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나는 스테이지 위로 찾아오는 최강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오금이 저린다. 뭔가 가슴 속에서 떨리고 있다.

이 감각은 무얼까.

“어이.”

카린은 가볍게 인사하고 시부야 쪽 DJ 부스로 들어선다. 그러기만 해도 대회장 곳곳에서 박수갈채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 기운, 레이나도 느낄 수 있다.

부스에 들어선 카린은 이상한 존재감을 갖고 있다. 그 자체로도 예술 작품 같다. 눈이 번쩍 뜨인다.

거기에 더해, 오늘 카린은 여태까지 본 것과 다른 인상을 하고 있다.

전신에서 불꽃을 뿜어내는 박력. 그 위로 날뛸 즐거움을 더는 기다릴 수 없어보이는 눈동자.

“카린 씨와 한 스테이지에 설 수 있어서 기뻐요. 저는 카린 씨…….”

“한번 꺾어 봐.”

“예?”

“한 수 배우겠다, 이딴 소리는 집어치우고.”

“…….”

목구멍까지 나왔던 말을 급히 집어삼킨다.

“다음 기회가 있을 것 같냐.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지.”

맞다.

카린 씨는 덴온부에서 탑 랭커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전해 보는 걸로도 기적이야. 이 보물 같은 기회를. 이 시간을 소중히 써야 해.

“……예, 고맙습니다.”

레이나는 깊이 고개숙였다.

“카린 씨를 꺾어 보이겠어요! 온 힘을 다해서!”

고개를 드니 더는 망설임 없는 표정을 짓고 있다. 빛나는 눈동자가 카린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만족스럽게 웃음지으며 카린은 DJ 유니트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앰비언트 계열 조용한 신디사이저 소리가 울려 퍼진다.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에 관중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카린은 언제나 등장하자마자 강렬하고 임팩트 있는 소리를 울려대니까. 후려치는 한 방으로 관중을 압도하는 것이다.

잠시 당황하더니 이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대감이 회장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힐링 사운드 아래에서 체제 반항적인 리듬이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걸 깨달은 관중들은 그 순간 급격하게 흥분하기 시작했다.

“가 보자고!!”

뛰쳐나가는 BPM에 베이스와 드럼이 울려 퍼졌다. 허를 찌르는 급발진에 관중들은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겨버린다.

예상치도 못한 인트로에 대회장은 흥분이 터져 나오고 있다.

역시 이게 카린 씨구나.

레이나는 임팩트 있는 출격을 위해 인기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리믹스해서 가져왔다. 결과적으로는 아주 나쁘지는 않았지만, 카린이 분위기를 전부 지배해버렸다.

“그래도, 이제 막 시작한 거잖아!”

레이나는 스윽 대회장을 둘러보았다. 대회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끼고 있는 이어폰이 붉은 빛과 푸른 빛을 내고 있다. 시부야 쪽 소리를 듣고 있음을 나타내는 붉은색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인터넷 스트리밍을 듣는 사람들은 이쪽을 더 많이 들어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상대는 그 수를 짐작할 수 없을 뿐더러 그 분위기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지금 이 자리에서 듣는 사람들을 기쁘게 만들 수밖에 없어!

레이나는 퓨처 팝 명곡을 밀어붙이기로 했다. 그리고 아날로그 레코드를 손에 쥐고 드높이 올려든다. 그것을 본 관객들이 크게 술렁거렸다.

그냥 신기해서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여기서 수단과 방법을 가려서는 안돼. 관심을 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해.

레이나는 턴테이블에 레코드를 놓고 그 위에 바늘을 떨어트렸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총동원하지 않으면 카린 씨에게 전해지지 않아. 아니, 총동원해도 전해지지 않을지도 몰라.

하지만 턴테이블은 카린 씨가 가지고 있지 않은, 나만의 무기야. 나만이 가진 무기를 최대한으로 살려내거나…….

레코드를 틀고 나서 레이나는 한숨 돌리고 시부야 쪽 소리를 모니터링했다. 그 순간 레이나는 경악하여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 노래잖아?!

