도,

레이나 씨와 카즈네 쨩이 기다리고 있어.

나 혼자만 겪는 문제라면 아마 이렇게 평생 도망칠 수 있을텐데.

하지만 동료들을 생각하면.

나는,

“사실은 나도 처럼 되고 싶어!”

“………….”

“자신감 넘치고, 항상 즐거워 보이고, 반짝반짝거리고, 다함께 웃을 수 있는 그런 자신이 되고 싶어!”

“그 말은…… 나를 안 싫어한다는 뜻이지?”

“……조”

“조?”

각오를 다지고 숨을 들이마시고

“좋아해!!”

고백했다.

“응?!”

“그야, 내가 되고 싶은 아이돌같은 모습이니까! 좀…… 너무 튀는 감이 없잖아 있긴 해……도! 나도 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하니까!”

나는 약간 새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조금 쑥스러우면서도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말야. 역시 그러니까 스스로 해내면 되는 거잖아, 나 같은게 무슨 쓸모가 있다구.”

“그렇지 않아!”

나는 손을 잡았다.

“아직 지금은 내 힘을 빌려야만 해, 약속할게.”

“무슨 약속?”

“언젠가 나와 , 하나가 되자.”

“그게…….”

“이제 알았어……. 아니, 아마 그냥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거야. 부끄러웠으니까. 그래도, 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내 일부라고 이젠 말할 수 있어. 나에게 여러가지 모습이 있다 해도 지금은 아직 그걸 솔직하게 말할 수 없어서…….”

나는 진지한 눈빛으로 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지금은 가 필요해! 부탁해! 다들 기다리고 있……”

갑자기 가 품에 안겨들어왔다.

“어, 어어?”

“다행이다. 내가 미움받는 게 아니라서.”

“……응.”

“그러니도 자신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응. 그럴게.”

“정말루?”

“약속할게. 는 내 일부니까,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어. 그러니 스스로 자신을 단정짓지만 않으면 어떤 모습의 나든지 될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생각이 들었어.”

“……웅.”

는 나에게서 벗어났다.

“좋았어~!! 이제 불태울 준비 다 됐어~. 한번 해보자고오!!”

그렇게 기합을 넣고 는 문을 나섰다.


스테이지 위에 멈춰 선 후타바를 보며, 레이나와 카즈네뿐만 아니라 관계자와 관객들도 불안에 찬 목소리를 높였다.

“있지 카즈네 쨩……. 후타바 쨩 왜 저러는 거야?”

“나도 잘 모르겠어. 그런데 좀 있으면 노래가 끝나……. 큰일이네.”

노래가 아웃트로에 접어들며 소리가 잦아든다. 그 순간 후타바의 양손이 움직였다.

“좋았어 가 보자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마이크를 집어올리더니 갑자기 온 회장을 뒤흔들 샤우팅을 외쳤다.

나! 험난해! 이머전시! HELP ME 아이돌!

후타바의 노랫소리를 따라 AI 스피커가 반응한다. 소리의 굴곡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바꾸어 이펙트가 아레나에 물결처럼 퍼져 나간다.

그 이펙트가 궁금해진 청중들이 후타바가 플레이하는 쪽으로 이어폰 채널을 돌린다. 순간 귓가에 MC가 뛰어들어온다.

다들~! 즐기고 있지~?!

MC를 하지 않고 묵묵히 플레이하던 루키아와는 반대로,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분위기에 관객들은 그만 반응해버리고 말았다.

후타바 쪽 채널로 돌린 청중들이 주먹을 치켜들며 우렁차게 외친다.

나! 험난해! 현란해! HELP ME 아이돌! 아직아직 좀 더!

그런 청중 반응을 본 모양인지 다시 후타바가 플레이하는 쪽으로 돌리는 청중들이 불어났다.

후타바는 플로어에서 넘어오는 반응을 느꼈다.

좋았어! 이대로 치고 가 보자.

“다음 곡 가 보자구~!! 쓰리, 투, 원, 브레이크 올~!”

후타바는 정신없는 텐션을 불러일으키는 전파곡으로 접어든다.

레이나와 카즈네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됐어!!”

“응! 가보자고! 후타바 쨔아아아아앙!!”

갑자기 변한 후타바의 모습을 보고 루키아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저 녀석 뭐야?”

후타바 쪽 소리를 모니터링하더니 루키아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아하하하하, 저 녀석 재미있~어!”

그리고는 눈동자에 광기 한 줄기가 미친다.

루키아는 소매 지퍼를 풀었다. 팔을 한 바퀴 돌면서 지퍼를 다 풀어내자 소매가 완전히 풀려나갔다. 루키아는 그 소매를 집어던졌다.

소매가 다 떨어져 나가자 팔뚝까지 전부 다 드러났다. 걸리적거리는 소매가 없어지자 루키아의 움직임이 훨씬 날렵해졌다. 마치 쇠사슬을 벗어던진 맹수를 연상시켰다.

“그래도 루키아 쪽이 더더욱 대단하거든!!”

