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장에 모인 관객도, 후타바도, 레이나와 카즈네도 숨을 죽이고 최종 점수가 점수표에 뜨기를 기다렸다.

“이히히~. 몇 점 차이로 이겼을까~? 더블 스코어쯤 된 거 아냐~?”

설렘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는 루키아. 최종 점수가 나오자 한순간 얼빠진 표정이 되어버렸다.

“……헤.”

121.0 : 121.0

넓은 회장이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그것도 잠시, 바로 땅이 울려대라 발 구르는 소리가 들리며 함성이 터져 나왔다.

“동점! 완전히 동점입니다!! 드로우! 아키바와 시부야, 양측 모두 선수교체!!”

아나운서도 흥분을 떨치지 못하며 외친다.

“후타바 쨔~앙!!”

“후타바!”

레이나와 카즈네가 스테이지로 뛰어올라, 달려들어 후타바를 끌어 안았다.

“굉장했어! 완전 멋졌어!”

“저 시부야, 그 중에서도 3인자와 비겼어……. 거기다가 VJ 캐릭터가 와간이라니 완전 최고잖아! 후타바!!”

“무승부……. 와간남코에서 1987년 발매한 아케이드 게임에 처음 등장하고, 1989년 닌텐도 패미컴 기종으로 발매된 ‘와간 랜드(ワギャンランド)’ 시리즈의 주인공요?”

“맞아! 정말로 대단해!!”

여러 부문에서 점수가 매겨지는 STACK 배틀 점수가 소숫점 아래까지 동점으로 끝나는 일이란 우연을 넘어 기적적인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현장에 모인 모두가 흥분했다.

“아키바 소토칸다 문예 고등학교, 카야노 후타바! 해냈습니다!! 아직도 믿겨지지 않는 드로우!! 갓 결성되어 랭킹 최하층에 위치한 덴온부가 테이온의 한 축을 무너트리다니! 아니, 무승부이긴 합니다만, 거의 이긴 것과 다름없을 정도로 가치 있는 승부였습니다!!”

후타바는 멍한 얼굴로 점수를 올려다보다 아레나로 시선을 돌렸다.

“정말 경치 좋았어요……. 그렇네요. 이런 경치를 저는 잊어버리며 살고 있었군요.”

“후타바?”

“아. 무승부도 기쁜데……. 그보다 이 경치 볼 수 있어서 더 기뻐요.”

“고생한 두 선수를 큰 박수와 함께 보내줍니다!!”

우레 같은 박수가 스테이지로 쏟아졌다.

후타바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레이나와 카즈네 뒤에 숨다시피 스테이지에서 내려온다.

한편 스테이지 위에서 루키아가 뒹굴거리며 바동바동 날뛰고 있다.

“으갸아아악!!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루키아, 이렇게 멋지게 잘 싸웠는데! 어째서 몰라주는거야?! 몰라주는 이유를 몰라!! 이거 다 거짓말이야! 루키아가 무승부라니 이상해!! 판정이 잘못되었다고!”

“루키아.”

카린이 루키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드로우다. 이번 경기 방식에서는 양쪽이 진 거나 마찬가지야. 어서 거기서 나와.”

“아니야! 루키아가 저딴 녀석한테 질 리가 없잖아!”

“결과가 그리 나왔잖나. 포기해.”

“그치만 그치마안 루키아 지면 랭킹이 떨어지는걸……. 카린이랑 미츠키랑 떨어지는 거 싫어.”

“글쎄다.”

“싫어 싫어 싫어! 루키아, 카린이랑 미츠키랑 같이 있고싶어!”

네 녀석은 나한테 맞서고 싶은거냐, 함께하고 싶은거냐. 어느 쪽이든 하나만 해…….”

뒷머리를 쓰담쓰담해주면서 카린이 루키아에게 등을 돌렸다.

“그래도, 잘 컸어, 너 임마.”

그 뒤 테이온 교직원들이 발라당 드러누운 루키아를 끌고 스테이지 저 너머로 사라졌다.

그러고는 선수 교체, 세토 미츠키가 스테이지로 올라왔다.

그런 미츠키를 카즈네는 불안한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카즈네 쨩! 힘내!!”

“히, 힘내세요! 카즈네 쨩!”

두 사람이 순수하게 응원해주는 모습이 카즈네의 마음에 걸렸다.

“응, 그래도 일단 미안. 그런데 질 것 같아서……. 미리 사과해 둘게.”

“카즈네…… 쨩?”

아뿔싸.

안돼, 이런 나약한 소릴 하면.

“……음, 있잖아. 냉정하게 판단해 봤는데 내가 세토 씨를 이겨낼 자신은 없어. 그치만 상대방 손에 든 패를 엿볼 수는 있을 것 같아. 조금이라도 레이나가 참고할 수 있으면…….”

“카즈네 쨩.”

레이나가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이기고 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러니까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아도 괜찮아.”

“어…….”

“계속 고민하고 있었잖아?”

정말이지 레이나는…… 아방하면서도 사람 속마음에 훤하다니까.

“지금 내가 아무 도움 안 될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나, 카즈네 쨩한테 힘이 되어주고 싶어. 전학 온 뒤로 수도 없이 카즈네 쨩한테 도움만 받았잖아……. 그러면서도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거든.”

“레이나…….”

지금 꺼낼 이야기가 아니긴 한데.

다 끝난 뒤에 꺼내야 할 이야기다. 머리로는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도,

지금 꼭 말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어.

“……나 말이지, 뭐든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어. 한번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고. 여태 별로 곤란한 일 겪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그러고선 인생은 이지 모드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후타바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도 사실 그렇잖아요. 전 그런 카즈네 쨩을 동경하는데요…….”

“주어진 대로 살아간다면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 그런데 한 우물을 파서 깊이 들어가 보자, 뭐든지 달성해 보자, 그런 생각을 하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인생에 필요한 스펙이 전부 평균치는 된다면, 점수를 잘 받는 쪽으로도 분명…….

“역시 타고난 사람들을 못 당해내는건가 싶어.”

“…….”

내가 하기엔 더없이 부끄럽고 나약한 소리를 늘어놓은 셈이다.

그럼에도 레이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을 짓고 있다.