《Favorite Days》가 들린다.

다른 리듬과 어우러져, 치안이 썩 좋지 못한 시부야 스타일 EDM과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리믹스되고 있다.

깔끔하게 자신이 가진 무기 하나를 빼앗겼다.

카린이 골랐다는 말은, 그만큼 그 트랙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확실히 사람들 반응이 좋아.

많은 트랙메이커들은 카린 씨같은 탑 랭커 DJ가 자기 트랙을 플레이 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그 트랙이 훌륭하다고 보증해주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리고 전 세계 DJ들이 뒤따라 영향을 받아 틀면서 리스너들도 많이 찾아 듣게 되겠지.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이 자리에 있는 레이나에겐 난감하기만 하다.

하라주쿠 때 레이나가 했던 것처럼 트랙메이커 본인이 플레이한 후에 뒤따라 트는 거라면 모르지만, 저쪽이 먼저 선수치고 말았다.

그래도

완전 좋은데.

내 노래가 다시 태어난 것 같아.

완전히 익숙해진 트랙. 이렇게 되었다는 말은 거침없이 말하면 천천히 신선함을 잃어 간다는 뜻이다. 곡의 생명력이 조금씩 약해진다.

그게 되살아났어.

마치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은 것처럼.

불사조처럼.

그 말은 단순히 리믹스를 잘 해낸다는 뜻이 아니다. 선곡의 흐름과 타이밍, 소리를 내는 방식, 대회장 전체 분위기가 종합적으로 합쳐져 이뤄낸 결실이다.

자신이 플레이하는 퓨처 팝 컨텍스트에서 플레이하는 것도 물론 괜찮다. 하지만 지금 이 탄탄한 EDM 컨텍스트 속에서 더욱 살아난다.

그렇다면 나도 같은 방법으로 한 방 먹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건 조금 아닌 것 같아.

카린 씨가 그때 그 순간에 틀어서 좋았던 거지.

시부야의 DJ 부스로 고개를 돌리자, 카린도 레이나를 보며 실실 쪼개고 있다.

어떠냐?

그 자신감 어린 눈동자로 말하고 있다.

그리고 카린은 손아귀로 시선을 돌린다.

히다카 레이나랬지.

그 녀석은 언제나 사람들을 의식해 가며 플레이하고 있어. 서비스 정신이 투철하다고 해야 하나, 사람들을 기쁘고 즐겁게 만드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야. 눈치없을 정도로 오지랖이 넓고, 사람을 좋아하고 또 우직하고. 이게 잘못됐다는 게 아냐, 오히려 DJ가 가져야 할 덕목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는 데엔 한계가 있다.

카린은 대회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을 바라보았다. 관중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분위기를 최고로 끌어올리는 명곡을!’

‘이 흐름대로라면 Shining Light를 틀어 줘야지!’

‘우리에게 빛을 주소서!’

그런 목소리가 되지 못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근데, 그렇게 안 할거야.

사람들이 바라는 방향으로만 가는 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니다.

DJ가 손님 말만 따르고 그러면 그냥 시다바리지.

누가 이 자리를 주도하는지 깨닫게 해 주겠어.

그 다음으로 듣기만 해도 상큼해지는 밝은 팝 스타일 트랙. 하지만 베이스가 잘 울리고 강렬한 리듬 파트가 플로어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상상도 못한 전개에 관객들이 팔을 치켜들며 열광한다. 외친다. 붉은 불빛이 이리저리 튀어오른다.

기대를 저버리면서 기대 이상 성과를 거둔다.

그게 내 방식이야.

관중들은 벌써 황홀경에 빠져 음악 소리에 몸을 맡기고 있다.

내가 달리면 아무도 꿈에서 못 깨어나.

갖가지 트랙에서 사운드를 끌어와 쌓아올린다. 소리가 팡팡 터진다.

반짝이는 소리가 서로 녹아 섞여들어간다.

내가 소리를 빚어내면 다 끝난 거야.

누구도 이 파티를 막을 수 없다.

이 세상 소리가 아니다, 그런 신선한 놀라움을 맛보이는게 좋아.