최근 먹어치운 사냥감으로부터 음악 재료를 꺼내온다. 그것은 배틀했던 상대 플레이를 자신 안에 받아들이고 소화해내 자신의 일부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탐욕스럽게 있는 대로 먹어치운다. 허나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

비뚤어지면서 성장한 플레이에 AI 스피커가 반응한다.

호전적이고 폭력적이면서, 야성적이고 굶주린 맹수 같은 플레이가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다.

루키아의 등 뒤에서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려퍼지고, 스테이지 위로 큰 전류가 내려친다. 그 번개는 아레나까지 튀어 관객들의 머리 위를 지나갔다.

그 방전 현상이 생물의 모습으로 바뀌어 나간다.

호랑이.

진짜 호랑이가 나타난 걸로 착각한 관객들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실물 호랑이보다 훨씬 거대하고 아름답다. 그 호랑이가 벽을 뛰어오르고 천장을 내달려 스테이지 위로 돌아온다.

“오~옷!! 대단해~!! 멋지다~!!”

호랑이는 루키아에게 길들여진 것처럼 그 옆을 지키고 있다. 데구르르 구르는 몸짓이 루키아가 보기에 귀여웠다.

“멋있고 귀여우니까 루키아한테 아주 딱이야! 너 이 자식 최고야!”

이 호랑이는 루키아와 그 폭주하는 플레이를 해석해낸 Iris가 데이터베이스에서 골라낸 것, 《원평토마전》남코에서 1986년 발매한 아케이드 게임에 등장하는 호랑이를 기반으로 재구성해낸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VJ가 루키아의 텐션을 더 폭발시키듯 끌어올려 그 양성 피드백으로 DJ와 VJ를 더욱 격렬하게 만들어간다.

루키아는 눈에 띄지 않는 스피드로 DJ 유니트 위를 현란하게 주무른다. 마치 DJ 유니트와 대련하는 것 같다.

다음은 동시에 두 곡을 로딩.

“으쌰아아아아!!”

호랑이가 움직이는 모습에 영향을 받은 모양인지 루키아도 스테이지 위를 뛰어오른다. 공중에 떠 있는 AI 스피커를 발판삼아 더욱 높이 몸을 던져, 후방으로 몸을 비틀어 공중제비. 루키아가 종종 디제잉 하면서 선보이는 파쿠르 같은 움직임이다.

그리고 DJ 부스 중앙에 착지하는 동시에 CUE 버튼 두 개를 눌러 두 곡을 동시에 시작한다.

이어서 샘플링된 음원을 재생한다. 또 이어서 DJ 유니트 채널을 전환해 나가며 다른 트랙을 반복해 나간다.

DJ 유니트에서 지원하는 6개 채널을 전부 사용한 믹스.

“아하하하하! 어~때! 어때?! 루키아는 이런 것도 할 수 있다고!!”

그러한 플레이에 호랑이도 반응하며 포효했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몸에 전류가 흐르며 회장을 종횡무진 누벼댄다.

그 반짝임을 눈부시게 바라보던 미츠키가 중얼거렸다.

“대단하구나…… 루키아.”

그 옆에 카린이 팔짱을 끼고 서 있다.

“어엉. 장르가 다른 곡 여러 개를 쌓아서 리듬을 새겨 가고 있잖나.”

“리듬이 싱크가 어긋나 있음에도 그루브가 느껴지네……. 선율도 참신하고. 마치 실험적인 현대 음악 같은걸.”

“아아……. 확실히 재미가 있어. 그런데 이걸 이해할 수 있는 자식들이 이런 공연장에 얼마나 있을 것 같아?”

“별로 없을 것 같은데.”

시시해하며 대답하는 미츠키에게 카린은 짐짓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그렇겠지.”

카린은 스테이지 위에 떠 있는 홀로그램 점수판을 올려다 보았다. 점수판에는 양측 점수를 보여주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크게 벌어져 있던 점수차가 점차 좁혀지고 있었다.

“루키아가 하는 플레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나처럼 DJ나 음악을 잘 알고 있는 녀석들 뿐이다. 하지만 여기 모인 보통 녀석들은 이해 못 하겠지. 사람들은 자기가 이해 못 하는 건 나쁘다고 선을 그으니까.”

“……당신이 그런 냉철한 분석을 하다니, 좀 의외인걸.”

“너 임마, 날 바보로 보는 거야?”

“당신은 그냥 자기 기분 내키는대로만 하는 사람일 줄 알았거든.”

“그건 그렇지. 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데.”

“정말로?”

“뭐야?”

“아까 늘어놓은대로 따져 보면, 당신은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플레이를 하는 거잖아. 그건 대중들에게 아첨하는 게 아니고?”

카린이 피식 웃었다. ‘뭘 모르는구만’이라 말하고 싶은 것처럼.

“아냐. 난 내가 하고 싶은대로 했는데 왠지 모르게 대중들이 멋대로 좋아해주는 거거든.”

“아주 행복하시겠어. 대중들이 아니라 신도들이라 불러야 하나?”

카린은 미츠키가 빈정대는 소리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그래서 원하는 게 있으니까 사람들이 기도를 하는 거야. ‘카린이시여, 저희에게 더욱 빛을 내려 주소서’하고 말이지. 그러다보면 가끔 한두번 비위 맞춰줄 때도 있고, 그런 거야.”