“있지……. 난 카즈네 쨩도 좀 타고났다고 생각하는데…….”

“어디가?”

레이나는 입가에 손가락을 대고 생각에 빠졌다.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는 말이 있잖아. 저 사람은 저렇게 대단한 걸 가졌는데, 나한테는 그게 없어. 어째서 나는 안 되는 걸까 생각하게 되는 거 있지.”

“그런가.”

“나도 카즈네 쨩도 서로 타고난 걸 부러워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잘 하는 거라곤 누구나 열심히 해서 되는것들 뿐이야.”

레이나는 고개를 저었다.

“열심히 할 수 있는 것도 재능이야. 나는 카즈네 쨩이 하는 것처럼 노력하진 못할 거고. 아……, 분명 나같은 애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학생회장 같은 걸 하지는 못할걸.”

그렇지 않아, 하고 말하려다 포기했다. 레이나가 꼼꼼히 사무 처리를 해낸다거나, 담판을 지어 온다거나, 물밑 협상을 해내는 모습을 도무지 상상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금 나한테 필요한 재능은 그런 게 아닌걸.”

“……다들, 자기가 지금 갖고 있는건 당연하다고 여기잖아. 그래서 스스로 그 좋은 점을 못 느끼고 있는 것 아닐까?”

“그래도 레이나가 가진 재능이 나에게 없는 건 사실이야.”

레이나가 조금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있지 나, 덴온부 들어가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며 느꼈어. 다들 좋아하는 음악도 생각도 다르구나. 잘하는 것도 가진 재능도 달라. 그치만 그래서 좋은 거야. 그러니 한 사람 한 사람 각자 빛날 수 있고”

말을 잠시 쉬고는 점수판을 올려다보았다.

“STACK 배틀은 점수로 승패를 결정내지만, 그게 다가 아니야. 수치만 따지고 들면 점수가 잘 나오면 장한 거고, 지는 쪽은 가치없게 되겠지. 그치만 음악은 그런 게 아니잖아.”

“……어.”

“그니까, 별로 인기없어도 정말 좋아하는 노래……. 난 많이 갖고있어. 비록 다들 싫어한대도, 이 세상에서 나만 좋아한다 해도 아무렴 어때. 등수가 낮으면 등수 높은 노래와는 다른 장점이 있을거야.”

그렇구나.

나는 성과나 스코어에 너무 집착했던 걸지도 몰라.

애초부터 나는 골수 게이머였으니까.

시답잖고 점수 효율이 떨어지는 빌드는 의미가 없고, 고득점을 따 내는 사람이 훌륭한 플레이어다, 그런 생각이 뇌리에 박혀 있었다.

처음엔 덴온부가 가진 게임 같은 요소에 끌려들었다.

하지만 덴온부는 그게 전부가 아니다. 더욱 많은 가치관이 있다.

……그러고 보니.

망겜인데도 단지 일러스트 속 미소녀 캐릭터가 예뻤다 그 이유만으로, 걔를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필사적으로 잡았던 적이 있었지.

기껏 생각해낸 게 하필 이딴거냐……. 스스로 딴지를 걸고 싶지만.

레이나는 이런 나를 티없이 맑은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다.

“나도 여러 사람들과 만나면서, 각자 좋아하는 걸 알아가고 접하다보니 조금이나마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 그 중에서 정말 좋았던 것도 별로였던 것도 있었어. 하지만 그게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떠받들거나 후려치는 짓이라 생각하진 않아.”

뜨끔했다. 무심코 그런 생각을 하게 될 때가 많았으니까.

“STACK 배틀도 상대를 알아가면서 자신도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내가 이런 걸 좋아했구나, 이런 부분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구나…… 같이. 내가 몰랐던 나를 만나볼 수 있어.”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듣고 보니까 은근 납득이 가는 구석이 있어.

“그렇구나……. 나를 발견하는 여행 같은 걸지도 모르겠어…….”

레이나가 방긋 웃음짓는다.

“나는 언니에 비해서 성적이 나빴어서 열등감밖에 없었어. 난 정말이지 글러먹은 사람이고, 쓰잘데기도 없겠다 싶었거든.”

그렇게 말하며 스테이지 위 언니를 올라다본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을 만난 덕분에, 다른 사람들의 장점을 인정해 주고 그만큼 스스로 지닌 장점도 인정하고 아껴주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는데, 카즈네 쨩?!”

나는 레이나를 끌어안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너무 고귀해서…… 그만.

“나도 레이나한테서 엄청 많이 도움받고 있어.”

“뭐야……. 나 맨날 걸리적거리기만 하잖아.”

“아까 나한테 아무것도 못 해준다 말했잖아. 크게 착각하고 있거든.”

정말로 레이나가 전학 오고 나서 매일 매일이 재미있어졌어.

그날.

그때.

레이나가 동아리방에 나타난 그 날부터 내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다.

“고마워, 레이나.”

“카즈네 쨩…….”

레이나도 내 등을 감싸고, 손에 힘을 꼭 준다.

평소라면 하이 텐션이 되어 어쩔 줄 몰랐겠지만, 어째서인지 지금은 이상하게 마음이 느긋해지기만 한다.

찰칵, 셔터 소리가 들린다.

후타바가 애매하게 웃으며 폰을 꺼내들고 서 있다.

“후타바…….”

“죄, 죄죄죄죄송해요! 뭔가 보기 좋아보여서 그만!”

너도 이쪽 세상에 눈을 뜨고 말았구나.

“죄송해요! 죄송해요! 바로 삭제할게요!!”

그 손을 빛의 속도로 제지한다.

“삭제했다간 후타바의 부끄러운 비밀을 온 세상 널리 퍼트릴거야.”

“흐이이익?! 부끄러운 비밀이라니 무슨 말씀이세요?!”

“말해줘도 괜찮아?”

“말해주지 말아주세요오오오오!!”

“그러면 그 사진, 나한테 보내 줘.”

나는 웃음지으며 스테이지 위로 올라갔다.

“이제 즐기다 올게.”

“응! 다녀와!!”

레이나의 목소리에 배웅받으며 DJ 부스로 향했다.


두번째 시합은 시부야, 아키바 모두 두번째 선수, 세토 미츠키 대 시노노메 카즈네.