내가 너희에게 새로운 세상을 알려주마.

한숨 돌린다 생각하게 만들고는 그러다 또 분위기를 뛰워.

다시금 관중들의 기대감이 높아져 간다.

소리에 굶주리며 기분이 고조되어 간다.

이런 굶주림을 부추기는 짓도, 이 두 팔에서 시작한다.

나는 일부러 아레나를 향해 짓궃은 웃음을 지어보인다.

아주 안달복달 하고 있구나.

“자 달려보자!!”

강렬한 킥과 대담한 베이스로 온 대회장을 후려친다.

나른한 랩에서부터 노이지한 사운드를. 쭉쭉 뻗어나가는 리듬인가 싶으면 아름다운 파트를.

눈 돌아가게 만드는 MIX.

치안이 좋지 못한 브로스텝(Brostep).

그 소리에 빠져들어 휘둘린다.

관중들뿐만 아니라 건너편 부스에 있는 레이나도 마찬가지다.

듣다 보면 자기 플레이에 소홀해질 정도로 카린의 플레이에 빠져버릴 것만 같다.

대단해.

카린은 손님을 의식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 의식하고 있다. 의식하는 것 같으면서 의식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알지 못했던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소리를 건네준다.

여지껏 들어본 적 없는 오래된 소리를 새로 태어나게 해 준다.

그러다보니까 듣고 싶어져.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아.

그 사람 안에 있는 좋아하는 것들을 끄집어냈을 뿐이었어.

나는 항상 눈치만 살피며 살아왔어.

그런데 혹시 만약에,

상대가 원하지 않았던 것임에도 그저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추천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설렘이 번져 오른다.

하지만 거절당할까봐 두려워.

어라?

그래도 지난 합숙 때, 카즈네 쨩과 후타바 쨩한테 프라모델 취미를 알려주고 싶다고 생각했었잖아.

그때는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

그럴 수 있었던 건 아마 그 둘은 동료라서.

프라모델에 관심을 가져 주지 않더라도, 그 두 사람이 나를 싫어해주진 않을 거란 사실을 난 믿으니까.

하지만 동료말고 다른 사람이라면 불안감이 앞서.

나는 어쩌다 이렇게 겁이 많아졌지?

시부야 쪽 DJ 부스로 고개를 돌린다.

카린 씨 저 너머로 언니가 보인다.

아, 그랬던 거야.

어린 시절 엄마가 나를 포기했고, 언니가 나한테 쌀쌀맞게 굴기 시작했어. 그때부터 난 바뀌었어.

미움받기 싫어. 버림받기 싫어.

그런 생각만 앞서니, 상대 기분에 맞춰주는 데만 집착하게 된 거야.

언니랑 눈이 마주쳤어.

내가 좋아하는 걸 내밀었더니 이런 건 음악이라 할 순 없다 그랬던 바로 그날.

그 날 그때 그 차가운 눈빛이 계속 마음 속에 눌러붙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언니 눈빛은 그때완 달라.

나를 똑바로 바라봐 주고 있어.

나에게 관심을 가져 주고 있어.

나를 거부하지 않고, 나에게 다가와 주고 있어. 들어주려 하고 있어.

내가 좋아하는 소리를. 내가 좋다고 느끼는 것들을.

그 눈동자가 이제 나를 이끌어주려 해.

마치 어둠을 밝히는 등불처럼.

당신 자신을 들려주도록 해.

그렇게 말걸어오고 있어.

“응……. 알았어.”

조금 겁나도,

평소에는 리스트에 넣어두지 않았을 곡을 불러와 곡머리에 CUE.

크게 울려퍼질 것 같은 예감이 들어.

평소 하던 것과는 어딘가 다르잖아.

잔뜩 겁먹은 마음에 괜히 망설이게 돼.

이러면 안돼. 이대로 가자.

스테이지 언저리를 막연히 바라보니 카즈네 쨩과 후타바 쨩이 보여.

언제나 내 곁엔 동료들이 있어.

그 동료들을 믿고,

뛰어 올라보자.

