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야 4
시노노메 카즈네는 홀로 시부야 테이온에 찾아갔다.
불쑥 쳐들어간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냥 인사 차원에 들른 것이다. 음악에 있어서는 매우 강한 테이온과 STACK 배틀을 하게 되었으니, 그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들르게 된 것이다. 아키바 쪽이 시부야의 아성에 도전하러 온 셈이 되니 인사해야 한다 생각해서, 소토칸다 문예 고등학교 학생회장으로서 방문했다.
지난번 인터뷰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보면 이번에도 퇴짜를 맞거나 말도 제대로 안 통할지 모를거라 예상했지만, 그런 염려는 걱정에만 그쳤고 실제로 그리 되진 않았다.
아무래도 이상한 학생들은 일부분이고 나머지 다른 학생들은 꽤 상식적인 편이었다. 특히 학생회 멤버들은 예의바르고 이성적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맥이 빠질 정도였다.
다만 상대쪽도 바쁜 모양인지, 테이온 측에서 날짜와 시간을 집어주긴 했다. 재수없게도 미미토가 초대해준 하라주쿠 주최 파티와 시간이 겹치고 말았다.
이쪽 일을 먼저 끝내고 난 뒤 하라주쿠에 가겠다 약속하고는, 레이나와 후타바에게 먼저 하라주쿠에 가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무사히 테이온 학생회장과 회견을 마치고는 집행부 임원(1학년 여자아인데 꽤 귀엽다.)이 학교를 안내시켜주었다.
“……그래서, 저희 학교는 대강 이렇습니다.”
“오 그래. 고마워. 명성에 맞게 시설도 잘 갖춰져 있구나.”
오케스트라가 연주할 정도 규모가 되는 콘서트 홀. 락 같은 걸 하는 밴드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규모로 지어 놓은 라이브 하우스. 연습 스튜디오와 녹음 스튜디오. 그 외에도 전부 최신식 장비를 쓴다.
“네. 테이온……도 그렇지만 시부야 전체가 어떻게 보면 뉴컴 사의 테스트베드 같은 느낌이라 보시면 돼요. 음향 장비라던가 악기 같은 것도 제일 먼저 투입되고요. 거기다 시제품 테스트 같은 것도 덴온부에서 많이 해요.”
“시제품을?”
“네. 일단 시험삼아 개발한 장비를 자유롭게 써보고 나서 피드백을 주는 거죠.”
시부야에서는 뉴컴 사가 앞장서서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테이온과 그 정도로 커넥션이 있다니 놀라웠다.
“대체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긴 한데요, 이래저래 참견도 많이 하는 편이라……. 어찌 보면 기브 앤 테이크라 해야 할까요……. 아 죄송합니다! 덴온부를 맞이하러 오셨는데 아직 아무도 없네요!”
안내 받으며 다니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아니, 제대로 신나게 이야기했다. 덴온부 동아리방을 앞에 두고는 완전히 친해졌다.
“저, 시노노메 학생회장님을 모시고 안내할 수 있게 되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아, 그게……. 괜찮으시다면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을까요? 이거 제 번호예요.”
“그럼, 당연하지. 테이온에 다니는 엘리트인데다가 너처럼 예쁘고 귀여운 애랑 친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무지 기쁜걸.”
“가가가가감사합니다악.”
이렇게 테이온 학생회에 내 사람을 심어두었다.
테이온에 찾아온 진짜 목적 중 절반을 이룬 셈이다.
나머지 절반은, 너무 분에 넘치는 일이니까, 일단 찔러나 보자.
덴온부 동아리방을 편안하게 둘러보시라 말하며 집행부 아이는 돌아갔고, 그렇게 헤어지자마자 슬그머니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아키바 쪽 동아리방 건물에 비하면 꽤나 넓다. 거기다 지금은 사람 한 명 없으니 더욱 넓어보인다.
레귤러 멤버 호오 카린과 세토 미츠키, 타이가 루키아 세 사람은 여기 있을 때가 많다고 아까 집행부원 아이가 말하는 걸 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다른 부원조차 없는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1층과 2층에는 DJ 부스가 딸린 카페가 입주해 있었고, 3층부터 그 위쪽은 카린이 자취방처럼 쓴다는 이야기였는데……. 설마 이 동아리방 자체가 시부야 Top 3만 쓰는 장소인걸까?
“그럴 리가…….”
마음을 가다듬고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찾았다.
지하에는 연습용 댄스 플로어가 있겠지. 위층을 둘러보기 전에 먼저 지하부터 살펴보자.
지하로 내려가니 거기엔 이삼백 명도 충분히 들어갈 법한 공간이 있었다. 게다가 최신 모델 DJ 유니트에 AI 스피커를 갖춰놓아 설비까지도 완벽하다.
“이런곳에서 연습을 하는 건가……. 호화롭네.”
“나도 그렇게 생각해.”
……?!
갑자기 뒤에서 말을 걸어와 심장이 멎을 정도로 놀랐다.
가죽 점퍼를 입은 검은 단발머리를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세토…… 미츠키 씨.”
“당신은, 아키바 학생회장님이네. 학생회에서 견학 온다는 이야기는 미리 들었어. 그치만 미안한데, 카린도 루키아도 실종 상태야.”
“아, 그런가요. 아니 실종이라뇨?!”
“자연 방목으로 기르기 때문에 배가 고파지면 돌아올 거야.”
“…….”
점점 두 사람 이미지가 인간에서 멀어져가는 느낌이다.