카린은 힐끔 곁눈질하는 척 하며 미츠키에게 웃음짓는다.

“대중들이 나한테 아첨하는 거라고.”

“…….”

미츠키는 한숨을 쉬더니 점수판을 올려보았다.

“확실히 평가하는 쪽은 무지하고 무능한 대중들이야. Iris는 그런 대중들에게 붙어먹는 쪽인걸. 이러다 지는 거 나야?”

“글쎄다.”

“그런데도 기쁜 눈치인데.”

“루키아가 벌써 이만큼 컸다 싶어서 말이지.”

미츠키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카린을 바라본다.

“엄청 깔보고 있네.”

“내가 3년 전에 밟은 전철이거든.”

“허어……. 당신한테도 그런 시절이 있었어?”

“엉. 사람들이 하지 않을수록 굉장하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수록 멋지다고 생각했어. 개썅마이웨이 같은 거지.”

“개인적으로는 그쪽이 조금 더 재미있어보이는데……. 그쪽은 어쩌다 그만둔거야?”

“어쩐지, 새 장난감을 갖고 노는 어린애같아 보이고 그래서. 그렇게 자각하고 나니 좀 더 점잖은 쪽이 멋진 것 같고 끌렸거든. 그리고…….”

카린은 씁쓸한 표정으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애비가 중2병같단 소리를 한 게 짜증났기도 했고.”

“푸흡.”

“……너 임마, 웃어?”

“무슨 소리야?”

카린이 돌아보니 미츠키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천연덕스러운 표정이었다. 그 눈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지만.

“이제 얼마 안 남았어. 슬슬 결판이 날 것 같아.”

 

후타바는 기분이 최고조다.

완전히 들떴다.

미쳤어, 끝내준다.

루키아 쨩이 불러낸 호랑이가 아레나를 누비고 다니다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홀로그램인 줄 알면서도 왠지 피해야 할 것 같아.

를 위협하며 포효하고 있어.

스테이지 아래에 뜬 타임 카운터를 보니 남은 시간은 앞으로 2분, 는 마이크를 잡고 소리쳤다.

“자! 좀있으면 막곡이야!! 심장이 멈출 때까지 춤추자구!!”

마지막 곡, 시작.

그 순간 앞에 초록빛이 반짝였다.

“히?”

그 빛이 우뚝 솟은 벽이 되었다.

……어?! 이게 뭐야아아?!

그건…… 정확히 뭔진 모르겠지만, 데포르메를 세게 먹인…… 초록 괴수같았다.

약간 삐걱삐걱 로봇 같은 디자인.

이등신 쯤 되어 보이는 것 같아서 귀여워. 그런데 좀 크다.

강한 건지 약한 건지 분간이 안 되는 모습을 하고서는, 호랑이로부터 를 지켜보이겠다는 듯 가로막는다.

호랑이가 으르렁대자 괴수도 입을 열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노래는 샤우팅할 타이밍이야.

마이크를 잡고 는 외쳤다.

으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목소리에 맞춰 괴수의 입에서 광선이 발사되었다.

의 샤우팅이 공격력으로 변한 것 같은, 일렁임과 같은 광선.

그 광선으로 루키아 쨩이 불러낸 호랑이를 날려 보냈다.

곧바로 환성이 터져 나온다.

광활한 아레나에 몰려든 대규모 군중들이 위아래로 흔들리고 있다. 힘껏 머리를 흔들어대고 있어. 스탠딩석에 계신 분들도 일어나 있어.

붉은 빛과 푸른 빛이 춤추고 있다.

그 빛은 아마도 반반인 것 같아.

이 공연장 절반은 가 춤추게 만든 거야.

원 코러스 끝.

그리고 후렴부에 다시 들어서자 객석에서 반짝임이 몰려온다.

눈부셔……어?

으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드넓은 아레나를 가득 채운 사람과 사람, 또 사람. 스탠드에도 사람이 한가득.

아, 이 경치 얼마나 좋아.

이런 전망을 혼자서 다 차지하고 있다니…….
 

나는 어두운 방 안에서 쪼그려 앉아 있어.

바깥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지금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를 믿고 기다리기만 할 뿐이야. 그래도 조금 불안하다보니 방 안을 두리번거린다. 이래봤자 밖이 보일 리도 없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데 문이 벌컥 열렸다.

가 다급해진 표정을 짓고 얼굴을 내밀고 있다.

“나와 봐!!”

“어……어?”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 걸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손목을 잡혔다.

“잠깐……. 뭐, 뭔데.”

그렇게 묻기도 전에 이미 방에서 끌려나왔다.

“……허.”

빛줄기가 이리저리 뒤엉킨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과 사람들, 사람들과 그 얼굴에 번진 웃음.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

나는 마이크를 들고 있었다.

…… 사랑해.

노래 부르는 중이었구나.

어떻게 된 거야?

머리는 패닉, 하지만 눈앞은 천국.

엄청,

엄청 멋진 경치잖아.

나도 모르게 소리쳐버렸다.

…… 리얼 진심 최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

그 순간 플레이 시간이 다하고 배틀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