페이더를 끌어올리고 EQ를 돌렸다.

나의 다음 미개척지를 항하여!

환호 소리가 들린다.

온 대회장에서 터져 나오는 흥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심장 박동과 음악 비트가 뜨겁게 만나 저 끝까지 울려퍼졌다.

끝없이 올라가는 볼티지.

감정과 본능, 그 빛깔이 섞여들어갔다.

완전히 곡을 전환했으니, 이 다음 어떻게 할지 궁리해 보자.

번뜩이는 생각을 떠올린 그대로 손가락 끝에 보내 쇼트 믹스.

여태까지는 무의식적으로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진행만 고집해왔어. 하지만 더이상 거기 얽매이지 않을 거야.

재미있다고 느낀 그대로.

‘이거 괜찮지 않아?’ 그렇게 묻고 싶어졌어.

생각에 추진력이 붙어.

생각에 속도가 붙으면 같은 시간동안 더 많이 떠올려낼 수 있어.

뭐가 좋을까? 그리고 어느 게 좋을까?

좋아하는 트랙은 셀 수 없이 많아.

그 파츠를 믹서로 조립해 나가.

반짝이는 사운드와 내장을 뒤흔드는 베이스. 복잡한 구성과 어지러이 변해가는 리듬. 그것들을 조립해 새로운 드롭을 만들어내.

그것을 나만의 퓨처 사운드에.

문득 시부야 쪽 DJ 부스로 시선을 돌리니, 카린 씨가 즐거워하는 동시에 흉악해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잘 하잖아, 이 자식.

카린은 레이나가 하는 플레이를 의식하고 있었다. 그것이 관중들에게 울려 자신에게까지 퍼져 오니까.

짐작한 그대로네.

이 녀석은 주변에 영향을 끼치고 있어, 주변을 바꿔나가고 있어.

그리고 이 녀석 자신까지도 바꿔 나가고 있어.

그 변화가 나에게 기름을 끼얹는다.

“불타올라보자!”

경보(警報)가 울려 퍼진다. 베이스가 부서져라 연타한다. 드럼 비트를 때리듯이 쳐낸다. 랩을 쏘아대며 패대기치는 이상한 질주감.

전투 모드에 불이 붙었다.

AI 스피커가 그 마음과 소리를 알아차리고 불꽃을 비주얼로 투영해 낸다. 카린의 주변에 불길이 소용돌이치더니 불기둥이 되어 솟구친다.

비명인지 환호성인지 모를 소리가 대회장에서 터져 나온다.

불똥을 튀기며 타오르는 새가 나타났다.

봉황.카린의 성, 호오(鳳凰)는 신화 속 동물 봉황과 한자와 일본어 발음이 동일하다 제왕의 표식.

카린은 관객을 향해 두 팔을 뻗었다.

나는 덴온부의 제왕.

최강이란 그 한마디가 너무 좋아. 왕좌에 군림하는 것도 멋져.

그런데

의외로 그러기만 하면 재미없더라.

그래서 나는 입으로는 최강을 노래하는 한편, 마음 속에서는 계속 도전하는 마음가짐을 품고 있었지.

하지만 상대할 만한 녀석들이 별로 없어.

피라미드, 그 꼭대기는 좁으니까 말야.

조금 더 넓었으면 미친 새끼들이 드글드글 나타나줄까?

전에 미츠키가 말한 적 있다. 댄스 뮤직은 음악 계층 피라미드 저 아래에 있다며.

그렇다면 내가 그걸 뒤집어 엎겠어.

Inverted Pyramid.

끝내주는 재능을 가진 미친 녀석들이 벌떼같이 모여 싸움을 벌이는 지옥과도 같은 천국. 불가사의한 원더랜드.

내 안에 깃든 영혼이 외쳐댄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나 자신도 알지 못하는,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그 어떤 것이 소리가 되어 울려 퍼진다.

하지만 그런 세상, 혼자 만들어가는 건 어려워.

독고다이로 씨름해낼 힘은 없다고.

나는 아키바 쪽 DJ 부스를 노려보며 웃는다.