미츠키는 플로어를 가로질러 스테이지로 올라간다. 그리고 DJ 유니트에 전원을 넣었다. 낮게 시동 걸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본체 이곳저곳 인디케이터에 하나둘 빛이 들어온다.
“자 여기, 마음껏 캐내보시든지.”
“아뇨, 저는…….”
“염탐하러 온 거 아니었어?”
그렇게 직구를 던지니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테이온에 온 또 다른 이유. 그걸 염탐이라 부른다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엄밀히 따져 보면 염탐이랑은 조금 다르다.
“그렇긴 한데요. 그래도 이제 와서 정찰해 봤자 사흘 뒤 경기 결과가 크게 바뀌진 않을걸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럼 뭐 하러 왔어?”
“그건…….”
나답지 않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평소였다면 어떻게 거짓말을 하든 허풍을 치든 재치 있게 반격했을텐데.
더 고민해 봤자 귀찮기만 하다.
“사실은 참고할 의견을 듣고 싶어서요.”
“참고할 의견을…… 나한테서?”
상대가 동의하기도 전에 먼저 들이밀었다.
“저, DJ 시작한 지 얼마 안 됐거든요.”
“……그래? 나도 아직 시작한지 일년도 안 되긴 했는데.”
“거짓말이죠?!”
“갑자기 사람을 거짓말쟁이로 몰아가지 말아주겠어?”
“아……. 미안합니다.”
1년도 안 되어서 테이온 2인자가 되었다고?!
원래 음악적 소양이 있었다 해도……. 레이나네 언니도 대단하구나. 핏줄 자체가 대단하다 봐야겠어.
“어, 음. 그런 세토 씨 앞에서 꺼내기는 조금 낯부끄러운 소리긴 한데요……. 저, 웬만해선 무슨 일이든 평균 이상으로 해낼 수 있거든요.”
미츠키는 스테이지 위에서 감정 없는 표정으로 꿈쩍도 하지 않은 채 내려다보고 있다.
“……그랬는데, 얼마 전부터 덴온부를 시작하면서, 그래서 조금……. 당황스러웠다고나 할까요…….”
“아, 그런 거 있지.”
전부 다 이해한다는 것처럼 말한다.
“어……. 아직 제 말 안 끝났어요.”
“레이나 때문이지? 분명 그럴걸.”
카즈네의 심장이 아플 정도로 뛰었다.
“아뇨. 레이나만 콕 집어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요…….”
“레이나가 플레이하는 걸 듣고 어떻게 똑같이 해낼 수 있을까 생각했겠지. 마치 사람 마음을 조종하는 것 같이 관객 분위기를 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대전 상대인 우리 시부야가 하는 플레이 동영상까지 뜯어보고 분석해봤을거야. 그치?”
“………….”
정곡이다.
“분석하고 따라해 보려 했지만 본인은 똑같이 해낼 수는 없단 사실을 깨달아버리고는, 그래서 당황해 버린 거네.”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가 뭐죠?”
“그런 애들을 많이 봐 왔으니까.”
미츠키는 자랑하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말할 뿐이었다.
“당신이 플레이한 거 들어봤어, 좀 하던데.”
“어…….”
조금 의외다. 아키바는 안중에도 없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주 잘하는 것 같더라. 고민한 흔적도 많이 보였고 빈틈없이 정리해 놓았더라고.”
“가…… 감사합니다.”
“동료들끼리 파티에서 선보이기만 하거나 지금 아키바 레벨에서만 활동한다면 앞으로 더 고민할 필요 없어. 그냥 동아리 활동을 즐겁게 해 나가기만 하면 돼. 하지만”
미츠키가 바라보는 눈빛이, 아주 조금 날카로워진다.
“여기까지 오긴 좀 힘들거야.”
윽……!
“거기, 까지라니요…….”
사실 이렇게까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노력으로 일궈낸 쪽과 타고난 쪽 사이에 놓인 넘을 수 없는 벽.
미츠키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지만 그건 괴로워할 일이 아니야. 기뻐해야 할 일이지.”
“……그쪽이 부리는 여유, 같은 건가요?”
이상하게도 피가 거꾸로 솟을 것 같다. 항상 냉정해야 할 CPU 같은 두뇌가 뜨겁게 폭주하고 있다.
허나 미츠키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여기 있는 녀석들은 전부 망가졌어. 머리가 어떻게 돼 버렸지. 음악이 없었으면 그냥 사회 부적응자들 모아놓은 것밖에 안 돼.”
“그렇게 말씀…”
“그러니 우리는 여기서 살 수밖에 없어. 하지만 당신은 그렇지 않아. 당신은 어떤 선택이든 할 수 있잖아. 누구나 인정할 행복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그러니 부러운 일 아니겠어?”
미츠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카즈네는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어. 마음만 먹으면 어떤 사람이든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딱히 빠져들 게 없었을 뿐이었지.
드디어 그걸 찾아내고 말았다, 그렇게 생각했다.
허나 레이나를 만나고, 하라주쿠와 아자부, 그리고 시부야같은 다른 학교 소속 덴온부를 만났고, 그렇게 자신을 돌아보고 나니 생각이 났다.
어떤 사람이든 될 수 있는게 아니라, 아무것도 되지 못하는거 아냐?
미츠키가 그런 마음을 빤히 읽어낸 것처럼 물어본다.
“당신, 나한테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지? 나쁘지 않은 생각이야. 당신, 처음부터 세트 리스트를 정해 놓고 시작하잖아?”