카즈네는 긴장을 풀고 경기에 임했지만, 그 실력 차이는 명확하다.

더욱이 미리 세트 리스트를 정해 플레이하는 전략까지 똑같다. 그러니 미츠키는 한 마디로 카즈네의 상위 호환이라 할 수 있겠다.

시부야다운 EDM을 기반으로 자신의 뼈대를 이루는 클래식과 오페라 요소를 담아내어, 웅장한 스케일로 세계관을 빚어내고 있다.

한편 카즈네는 게임 음악을 중심으로 한 아키바다운 세트 리스트.

플레이가 이어질수록 점수 차이는 벌어져만 간다.

절반쯤 지나니 미츠키 62점에 카즈네는 41점.

카즈네가 해낸 것 치곤 좋은 페이스였지만, 역시 차원이 달랐다.

역시 힘든 걸까…….

레이나 덕분에 별로 부담을 느끼지는 않아. 평소대로라면 이렇게 많은 관중들 앞이라 부들부들 떨어대며 실수를 잔뜩 늘어놓았을텐데.

어찌저찌 평소 실력을 발휘해낸다 해도 이미 패배 확정이다.

이왕 지는 거 그냥 사고 한 번 쳐볼까?

팀 점수를 합산하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일대일 승부에 이긴 사람이 다음 상대를 맞이한다. 아무리 점수 차이가 커도 같은 1패일 뿐이다.

지금 내 기분을 더욱 드러낼 수 있도록 뭔가…….

재생하고 있는 노래에서 BPM 차이가 큰 트랙을 준비했다. 하지만, 이대로 바로 이어버리긴 힘들어.

여태까지 채널을 두 개밖에 사용하지 않았지만, 큰 맘 먹고 채널 하나 더 써 보자. 지금까지 흐름을 끊어내는 브레이크 다운. 칠 아웃을 넘어 앰비언트한 트랙을 불러들인다. 한걸음 또 한걸음 세로 페이더를 끌어올린다.

분위기가 한순간에 뒤집어진다.

스코어가 올라간다. 43점.

얼레? 방금 게 좋았다고?

좋았어. 신나게 가 보자, 그 다음엔 생 라이브로 가 볼까?

마이크를 쥐고 드랍 보컬에 목소리를 더한다.

한차례 더 2점 플러스.

생 라이브가 들어가면 스코어가 잘 나오나 보네?

재차 생 라이브를 더해본다.

얼레?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번엔 스코어가 꿈쩍을 않네.

그렇구나, 어떻게 전개를 크게 틀어버리면 점수가 잘 들어가나봐.

그렇다면은…….

처음 디제잉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이유는 이것이 마치 스코어로 겨루는 게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디제잉 실력이 생겨나면서 고만고만한 점수를 받을 수 있게 되니 흥미가 식어가기 시작했다.

대충 알만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약식 애플리케이션으론 결과 점수밖에 볼 수 없고, 점수의 근거도 알 수가 없고, 그런 불만이 하나둘씩 쌓여가 시들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눈앞에 있는 DJ 유니트를 다시 바라보았다.

동아리방에 있는 것보다 고급 모델인데다 최신형이야.

DJ 플레이보다 이 하드웨어 자체에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번 곡이 재생되는 동안 F1키부터 눌러보며 메뉴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DJ 유니트 위에 홀로그램 스크린이 떠올랐다. 플레이 기록과 득점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곡이 끝날 것 같으니 후다닥 다음 곡을 준비했다. 준비해 왔던 세트 리스트로 되돌아갔다.

연습한 대로 잘 마무리지었다.

그런데 스코어는 별로 안 좋네.

어째서일까?

무슨 이유가 있을 거야.

페이더를 당기는 스타일이? 타이밍이? 애초에 CUE 포인트가 별로였던 걸까? EQ를 조정하지 않았어서?

아니면 처음부터 선곡이 잘못된걸까?

이런저런 가능성이 머릿속을 맴돈다.

STACK 배틀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악적 재능을 맞부딪히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우선 승패를 가르는 조건은 이미 알려져 있다.

SELECT 선곡

TECH 테크닉

AUDIENCE 관중

CREATIVE 창의력

KNOWLEDGE 지식

그 이니셜을 이어 붙이면 STACK.

이 다섯 가지 요소로 채점하고 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정량적으로 나타내는지 밝혀지지 않았어.

이론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천재들이 하는 생각이니까.

애초부터 정량적으로 표현해낼 수 없는 것들로부터 억지로 숫자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고, 틀린 말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Iris가 사람의 지성을 아득히 초월해서 절대적인 심판을 내리고 있는 게 아니다. 집계된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점수를 산출해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공략할 수 있어.
 

짜릿,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맙소사…….’

기막히게 재미있잖아.

관중들의 반응이나 스트리밍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이 해주는 응원도 반영해주고 있으니, 플레이만 가지고 전부 해석해낼 수는 없겠지만,

아냐, 만약에…….

Iris는 어쩌면 그걸 바탕으로 하고 있거나, 관계있는 걸지도 몰라.

인간의 감정과 감성을 해석해낸 것.

정서, 욕망, 열광. 그런걸 의도적으로 만들거나 조작해낼 수도 있다.

그걸 다시 따져보면,

‘사람 마음을 지배한다’거나.

미쳤어.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어.

다른 DJ들과는 재미를 느끼는 포인트가 완전히 달라.

그런데, 분명 이게 제일 시노노메 카즈네다워.

그러니까, 이걸로 된 거야.

왜냐하면 지금 엄청 재미있거든.

리스트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트랙을 읽어온다. 아직 반주밖에 없지만 괜찮아.

치솟은 텐션 그대로 곡을 틀고는 마이크를 손에 쥔다.

달링 달링
도쿄, 칸다, 울먹이며 펼친 우산 또 내리는 비
뻥 뚫린 구멍 끌어안고서
그냥 너를 기다렸어
영원이래봐야 한순간이고
천 년이래봐야 일 분 같아서
메이 데이 메이 데이
우리들에겐 부족한걸
울어버려 최악이 되어버린 날이지만
만세바시에서 키스해 줘

아아. 기분 정말 좋아.