히다카 레이나.

네 녀석이라면 따라올 수 있겠지?”

카린이 중얼거리는 소리는 레이나에게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카린이 불타오르는 마음은 전해져온다. 그리고 그 탁월한 플레이에서 풍겨 나오는 무시무시함도.

레이나는 DJ 유니트와 함께 턴테이블, 리듬 머신을 겸해서 이펙터와 샘플러를 전부 구사해 내고 있다.

한편 카린은

따로 장비를 사용하고 있지 않다. 대회 주최진이 마련해 준 DJ 유니트만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도 어떻게 이렇게 소리가 다를 수 있어.

같은 장비를 쓰고 있어도 하늘과 땅 차이다.

레이나는 무심코 입술을 깨물었다.

카린 씨는 공격적인 플레이를 하는 것처럼 들려. 호탕하면서 폭력적으로 들릴 정도로.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가며 무서울 정도로 섬세하게 플레이하고 있어.

EQ 하나만 봐도, 보컬을 내세우고 리듬 비트를 앞으로 꺼내오는 조율을 세심하게 해내고 있어.

소리를 겹치는 쪽을 봐도, 소리가 합치면서 이상하게 들리지 않도록 조합을 계산해내고 있어. 동시에 울리면 어색하기는커녕 더 기분 좋게 들릴 정도로, 따로 들을 때보다 더욱 매력적일 정도로, 마치 원래부터 이랬던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 정도로.

미리 준비해서 선보인다면 어렵기야 하겠지만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 같아.

하지만 카린 씨는 그걸 그 자리에서 애드리브로 해내고 있어.

알고 있는 노래와 다른 노래를 머릿속으로 믹싱해 내지 않고서야. 그 시뮬레이션이 말도 안 될 정도로 정확해.

나도

조금 더 섬세하고, 그리고 대담해져 보는 거야.

과감한 기승전결을 섬세하게 플레이하며 선보이자.

내가 마음 속으로 그린 스토리를 소리로 지어내.

새하얀 노트를 펼쳐놓고 생각나는 대로 여러 색깔을 칠해내듯이.

그냥 소리치는 것처럼 돌직구로.

나를 소리로 전해보자.

거기에 어떤 색깔을, 어떤 파츠를, 어떤 트랙을, 어떤 소리를 쓸까?

온갖 코스가 머릿속에 떠올라.

그 선택지는 끝이 없어.

다시 말해 가능성에도 끝이 없어.

이펙트를 걸고 템포를 조절하고 BPM을 맞추며 다음 코스를 그려내.

머릿속으로 여러 생각을 동시에 해 보자.

생각할 시간이 모자라. 시간이 더 있어야 더 많이 시도해볼텐데.

시간이라고 하니까 그러고보니 남은 시간이

점수판을 올려보니 이제 5분밖에 안 남았어.

그리고 점수는 182 대 174.

“어…….”

점수 차이 훨씬 더 클 줄 알았는데.

플로어를 둘러보니 붉은 빛만큼 푸른 빛도 일렁이고 있었다.

둘러보니 붉은 색 못지않게 푸른색이 춤추고 있다.

오싹, 등줄기가 떨렸다.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저 호오 카린 씨에게 닿을 수 있을지도 몰라!

레이나의 눈동자에 불꽃이 비친다.

가슴속 고이 간직해 둔 투쟁심에도 불이 붙는다.

남은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서 쫓아가자!

생각을 빨리, 더욱 빨리. 그러면 선택할 수 있는 범위를 더욱 넓힐 수 있어. 그만큼 가능성도 넓어지는 거야.

텐션이 올라가 신경 회로에 속도를 더한다.

갖가지 조합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끝없이 느껴지는 선택지. 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서 나 자신을 표현해 보는 거야. 조합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거야.

평소에 하지않던 것도, 하면 안된다 하던 것도 가릴 필요 없어.

음악에 있어 룰이니 약속이니 하는 것들, 아무렴 뭐 어때!

우리는 자유로워.

풀밭을 달려 나가는 것처럼.