“……예.”
“그 세트 리스트를 반복해서 갈고 닦아 만들어 간다. 그런 거지?”
카즈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도 그리 예상했겠지만 사실 나도 그래. 사전에 플레이를 계획해 내고 철저하게 연습한 뒤에, 당일 그 연주를 선보이는 스타일이지.”
역시 짐작한 대로였다.
그러니 어떻게든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나와 같은 타입이면서도, 상위 호환인 세토 미츠키에게.
“이런 방법으로 디제잉을 구사하는건 수준 떨어지는 짓이다, 그렇게 무시하는 사람들은 테이온 덴온부에도 있어. 하지만 그런 사람들보다 내가 랭킹이 더 높아. 그러니 내 말이 맞아.”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든든하네요.”
“하지만 예외가 하나 있어.”
“네?”
“내 위에 딱 하나 있어. 지 기분 가는 대로 돌리는 새끼가.”
호오 카린.
“그래봐야 언젠간 내가 때려눕힐 거지만.”
완전히 누워서 침 뱉는 소리 아닌가. 하지만 진심을 담아 말을 하는 점에서 대단하다. 내가 저런 소리를 하면 헛소리밖에 안 될 텐데.
“전에 호오 씨가 가장 강한 적이라 하셨던게…… 세토 씨를 말씀하시는 거죠?”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그냥 방법론이 다른 것뿐이야. 아무튼 나는 플로어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봐 가면서 노래를 바꿔 나가는 게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
미츠키는 부끄러워하기는 커녕 가슴을 당당하게 쭉 펴고 말한다.
“나한테 있어서 DJ는 피아노 리사이틀이나 마찬가지야. 완벽하게 준비해 온 걸 그 자리에서 선보이는거지. 청중들은 그냥 가만히 내가 플레이하는 걸 듣고 있기만 하면 돼.”
이거다.
나한테는 이런 오만함이 없어.
천재만 가질 수 있는, 절대적인 자신감이 뒷받쳐주는 강렬한 자의식.
“당신도 그냥 이렇게 말하면 돼. 아키바 학생 회장님.”
“……그런 말을 제가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치. 말을 하면 그 책임이 뒤따르니까. 그 말을 증명하기 위한 재능과 실력이 따라 줘야 하는걸. 하지만 그것도 간단하잖아.”
“간단하다고요?”
“다른 건 다 희생하고, 인생 전부를 바치면 돼.”
그게 어딜 봐서 간단해.
“허나, 그만큼 희생을 치른다 하더라도 그 결과가 반드시 뒤따른다고 보장할 수는 없어. 어쩌면 그냥 인생을 낭비하고 망치는 것밖에 안 될지도 몰라……. 어때? 네가 할 수 있을 거 같니?”
그런 거 못해.
나는.
말문이 막혀 대답하지 못하고 있는데, 미츠키가 중얼거렸다.
“처음부터 자기 재능을 다 파악하고 있다니……. 비겁하구나.”
뭐……?
미츠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차갑게 쏘아붙인다.
“레이나를 만나서 당신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거야.”
“그럴 리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미츠키는 더욱 몰아붙인다. 증오로 타오르는 불길을 눈동자에 한껏 담아 비추며.
“그 아이는 모든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어. 당신도 그 아이하고는 거리를 두는 편이 좋을거야.”
더 이상 가만히 듣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도망치듯 그곳을 뛰쳐나왔다.
하라주쿠 에어리어 진구마에 산도 학원 덴온부 동아리방은 타케시타 거리 입구에 있다.
카즈네가 테이온에 인사차 방문하고 있을때, 하라주쿠에서는 정기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레이나와 후타바는 타케시타 출입구 방향 개찰구를 나와 횡단보도를 건넜다.
“아키바 친구들!! 제대로 찾아왔구나!”
동아리방 입구에 미미토가 뽐내면서 서 있다.
“우와아. 미미토 쨩~! 일부러 마중 나와 준 거야? 고마워!!”
“바, 바보같은 소리 말라고?! 그럴 리가 없잖아!”
미미토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접수 테이블에 앉아 있던 히나가 그런 미미토를 보며 의욕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아까전부터 안절부절 못하셨으면서 잘 찾아와줄지 그런 걱정을 저한테 다섯 번이나 털어놓으신 분은 누구셨죠.”
“그거 비밀로 해 달라고 했잖아!! 니들도 이런 처진 병아리같은 녀석은 냅두고 빨랑 안으로 들어가!”
“재미있어 보이니까 저도 껴 주세요. 아, 카운터 좀 봐주세요.”
그렇게 히나는 근처에 스태프 티셔츠를 입은 여자아이에게 말했다.
후타바는 전에는 세 명이서 전부 해냈던 사실을 떠올렸다.
“도와주시는 분들이 생겼나보네요.”
히나가 살짝 수줍은 얼굴로 대답했다.
“……여러분 덕분에요. 디제잉 공양을 드리고 난 후로 좀 주목받기 시작했거든요. 다른 동아리 친구들도 도와주기 시작하고 지역 언론에서도 이래저래 취재도 와 주셨고요.”
“그뿐만이 아냐! 우라하라계(裏原系) 패션 브랜드에서 콜라보 이야기까지 나왔다고! 우리도 굿즈 같은 게 나오는거야!”
그 말을 듣는 레이나도 눈이 휘둥그래졌다.
“지인~짜!! 대단해, 미미토 쨩!”
“그치! 그치?!”