이렇게 노래에 취해 부른 거, 처음일지도 모르겠어.

민망할 정도로 로맨틱한걸.

내 망상 속 세계에 온몸을 맡기고는 그저 흘러가듯 흘러갈 뿐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상세 스코어를 띄워놓은 화면을 바라보며, 더해져만 가는 점수에 황홀해진다.

데이터도 잘 찍혔어. 최고야.

집에 들어가면 Iris의 테크니컬 디테일을 몽땅 확인해볼 거야.

어?

관객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내 머리 위를 가리키고 있다.

“……허.”

올려다 보니 커다란 사각 물체가 벽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올 블랙, 어딘가 불안감을 느끼게 만드는 꺼림칙함.

마치 우주인 모함(母艦)과도 같은 거대한 비행 물체.

콜로세움 천장은 높아봐야 수십 미터지만 천장에는 해질녘 하늘이 홀로그램으로 그려져 있다. 갑작스레 지붕이 사라진 것 같았다.

그 저녁 상공에 길이가 수 킬로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요새가 떠 있다. 이상한 거리감이 느껴져서, 원근감에 버그가 생긴 것 같다.

저녁 노을을 받은 어두운 선체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다.

아무리 봐도 지구를 침략하러 다른 별에서 온 우주인 모함.

엄청 익숙한 디자인.

“저건, ……안도어 제네시스(Andor Genesis)?!”

전설적인 게임 《제비우스》남코에서 1983년 출시한 아케이드 슈팅 게임에 등장하는 보스 캐릭터. 현실에 나타난 모습을 보니 이세상 존재감이 아니다. 수수께기에 둘러싸인 끝판왕다운 위엄을 감출 수가 없다.

“설마, 이게 내…… VJ 캐릭터?”

거짓말이지?

후타바는 와간에 타이가 씨는 호랑이였는데, 내 건 이거야?!

“재미있는 걸 꺼내왔구나.”

세토 미츠키도 머리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뇨, 꺼내고 싶어서 꺼낸 게 아니고…….”

“내 건 도대체 뭘까?”

불안한 미소를 짓더니 세토 씨가 잠깐 소리를 멈춘다.

그러고는 갑작스럽게 다크 고딕 풍 EDM 드랍.

‘우와, 강렬하다’고 생각하던 찰나, 세토 씨의 등 뒤로 물결이 퍼진다.

물 위로 돌을 던진 것마냥 공간이 일그러진다.

그리고 거기에 무서운 모습을 한 생물이 얼굴을 내밀었다.

“드래곤?!?!?!”

육식공룡으로 보이는 머리와 긴 모가지가 드러난다. 큰 날개와 근육질 몸통에 기다란 꼬리.

판타지에서 막 튀어나온 푸른 드래곤.

게다가 후타바 것처럼 데포르메하지 않고 리얼한 모습을 하고 있다.

너무 리얼하잖아……. 이 디자인은 설마 ‘블루 드래곤’?! 《드래곤 스피릿》남코에서 1987년 출시한 아케이드 슈팅 게임에 나온 그거?!

블루 드래곤은 고개를 돌리고는 상공에 떠 있는 내 안도어 제네시스를 향해 주둥이를 열었다.

“설마…….”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블루 드래곤의 주둥이에서 불꽃이 튀어나왔다.

그 주둥이에서 튀어 나온 빛줄기는 그 힘이 극도에 다다라 일직선으로 요새를 향해, 안도어 제네시스를 관통했다.


미츠키와 카즈네의 최종 점수는 146 대 108.

참패라고 부를 만한 점수차였지만 카즈네는 후련한 표정으로 스테이지를 내려왔다.

“카즈네 쨩.”

마중 나와 준 레이나와 후타바에게 카즈네는 웃는 얼굴로 대답한다.

“나, 드디어 나만의 덴온부를 찾아낸 것 같아.”

“응……!”

레이나는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었다.

“이젠 레이나 차례네. 이제 와서 이기든 지든 상관없으니, 언니 분이랑 마음껏 이야기 나누고 와.”

“그럼요! 레이나 씨는 지금 이 순간을 위해 힘써오셨으니까요!”

“고마워……. 카즈네 쨩, 후타바 쨩.”

레이나는 손목에 찬 매듭팔찌를 매만졌다.

“그럼 이제, 다녀올게.”

레이나가 스테이지로 올라가 곧장 DJ 부스로 향했다.

DJ 유니트에 ID-J를 터치해 Iris에 로그인. 접속하고 나니 Iris에 저장된 프로필과 데이터가 뜬다.

DJ 유니트 양 끝에는 집에서 가져온 아날로그 턴테이블과, 그 위에 쿠로가네 타마에게서 빌린 이펙터와 샘플러가 놓여 있다. 뒤를 돌아보면 레코드를 싣고 온 두랄루민 케이스.

지금 쓸 수 있는 무기를 총동원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면 대전 상대가 있는 시부야 DJ 부스.

“……언니.”

세토 미츠키가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설마 했는데, 당신하고 같은 스테이지에 설 날이 다 오고 그러네.”

“응……. 난 기뻐.”

허나 얼굴은 딱딱하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긴장되고, 부담스럽다.

“그치. 나도 이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어.”

“어?! 그러며…….”

레이나의 웃음에 살짝 미소가 피었다. 하지만

“당신과 당신 부친의 존재를 부정할 기회를.”

“……윽.”

미츠키는 어디까지나 차가운 표정만 짓고 있다. 그리고 그 눈빛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레이나는 입 안으로 칼을 들이미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왜 그래? ……나랑 아빠가 언니한테 그만큼 잘못했어?”

슬픔이 가득 번진 레이나의 눈동자를 보며 미츠키는 입술을 깨문다.

“더이상 이야기해봤자 아무 의미 없어. 당신을 다시 일어서지도 못하게 쓰러트려 주겠어. 그리고 당신이 가장 자신있는 디제잉도, 훨씬 그 위에 내가 있단 사실을 증명해 보일 거야. 레이나 당신보다도, 아버님보다도 내 재능이 더 위에 있다는 사실을.”

“그렇니…….”

레이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알았어. 그치만, 나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거야.”

“하고 싶은 거……?”

“내 마음을 소리로, 언니에게 전할 거야.”