역사가 쌓아 올린 구조 따위는, 전부 무너트려버릴 파랑으로!

내가 느끼는 감동을 그루브에 실어 전하고 싶어!

스스로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DJ 유니트에 손을 뻗어댄다.

소리를 파츠처럼 조립해 나가는 것에 맞춰, 등 뒤에서 로봇이 조립되어나간다. 프레임에서 기계 내부를, 그리고 외장을 장착해 크로스 페이더가 출현한다.

그 모습은 레이나의 투쟁심을 상징하는 것이다.

알고 있었잖나.

카린은 레이나가 전력 질주해내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뛰었다.

그래, 바로 그거야.

“히다카 레이나, 어디 한번 덤벼봐라아아!!”

단 한번뿐인 이 순간을 즐기자고!

아플 정도로 이 순간을.

디제잉이란 건, 한순간에 벌어지는 허무한 행위다.

전자 음악이라 해서 몇 번이나 다시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

클럽 현장에서 듣는 거랑 집에서 듣는 건 완전히 달라.

현장도 그 공간에 따라 소리가 달라져.

그곳에 찾아온 손님들도 분위기를 영향을 미치고.

지금 이 시대,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장소, 여기 와 있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 내 마음가짐, 그런 걸 다 통틀어서 디제잉이라 부르는 거야.

이 플레이는 지금 이 순간에만 이뤄지는 플레이. 한번 울려 퍼지고나면 사라져버리고 말아. 똑같은 경험을 두 번 다시는 맛볼 수 없어.

그러기에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기에 생겨나는 것들도 있다.

레이나가 해내는 플레이에 자극받아, 나의 머릿속에도 도파민이 계속해서 분출되고 있어.

이상한 고양감과 행복함에 둘러싸여 사고 회로가 폭주한다.

조금 더해보자. 조금 더 빨리.

우린 더 빨리 달릴 수 있어.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

그 곳에서 아무도 하지 못한 플레이를 해내보는거야.

그게 새로운 장르가 되어, 새로운 음악이 되는거야.

아무도 들어보지 못한 미래의 소리.

아직 아무도 접하지 못한 세계로.

Shining Lights.

모든 감각에서 벗어나라.

모든 것들을 뛰어넘어라.

상상조차도.

미래를 지금 들려줄테니까.
 

레이나에게 카린의 모습이 보인다. 자아내는 소리가 반짝이고 있다.

대단해.

정말로 대단해.

생기 넘치는 소리.

방금 생명을 불어넣은 것처럼, 신선하고 생기 넘치는 소리.

새로이 태어난 음악이 춤추고 있어.

새 생명에서 고동이 울려퍼지고 있어.

눈부시고,

빠르면서,

까마득해.

마치 별똥별 같아.

어제였다면 나는 순식간에 뒤쳐졌을거야.

카린 씨를 쫓아가다보니, 어느새 내 한계를 넘어서버렸어.

서로 경쟁하니까 내가 나를 뛰어넘을 수 있었어.

나도 별똥별처럼.

지금 이 순간 반짝이면서.

수많은 별 가운데에서 만난 소리를 이어받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전자 음악으로 지어내고

넘쳐 흐르는 마음을 소리로 표현해내어

앞서 달려나가는 뒷모습에 손을 뻗어.

목표로 하는 별은 저 멀리 있어.

그 별은 카린 씨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분명 그것은, 언젠가 만나보고 싶은 나 자신.

정답이라 할 게 어디있겠어.

그 길잡이가 되어주는 것은, 끓어오르는 열정과 끈끈한 인연.

카즈네 쨩

후타바 쨩

미미토 쨩

히나 쨩

시안 쨩

타마 쨩

아키 씨

긴카 씨

카린 씨

루키아 쨩

그리고, 언니.

모든 이들에게서 받은 빛줄기가 가슴 속에서 빛나고 있어.

가슴이 뛰어오르고 있어.

계속되는 비트를 새겨가며 마음 가는 대로.

나는 미래로 손을 뻗어 내밀어.

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뻗으면 그 빛이 손에 닿을 것 같았다.