미미토가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솔직하게 기뻐하던 것도 잠깐, 금방 우쭐해져서는 거만해 빠진 표정을 지었다.
“뭐, 이런 건 따로 자랑할 것도 아니라고? 세상이 날 겨우 조금 따라붙었다고 해야 할까? 그러니까”
미미토는 시선을 피하고는 중얼거리며 말했다.
“너희들한테는……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레이나.”
전에는 한적한 라운지였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많아서 붐빈다. 이렇게 사람들이 웅성대니 미미토가 중얼대는 소리는 레이나에게 잘 들리지 않는다.
“미안, 방금 뭐라고 했어?”
“아무것도 아냐!!”
버럭 화를 내며 플로어 쪽 문을 열었다.
소리가 홍수처럼 흘러나왔다.
안쪽 스테이지에서 시안이 디제잉을 하고 있었다. 플로어에는 언제나처럼 토박이 군단이 있을 뿐만아니라, 이제는 진구마에 산도 학원 학생들이나 다른 학교 학생들도 많이 와 있다.
미미토와 히나는 그 광경을 감명깊게 바라보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썰렁해서 파리만 날리고 있었……지만!”
미미토는 자그마한 주먹을 꽉 쥐었다.
“이것도 아직은 부족해! 디제잉 공양 때처럼 사람을 많이 모아야……. 아니, 그 이상으로 파티를 크게 키워 보겠어! 그래서 저 재수없는 시부야 녀석들을 깩소리도 못하게 만들어주겠어!”
히나가 우와……하는 눈으로 미미토를 바라본다.
“……‘깩소리’라고 말하는 사람 처음봐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딴지 걸지 마!”
“아하하……. 그래도 계속 시부야에 도전해볼 생각이구나.”
레이나가 묻자 미미토가 입술을 삐죽인다.
“당연하지. 내가 이렇게 세니까 무서워서 승부도 못 하는 주제에 잘난척은 있는대로 다 하잖아. 고등학교 입시에서 날 피한 것도 다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고! 뭐, 내 재능이나 귀여움이나 행동 하나하나 전부 다른 녀석들하고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니까 말야. 그러니 시부야 녀석들이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는게 아주 이상한 일도 아니지 않겠어.”
“……잘도 그런 식으로 해석하시는군요. 이때다 싶어 사실을 너무 날조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런 거 아니거든! 나는 이 세상의 진실을 파헤쳐낸 거라고!”
“잘 알겠습니다. 이상한 전파가 터지고 있네요? 그 토끼 귀같이 생긴 리본으로요.”
레이나가 눈을 반짝였다.
“그거 안테나였어?! 멋지다!”
“그럴 리 있겠냐고?! 히나! 요 아방한 녀석이 다 믿어버릴지도 모르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레이나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후타바에게 물었다.
“아방한 게 뭐야?”
“그……그러게요? 뭘까요?”
후타바가 식은땀을 흘리며 시선을 피했다.
“하여튼……. 미미토는요, 근거 없는 자신감 같은 걸 다른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 보이지 말아 주시겠어요. 제 앞에서만 그러시면 모를까……. 아니, 저도 일단 들으면 부끄럽긴 한데요.”
“히나! 너 나 완전 싫어하지?!”
울먹이며 허둥대는 미미토에게 히나가 씨익 웃어보인다.
“그럴 리가 있나요. 싫어하는 건 아니고…… 그럴 지도 모르는 생각이 아주 안 드는 건 아닌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에요.”
“좋단 거야, 싫단 거야?!”
“아, 슬슬 교대 시간이네요. 그럼 이만.”
“좀만 있어보라고?! 히나아아아!!”
히나가 DJ 부스에 들어가 교대하고 그 대신 시안이 나와 다가왔다.
“시안 쨩, 엄청 좋았어!”
“정말이에요! 세련되고 귀엽고……. 엄청 멋졌어요.”
“……고마워.”
시안의 낯빛은 바뀌지 않았지만 조금 쑥스러워하는 것 같아보였다.
“시안!”
미미토가 다급하게 물어본다.
“시안, 넌 나 좋아하지?!”
“…….”
시안의 얼굴에 경련이 일어났다.
거침없이 핸드폰을 꺼내고는 맹렬한 속도로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무슨 징그러운 소릴르 하거 있어 이 퇶샤끼 외로우먄 구냥 죽어부릳느가 짜증나짲으나짜증ㅇ나
미미토가 시안의 뒷계를 보고는 눈썹을 찡그린다.
“……오타 너무 많이 나잖아. 뭘 그렇게 당황하고 있어.”
“……?!?!!!”
시안은 저주를 걸어 죽여버리겠단 눈빛으로 미미토를 노려보며 바득바득 이를 갈았다.
후타바는 어쩔 줄 몰라 차마 붙임성있게 웃진 못해 쓴웃음만 지었다.
“그, 근데요, 이렇게 사람을 많이 앞에 두고 디제잉을 하신다니 두 분 다 정말 대단하세요.”
“뭐?”
미미토와 시안이 의문 가득한 얼굴로 후타바를 바라본다.
“너도 디제잉 공양 드릴 때 같이 했었잖아. 그때 찾아온 손님은 이거보다 훨씬 더 많았는데?”
“그건…….”
그 정경을 떠올리며 미미토가 황홀하게 웃음짓는다.
“그때 스테이지 위 경치가 참 좋았잖아.”
시안이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하지만 후타바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다.
“왜 그래? 그때 아무것도 느낀 게 없어?”