미츠키는 절대 0도 차가움으로 대답한다.

“안됐네. 나는 그런 걸 감상이나 할 마음이랄 게 더이상 없어서.”

레이나가 대답도 하기 전에 미츠키는 PLAY 버튼을 눌렀다. 공중에 떠 있는 AI 스피커에서 거룩한 인트로가 울려 퍼진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세트 리스트. 그걸로 레이나를 철저하게 쓰러트린다.

장엄한 울림에 관중이 빠져들기 시작할 때, 체제 반항적인 소리를 울려대는 EDM을 천천히 드러낸다.

관중들의 기대감이 고조된다. 잠시동안 애를 태워주고 나서 강렬한 임팩트를 가진 드롭을 패대기친다.

순식간에 아레나가 열광했다.

레이나도 입술을 꽉 깨물고서, 첫 번째 노래를 시작한다.

나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느닷없이 오리지널 트랙 《Favorite Days》부터,

가장 좋아하는 것들을 모아
너에게 전해다 줄게
끊어진 소리는 들려지지 않아
오늘 하루만 펼쳐지는 기적

제발, 전해져라.

중요한 건 겉모습이 아니야
얼마나 애타게 전하고 싶은가지
네가 웃어주기만 한다면
그래주기만 하면 다 된거야

하지만 미츠키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이번 뉴 레전드에서는 DJ 두 명이 동시에 플레이한다. 레이나가 진행하는 플레이를 미츠키가 반드시 들어 준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어쩌면 좋을까.

건너편에 있는 미츠키와 넓은 콜로세움을 가득 채운 관중들. 레이나는 그 둘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우선 손님들 관심부터 끌어 봐야겠어.

플로어 전체 분위기가 바뀌면 언니도 궁금해 할 지도 몰라!

레이나는 플로어를 훑어보며 다음에 틀 노래를 떠올린다.

여기서는 흐름이나 문맥보다 의외성이 중요하겠지.

공연장에는 시부야 팬들이 많아. 그 귀를 빼앗을 법한, 시부야스럽게 치안이 좋지 못하면서 치고 나가는 분위기를 풍기는 노래라면…….

곧장 결단을 내리곤 DJ 유니트 위 다이얼을 돌려 트랙을 찾아낸다.

미미토 쨩, 부탁해!

미미토가 레이나에게 넘긴, 미공개 신곡으로 이어갔다.

관중석에 있던 미미토가 쓴 토끼 귀 리본이 깡총 솟아올랐다.

“으아아아악! 내 노래야! 내 노래 《Do you even DJ?》잖아!”

옆에 있는 히나의 어깨를 잡고 덜컹덜컹 흔들었다.

“아아알겠으니까아 지지지진정해해해해해요오오오오오!!”

“들어봐 들어봐! 이렇게 큰 무대 위에 섰단 말야?! 내 노래가 시부야랑 싸우고 있다고?!”

잔뜩 흥분한 미미토의 귓가에 시안이 중얼거린다.

“……플레이리스트에도 기록되겠지.”

“역사에 이름이 남는 거잖아!”

“그건 좀 허풍이 심해요. 뭐, 아무튼 잘된 일 아니겠어요.”

“응…….”

미미토는 약간 흥분을 가라앉혔는지 스테이지 위에 선 레이나와 그 머리 위에 있는 점수판을 올려다 보았다.

23.0 : 16.5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벌써부터 점수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지금은 큰 차이라 할 수는 없지만, 이 페이스로 계속했다간 어느새 큰 차이로 벌어지고 만다.

미미토는 조그만 주먹을 꼬옥 쥐었다.

“파이팅…….”

레이나는 다음 전개를 고민하는 한편, 미츠키는 예정대로 담담하게 플레이를 이어가고 있다.

선곡도 전환도 모두 계획대로.

분위기를 띄우려고 생각한 부분에서는 의도대로 플로어가 들끓었다.

하지만 미츠키는 관객들의 반응으로부터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어차피 예상대로 펼쳐질 반응이었으니까. 처음부터 의도한 거니까.

어차피 이것밖에 안 돼.

아무리 레이나와 아버지가 디제잉으로 이름을 날려봐야 그 정도는 쉽게 뛰어넘을 수 있어.

그걸 오늘 증명해 보이겠어.

하지만 여기까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카린의 말발에 넘어간 게 작년 여름 끄트머리.

그때부터 배우고, 연습하고, 검증하고, 완성시켰다. 이론과 실천. 그것을 반복해 가며 세련되게 다듬어왔다.

그동안 카린에게서 배운 점은 많다. 디제잉 기술 뿐만 아니라 댄스 뮤직과 클럽, DJ 문화나 감각적인 부분까지 포함해서.

하지만 그 방식만큼은 따라할 수 없었다.

카린의 디제잉이라면 어느 정도는 이론으로 정리해낼 수 있기야 하지만, 어느 경지를 넘어서고 나면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을 영역이 된다.

카린이 트리키한 플레이를 해 냈을 때, 왜 그랬는지 물어 보았다.

“그냥. 이유 같은 게 어딨냐. 하면 좋을 것 같아서 한 거야.”

아마 진심으로 하는 소리겠지.

평소대로라면 그닥 좋다고 할 수 없는 플레이였다.

하지만 먹혀 들어갔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플로어가 급격하게 끓어 올랐다.

나중에 되돌아보면 왜 그게 먹혔는지 설명할 수 있겠지.

그런데 어떻게 그걸 미리 알아낸 거야?

카린이 말한 그대로 해석하면 그냥 우연일 뿐이다.

그렇다 치고 넘어가기엔 너무 우연투성이다.

“아냐. 난 내가 하고 싶은대로 했는데 왠지 모르게 대중들이 멋대로 좋아해주는 거거든.”

자의식에 절어서 하는 소리로밖에 안 들리는데, 카린에게는 단지 사실일 뿐이다. 솔직한 본인 감상이겠지.

직감.

그게 아니라면 천부적인 재능.

그런 걸 가진 인간들이 이 세상에 몇 명 있다.

지식이나 기술이 아닌, 본능만으로 사람 마음을 사로잡아버리는 그런 인간들이.