“어……. 그게…….”
난처한 표정으로 몸을 배배 꼰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미미토가 짜증내며 묻는다.
“뭐야? 혹시 그것밖에 안된다, 그런 소릴 할 생각이야?”
“아, 아녜요!”
후타바는 당황해서 양손을 좌우로 흔든다.
“저, 사람이 많이 있으면 긴장해버려서……. 어떻게 플레이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그래서 그때 경치가 어땠냐 물어보셔도……. 하나도 기억 못해요.”
“뭐어? 기억이 안 난다니……. 그게 뭔 소리야?”
“………….”
후타바가 말이 없으니 미미토는 추궁하는 눈빛을 레이나로 돌린다.
“정말이야. 후타바 쨩은 손님이 많으면 긴장해버려서 기억이 다 날아가 버려.”
그렇게 말한들 미미토와 시안은 별안간 믿기 힘들다는 눈치였다.
“으음…… 뭐? 그거 기억상실 같은 거야?”
“예……. 정확히 따지고 보면 이중인격같은 거라고나 할까요…….”
가면 갈수록 믿어지지가 않아. 미미토는 엉겁결에 팔짱을 꼈다.
“역전 찬스를 만들어낸 바로 그 사람이, 자기가 어떤 플레이를 해냈는지 하나도 기억을 못한대……. 뭔가 기분이 좀 복잡한걸.”
“……미안합니다.”
“……그래도.”
시안이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지만 플로어에 울리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시안은 스마트폰에 뭔가 입력하더니, 화면을 후타바에게 보여 주었다.
불쌍해.
불쌍해?
“응. 확실히…….”
미미토도 안타까운 표정으로 후타바를 바라보았다.
“네? 저기…….”
레이나를 바라보니 역시 슬픈 얼굴을 하고 있다.
후타바는 어리둥절했다.
어, 얼레?
혹시…… 저만 잘 모르고 있는 건가요?!
그치만, 그렇게나 심리적 압박이 심하고 엄청나게 무서운 일을 또 다른 제가 해 준다는거……. 그거 엄청 힘이 되는 일이잖아요? 불쌍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행운이라 불러야 되는 거 아녜요?
“저, 저기. 이거, 불쌍한 거예요?”
“당연한 거 아냐?!”
미미토가 빈틈없이 딴지를 건다.
“그렇게 엄청난 경험을 잊어버린다니, 불행이 아님 뭐라 부를건데!”
“부, 불행이라뇨…….”
세차게 한 방 먹었다.
“그, 그치만……. 긴장하면 심장이 멎을 것 같잖아요? 특히 손님들이 많이 있을 때 그 앞에 서면…….”
미미토가 허리에 손을 얹고 가슴을 쭉 폈다.
“그럴리가! 오히려 사람들이 많이 와 줬으니까 기쁘잖아!”
한편 시안은 다시 스마트폰에 뭐라 써내려간다.
긴장되긴 하지. 필사적으로 하게 돼. 그래도…… 끝내고 나면 기뻐.
그랬던가요?
후타바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치. 뭐, 나도 조금 긴장할 때가 있긴 하니까. 손이 조금 떨리고 무릎이 살짝 떨리는 정도긴 하지만.”
그거 엄청 긴장되지 않냐고요?
DJ 부스에 들어서 플로어에 사람들이 있는걸 보면 후타바는 도망치고 싶어진다. 사실 몸은 가만두고 마음은 저 멀리 도망가버린다.
혼자서 디제잉하는게 좋아. 즐거워.
하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라면 못해. 무서워.
“역시 저한테는 안 맞는걸까요…….”
“그건 아니야.”
레이나가 당연하게 대답했다.
“그치만…….”
“왜냐면 후타바 쨩이 디제잉을 할 때도, 지금 우리랑 같이 이야기를 할 때도, 언제나 한결같이 후타바 쨩이니까 말야.”
후타바는 핸드폰을 꺼내 카즈네가 전에 찍어둔 동영상을 재생했다. 새삼 디제잉하는 자기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저 같지가 않은걸요.
왜냐하면 이건 상상 속 제 모습이니까요. 아이돌이 된 저를 마음 속에서 그려볼 때 ‘이러면 좋겠어요’, ‘저는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망상속에서나 있어야 할 제 모습이요.
이런 건 머릿속 깊숙히 꽁꽁 숨겨놓고 즐겨야 해요.
이걸 실제로 사람들 앞에서 한다니, 말도 안 돼요.
분수를 몰라도 유분수죠.
그러니까 이걸 저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너무 부끄러워요.
“아니에요. 이런걸…… 저라고 할 순 없어요.”
“요전에 아이돌 라이브에 데려가줬었잖아. 그때 본 후타바 쨩도 이런 느낌이었지?”
“흐엑?!”
거, 거짓말.
텐션이 올라가리면 너무 흥분해 버리니까 늘 반성하며 살아가고 있긴 한데요……. 이렇게나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던 거였나요?!
“그때 후타바 쨩은 한 번 본 스테이지는 전부 다 기억한다 했었지?”
“앗, 네에……. 아뇨, 그때는 엄청 폐를 끼쳤…….”
레이나가 고개를 숙이려 하는 후타바의 어깨를 막아내며 웃었다.
“그러니 잊어버린 게 아니고 잊어버렸다는 기분이 든 것 뿐일거야. 분명 괜찮을 거야!”
후타바는 얼굴을 찡그리고서 시선을 다른 곳으로 피한다.
“아니요……. 오히려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해야 할까요…….”
기분은 좋았지만 곱씹어보면 말 그대로 트라우마가 될 것 같았다.
“그런 멋지고 대단한 모습을 어떻게 잊어버릴 수 있겠어.”
“………….”
시선을 피하고 싶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 하지만 레이나가 티 없이 맑게 웃는 얼굴을 보니, 사실은 그랬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가요……. 한번쯤 보고 싶을 것 같기도 해요.”
후타바가 힘없이 웃었다.
신기하네요, 하고 후타바는 생각했다.
레이나가 부려대는, 그닥 근거도 없어 보이는 긍정 정신에 항상 휘말리는 것 같다.
그냥 제가 떠밀리기 쉬운 사람이라 이런 걸까요?
후타바는 스테이지 위에서 일러스트를 그리며 디제잉하는 히나를 바라보았다.
변함없이 금손이네요, 하고 감탄했다.
“근데 말이지, 레이나…….”
“무슨 일이야, 미미토 쨩?”
미미토가 작은 카드를 내밀었다.
“이게 뭐야?”
미미토가 수줍어하며 눈길을 돌렸다.
“메모리 카드야. 우리들 신곡이 들어 있어.”
“어?! 그래?!”
레이나의 얼굴이 확 밝아진다.
“하지만 굳이 이렇게 건네줄 것 없이 Iris에서 다운받으면 되잖아?”
“아직 공개 안 한 노래거든.”
“그렇구나. 시크릿 트랙인거네. 점점 들어보고 싶어지네. 기대된다!”
레이나가 메모리 카드에 손을 뻗으려 한다.
“시부야랑 배틀할 때, 이 노래도 가져가줬으면 좋겠어.”
레이나의 손이 멈췄다.
미미토는 부끄러워하면서도 레이나와 똑바로 시선을 맞추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린 아직은 시부야와 싸우기엔 멀었다고 생각하거든. 그러니까……. 적어도 우리들 노래만이라도 거기 데려가줬으면 해.”
“미미토 쨩…….”
“뻔뻔하다고 생각할 거 다 알아. 당연히 억지로 끼워넣거나 하지 않아도 돼. 그래도 레이나가 트랙 리스트에 넣어놓기만 해도……. 난……”
레이나는 미미토가 들고 있던 메모리카드를 건네받았다.
“고마워. 미미토 쨩.”
“레이나…….”
“하라주쿠 친구들도 함께 싸워준다 생각하니 엄청 든든해졌어!”
레이나가 미미토의 손을 잡는다.
“햐악?!”
“우리 영원한 친구인거야! 같이 힘내보자!”
“여, 영원한 친구?! 어어버버버버우어어어”
미미토는 할 말을 잃고는 그대로 당황해버렸다. 이상하게 땀이 줄줄 흐르고 뜨신물에 한 번 데치고 난 것처럼 얼굴이 벌개졌다.
그때 시안이 미미토와 레이나가 마주보던 시야를 손으로 휘저었다.
“뭐, 뭔일이야 시안. ……어?”
시안이 손으로 스테이지 위를 가리켰다.
히나가 태블릿에 휘갈겨 쓴 글씨가 스크린에 그대로 떠 있다.
이 망할 토끼야! 내 디제잉 좀 들으란 말이다아아아아아!!!!!!
그 글씨 옆에 화난 히나의 자화상을 귀엽게도 그려놓았다.
시부야와 하라주쿠를 가르는 경계, 그 위를 가로지르는 육교.
어쩐지 발길 가는 대로 가다보니, 나는 그 육교 위에 서 있다.
난간에 기대 뉴 레전드 경기가 펼쳐질 국립 요요기 콜로세움을 바라보고 있다.
사흘 뒤면 저기서 아키바와 싸우게 되겠지.
허나 따져보면 뉴컴 사 홍보때문에 열리는 그냥 그런 촌극일 뿐이다.
그래도 이번 대전 상대는 좀 흥미롭다.
히다카, 랬나…….
미츠키가 히다카 집안 핏줄을 타고 났다는 사실은 덴온부로 꼬드기고 난 뒤였다.
히다카 레이아, 제 1회 STACK 배틀 세계대회 우승자에 전설 속 DJ.
그 사람의 딸이란 걸 알고 나니 여러모로 납득이 갔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쌍둥이 동생이다.
언니인 미츠키와는 타입이 사뭇 다르다. 가지고 있는 재능도.
그러고보니 그때도 여기서 멍 때리고 있었네. 진구에서 들린 소리에 이끌려 찾아간 게 그 첫만남. 재미있는 소리다, 그리 생각했다.
하라주쿠에 찾아온 손님이나 맞이할 선곡이라 생각했는데,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난폭한 소리 가운데 이리저리 묘한 소리를 끼워놓았다.
유난히 오래된 느낌이 풍기는 사운드와 새로운 센스가 뒤섞여 기묘한 느낌을 빚어내고 있었다.
Iris가 추천해주는대로 곡을 고르거나 전환하기만 한다면 이런 플레이는 절대 해낼 수 없겠지.
테이온에 우글거리는 녀석들도 그러는데, 요녀석도 저녀석도 비슷하게 플레이하느라 아주 진절머리가 났다. 근데, 이 녀석은 달랐다.
도대체, 이 녀석 뭐야?
DJ 타입이 도무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아저씨인가, 젊은 사람인가, 남자인가 여자인가, 주력으로 잡는 장르는 무엇인가, 그 무엇도 확실하지 않았다. 게다가 기본적인 기술 하나는 절륜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흥미를 끌어당기는 부분이 있다.