미츠키는 건너편 DJ 부스를 곁눈질로 쳐다보았다.

“…….”

분해서 자신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지금 점수는 68.8 : 54.6.

점수 차이는 조금씩 벌어지고 있다.

러닝 타임이 어느새 절반을 지나섰다.

레이나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이렇게 했다간 못 따라잡아.

언니에게 내 소리가 전해지지 않아.

어쩌지. 어떡하지. 어쩌면 좋을까. 어떻게 하지. 어쩜 좋아. 어쩌지.

마음은 조급해지기만 하고, 생각은 둔해지기만 한다.

페이더를 기울이는 손끝이 떨리고, 손목에 찬 ID-J가 잘그락거린다.

ID-J를 걸어놓은 매듭팔찌가 눈동자에 들어왔다.

카즈네 쨩. 후타바 쨩.

스테이지 아래로 시선을 내린다. 입에 손을 감싸며 외치는 카즈네와 후타바의 모습이 보였다.

“레이나아! 눈 딱 감고 가 보는 거야아!!”

“힘내세요오오오!! 레이나 씨이이이이!!”

자신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그랬지……. 다 함께 힘낸 덕분에 여기까지 온 거잖아.”

레이나는 플레이리스트에 올려두지 않은 노래를 검색했다.

“여기서 끝낼 순 없어!!”

DJ 유니트 위에 세팅해 놓은 이펙터와 루프 머신 위로 손을 뻗어 소리를 때려 부숴버릴 이펙트를 끼얹는다.

타마가 던진 질문이 귓가를 맴돈다.

“그러면 네녀석은 어떻습니까? 좋아하는 곡 없습니까?”

“있어.”

DJ 유니트에 달린 조그 휠을 손가락으로 있는 힘껏 눌러 거꾸로 감아 돌린다.

곡이 역재생된다.

소리가 거꾸로 나온다.

시간을 돌려낼 것 같은 기세로.

내 시작점.

“초음속 전기 크로스페이더 주제가!!”

별안간 낡은 로봇 애니메이션 주제가가 흘러나오기 시작하고, 레이나가 플레이하는 걸 듣던 관중들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리운 인트로를 지나치니, 강렬한 포 온 더 비트 리듬이 새겨진다.

타마에게서 빌린 장비로 드럼과 베이스 루프를 더했다. 그리고 노이즈 이펙트를 덧붙인다. 즉흥적인 클럽 리믹스.

청중들은 무심코 웃음짓더니 환호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좋다 나쁘다를 따질 문제가 아니다. 단지 재미있으니까.

이런 축제 이벤트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놀잇거리로 먹혀 들어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다들 아는 노래였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애니메이션으로, 동영상 재생 사이트에서, 방송에서 추억 돋는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소개할 때 빠짐없이 등장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적 있는 노래다.

드넓은 플로어에서 뿜어나오는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혼자만의 세계를 자아내느라 바빴던 그 미츠키조차도 이렇게 분위기가 바뀌니 민감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아키바 쪽 채널을 ON으로 돌려, 레이나가 플레이하는 소리를 모니터링했다.

“?!”

눈이 번쩍 뜨이고, 동공이 좁혀졌다.

“이 노래는…….”

자신에게 있어 악몽 같은 노래.

바로 그 노래를 자신의 면전에서, 그 날의 굴욕을 다시 보여주려는 것처럼 틀어대고 있다.

레이나가 플레이하고 관객들이 흥분하니, AI 스피커도 반응하기 시작했다. 공간을 가득 채운 입자가 스크린처럼 작동해 홀로그램 영상을 보여준다.

“……?!”

레이나의 등 뒤로, 오렌지색 거대한 휴머노이드 로봇이 나타났다.

“크로스……페이더.”

어린시절 뇌리에 박힌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날, 그때까지 깔봤던 동생에게서 한 방 먹었다. 패배의 맛을.

그런 건 음악이라 할 수 없어.

그냥 인기에 편승하려는 거잖아.

그러니까 상처받지 않아도 돼. 그렇게 몇 차례나 합리화했건만.

하지만 깨닫고야 말았다.
 

레이나에게는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재능이 있어.

나보다도 훨씬 잘 움직일 재능이.

나는 피나는 연습을 통해 연주 테크닉을 키워 왔다.

하지만 테크닉은 테크닉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야.

테크닉은 수단일 뿐이고, 그 목적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레이나는,

그걸 본능적으로 해치우고 있어.

미츠키의 어금니에서 빠득 소리가 났다.

“언제까지……. 날 이렇게!!”

저 로봇 꼬락서니를, 더는, 1초도 보고 싶지 않았는데.

미리 짜 놓은 세트리스트를 전부 엎어버리고, 가장 분위기가 고조될 때 쓰려 했던 노래를 불러들인다.

저 로봇을 멈춰 주었으면!

그렇게 마음속으로 외치며 PLAY 버튼을 눌렀다.

허공이 일렁이고 블루 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냈다.

블루 드래곤이 불을 뿜으려 주둥이를 연다. 하지만 크로스페이더는 로켓 엔진을 뿜어대며 블루 드래곤에게 달려들었다.

별안간 시작된 로봇과 괴수의 스펙터클. 일상에서 만나볼 수 없는 그 모습에 관중들이 열광했다. 레이나가 들려주는 곡이 전투 장면을 고조시키며 분위기를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다.

드래곤은 그 상대 크로스페이더의 머리 부분을 향해 주둥이를 연다. 크로스페이더도 전신에 놓인 레이저 포문으로 드래곤을 가리킨다.

매우 가깝게 맞붙은 거리에서 각자 최대 화력이 뿜어져 나왔다.

마그마 같은 불꽃과 날카로운 레이저 빛줄기 수십 개가 콜로세움 이곳저곳을 후벼댔다.

불꽃 홀로그램이 터지며 시야를 가득 메우고, 폭발 소리와 비명 소리가 대회장 안에 울려 퍼졌다.

시야를 가리고 있던 연기가 서서히 옅어져간다. 연기 저 너머에 있던 로봇과 괴수, 그 거대한 모습은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

서로 한 방 먹이며 무승부.

휘파람과 함성 소리가 울려퍼지고, 대회장은 흥분으로 가득찼다.

서로 스테이지 연기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상대를 바라보고 있다.

“언니…….”

“레이나……. 당신, 용서 못 해.”

미움어린 시선을 견뎌내 가며 레이나가 말했다.

“언니! 난 언니 보고 싶었어!”

“허튼 소리 마! 엄마랑 날 남겨두고 나간 주제에!”

“계속 보고 싶었어! 이야기하고 싶었어!”

“거짓말이잖아! 아무 고민 없이 웃고 있었으면서! 전부 다 잊어버리고 즐기고 있었으면서!”

대화라 볼 수 없이, 서로 옥신각신 할 뿐이다. 서로 감정을 쏟아내며 부딪히기만 하면서.

“한 번도 잊은 적 없어!”

“우리 모두를, 가족이 다 함께 있는 우리집을 소중히 여긴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잖아! 나머지들은 어떻게 되든지 하나도 신경 안 써줬잖아!”

“그렇지 않아!!”

레이나는 DJ 유니트 다이얼을 잽싸게 돌려, 오늘 이 날만을 위해 준비해 온 트랙을 불러들였다.

“언니가 들어줬으면 좋겠어! 내 마음을!!”

“그딴 거 듣고 싶지도 않아.”

미츠키는 아키바 쪽 DJ 부스 소리를 끄려고 손을 뻗었다.

여기서 흐름상 이어갈 방법을 생각해낼 여유조차 없어진 레이나는, 흐름을 전부 끊어먹기로 하고 그 트랙을 꺼냈다.

전해져라.

기도를 담아 CUE 버튼을 두드렸다.

모니터 채널 전환 버튼 위로 미츠키의 손가락이 멈췄다.

저녁 해가 질 무렵
새벽녘 저 너머 소리를 마음 가는 대로
내일 날씨는 맑을 거란 예감이 들어
예보로는 비가 온다더라도 반드시

전해졌으면 전하고 싶어
나란히 걷는 정열을 그린 모습 찬송
동경하며 춤을 춰 꿈 속 그대로

Sun rise Sun rise 해는 떠올라
어둠을 녹여내듯이
터지며 활짝 열리는 하늘
솔직한 목소리여
퍼져라

잊지 않아
꿰매고 기워낸 기억
서투른 말은 손가락에 올려둬

미츠키의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이게 뭐야?

레이나가 나를 향해 품어 온 마음이 내 마음에 와닿는다.

마치 내 마음 속을 궤뚫어본 것 같은 트랙.

마음 속에서 감정이 휘몰아친다.

부끄러운 기억을 들켜 버려서 창피한걸까.

그런데,

레이나는 무슨 수로 알아낸 거야? 내 마음.

멍하니 있던 동안 레이나가 두랄루민 케이스에서 아날로그 레코드를 꺼냈다. 은빛 턴테이블에 레코드를 올려놓고 그 위로 바늘을 떨군다.

그리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어머니가 좋아해서 줄곧 들으시던 레코드?

자세히 들어보니, 그 뒤에서 배경 소음 같은 게 들려온다.

신기했다. 듣다 보면 어딘가 가슴을 옥죄 오는 그리움이 몰려온다.

어딘가 귀에 익은 발소리. 시계 소리. 멀리서 개 짖는 소리. 부드럽게 울리는 피아노 소리.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리집 소리.

눈 앞에 그리운 풍경이 펼쳐졌다.

마치 시간을 뛰어 넘은 것처럼.

빛으로 가득 찬 따뜻한 거실. 아버지가 있고, 어머니가 있고, 레이나가 있어.

다같이 웃는 소리가 들려.

어제도 오늘도 즐거웠어. 내일도 즐거운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던 나날.

하나하나가 다 그리워.

지금 여긴 적적한 집이 아니야.

빛이 들어오는 따뜻한 우리 집. 나는 여기에

“?!”

퍼뜩 정신을 차렸다.

눈 앞에 놓인 건 싸늘한 DJ 유니트, 그 너머 아레나.

“아까 그건…….”

엉겁결에 AI 스피커를 올려다 보았다.

아니야. VJ 홀로그램은 아니야. 나 혼자 머릿속으로 보고 있던 거야. 아니 보게 된 거야.

레이나의 플레이로.

튕기듯이 아키바 DJ 부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레이나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DJ 유니트 위 채널을 만져대고 있었고, 준비해 온 샘플을 로드해 샘플러 패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집 소리를 재현해 내고 있어.

그치만 그때 그 시절 녹음한 건 아닐 것 같아.

새로 소리를 만들어냈어. 완전 똑같이.

레이나는 기억하고 있었구나.

그때 그 소릴.

그리운 소리 위로 레이나의 오리지널 트랙이 다시 겹쳐진다.

레이나의 노랫소리가 귀에서 마음으로 전해진다.

그 목소리가 외치고 있다.

차갑고 어두운 집 안 홀로 틀어박혀 있는 내 마음 속으로 레이나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레이나의 목소리가. 레이나의 마음이.

마음 속에서 본 적도 없는 광경이 떠오른다.

나는 깊히 가라앉은 집 안에서.

빛 한 줄기 닿지 않는 바다 깊은 곳이었을텐데.

창문이 열리더니 따스한 빛이 들어온다.

그 빛을 레이나가 등에 업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를 향해 손을 뻗고 있다.

이게 뭐야?

내 마음이 바라고 있던 거야?

그럴 리가 없잖아.

냉정해지자. 이런 소리, 결국엔 가짜로 만들어낸 거니까. 정체를 파악하고 속내를 털어내면 이 기분 가라앉힐 수 있을 거야.

또 노래가 바뀌었어.

자세히 들어보니, 한 곡만 틀고 있는 게 아니야. 여러 소리와 곡을 믹스해 놓았어.

그것은 마치 피스 여러 조각을 짜 맞춰 놓은 퍼즐같았다.

그 한 피스 한 피스를 풀어나가면.

이건……. 레이나와 함께 연습했던 그 곡.

함께 텔레비전 볼때 나오던 그 아이캐치.

텔레비전에서 종종 나오던 그 CM 송.

첫 콩쿠르 자유곡으로 준비해 가려 했지만 어머니께서 허락해 주지 않으셔서 포기했던 그 곡.