이야기, 바로 스토리가 보였다.
들려오는 소리가 내 머릿속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빚어냈다.
그건…….
“어……. 카, 카린 씨?”
“음?”
하라주쿠 쪽에서 여자애 두 명이 다가왔다.
“너 임마…….”
머릿속으로 생각하던 그 사람이 현실로 찾아왔다.
“히다카예요. 히다카 레이나…아. 이쪽은 카야노 후타바 쨩이에요.”
“아, 아아, 아안녕하세욥!”
약간 뒤에 서 있다. 내성적이고 포근해 보이는 아이가 힘차게 고개를 숙였다.
“타이밍 한번 제대로네.”
무심코 씁쓸하게 웃자, 레이나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시부야에 볼일 있어?”
“아, 네에. 카즈네 쨩……. 그, 덴온부 동료면서 학생회장인데요……. 시부야 학생회에 찾아가서 인사드린 뒤에 하라주쿠로 오기로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와서요…….”
“흠.”
레이나와 후타바가 한번 얼굴을 마주보더니 육교를 건너기 시작했다. 내 앞에서 고개를 한 번 숙이고 지나간다.
문득 레이나가 걸음을 멈추었다.
“저기, 카린 씨.”
“왜 불러?”
“카린 씨한테 있어서 저희 언니는 적인가요?”
“……그런 셈이지. 꽤 훌륭한 적이라 해도 되겠어. 게다가 앞으로 더 강해질거고. 정말이지 기대가 된다니까.”
“그런가요…….”
다시 걸어나가려다 레이나가 다시 걸음을 멈추었다.
“저기요.”
“뭐야, 또?”
“카린 씨는 왜 디제잉을 하고 계신가요?”
“꽤나 밑도끝도 없는 소리를 다 하고 자빠졌네.”
“……죄송합니다.”
“어디 네 녀석이 왜 하는지부터 먼저 들어보자.”
“예? 저, 부터요?”
“엉.”
레이나는 살짝 시선을 떨구더니 생각에 잠겼다.
“저는…… 다들 기쁨에 젖어 웃는 모습을 보는게 좋아서요. 저 같은 사람이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어서, 그게 좋으니까요. 또…….”
“……또?”
“저는 음악에 재능이 없으니까요.”
뭐……?
“야, 너 임마. 날 지금 바보로 보냐?”
그렇게 위협하니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어엇?! 왜, 왜 이, 이러세요?! 누가 카린 씨를 바보로 볼 수 있겠냐고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얼굴로 허둥지둥 해명하고 있다.
이 녀석……. 진짜 그리 생각하고 있다.
겸손한 척 기만하나 싶었는데, 그게 아냐.
이 녀석, 순수하다.
그래도…….
“……제일 처치 곤란한 녀석일세.”
“네? 그게, 그게…….”
“아~ 아무것도 아냐. 그래서? 재능이 없단 게 뭔 소리야?”
“그게……. 어렸을 때, 언니랑 떨어져 지내게 되어버렸는데요. 그래도 음악을 계속하다보면 언젠간 언니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치만 언니하고는 다르게 제가 할 수 있는 음악은 DJ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DJ가 저와 언니를 다시 이어줄 거라 그렇게 믿고 있어서, 그래서…….”
“그래서 디제잉을 해오고 있다 그런 소리냐.”
레이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사, 이러고 보니 그런 플레이를 해낸 녀석같긴 하다.
그때, 이 자리에서 레이나가 플레이한 걸 듣고 머릿속에 들어온 스토리가 떠올랐다.
주인공이 적과 싸우고, 그 적과 화해하고는 새로운 동료가 되어버리는, 노력 끝에 우정의 힘으로 이겨내는 그런 흔하디 흔한 스토리.
그거다.
이 녀석이 플레이는 사람 마음에 대고 말을 걸 수 있는 힘이 있다.
마치 옛 기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선명한 이미지다.
하지만 그런 기억, 실제로는 없다.
나는 노력이랍시고 해본 게 없다. 그냥 음악이 좋아서 해온 것 뿐이다. 좋아하는 일을 해서 괴로울 녀석은 어디에도 없을 거야.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손가락에 굳은살이 배길 때까지 연습하는것도, 사흘동안 잠도 안 자고 트랙 작업을 하는것도, 디깅을 하느라 수천 곡을 내리 체크하는것도, 다 내가 하고 싶으니까 하는 짓이다.
그리고 나니 STACK 배틀에서 계속 이긴다.
강적이 나타나지 않고, 배틀을 해 봤자 그닥 가슴이 뛰지도 않고.
현실엔 드라마틱한 전개 같은 건 없다.
“나는 나보다 강한 녀석을 만나고 싶단 말야.”
전에 들은 평판을 듣고 기대했다간 꼭 실망만 따라온다.
“더 흥분하고 싶어. 좀 더 가슴 뛰는 경험을 해 보고 싶어. 더욱 온 힘을 다해서 싸워보고 싶어.”
한번 진 녀석은 웬만하면 두 번 다시는 찾아오지 않는다.
“트랙 메이킹을 할 때도 그냥 디제잉을 할 때도, 온 힘을 다해 해보고 싶을 뿐이었는데. 혼자서 해서 가슴이 뛰기엔 어느정도 한계가 있어. 언젠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까.”
더이상 강한 적이 보이지 않게 되더라.