처음으로 쳐 낸 게 너무 기뻐서, 레이나에게 들려줬던 그 곡.

오직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콘서트였다. 레이나는 깊은 감동에 젖은 표정으로 손이 아플 정도로 박수를 쳐 주었지.

어떻게 이걸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는거야?

나도 다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분명,

레이나에게 있어서도 소중한 추억이니까.

내가 잊어버린 것들까지도, 레이나는 소중히 간직해주고 있었어.

“아…….”

어째서인지 눈앞이 흐려졌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눈을 비비니, 손끝이 뜨거워졌다.

눈물……?

DJ 유니트 모니터에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그랬지.

레이나는 사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재능이 있어.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재능이 있어.

나는 그걸 이론과 학습,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연습해서 겨우 익혀낸 건데.

레이나는 어째선지 처음부터 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분통이 터졌다.

그런 거 반칙이라고 생각했다.

난 타고난 재능도 없고, 신동도 아니야.

레이나 쪽이 타고난 거지.

그래서 계속 질투했던 거야. 어렸을 때부터.

레이나가 타고난 재능이 부러웠어.

아아.

나는 계속 질투하고 있던 거야.

레이나가 너무 부러워, 너무 부러워서 어쩔 방도가 없었어.

그래서 이겨 보고 싶었어.

나는,

노력으로 천재를 이겨낼 수 있단 사실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던 거야.

눈물 범벅이 된 모니터를 닦으려 보니 이미 준비해온 세트리스트가 전부 끝나버렸단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구나. 아까 중간에 다 해먹었지.

이러는 동안에도 침묵의 시간은 계속해서 흐른다. 대량 실점은 피할 수 없어. 뭘 틀어야 해.

그런데, 뭘 틀어야 해?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어.

귀에는 레이나가 플레이하는 믹스가 들려와.

그 시절은 추억이란 이름을 가진 많은 피스로 이루어져 있어.

그럼에도 뭔가 모자라다고 생각했어.

아, 그랬구나.

여기엔 내 소리가 없어.

부족했던 한 피스는 바로 나였어.

레이나가 퍼즐을 늘어놓고 기다려주고 있어.

내 차례를 기다려주고 있어.

나는, 만들다 만 노래를 불러냈어. 아직 러프 단계라 보컬도 안 들어가 있는데.

하지만 이젠 이것밖에 안 남았어. PLAY 버튼을 눌렀어.

인스트루멘털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대론 너무 부족한데.

사람들 앞에서 노래한다니, 그런 적 없어.

하지만 손이 마이크를 집어들었어.

그 비어 있는 피스를 채우고 싶어졌거든.

나 자신으로.

밤 열두시 어두운 방 구석에서
늘어뜨린 그림자가 숨을 내쉬어
다신 돌아와주지 않음을 알고서
어린 시절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차마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있기에
강함이라고 믿어 왔건만
다시 한번 돌아가고 싶다 바라며
웅성거리던 거리는 쏟아지는 햇살로 차올라

시곗바늘을 하나 돌려놓고서
달빛은 네게 비치고 눈이 떠져서
꿈에 그리던 그 하나를 이뤄내고서
내팽개친 가면 그 위에서
계속 춤 출 거야 그냥

새벽 다섯시 어두운 방구석으로
빛이 스며들어와

노래가 끝나자 거기서 딱 제한시간이 찾아왔다.

점수판을 보지 않아도 그 결과는 알 수 있다.

하지만 아쉬울 건 없다. 정확히 말하면 방심한 상태나 다름없다. 정보와 감정이 흘러넘치고 있어 사고가 정지했다.

그럼에도 묘하게 어딘가 후련해지는 신기한 기분이 든다.

뻘쭘한 마음으로 아키바 쪽 DJ 부스를 바라보니

“어?!”

“어, 어, 언니이이이이…….”

펑펑 울고 있는 레이나를 보고 엉겁결에 표정이 굳어졌다.

아까 울음을 터트려서 좀 쪽팔렸다고 생각했는데……,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쪽팔리는 동생 덕분에 조금 안심해버렸다.

자연스럽게 입가에 긴장이 풀렸다.

“……다음에 만나, 레이나.”

그렇게 말하고서 스테이지를 내려온다. 그 아래에는 팔짱을 낀 카린.

“이제 직성이 풀렸나?”

“……그럼. 당초 계획대로는 아니었지만.”

“그렇겠지. 이렇게 점수를 말아먹다니, 네 녀석도 별일이다.”

점수판을 보니 점수는 85.3 : 91.0.

“내가 좀 너무했지.”

무심코 쓴웃음을 지어버렸다.

“그래서, 이제 어쩔테냐? 동생이랑 다시 말도 텄는데, DJ 때려치우고 다시 피아노 치러 가?”

“…….”

개운해진 기분이지만 아직 머릿속은 혼돈 그 자체. 그래도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

“아니. DJ한테 빚진 건 DJ한테 갚아줘야지.”

“그건 좀…… 의왼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아주 조금이긴 한데, 디제잉이 재미있어진 것 같거든.”

카린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허어…….”

“하지만 이번 승부 말아먹은 덕분에 랭킹도 말아먹었으니,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 볼까 싶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해맑은 기분이다.

“뭐 그래도 내년 초엔 다시 회복해 올 것 같아.”

“뭐냐, 의욕에 넘쳐 있구만.”

카린이 쌀쌀맞게 굴어대니 나는 도발하듯 웃음지었다.

“당신한테 진 빚, 아직 절반은 남아 있잖아.”

카린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러면서도 뭐가 그리 흐뭇한지 웃었다.

“넌 그대로 대표팀에 남아 있을건데.”

“뭐?”

“이 대전 방식은 결국 어느 팀이 마지막까지 남는가로 내리는 승부지, 누가 한 판 이기고 졌는가는 랭킹에 영향을 주지 않아. 다시 말해, 다음 승부로 모든 걸 결정짓는다, 그러니”

카린이 전투적인 웃음을 띄며 걸어 나간다.

“내게 루키아와 네 녀석 패배를 만회하고 올게.”

“……카린?”

카린답지 않은 말투에 조금 놀랐다.

하지만,

스테이지에 오르는 카린은 몸에 불꽃을 두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