“혼자서 뭘 그리 죽어라 붙잡게 되었는지.”
계속 똑같은 장면이 반복된다.
“그냥 밋밋하기만 한 배틀을 몇년째 계속하고 있었어. 어떻게 새로운 전개가 찾아왔으면 좋겠는데. 내가 진심으로 맞붙을 수 있는 상대가.”
하지만 진구에서 네 녀석이 플레이하는 걸 듣고 있자니, 실제로 있지도 않았던 기억이 생겨난 것 같지 뭐냐.
아니, 기억이 아니야. 꿈, 아님 소망인가.
얌전한 얼굴로, 아니 슬퍼 보이는 얼굴로 레이나가 나를 올려다봤다.
“그렇군요……. 카린 씨, 외로우셨군요.”
“……뭐?”
어?
뭐라고?
“너 임…….”
방금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확실히 카린 씨 실력에 걸맞는 상대란 게 없을지도요……. 그런 건 고독하고 계속 의욕을 유지해내기가 참 어려운 일이란 거, 알 것 같아요. 아! 저같은 게 뭘 알겠나 싶긴 하지만요! 그게 힘들다는 건 잘 알겠다, 그런 뜻에서요.”
“아, 아니…….”
“그래도 계속해서 정상에 군림하고 계신다니 역시 대단하세요! 분명 저 같은 애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부담스러운 자리일걸요. 어떤 책임감 같은 걸 짊어지고 계실지도 모르고요…….”
“아~……. 그런 거 아니라고…….”
“카린 씨!!”
“네엡?!”
갑자기 꾸짖는 얼굴로 밀어붙이니 착실하게 대답해버렸다.
“역시 카린 씨한테는 동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아.”
“카린 씨가 강한 적을 원한다는건 잘 알겠는데요……. 솔직히 말해서 그런 사람이 순순히 나타나주겠냐고요, 전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어.”
얼굴 근육이 움츠러들었다.
무심코 쓴웃음을 지으며 뺨을 긁었다.
“아니……. 의외로 금방 나타나줄거라 생각하기는 한데…….”
“아뇨! 카린씨랑 맞먹을 정도로 굉장한 사람이 갑자기 어디서 뿅 하고 나타날 리가 있겠냐고요!!”
너 이 새꺄! 날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트릴 셈이냐?!
“실력에 걸맞는 상대가 없는 건 외로운 일이라 생각해요. 굉장히 외로우시니까, 그러니까 카린 씨는 그렇게 적을 원한다고 호소하고 계신 거네요! 외로우시니까!”
“외롭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는거야. 정말로 외로워보이는 분일세~ 내가 그래보이냐!”
“그야 카린 씨는 외로운 분이시니까요!”
“………….”
아 씨. 갑자기 울고 싶어졌어.
“저, 저저, 저기……. 레, 레이나 씨? 거기까지만 하시죠…….”
다른 애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는 레이나를 말리러 끼어든다. 좋아좋아, 잘 해보라고.
“아냐! 이렇게 그냥 두면 카린 씨가 불쌍하단말야!!”
……냐,
어 그러니까.
불쌍하다니, 어딜 보고 하는 소리야?
“카린 씨 레벨 되는 적은 좀 어렵겠지만 동료라면 만들 수 있어요! 동료는 서로 어려울 때 돕고 버팀목이 되어줄 때도 있고! 그렇게 하다 보면 지금보다 더욱 강해질 수 있어요. 무엇보다 동료랑 같이 있으면 즐겁죠! 외로우시잖아요?”
“……아. 예. 그런가요.”
겨우 더듬더듬 대답해냈다.
자기가 한 말을 긍정적으로 검토한다고 느낀 모양인지, 레이나는 쓸데없이 해맑게 웃고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저희는 카즈네 쨩 찾으러 이만 가 볼게요. 아 맞다.”
아직도 할 말이 남아있어?!
“그리고……. 저희 언니랑 친하게 지내 주세요.”
한 번 더 고개를 푹 숙이고는 레이나는 시부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 같이 가요! 레이나 씨~!”
같이 온 일행도 레이나를 따라 쫓아간다.
드디어 갔네.
아, 기 빨려.
“……하여튼, 뭐하는 짓거리야.”
나도 동아리방으로 들어가 보려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가는 길에 그 녀석들이랑 또 마주치면 안되니.
별안간 박자가 틀어졌다.
외롭기는 누가 외롭대.
나는 계속 적을 원했을 뿐이야. 같은 실력으로 맞설 수 있는 상대가.
확실히 갓난애기 때부터 같이 놀 친구는 없었다.
……꼭 그렇지만도 않지만.
아자부 그 녀석이 진심으로 덤벼들면 이야기가 좀 다르겠지만…….
근데 그 새끼, 별로 의욕도 없는데 뭐.
나도 아빠따라 세계 방방곡곡 떠돌아 다니느라 어떻게 뭐라 제대로 말해볼 기회도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별로 외롭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DJ는 혼자 할 수 있는 놀이니까, 친구 같은 거 있어봐야 뭐해.
“……친구?”
어? 생각해보니까 나, 친구가 얼마나 있었지?
………….
하나도 생각 안 나.
뭐 어때. 난 그냥 내 적과 친구처럼 놀면 되는 거 아냐.
…….
어?
혹시 내가 적을 찾고 있단게, 같이 놀 친구를 찾고 있단 뜻인가?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멍하니 마냥 서 있다.
“혹시 나…… 그냥 외로워하고 있는 녀석인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